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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문답

이이 (지은이), 안외순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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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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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동호문답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유교철학/주역 > 유교철학 일반
· ISBN : 9791159319433
· 쪽수 : 182쪽
· 출판일 : 2023-09-20

책 소개

‘동호(東湖)에서 묻고 대답함’이란 의미를 가진 《동호문답》은 율곡이 선조 2년, 그의 나이 34세 때 지은 책으로서 왕위에 오른 지 만 2년여 밖에 안 된 새 군주 선조에게 새 정치에 대한 열망과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담아 제출한 정치 개혁서다.

목차

들어가는 말|안외순 7

제1장 군주의 길을 논하다 15
제2장 신하의 길을 논하다 23
제3장 좋은 군주와 좋은 신하가 만나기 어려움에 대해 논하다 31
제4장 우리나라에서 도학이 행해지지 않음에 대해 논하다 41
제5장 우리 조정이 옛 도를 회복하지 못함에 대해 논하다 45
제6장 금일의 시대 정세를 논하다 55
제7장 무실務實이 수기修己의 요체임을 논하다 63
제8장 간인姦人의 판별이 용현用賢의 요체임을 논하다 73
제9장 안민정책을 논하다 83
제10장 교육정책을 논하다 101
제11장 정명正名이 정치의 근본임을 논하다 113

해제. 선조에게 올리는 청년 이이의 수기치인의 정치개혁 보고서|안외순 121
1. 인간 율곡과 생애 123
(1) 생과 사 123
(2) 성장기 128
(3) 관직 생활 129
(4) 저술 세계 132
2. 《동호문답》의 내용과 구성 136
3. 조선 전기 수기치인의 정치학 142
(1) 왕도정치의 관건: 정치 주체의 입지와 무실 142
(2) 수기치인과 무실 145
ㄱ. 수기와 무실 146
ㄴ. 치인과 무실 148
4. 선조 대 율곡 152
5. 율곡과 한국 지성사: 도덕과 정치, 사람과 제도의 조화 158

주 162
더 읽어야 할 자료들 178
옮긴이에 대하여 182

저자소개

이이 (지은이)    정보 더보기
- 1536년(중종31년) 1세 : 12월 26일 강릉부 북평촌 외가에서 출생함. 부친은 이원수(李元秀), 모친은 신사임당(申師任堂), 본관은 덕수(德水), 字는 숙헌(叔獻), 號는 율곡(栗谷), 시호는 문성(文成) - 1541년(중종36년) 6세 : 강릉에서 한양으로 올라옴. - 1542년(중종37년) 7세 : 「진복창전(陳復昌傳)」 지음. - 1543년(중종38년) 8세 :파주에 있는 화석정에 올라 「화석정(花石亭)」 시 지음. - 1545년(중종40년) 10세 : 「경포대부(鏡浦臺賦)」 지음. - 1548년(명종3년) 13세 : 진사초시에 장원급제함. - 1551년(명종6년) 16세 : 5월 어머니 신사임당 별세, 「선비행장」을 지음. 파주 두문리에 어머니를 장례하고 3년간 시묘함. - 1554년(명종9년) 19세 : 우계 성혼(1535~1598)과 도의의 교분을 맺음. 3월 어머니 시묘 3년을 마치고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함. - 1555년(명종10년) 20세 : 금강산에서 강릉으로 돌아와 「자경문(自警文)」을 짓고 유학에 전념함. - 1556년(명종11년) 21세 : 봄에 한양으로 돌아와 漢城試에 장원급제함. - 1557년(명종12년) 22세 : 9월 성주목사 노경린(盧慶麟)의 딸 곡산 노씨와 혼인함. - 1558년(명종13년) 23세 : 봄에 경북 예안 도산(陶山)을 방문하여 퇴계 이황을 만남. 겨울에 別試에서 「천도책(天道策)」으로 장원급제함. - 1561년(명종16년) 26세 : 5월 아버지 이원수 별세. - 1564년(명종19년) 29세 : 7월 생원 진사시에 장원급제함. 8월 明經試에 급제하여 호조좌랑으로 첫 벼슬길에 나아감.(모두 9번 장원하여 ‘구도장원공’이라 불림.) - 1565년(명종20년) 30세 : 봄에 예조좌랑에 전임. 8월 요승(妖僧) 보우(普雨)와 권간(權奸) 윤원형(尹元衡)을 단죄하는 상소를 올림. 11월 사간원 정언에 임명되자 사퇴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불허. - 1566년(명종21년) 31세 : 2월 병조좌랑에, 3월 다시 사간원 정언에 임명됨. 겨울에 이조좌랑에 임명됨. - 1568년(선조원년) 33세 : 2월 사헌부 지평에 임명됨. 가을에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갔다 돌아와 홍문관 부교리 겸 경연시독관 춘추관기주관에 임명되어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함. 11월에 다시 이조좌랑에 임명되었다가 강릉 외조모 이씨의 병환으로 사직하고 강릉으로 내려감. - 1569년(선조2년) 34세 : 6월 교리에 임명됨. 9월 「동호문답(東湖問答)」을 지어 올림. - 1570년(선조3년) 35세 : 4월 교리에 임명됨. 10월 병으로 사직하고 해주로 감. - 1571년(선조4년) 36세 : 1월 이조좌랑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여름에 교리로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해주로 감. 6월 청주목사에 임명됨. - 1572년(선조5년) 37세 : 여름에 부응교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고 파주로 돌아감. 8월에 원접사 종사관, 9월에 사간원 사간, 12월에 홍문관 응교, 홍문관 전한을 제수 받았으나 모두 사퇴함. - 1573년(선조6년) 38세 : 7월 홍문관 직제학에 제수되었으나 3차례 상소를 올린 후 사임하고 8월에 파주로 돌아감. 9월 다시 직제학에 임명되어 사퇴하였으나 허락을 받지 못함. 겨울 통정대부 승정원 동부승지 지제교 겸 경연 참찬관, 춘추관 수찬관으로 임명됨. - 1574년(선조7년) 39세 : 1월 우부승지에 임명되어 「만언봉사(萬言封事)」를 지어 올림. 3월 사간원 대사간에 임명됨. 10월 황해도 관찰사에 임명됨. - 1575년(선조8년) 40세 : 8월 홍문관 부제학으로 임명됨. 9월 『성학집요』를 지어 올림. - 1576년(선조9년) 41세 : 우부승지, 대사간, 이조참의, 전라감사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병으로 나아가지 않음. 10월 해주 석담에 청계당을 지음. - 1577년(선조10년) 42세 : 1월 해주 석담에서 「동거계사」를 지음. 5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12월 『격몽요결』 지음. - 1578년(선조11년) 43세 : 해주 석담에 은병정사를 지음. 3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6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 1579년(선조12년) 44세 : 5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 1580년(선조13년) 45세 : 5월 「기자실기」 지음. 9월 홍문관 부제학에 임명. 12월 대사간에 임명. 1581년(선조14년) 46세 6월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으로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다시 예문관 제학으로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8월 동지중추부사에 제수됨. 9월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사직 상소를 올림. 10월 호조판서에 제수됨. 11월 『경연일기』 완성 - 1582년(선조15년) 47세 : 1월 이조판서에 제수됨. 7월 선조의 명으로 「인심도심설」, 「김시습전」, 「학교모범」, 「사목(事目)」을 지어 올림. 8월 형조판서에 임명됨. 9월 의정부 우참찬에 임명되고 숭정대부로 특진. 10월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는 원접사가 되어 「극기복례설」을 지음. 12월 병조판서로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 1583년(선조16년) 48세 : 2월 「시무육조」 지어 올림. 3월 경연에서 십만양병을 건의함. 6월 동인의 탄핵을 받고 파주로 돌아갔다가 7월에 석담으로 돌아감. 9월 이조판서에 임명되어 사직하였으나 불허. - 1584년(선조17년) 49세 : 1월 「육조방략」을 최후로 지음. 1월 16일 한양 대사동에서 별세함. 3월 20일 파주 자운산에 안장됨. - 1624년(인조2년) : 문성(文成)의 시호를 받음. - 1681년(숙종7년) : 문묘의 종사를 허락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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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외순 (지은이)    정보 더보기
대원군 집정기 정치권력의 성격 관련 연구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논저로 「송시열과 한국 보수주의의 기원」, 「19세기 말 조선에 있어서 민주주의 수용론의 재검토」, 『정치, 함께 살다』 등이 있고, 『근역서화징』과 『김택영의 조선시대사 한사경(韓史綮)』 등을 공역했다. 한국정치사상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서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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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조선을 대표하는 사상가인 율곡은 동시에 16세기 조선을 대표하는 정치가이기도 했다. 그는 안민安民을 위해 현실 개혁을 주장한 사상가이자 현실에서의 경장과 변통을 통해 국가의 법과 제도를 재정비하고자 한 정치가였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왕도정치를 행하는 데 있어서 두 가지 좋은 조건과 두 가지 나쁜 조건이 있소. 좋은 조건이란 위로 성스럽고 밝은 군주가 계시다는 것이 그 하나라면 아래로 권력을 천단하는 간신배들이 없다는 점이 다른 하나라오. 나쁜 조건이란 인심이 가라앉은 지 오래되었다는 것이 그 하나라면 사기가 매우 심히 가라앉았다는 것 또한 다른 하나지요.


관리들의 수뢰는 참으로 근절해야 할 일이지요. 그러나 그렇게 하자면 그들에게 농사짓는 수입을 대신할 만한 재물을 지급하지 않으면 안 되오. 왜냐하면 옛날의 아전들은 일정한 녹봉을 받았지만 오늘날의 아전들은 생활 보장이 안 되어 남의 것을 빼앗지 않으면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것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오. 이런 점들 때문에 우리나라의 국법〔國制〕이 미진하다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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