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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기타 국가 소설
· ISBN : 9791156625094
· 쪽수 : 560쪽
· 출판일 : 2020-10-05
책 소개
목차
추천의 말
한국어판 서문
제1부
제2부
옮긴이의 말
책속에서
그 시절에는 너무나 많은 감춰진 이야기들, 너무나 많은 고문의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도 제대로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단어들은 나무에 매달린 잎사귀와 같아서 일단 나무에서 떨어지면 되돌아갈 수 없다. 구더기로 가득 찬 깡통은 뜯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러나 묵티는 그녀에게 묻는다. “그런 시절을 보낸 분들 몇 분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신다면, 외부인은 안 끼우고요. 그럼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시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마리암은 그것이 가능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묵티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미소를 짓는다. 만일 아누라다가 이 이상한 제안을 들었다면 아마 문학적인 언어로, “억압당한 자들의 회담”이라고 이름 지었을지도 몰랐다.
그녀가 재혼한 남편은 집의 어느 한구석에도 사별한 남편의 기념물을 두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의 첫 남편이 사무실 책상 유리 아래로 피신한 것이다. 베비는 새처럼 종알댄다. “내 감정은 울타리에 갇힌 새처럼 이곳에다 감추어야 해.” 사무실에는 첫 남편이 있고 귀가하자마자 재혼한 남편의 손아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나라와 나는 한 배를 타고 있지. 우리의 역사는 두 군데에 감춰놓아야 해.” 그녀가 재활센터에서 일하게 된 동기는 자신이 전쟁 중에 경험한 상실 때문이었고, 묵티에게도 솔직하게 그 사실을 이야기해준다. 거기서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라면 뭐든 했다. 한 번도 의무를 피한 적은 없었다.
마리암은 자신을 탓했다. 어리석다, 바보였다. 어떻게 결혼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몰랐단 말인가? 만일 그가 다시 공원으로 가야 한다면 아내를 집에 두고 있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마리암은 사랑이 없는 육체적 관계는 상대가 남편이라 하더라도 일종의 강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궁금한 것은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성관계와 강간 사이에 차이가 있는가? 몸타즈는 그 넓은 방의 사내들과 꼭 같이 술 냄새를 풍기며 계속 다시 찾아왔다. 그에게서 나는 위스키 냄새가 끔찍했다. 감금생활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만일 마리암이 술을 마시지 말라고 말한다면 몸타즈는 자신도 음주가 나쁜 것쯤은 알고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매춘도 나쁜 짓이었다. 그에게 마리암은 창녀였다. 그녀가 예절 바르고 교육 받았으며 교양이 있다는 사실은 좀 달랐지만. 그리고 그녀의 일터가 공원이 아니고 집이라는 사실이 좀 달랐던 것뿐이다.
선택은 제한되어 있었다.집이냐 공원이냐, 공원이냐 집이냐.
비록 약간 지연되기는 했지만 아누라다의 예언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창녀 노릇이나 하자고 몸타즈와 살아야 하는가? 도대체 그 혜택이 무엇인가? 하루 종일 거리에 서서 오락가락하다가 밤중에 양식을 들고 귀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장점이었다. 옷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리고 집 안에 감금되어 있는 일에도 이미 익숙한 터였다. 이 생활은 1971년의 강제수용소 생활의 연장이었으니까. 전쟁의 파편이 그녀의 삶 곳곳에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러나 평생을 강간과 고문에 적응하며 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집을 바꾸어야 하는가? 재활센터에는 몇 번까지 돌아갈 수 있을까? 만일 그리로 가고 싶지 않다면, 혹은 다른 장소를 찾을 수 없다면, 그러면 남는 것은 창녀촌일 것이다. 그것은 어떤 장소인가?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곳이다. 그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덤이라는 영원한 주소지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