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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외국 과학소설
· ISBN : 9791138485005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25-01-17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_ 7
3월 10일 _ 53
소설가의 본보기 _ 95
네가 손에 쥐어야 했던 황금에 대해서 _ 153
가짜 _ 207
수상 에세이 _ 267
작가의 말 _ 294
역자 후기 _ 298
리뷰
책속에서
우리는 날마다 부분적으로 진보한다. 자신에게 별 의미가 없는 일이 타인에게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논리적으로 수긍할 수 없는 절차가 사회를 움직이는 데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모든 정치가가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깨끗하고 올바른 이미지의 아이돌이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혈안이 된다는 것도 안다. 멋진 영웅을 탄생시킨 만화가가 멋진 영웅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자선사업이 절세 대책으로 이용된다는 것도 안다. 삶이란, 그런 불순함을 받아들이고, 그 일부가 되어 다른 어른들과 함께 세상을 오염시켜 가는 것임을 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수밖에 없고,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몰아세워 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런 지식을 쌓아간다는 건 틀림없이 부분적인 진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존재가 사회라는 불완전한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 만들어 낸 필요악이자 원칙이며 필요하다고 해도 결국 악은 악이고 거짓은 거짓이다. 우리는 부분적인 진보 과정에서 악과 거짓을 내면화해 간다. 그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의 일부인 것은 틀림없지만,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퇴화이기도 하다. 나는 성장하고 진보하며 지금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을 용납하게 되었다. 입사지원서를 쓸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 대신, 수많은 분노와 슬픔, 기쁨을 잃어버렸다.
독서란 본질적으로 대단히 고독한 작업이다. 영화나 연극처럼 누군가와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홀로 경험한다. 그뿐만 아니라, 책은 독자에게 상당한 능동성을 요구한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무언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독자는 자신의 의지로 책을 마주하고 제힘으로 언어를 수용해야 한다. 그런 고문을, 상황에 따라서는 몇 시간, 많으면 열 시간 이상을 요구한다. 나는 때때로 책이라는 존재가 어리광쟁이 어린아이나 성가신 연인처럼 보인다.
“나만 봐. 나에게만 계속 관심을 줘.”
책이 그렇게 소리치는 것처럼 느껴진다. 참으로 오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오만함 덕분에 우리는 한 권의 책과 깊은 부분에서 교감할 수 있다. 누군가가 쓴 텍스트와 단 한 명의 고독한 독자. 둘만의 시간을 농밀하게 보냈기에 가능한 유대다.
소설을 써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자주 물어보는 질문이다.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겨나는 겁니까? 내 경험을 말하면, 지금까지 소설의 아이디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이디어는 퍼즐 조각 같은 것이어서 늘 내 마음속에 몇 가지씩 존재한다. 그 조각들을 끼워 맞추면 비로소 소설의 아이디어가 된다. 작품을 구상하는 기간의 태반은 딱딱 들어맞지 않는 퍼즐 조각들을 억지로 겹쳐놓고 겹친 부분을 잘라내거나 공백 부분을 채워 넣으면서 모양새를 다듬어가는 데 시간을 쏟는다. 이기고 치대는 사이에 점점 아이디어의 형태를 갖춰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