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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91158772628
· 쪽수 : 420쪽
· 출판일 : 2021-09-30
책 소개
목차
너와 나의 노래
불어온 바람
울음의 문(門)
사랑의 빛깔
잃어버린 크리스마스
흐르지 않는 강(江)
또 하나의 노래
신(神)의 손길
그대의 이름은
빛과 그늘
돋아나는 생명(生命)
저자소개
책속에서
“실연이란 것 하곤 다르죠. 나는 이 사건을 통해서 인생이 싫어진 거니까요.”
“그럼 마찬가지 아닌가.”
“다르죠. 실연이란 단순한 감정 같으면 지금 그 사람이 내게로 돌아오면 해결이 되겠지만 이제 돌아와도 소용이 없으니까요.”
“핫하…….”
하고 노성필은 또 웃었다.
“베르테르는 십팔 세기에 죽은 줄 알았더니 지금 난데없이 내 눈앞에 앉아 있구먼.”
현상은 불쾌했다. 모처럼 고백을 한 것이 역겨웠다. 그런 현상의 심정을 짐작했는지 노성필이 이렇게 말했다.
“인생을 그처럼 얕잡아 보지 말란 말여. 어떤 여자가 배신했다고 해서 싫어질 수 있는 그런 호락호락한 인생이 아니어. 굶주림과도 싸워 보아야 하고, 형무소에 갈 정도로 죄도 지어 보아야 하고, 숨이 넘어갈 정도로 맞아도 보아야 하고, 사방이 벽이 되어버릴 정도로 몸부림도 쳐봐야 하는 거요. 당신이 겪은 그 정도로 저항을 받았다고 사회를 포기하는 건 도대체 건방지단 얘기란 말여.”
“그럼 넌 영영 이 시골에서 그냥 살 작정이냐?”
“그럼은요. 태양과 더불어 눈을 뜨고 태양과 더불어 잠들고 맑은 공기와 새소리 속에서 이처럼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걸요.”
기 영감은 미혜의 손을 만졌다.
“손이 거칠은데?”
“농부의 손이거든요.”
“그러다가 안 서방이 딴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게 되면?”
“우리에겐 그런 소질이 없어요.”
“그걸 어떻게 아니?”
“우리는 우리니까요.”
세 사람은 봄날의 대기처럼 활달하게 웃었다.
“그러나.”
하고 기 영감이 말소리를 가다듬었다.
“너희들의 생활은 그것이 목가지 생활은 아니다. 생활의 근원을 저 농토에 송두리째 의존하고 있는 농부와는 다르단 말야. 그러니 어디까지나 기분적인 생활이란 인상이 짙다. 세상이 그처럼 호락호락하지는 않다는 것만은 알아 둬야 해.”
미혜와 현상은 그 말의 뜻을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