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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

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

(허균 선집)

허균 (지은이), 정길수 (편역)
돌베개
1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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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 (허균 선집)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91124669112
· 쪽수 : 351쪽
· 출판일 : 2026-09-24

목차

어디로 돌아갈까
백상루 1 / 압록강을 건너며 / 진산강에서 / 수레 위에서 / 대정강 / 신안 / 철산강 건너며 / 스님의 책 앞에 쓰다 / 어디로 돌아갈까 / 천안 가는 길 / 백상루 2 / 타향 사는 아낙의 원한 / 환희령 / 만폭동 / 원통사 / 백전암 / 잠 못 이룬 밤 / 요양의 달 / 삼차하 건너며 / 외로운 밤 / 언제나 나그네 / 설날 / 읽고 또 읽으리라 / 책 욕심 비웃지 말라

내 마음 따라
그리운 아내 / 봄빛 / 비 오는 날의 낮잠 / 잉어회 한입 / 고요한 마음 / 꿈에 만난 벗 / 게으른 관리 / 내 삶을 살아가리니 / 우습구나 내 인생 / 고단한 나그네 이재영 / 계랑을 애도하며 / 호남의 꿈 사라지고 / 의금부에 갇혀 / 좋구나 유배살이 / 유배지에서 / 봄날 / 꽃을 심으며 / 이탁오의 『분서』를 읽고 / 가는 봄을 원망하다 / 늙는 건 괜찮지만 / 양명학 책을 읽고 / 장본청의 심성설을 읽고 / 꿈이 적어져

변혁의 길
통곡의 집 / 호민이 두렵다 / 버려진 인재들 / 참된 학문, 참된 선비 / 관서와 관리를 줄이자 / 소인과 패거리 / 군대에 대하여 / 서쪽 오랑캐를 방비하라

내가 사랑한 사람
아내 / 화가 이정 / 권필 / 사명당 / 엄처사 / 손곡산인 / 장산인 / 장생 / 네 친구의 집 / 이재영에게 보낸 편지 1 / 이재영에게 보낸 편지 2 / 이재영에게 보낸 편지 3

나를 가두지 말라
나에 대한 찬미 / 누추한 방 / 『푸줏간 앞에서 크게 입맛을 다시다』에 붙인 서문 / 근원을 찾는 집 / 나를 비난하는 이들에게 / 개도 불성이 있다더니 / 깨달음의 집 / 꿈 풀이 / 나의 운명 / 『한정록』 서문 / 최천건에게 보낸 편지 1 / 최천건에게 보낸 편지 2

문학에 대한 나의 생각
글쓰기에 대하여 / 시는 어떻게 지어야 하는가 / 우리 문학의 계보와 나의 문학 / 옛날과 지금 / 『고시선』 서문 / 『당절선산』 서문 / 『명사가시선』 서문 / 『구소문략』 발문 / 『서유기』 발문 / 제자백가를 읽고

저자소개

허균 (지은이)    정보 더보기
허균(許筠, 1569∼1618)은 어떤 사람인가? 흔히 허균은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저자, 또는 반역을 기도하다가 처형된 인물로 운위된다. 《홍길동전》에 나타나는 적서 차별에 대한 회의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욕망이 허균의 평소 염원을 반영했다는 식이다. 하지만 허균이 《홍길동전》의 저자라는 의견은 허균과 거리를 두어야 할 이유가 충분했던 적대적 인물의 전언(傳言)에만 등장할 뿐,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직접적인 근거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허균이 반역을 도모했는가 하는 문제 역시 진위가 불분명하다. 조선 시대에 반역죄로 처형된 여타 인물의 경우와 달리, 허균에 대해서는 직접적 물증 없이 주변 인물들의 증언만으로 사형이 결정되었기에 ‘훗날 반드시 이론(異論)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되어 있기도 할 정도다. 이처럼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음에도 위의 두 가지 사안은 학교 교육이나 대중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졌고, 그 결과 일반 대중이 허균이라는 인물을 생각하는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허균에 관한 직접 경험이 아니라 허균에 대한 소문을 채록한 야사(野史) 계통의 자료에 의존한 현대의 전언들이 허균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를 증폭시킨 면이 있다. 하지만 신빙성 있는 1차 자료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허균의 면모는 그런 대중적인 인식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는 조선 시대를 풍미한 사상과 문화, 정치 제도에 순응한 점에 있어서는 동시대의 여느 관료 문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례로 허균은 유가 전통의 핵심을 이루는 경서(經書)나 사서(史書)에 대한 학습 및 내재화, 충효라는 덕목에 대한 숭상과 실천을 사대부가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으로 인정한다. 본서에 수록한 〈엄처사전〉은 물론, 〈학산초담〉을 비롯한 초기작이나 허균의 나이 40대 초반에 쓴 〈학론(學論)〉(1610) 같은 글에서 일관되게 이 입장이 견지되고 있다. 흔히 허균이 당대 관료나 사대부 문인들과 구별되는 개성을 지녔다 해 운위되는 것이 불교 서적이나 도가 사상에 대한 애호라고들 한다. 하지만 도가적 어휘가 대거 등장하는 〈남궁선생전〉을 쓴 이후에도 〈학론〉에서 보여 주는 것처럼, 정치의 기본 원리로서 성리학의 기본적 사유 방식을 옹호한 점은 특기될 필요가 있다. 또한 허균이 혁명 내지 사회 개혁을 도모한 인물로 거론될 때 항상 등장하는 것이 〈호민론〉이다. 〈호민론〉에 피력된 입장은 민(民)의 역량에 대한 호감과 긍정이 아니라, 민의 불만을 조기에 무마해야 기성 지배층의 안정적 집권이 가능하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라는 점이 최근 연구들에서 지적되어 왔다. 민에 대한 허균의 입장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으며, 이 점은 본서에 수록한 〈남궁선생전〉의 조회 장면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허균은 지배층의 일원으로서 기성의 가치에 상당히 동조하는 가운데 주류 사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했던 인물이다. 40대 이후에 정계의 고위직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기꺼이 그에 응했던 사실은 허균의 본심이 어디에 있었던가를 짐작하게 한다. 그뿐 아니라 그는 자신의 문학적 역량을 연마하는 과정에서도, 자신이 상류층이기에 접근할 수 있었던 문화 자원을 적극 활용했다. 그가 이룬 문학적 성취는 대부분 그의 사회적 지위 덕분에 얻을 수 있었던 다양한 자원들에 힘입고 있다. 가령 허균의 척독과 같은 초단형(超斷形)의 편지 양식이나, 그의 산문 창작에 있어서 중요한 참조점이 된 《세설신어》 같은 책은 단지 허균이라는 한 개인의 기호에 의해 개발되거나 주목된 책이 아니다. 선조?광해군 연간 조선 문단에서는 명대 문학, 특히 강남 사대부 문인들 사이에서 애호된 문학 양식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허균 역시 이러한 동향에 참여하고 있었다. 《세설신어》 역시 강남 사대부들 사이에서 16세기에 재발견되고 주목된 서적 중 하나다. 한 단락 정도 되는 짧은 분량의 일화나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동원해 묘사하고자 하는 인물의 품성을 간결하게 스케치하는 《세설신어》의 스타일은 위진 남북조 시대에 나온 것이지만, 당시 명대 문학을 선도하고 있던 16세기 강남 문단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16세기 말 명대 문단을 주도했던 왕세정(王世貞, 1526∼1590)에 의해 1585년에 《세설신어보》가 출간되고, 이어서 《세설신어》를 모방한 각종 후속 작품이 대거 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명대 강남 사대부 문인 그룹 내에서 《세설신어》가 크게 유행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제기되는 설명은 다음과 같다. 당대 강남의 경제적 부흥에 힘입어 문화적 소양이 일천한 신흥 부유층이 부상했고, 이들의 도전에 응전하는 기성 사대부 계층은 자신들이야말로 선천적인 차원에서 우수한 문화적 소양을 지니고 있다는 입장을 정립해 갔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지(李贄, 1527∼1602)나 원굉도(袁宏道, 1568∼1610)처럼 문학에 있어 개성 표현의 가치를 중시한 것도, 강남 지역의 그러한 문화적 동향의 한 단면으로, 기성 사대부들의 문화적 권위를 수성하려는 경향의 한 지류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을 시야에 넣고 다시 허균의 저 유명한 발언, “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라는 개성 중시의 선언을 되짚어 보면, 일견 독창성을 중시하는 듯한 허균의 지향 역시 보다 넓은 문화적 흐름의 일부일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다. 실로 허균은 《세설신어》를 비롯해 왕세정으로 집약되는 강남 문인 사회의 문예적 동향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허균은 그의 〈사우재기〉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세설체 저작의 저자이자 왕세정과 더불어 강남의 문예 담론을 주도했던 인물인 하량준(何良俊, 1506∼1573)의 글에 대해서도 열렬한 호감을 표했다. 특히 명 사신이자 강남 출신 문인인 주지번(朱之蕃, 1558∼1624)과 1606년에 직접 만난 이후로는, 강남의 문인들이 그랬던 것과 같이 회화, 서예, 미식 등 다채로운 문화적 활동 전반으로 관심의 폭을 확장해 갔다. 작문에 있어서도 기성의 전범이나 관습을 답습하기보다 글쓴이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 역시 주지번과의 만남 이후 뚜렷하게 정식화된다. 요컨대 동시대 조선 관료 문인과의 비교에서 드러나는 허균의 개성도 좀 더 시야를 확대해 보면 일정한 문화적 동향과의 동질성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면이 있다. 이상에서 짚어 본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허균은 당대 조선 사회 상류층의 일원으로서 일종의 고급문화에 깊이 침잠함으로써 자신의 소양을 형성해 나갔으며, 결국 허균의 문학적 성취와 개성 강조의 문학론은 단순한 개인의 독창성의 발로라기보다는, 조선 중기 사대부 문화와 명대 강남 문인 문화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 결과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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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길수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 『구운몽 다시 읽기』 『17세기 한국소설사』, 편역서 『길 위의 노래‐김시습 선집』 『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허균 선집』, 논문 「전쟁, 영웅, 이념」 등이 있다. 한국 고전소설과 한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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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너도 알코올 중독이었으면 알 거 아냐?
(중략) 지금 네가 보고 있는 내 모습은 미래의 너야. 그래도 괜찮겠냐?!”


“전에 어떤 스님에게 극락에 대해 들었는데요, 사람이 죽고 하늘로 올라가면 자기가 원하는 나이로 지낼 수 있대요. …안자이 씨가 먼저 가시면… 처음 만났던 그 나이로 기다려주실래요?”


“기리코, 모든 걸 완벽하게 할 필요는 없어. ‘구원’할 사람의 수를 꼭 정해두지 않아도 상관없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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