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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편지

허균의 편지

(글로는 말을, 말로는 뜻을 다하지 못하네)

허균 (지은이), 노경희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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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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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의 편지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허균의 편지 (글로는 말을, 말로는 뜻을 다하지 못하네)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중기(임진왜란~경종)
· ISBN : 9791124128862
· 쪽수 : 388쪽
· 출판일 : 2026-06-15

책 소개

조선 최고의 이단아이자 ‘역적 괴수’로 역사에 박제된,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 남긴 편지를 완역한 책이다. 오랜 기간 허균을 연구해 온 울산대 노경희 교수의 치밀한 고증을 거쳐, 1596년부터 1613년까지의 편지를 읽으며 격동적이었던 허균의 삶과 사유를 독자가 함께 실감할 수 있도록 하였다.

목차

도판
옮긴이 서문

1596년 | 선조 29, 병신
9월 정구에게 보내다與鄭寒岡
정구에게 보내다與鄭寒岡

1597년 | 선조 30, 정유
8월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1599년 | 선조 32, 기해
5월 임수정에게 보내다與任約初
임수정에게 보내다與任約初
6월 임수정에게 보내다與任約初

1600년 | 선조 33, 경자
2월 임수정에게 보내다與任約初
임현에게 보내다與林子昇
3월 임수정에게 보내다與任約初
임현에게 보내다與林子昇
임현에게 보내다與林子昇
임현에게 보내다與林子昇
5월 임현에게 보내다與林子昇
임현에게 보내다與林子昇
6월 임수정에게 보내다與任約初
7월 임현에게 보내다與林子昇
긴 편지 | 재상 이헌국에게 올리다上完城李相國書, 첫 번째
재상 이헌국에게 올리다上完城第二書, 두 번째

1601년 | 선조 34, 신축
2월 임현에게 보내다與林子昇
3월 정구에게 보내다與鄭寒岡
제강공자에게 보내다與霽江公子
8월 한준겸에게 보내다與韓柳川
한준겸에게 보내다與韓柳川
9월 한준겸에게 보내다與韓柳川

1602년 | 선조 35, 임인
2월 제강공자에게 보내다與霽江公子
서산대사 휴정에게 보내다與西山老師
3월 서산대사 휴정에게 보내다與西山老師
4월 서산대사 휴정에게 보내다與西山老師
5월 서산대사 휴정에게 보내다與西山老師

1603년 | 선조 36, 계묘
8월 정구에게 보내다與鄭寒岡
미상 | 허체 형에게 보내다與許兄子賀
긴 편지 | 김확에게 보내다與金甥正卿書
권필에게 보내다與石洲書

1604년 | 선조 37, 갑진
2월 사명대사 유정에게 보내다與松雲大師 1
3월 한호에게 보내다與韓石峯
5월 이호민에게 올리다上李五峯
8월 류성룡 정승에게 올리다上西厓相
9월 황정욱에게 올리다上黃芝川
10월 한호에게 보내다與韓石峯
허체 형에게 보내다與許兄子賀
긴 편지 | 이조판서 허욱에게 올리다上許吏曹頊書

1605년 | 선조 38, 을사
2월 류성룡 정승에게 올리다上西厓相
심희수 정승에게 올리다上一松相
3월 이덕형 정승에게 올리다上漢陰相
이항복 정승에게 올리다上鼇城相
유근에게 올리다上柳西坰
4월 한호를 맞이하다邀景洪
7월 이춘영에게 보내다與李實之
이정에게 보내다與李懶翁
9월 유근에게 올리다上柳西坰
11월 최천건에게 보내다與崔汾陰
12월 김현성에게 보내다與金南窓
긴 편지 | 형님[허성]에게 답해 올리다奉答家兄書
허녕에게 답하다答許新昌書
이대린에게 답하다答錦溪正書

1606년 | 선조 39, 병오
1월 류성룡 정승에게 올리다上西厓相
사명대사 유정에게 보내다與松雲大師
2월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3월 윤근수에게 올리다上尹月汀
이호민에게 올리다上李五峯
5월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7월 김현성에게 보내다與金南窓
8월 황정욱에게 올리다上黃芝川
윤의립에게 보내다與尹止中
10월 김현성에게 보내다與金南窓
11월 최천건에게 보내다與崔汾陰

1607년 | 선조 40, 정미
1월 이정에게 보내다與李懶翁
2월 아무개에게 보내다與○○
3월 황정욱에게 올리다上黃芝川
최립에게 보내다與崔簡易
최립에게 보내다與崔簡易
6월 이춘영에게 보내다與李實之
최천건에게 보내다與崔汾陰
7월 이춘영에게 보내다與李實之
8월 임연에게 답하다答任子正
아무개에게 보내다與○○
최천건에게 보내다與崔汾陰
윤근수에게 올리다上尹月汀
9월 최천건에게 보내다與崔汾陰
최천건에게 보내다與崔汾陰
10월 허체 형에게 보내다與許兄子賀
임연에게 답하다答任子正
조위한에게 보내다與趙持世
최천건에게 보내다與崔汾陰
양경우에게 보내다與梁子漸
12월 최천건에게 보내다與崔汾陰
홍경신에게 보내다與洪鹿門
조위한에게 보내다與趙持世
긴 편지 | 이유홍에게 보내다與李大中, 첫번째
이유홍에게 보내다與李大中第二書, 두번째
이유홍에게 보내다與李大中第三書, 세번째
성준구에게 보내다與成德甫書
최천건에게 답하다答崔汾陰書

1608년 | 선조 41, 무신
1월 최천건에게 보내다與崔汾陰
홍경신에게 보내다與洪鹿門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3월 이덕형 정승에게 올리다上漢陰相
신흠 어르신에게 보내다與申玄翁
신흠 어르신에게 보내다與申玄翁
심열에게 보내다與沈學而
조위한에게 보내다與趙持世
4월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6월 조호에게 보내다與曺養吾
7월 심광세에게 보내다與沈扶安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8월 윤근수에게 올리다上尹月汀
김현성에게 보내다與金南窓
이이첨에게 답하다答李觀松
9월 조위한에게 보내다與趙持世
10월 승려 해안 경석에게 보내다與海眼庚釋
11월 임연에게 답하다答任子正
12월 조위한에게 보내다與趙持世
조위한에게 보내다與趙持世
민인길에게 보내다與閔叔正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긴 편지 | 임연에게 보내다與任子正書
임연에게 답하다答任子正書
큰조카에게 답하다答長姪書
조위한에게 보내다與趙持世書
가형[허성]에게 올리다奉上家兄書

1609년 | 광해 1, 기유
1월 이경전에게 답하다答李仲集
황신에게 보내다奉黃思叔
이매창에게 보내다與桂娘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3월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4월 이달에게 보내다與李蓀谷
이달에게 보내다與李蓀谷
7월 윤오정에게 답하다答尹梧亭
8월 제강공자에게 보내다與霽江公子
9월 조위한에게 보내다與趙持世
이이첨에게 보내다答李觀松
허체 형에게 보내다與許兄子賀
허체 형에게 보내다與許兄子賀
이사홍에게 올리다奉李滄海
이사홍에게 올리다奉李滄海
조희일에게 보내다與趙悟叔
홍중인에게 보내다與洪仲仁
양경우에게 보내다與梁子漸
이매창에게 보내다與桂娘
10월 이원형에게 보내다與李士常
이사홍에게 올리다奉李滄海
윤훤에게 보내다與尹次野
조위한에게 보내다與趙持世
12월 이수광에게 보내다與李芝峯
박엽에게 보내다與朴叔夜

1610년 | 광해 2, 경술
1월 윤훤에게 보내다與尹次野
남이공에게 보내다與南子安
2월 조위한에게 보내다與趙持世
조위한에게 보내다與趙持世
3월 허체 형에게 보내다與許兄子賀
이안눌에게 보내다與李子敏
이안눌에게 보내다與李子敏
권필에게 보내다與權汝章
4월 이안눌에게 보내다與李子敏
이안눌에게 보내다與李子敏
이수광에게 보내다與李芝峯
홍서봉에게 보내다與洪輝世
5월 이항복 정승에게 올리다上鼇城相
권필에게 보내다與權汝章
권필에게 보내다與權汝章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6월 허체 형에게 보내다與許兄子賀
7월 홍서봉에게 보내다與洪輝世
임숙영에게 보내다與任茂叔
9월 이정귀에게 보내다與李月沙
심액에게 보내다與沈重卿
조찬한에게 보내다與趙善述
10월 신흠 어르신에게 보내다與申玄翁
정협에게 보내다與鄭和伯
이달에게 보내다與李蓀谷
12월 김상준에게 답하다答金汝秀
윤수겸에게 답하다答尹鳴益
정응운에게 답하다答鄭時望
홍중인에게 보내다與洪仲仁

1611년 | 광해 3, 신해
1월 이정귀에게 보내다與李月沙
신흠 어르신에게 보내다與申玄翁
이이첨에게 보내다答李觀松
기윤헌에게 보내다寄奇獻甫
장유에게 답하다答張持國
조카 실에게 답하다答實姪
함산 수령 한회일에게 사례하다謝咸山倅
2월 송구에게 보내다與宋天翁
송구에게 보내다與宋天翁
권필에게 보내다與權汝章
남궁생에게 답하다復南宮生
3월 조카 실에게 답하다答實姪
용산 수령 이할에게 보내다與龍山倅
함산 수령 한회일에게 사례하다謝咸山倅
조카 채에게 답하다答寀姪
이재영에게 보내다與李汝仁
4월 윤오정에게 답하다答尹梧亭
9월 허체 형에게 보내다與許兄子賀
긴 편지 | 대사간 정협에게 주다與鄭大諫書
유시어에게 보내다與柳侍御書
정생에게 답하는 글答鄭生書
이생에게 답하는 글答李生書

1613년 | 광해 5, 계축
정월 1일 금산 사또에게 보내다
2월 19일 아무개에게 보내다
4월 16일 금산군수 이안눌에게 보내다

수신인
허균 연보

옮긴이 해제 : 글로는 말을, 말로는 뜻을 다하지 못하네

저자소개

허균 (지은이)    정보 더보기
허균(許筠, 1569∼1618)은 어떤 사람인가? 흔히 허균은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저자, 또는 반역을 기도하다가 처형된 인물로 운위된다. 《홍길동전》에 나타나는 적서 차별에 대한 회의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욕망이 허균의 평소 염원을 반영했다는 식이다. 하지만 허균이 《홍길동전》의 저자라는 의견은 허균과 거리를 두어야 할 이유가 충분했던 적대적 인물의 전언(傳言)에만 등장할 뿐,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직접적인 근거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허균이 반역을 도모했는가 하는 문제 역시 진위가 불분명하다. 조선 시대에 반역죄로 처형된 여타 인물의 경우와 달리, 허균에 대해서는 직접적 물증 없이 주변 인물들의 증언만으로 사형이 결정되었기에 ‘훗날 반드시 이론(異論)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되어 있기도 할 정도다. 이처럼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음에도 위의 두 가지 사안은 학교 교육이나 대중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졌고, 그 결과 일반 대중이 허균이라는 인물을 생각하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허균에 관한 직접 경험이 아니라 허균에 대한 소문을 채록한 야사(野史) 계통의 자료에 의존한 현대의 전언들이 허균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를 증폭시킨 면이 있다. 하지만 신빙성 있는 1차 자료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허균의 면모는 그런 대중적인 인식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는 조선 시대를 풍미한 사상과 문화, 정치 제도에 순응한 점에 있어서는 동시대의 여느 관료 문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례로 허균은 유가 전통의 핵심을 이루는 경서(經書)나 사서(史書)에 대한 학습 및 내재화, 충효라는 덕목에 대한 숭상과 실천을 사대부가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으로 인정한다. 본서에 수록한 〈엄처사전〉은 물론, 〈학산초담〉을 비롯한 초기작이나 허균의 나이 40대 초반에 쓴 〈학론(學論)〉(1610) 같은 글에서 일관되게 이 입장이 견지되고 있다. 흔히 허균이 당대 관료나 사대부 문인들과 구별되는 개성을 지녔다 해 운위되는 것이 불교 서적이나 도가 사상에 대한 애호라고들 한다. 하지만 도가적 어휘가 대거 등장하는 〈남궁선생전〉을 쓴 이후에도 〈학론〉에서 보여 주는 것처럼, 정치의 기본 원리로서 성리학의 기본적 사유 방식을 옹호한 점은 특기될 필요가 있다. 또한 허균이 혁명 내지 사회 개혁을 도모한 인물로 거론될 때 항상 등장하는 것이 〈호민론〉이다. 〈호민론〉에 피력된 입장은 민(民)의 역량에 대한 호감과 긍정이 아니라, 민의 불만을 조기에 무마해야 기성 지배층의 안정적 집권이 가능하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라는 점이 최근 연구들에서 지적되어 왔다. 민에 대한 허균의 입장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으며, 이 점은 본서에 수록한 〈남궁선생전〉의 조회 장면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허균은 지배층의 일원으로서 기성의 가치에 상당히 동조하는 가운데 주류 사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했던 인물이다. 40대 이후에 정계의 고위직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기꺼이 그에 응했던 사실은 허균의 본심이 어디에 있었던가를 짐작하게 한다. 그뿐 아니라 그는 자신의 문학적 역량을 연마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이 상류층이기에 접근할 수 있었던 문화 자원을 적극 활용했다. 그가 이룬 문학적 성취는 대부분 그의 사회적 지위 덕분에 얻을 수 있었던 다양한 자원들에 힘입고 있다. 가령 허균의 척독과 같은 초단형(超斷形)의 편지 양식이나, 그의 산문 창작에 있어서 중요한 참조점이 된 《세설신어》 같은 책은 단지 허균이라는 한 개인의 기호에 의해 개발되거나 주목된 책이 아니다. 선조?광해군 연간 조선 문단에서는 명대 문학, 특히 강남 사대부 문인들 사이에서 애호된 문학 양식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허균 역시 이러한 동향에 참여하고 있었다. 《세설신어》 역시 강남 사대부들 사이에서 16세기에 재발견되고 주목된 서적 중 하나다. 한 단락 정도 되는 짧은 분량의 일화나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동원해 묘사하고자 하는 인물의 품성을 간결하게 스케치하는 《세설신어》의 스타일은 위진 남북조 시대에 나온 것이지만, 당시 명대 문학을 선도하고 있던 16세기 강남 문단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16세기 말 명대 문단을 주도했던 왕세정(王世貞, 1526∼1590)에 의해 1585년에 《세설신어보》가 출간되고, 이어서 《세설신어》를 모방한 각종 후속 작품이 대거 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명대 강남 사대부 문인 그룹 내에서 《세설신어》가 크게 유행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제기되는 설명은 다음과 같다. 당대 강남의 경제적 부흥에 힘입어 문화적 소양이 일천한 신흥 부유층이 부상했고, 이들의 도전에 응전하는 기성 사대부 계층은 자신들이야말로 선천적인 차원에서 우수한 문화적 소양을 지니고 있다는 입장을 정립해 갔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지(李贄, 1527∼1602)나 원굉도(袁宏道, 1568∼1610)처럼 문학에 있어 개성 표현의 가치를 중시한 것도, 강남 지역의 그러한 문화적 동향의 한 단면으로, 기성 사대부들의 문화적 권위를 수성하려는 경향의 한 지류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을 시야에 넣고 다시 허균의 저 유명한 발언, “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라는 개성 중시의 선언을 되짚어 보면, 일견 독창성을 중시하는 듯한 허균의 지향 역시 보다 넓은 문화적 흐름의 일부일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다. 실로 허균은 《세설신어》를 비롯해 왕세정으로 집약되는 강남 문인 사회의 문예적 동향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허균은 그의 〈사우재기〉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세설체 저작의 저자이자 왕세정과 더불어 강남의 문예 담론을 주도했던 인물인 하량준(何良俊, 1506∼1573)의 글에 대해서도 열렬한 호감을 표했다. 특히 명 사신이자 강남 출신 문인인 주지번(朱之蕃, 1558∼1624)과 1606년에 직접 만난 이후로는, 강남의 문인들이 그랬던 것과 같이 회화, 서예, 미식 등 다채로운 문화적 활동 전반으로 관심의 폭을 확장해 갔다. 작문에 있어서도 기성의 전범이나 관습을 답습하기보다 글쓴이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 역시 주지번과의 만남 이후 뚜렷하게 정식화된다. 요컨대 동시대 조선 관료 문인과의 비교에서 드러나는 허균의 개성도 좀 더 시야를 확대해 보면 일정한 문화적 동향과의 동질성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면이 있다. 이상에서 짚어 본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허균은 당대 조선 사회 상류층의 일원으로서 일종의 고급문화에 깊이 침잠함으로써 자신의 소양을 형성해 나갔으며, 결국 허균의 문학적 성취와 개성 강조의 문학론은 단순한 개인의 독창성의 발로라기보다는, 조선 중기 사대부 문화와 명대 강남 문인 문화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 결과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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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희 (지은이)    정보 더보기
울산대 글로벌인문학부(국문학 전공) 교수. 서울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일본 교토대에서 중어중문학을 배우고 동아시아 비교문학과 문헌학, 출판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대학원 시절 허균과 허봉의 글을 읽으며 허씨 집안 남매들에 관심을 가졌고, 박사논문에서 허균을 중심으로 17세기 한중문학교류의 실상을 다루었다. 동아시아 서적들의 형태와 물질적 요소, 한자한문과 자국어 번역, 종교서 출판 또한 주요 연구 과제이다. 저서로 『17세기 전반기 한중 문학교류』, 번역서로 오오키 야스시(大木康)의 『명말 강남의 출판문화』와 스즈키 도시유키(鈴木俊幸)의 『에도의 독서열』 등 다수의 연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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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희의 다른 책 >

책속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하면서 처음 만난 사람이 허균이었다. 그렇게 허균의 글을 하나둘씩 따라 읽다가 어느 순간 박사논문의 절반을 허균의 글을 대상으로 쓰게 되었다. (…) 생의 국면에서 겪는 일들에 대해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주변 인물들에게 무어라 말을 걸고 어떠한 마음으로 대하는지, 날것 그대로인 그의 목소리들은 아쉽게도 논문의 재료가 되기에는 너무나 여리고 섬세했다. 손을 뻗어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바로 사라져버리는 신기루 같았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저 글들을 통해 허균의 내면에 더욱 깊이 다가가고 싶었다. _「옮긴이 서문」에서


옛날 명사들은 반드시 술을 실컷 마시고 『이소경離騷經』을 숙독해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둘 다 전혀 갖추지 못했네. 백관 중에 어떠한 자리라도 정말 달게 받아들이려는데 그대는 나를 천 길 골짜기 밑에서 곧장 끌어올리려 하니, 그대에게 옛날의 천하장사 오획만한 힘이 있을지 모르겠네. 애만 쓰고 소득이 없을까 두렵다네. _「임수정에게 보내다」(1600)에서


장부로 세상에 태어나 젊은 시절은 번개처럼 빠르게 지나가니, 한 번의 즐거움이라면 족히 만종萬鍾의 녹봉도 대적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그러한 즐거움을 얻을 수만 있다면 꾸짖는 이들이 천 명이라 해도 어찌 나의 털구멍 하나라도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반드시 의리를 해치는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공께서 음식을 드시다가 이것을 보시면 분명 웃음이 터져나와 밥상 가득 입 속의 밥알을 뿜고 말 것입니다. 다 갖추지 못합니다.
_「한준겸에게 보내다(1601)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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