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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후기(영조~순종)
· ISBN : 9791166290213
· 쪽수 : 288쪽
책 소개
목차
충청도 내포(태안) 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과정과 역사적 성격 / 이해준
1. 내포 지역의 역사문화
2. 내포 지역 동학농민혁명 연구
3. 한말 내포 지역 동학 조직과 기포
4. 내포동학농민군의 결성과 항쟁
5. 내포 동학농민혁명의 재조명
동학농민혁명 희생자와 홍주의사총 관계 연구 / 성주현
1. 머리말
2. 동학농민혁명과 희생자 현황
3. 홍주의사총과 동학농민군의 관계
4. 맺음말
태안 지역의 동학 포덕과 조직화 그리고 동학농민혁명 / 임형진
1. 여는 글
2. 충청도 서부 지역의 동학 유입
3. 태안 동학 유입과 내포 지역 동학의 조직화
4. ‘9·18 총동원령’과 태안 동학의 동학농민혁명
5. 맺는 글
묵암 이종일과 동학, 천도교, 그리고 3·1독립만세운동의 연속성 / 안외순
1. 서론
2. 자료와 관련하여
3. 3·1 운동에서 묵암의 위상
4. 묵암의 동학-천도교-3·1운동의 계승 논리와 성격
5. 결론
태안 동학농민혁명사의 문화 콘텐츠 활용을 위한 기초 연구 / 채길순
1. 들어가며
2. 충청남도 동학농민혁명과 태안 동학농민혁명사
3. 태안 동학농민혁명사 문화 콘텐츠 활용 방안
4. 결론
1960년대 이후 태안 지역 동학농민혁명 기념(선양)사업 분석과 현대적 의의 / 문영식
1. 머리말
2. 동학농민혁명 기념(선양)사업 조직의 발족
3. 동학농민혁명 기념물 건립
4. 동학농민혁명 정신선양사업
5.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의 분석과 현대적 의의
「갑오동학란피란록」 연구 / 장수덕
1. 머리말
2. 「피란록」의 저자와 집필 의도
3. 「피란록」의 체계와 주요 내용
4. 「피란록」의 사료적 가치
5. 맺음말
부록_ 충청도 태안 동학농민혁명유적지
저자소개
책속에서
내포 지역의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전라도 지역만큼이나 활발했고, 그 역사적 의미가 컸다. 특히 박인호의 덕포(德包)와 박희인의 예포(禮包)를 중심으로 1894년 초기부터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더구나 이곳은 청일전쟁 초기 주요 전투 지역이었기 때문에 반일 정서가 매우 고조되어 있었다. 따라서 7월부터는 내포 지역 대부분의 마을이 동학농민군에게 장악되었으며, 대일 항쟁에 맞서기 위한 전투 준비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동학농민군의 활동이 매우 활발했으며, 크고 작은 전투가 여러 차례 발생하였다. 동학농민군은 여미평에서 대도회를 열고, 승전곡과 신례원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으며, 비록 패배하기는 했지만 홍주성 전투 등 대규모 전투가 발생할 수 있었다. 홍주성 전투의 패배 이후 많은 동학농민군이 유회군과 일본군에게 희생이 공공연히 자행되었으며 그 가족들에게도 화가 미쳐 정든 고향을 등지고 뿔뿔이 흩어져야만 했다. - 충청도 내포(태안) 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과정과 역사적 성격 중에서
내포 지역의 동학이 호남 지방에서 전개되고 있던 동학농민혁명과 비슷한 시기에 발생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이미 동학 조직이 상당 부분 완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지역적으로 놓고 볼 때 덕산 기포는 박인호의 덕의포 중심이었고, 원벌 기포는 박희인의 예포 중심이었다. 이러한 갑오년 초기의 기포는 내포 동학이 충청도 서북부 지역을 대표하여 동학농민혁명의 주역으로서 모든 조건을 갖추게 되는 예행연습 같은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 태안 지역의 동학 포덕과 조직화 그리고 동학농민혁명 중에서
1919년이 되자 묵암을 중심으로 한 천도교는 새해 벽두부터 민중만세운동을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을 전개하였다. 게다가 고종이 갑자기 승하함으로써 민중 봉기 가능성은 극대가 되어 2월 초부터 천도교 내부는 민족대연합전선(民族大聯合戰線)을 결성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민중운동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중의 신망을 받는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울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 구 관료로 윤용구(尹用求), 한규설(韓圭卨), 박영효(朴泳孝), 윤치호(尹致昊), 김윤식(金允植) 등과 접촉하여 민족대표로 추대하려 했지만 이들은 모두 유보 또는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그래서 민족대표를 종교계 연합으로 방향을 틀었다. 민족대표에 관료가 빠지고 기독교와 불교계와만 연대하게 된 배경이다. - 묵암 이종일과 동학, 천도교, 그리고 3·1독립만세운동의 연속성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