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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91158772550
· 쪽수 : 432쪽
· 출판일 : 2021-09-30
책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는 사실, 그로부터 나의 악(惡)은 비롯되었다. 대역(大逆)을 범할 마음의 경사(傾斜)가 있어도 동기가 없으면 선인(善人)으로 남을 수가 있다. 어느 때 사람은 자기 마음속에서 수십 명, 아니 수백 명을 죽이는 경우가 있다. 입 밖으로 내서 그 범의(犯意)를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당장 목을 쳐 죽일 놈.” “칼로 배때기를 찔러 죽여야겠다.” 그래도 계기와 동기가 없으니 살인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게 악의 경사가 생긴 것은 까마득한 옛날부터다. 그래도 무기력한 사람이라는 평은 받아도 악인이란 소리는 듣지 않았는데 바로 그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나는 보고 말았다.
그날, 점심시간을 조금 지났을 무렵이다. 청진동 골목에서 내가 단골로 하고 있는 구멍가게의 안주인을 만났다. 만난 것이 아니라 내 쪽에서만 그 여자가 여관이 즐비하게 늘어선 골목으로 바쁜 걸음으로 황급히 들어가는 모습을 본 것이다.
경산 선생의 회고담이 계속되었다. 우리들은 비로소 역사라는 것을 느꼈다. 방안의 공기가 탁해지자 경산 선생은 방문을 열라고 했다. 어느덧 조그마한 뜰에 달빛이 깔려 있었다. 그 달빛을 받고 뜰 가득히 갖다놓은 화분의 꽃들은 요란한 향연을 이루고 있었다.
“보아라, 저 꽃들을 보아라. 옹덕동 골짜기의 구멍가게의 비좁은 뜰이 사람들의 호의로 인해서 황홀한 꽃밭이 되었다. 낙엽(落葉)이 모여 썩기만을 기다리던 우리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꽃밭을 이루어 놓았다. 우리는 뜻만 가지면 어느 때 어느 곳에라도 꽃밭을 만들 수 가 있다. 그러나 꽃밭이라고 해서 그저 아름답기만 한 곳은 아니다. 꽃밭엔 슬픈 과거가 있고 그 밑바닥엔 검은 흙 모양의 고통도 있다. 허지만 슬픈 과거가 있기에 화원은 안타깝도록 아름답고 밑바닥에 검은 고통이 있기에 그 아름다움이 더욱 처량하다. 인생도 또한 꽃이다. 호박꽃으로 피건 진달래로 피건 보잘것없는 잡초의 꽃으로 피건 사람은 저마다 꽃으로 피고 꽃으로 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