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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일본 지식인 조선을 엿보다

18세기 일본 지식인 조선을 엿보다

다이텐 (지은이), 김문경, 진재교 (옮긴이)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6,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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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일본 지식인 조선을 엿보다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18세기 일본 지식인 조선을 엿보다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일본사 > 일본사 일반
· ISBN : 9791155500040
· 쪽수 : 472쪽
· 출판일 : 2013-08-20

책 소개

'다시 보는 동아시아' 1권. 교토의 쇼코쿠지의 승려 다이텐이 계미년(1763) 조선통신사에 참여한 조선 문사들과 필담한 내용을 현대어로 옮긴 것으로, 그 원제(문집의 제목)는 <평우록萍遇錄>이다.

목차

· 계미통신사 행렬도
· 조선통신사래조도
· 오사카 관계지도
· 책머리에
· 해제
· 등장인물 소개

역주 | 평우록 상권·평우록 하권
원문 | 평우록 상권·평우록 하권

· 사행록 관계기사
· 옮긴이 후기
· 참고문헌
· 옮긴이 소개
· 찾아보기

저자소개

다이텐 (지은이)    정보 더보기
이름은 겐죠顯常, 자字는 바이소오梅莊, 후에는 치쿠죠竺常라고 자칭했다. 오오미노쿠니近江國(지금의 시가현滋賀縣), 간자키군神崎郡(지금의 히가시오오미시東近江市)의 유의儒醫이마보리 도오안今堀東安의 아들이다. 8세(1726)에 아버지를 따라 교토京都로 가서 우지宇治의 황벽종黃檗宗 만부쿠지萬福寺에 들어갔으나, 이윽고 임제종臨濟宗 쇼코쿠지相國寺로 옮겨 11살 자운암慈雲菴의 도쿠호지슈獨峯慈秀 밑에서 득도得度하여 중이 되었다. 이후 스승인 도쿠호지슈가 죽자 41세(1759) 때부터 54세(1772)까지 쇼코쿠지를 떠나 교토 산 속에 은거하여 문인 생활을 보내며, 키무라 켄카도 등과 교제하였다. 조선 사절을 만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또한 교토의 채소상菜蔬商 출신의 화가 이토자쿠쥬伊藤若沖를 지원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54세에 쇼코쿠지로 돌아가, 59세(1777)에 쇼코쿠지의 제113대 주지승이 되었으며, 이어 63세(1781)에 쓰시마 이테이안以酊菴 윤번승으로 임명되어 2년간 조선과의 외교문서 작성을 담당했다. 귀임 후 69세(1787)에는 조선통신사 초빙 연기를 위해 막부의 로주老中 마츠다이라 사다노부松平定信가 다이텐을 에도江戶로 불러 그 의견을 물은 바 있다. 75세(1793)에 천태종天台宗의 리쿠뇨지슈六如慈周와 함께 일본에 남아 있지만 중국에 없는 불교 경전을 조사하여 나가사키長崎를 통하여 중국에 보내려 했으나 실현하지 못했다. 이후 78세(1796)와 80세(1798)에 다시 조선통신사 초빙 건으로 에도로 가서 막부의 자문을 받았다. 1801년에 83세로 쇼코쿠지 자운암에서 열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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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경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52년생. 경응의숙대학(慶應義塾大學, 게이오대학) 문학부 졸업 / 경도대학(京都大學, 교토대학) 박사(중문학) / 경응의숙대학 부교수 및 경도대학 인문과학연구소 교수 역임 주요 저서 <花関索伝の研究>, 汲古書院, 1989. <中国小説選>, 角川書店, 1989. <삼국지의 영광>, 사계절, 2002. <삼국지의 세계>, 사람의 무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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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재교 (감수)    정보 더보기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 사범대학 학장ㆍ대동문화연구원 원장ㆍ동아시아학술원 원장 등을 지냈다. 한국 한문학의 영역을 넓히고 고전 번역에도 노력을 기울이면서 동아시아 고전학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해나가고 있다. 주요 저서로 『이계 홍양호 문학연구』, 『이조 후기 한시의 사회사』, 공저로 『문예 공론장의 형성과 동아시아』, 『학문장과 동아시아』, 『동아시아 고전학의 안과 밖』, 함께 옮긴 책으로 『정조어찰첩』, 『북학 또 하나의 보고서, 설수외사』, 『19세기 견문 지식의 축적과 지식의 탄생, 지수염필』, 『금화경독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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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조선과 일본이 천 년 이상 중국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 나름으로 소화한 결과로, 이 시대의 양국 지식인들은 같은 교양과 인생관을 공유하게 되었고, 또한 그 능력도 비등해 공감이 쉽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다이텐이 조선통신사절과 면회하기 전에 가지고 있던 경계심이 불과 6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의 필담을 통해 그들의 문재와 인품에 대한 존경과 친근감으로 변모될 수 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의 은거처의 이름이자 시문집의 제목인 ‘소운서小雲棲’가 다름 아닌 성대중이 명명하였다는 사실은 무엇보다도 이 점을 잘 나타내고 있다.
|본문 69쪽, ‘해제’ 중에서


조선 측도 다이텐에게 그가 은거하는 장소에 가보고 싶다고 말하고는 있으나, 그들의 인식은 다이텐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것 같다. 남옥은 2년 후에 다이텐 등이 보내 온 시와 편지를 받고도 조정의 의견에 따라 답하지 않았으며, 성대중도 그들을 그리는 시를 지었지만 보낼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점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사행이 끝난 후의 양자의 행동의 차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다이텐은 이후 쓰시마 이테이안 윤번승으로서, 대 조선 외교의 일선에서 일하게 되고 나아가서 쓰시마 역지빙례를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조선의 과거제도를 참고하여 막부의 학제 개편과 시험제 도입에 간접적으로 관여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에 비해 역대 통신사 중 최고의 지일파로 알려진 이때의 사절 중 그 누구도 이후 조선의 대일 정책에 참여한 사람은 없었다. 원중거의 『승사록』에는 인원 감축, 막부와의 직접 교섭 등 통신사의 개혁안이 보이며, 그것을 삼사에게 제안했다고도 하나 그의 제안이 이후 논의된 사실은 없는 것 같다. 결국 그들의 일본에 관한 지식은 이덕무, 박제가, 홍대용 등 일부 실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데 그치고 만다.
|본문 71~72쪽, ‘해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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