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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유교철학/주역 > 맹자
· ISBN : 9791160871456
· 쪽수 : 727쪽
· 출판일 : 2025-09-30
책 소개
그러나 동시에 가장 멀리한 책
우리에게는 막연히 성선론(성선설)으로만 알려진 『맹자』는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책이라 할 수 있다. 분서 당시 제자로 분류되어 화마를 피했지만 아이러니하게 살아남은 이후에는 역대 제왕들의 애증하는 경서가 되었다.
우리는 성선설로만 알고 있지만 제왕들은 『맹자』를 좀 다른 시각으로 보았다. 제선왕은 역성혁명을 염두에 두고 “신하가 군주를 죽이는 것이 가한가?”를 물었다. 맹자는 인과 의를 해친 잔적지인(殘賊之人)인 일부(一夫)는 죽여도 된다고 했고, 이후 맹자의 의도와는 달리 역성혁명을 꿈꾸는 자들은 그 이론적 근거 내지 정당성을 모두 여기서 찾았다. 그러나 일단 명태조 주원장같이 역성혁명에 성공한 임금이 보기에는 “백성이 가장 귀중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고, 군주는 가벼운 것이다.” 같은 말이 거슬렸다. 주원장이 송대에야 경서의 반열에 오른 『맹자』를 다시 경서에서 제외하려 한 이유다.
이 책은 경서의 주해에만 치중했던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맹자의 생애와 왕패·경권·의리지변 등 내용분석은 물론 『맹자』가 제자로 진시황의 분서를 피한 것부터 시작하여 마지막으로 경서에 편입되기까지의 과정을 샅샅이 밝히고 있다.
목차
역자 서문
생애편
제1장 맹자의 생애 사적
1. 맹자의 이름
2. 맹자의 고향
3. 맹자의 선대
(1) 맹자의 선조 | (2) 맹자의 부모 | (3) 맹자가 부친을 여읨 | (4) 맹자 모친의 가르침
4. 맹자의 사승(師承)
5. 맹자의 제자
(1) 자사는 결코 증자를 사승하지 않았다 | (2) 맹자는 결코 자사를 사승하지 않았다 | (3) 증자와 자사가 맹자에게 끼친 영향 | (4) 『중용』의 작자 고증
6. 맹자의 유력
(1) 추(鄒)에서의 출사 | (2) 위왕 때 처음으로 제를 유세하다 | (3) 송으로 가면서 설을 거쳐 추로 돌아왔다가 노로 가서 등을 유력하다 | (4) 양에서의 유력 | (5) 선왕 때의 두 번째 제나라 유력 | (6) 추로 돌아오다
7. 맹자의 생몰
(1) 맹자의 생몰에 관한 각종 견해 | (2) 쳰무의 맹자 생몰년 문제에 대한 관점 | (3) 쳰무의 관점에 대한 몇 가지 수정
제2장 『맹자』의 작자 고증
1. 『맹자』의 작자
(1) 『맹자』의 작자에 관한 몇 가지 상이한 관점 | (2) 『맹자』의 행문(行文) 특징 | (3) 『맹자』의 작자에 대한 분석
2. 『맹자』의 외서 문제
사상편
제3장 왕패지변(王霸之辨)
1. 왕패지변의 기인(起因)
(1) 왕패지변의 시대적 정신 | (2) 두 가지 다른 평치(平治)의 방략(方略) | (3) 맹자가 패도는 물리치고 왕도를 올리다
2. 성왕(聖王): 왕도주의의 전제
(1) 임금 | (2) 임금과 신하 | (3) 임금과 백성
3. 백성을 보호함(保民): 왕도주의의 시행
(1) 백성을 편안하게 함(安民) | (2) 양민(養民) | (3) 백성을 가르침
4. 왕도주의에 관한 이해의 세 가지 문제
(1) 유학은 본질상 심성의 학문인가 | (2) 유학은 법을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 (3) 민본론은 백성이 정치의 주체임을 말하는가
제4장 경권지변(經權之辨)
1. 이론의 선도
2. 맹자 경권을 논하다
(1) 맹자는 반경을 주장하고 또한 행권을 찬성하다 | (2) 반경과 행권의 관계 | (3) 행권의 표준과 가치 형정의 원칙 | (4) 맹자 경권학설의 이론적 의의
3. 의(義)와 명(命)
제5장 의리지변(義利之辨)
1. ‘의’와 ‘이’의 탐구
2. 치국 방략의 의의를 가진 의리지변
3. 사람과 짐승을 분간하는 의의의 의리지변
4. 도덕 목적 의의의 의리지변
5. “의를 말함만 허락하고 이를 말함은 허락하지 않는다”를 변정함
제6장 순척지변(舜跖之辨)
1. 순척지변과 이상 인격(理想人格)
2. 이상 인격의 층차
3. 이상적 인격의 전범
4. 이상 인격의 실천
5. 이상적 인격의 동력
6. 순척지변의 의의
제7장 인성지변(人性之辨)
1. 기본 개념 풀이
2. 성선론의 기본 사고 방향
(1) 양심과 본심으로만 성을 논함 | (2) 양심과 본심은 모든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음 | (3) 양심과 본심은 성선의 근거 | (4) 악은 그 재능을 다할 수 없는 데 있다 | (5) 성선은 사물의 법칙 | (6) 성선은 하나의 과이다
3. 성선론의 주요 원칙
(1) 마음을 두고 성을 기름 | (2) 먼저 그 큰 것을 세운다 | (3)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음 | (4) 알면 반드시 행함
4. 성선론의 현대적 해석
(1) 양심과 본심의 특징 | (2) ‘윤리심경(心境)’ 개념의 정의 | (3) 양심과 본심은 일종의 ‘윤리심경’
5. 공맹 심성학설의 분기
제8장 맹자 사상의 기타 방면
1. 맹자가 미를 논함
2. 맹자가 기를 논함
(1) ‘말을 알고 기를 기름(知言養氣)’ 장의 새로운 해석 | (2) 맹자의 고대 기론에 대한 발전
3. 맹자가 시를 논함
4. 맹자의 변론을 논함
(1) 변론하기를 좋아하는 시대와 변론하기를 좋아하는 맹자 | (2) 맹자 변론 방법의 두 가지 특징 | (3) 맹자와 고자의 변론하는 실제 상황
5. 『맹자』의 문학적 특색
(1) 광대무변한 기세 | (2) 생동적이고 명쾌한 언어 | (3) 개성이 선명한 형상 | (4) 『맹자』의 문학적 지위
영향편
제9장 맹자 사상의 역사적 영향
1. 왕패지변이 후세에 끼친 영향
2. 경권지변이 후세에 끼친 영향
3. 의리지변이 후세에 끼친 영향
4. 순척지변이 후세에 끼친 영향
5. 인성지변이 후세에 끼친 영향
제10장 맹자의 역사적 지위의 변천
1. 한에서 당초까지의 지위는 높지 않았다
2. 당송 이래 차츰 격이 올라가다
(1) 맹자 승격 운동의 원인 | (2) 맹자 승격 운동의 과정 | (3) 맹자 승격 운동 중의 역류
3. 명청 양대의 순탄한 발전
부록
맹자 연표
참고서목
후기
책속에서
누구와 누구의 ‘도가 같고’ 누구와 누구의 ‘처지를 바꾸면 모두 그렇다’는 것은 『맹자』에서 비교적 자주 보이는 화법이다. 「이루 하」 제29장에서 말한 것처럼 우와 직 그리고 안회는 일에 대하여 대처 방법이 상이하다. 이는 우와 직은 태평한 시대를 만났고 안자는 난세를 만나 조건이 같지 않아서이지만 그들이 문제를 처리하는 도리는 오히려 마찬가지여서 서로 위치를 바꾼다고 한다면 세 사람의 대처 방법 또한 반드시 서로 같을 것이다. 이는 “우와 직·안회가 도가 같다”라는 것이고, “우와 직·안자가 처지를 바꾸면 모두 그렇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맹자』에서 누구와 누구의 “도가 같다”고 한 것은 다만 문제를 처리하는 도리가 서로 같거나 간 길이 서로 같다는 의미이지 그 사이에 사승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후인들이 겨우 “증자와 자사는 도가 같다”라 한 논법에 의지하여 증자와 자사가 사승 관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면 근거가 부족하다.
사실 맹자는 결코 자사에게서 직접 학업을 배우지 않았다. 하나의 유력한 증거가 있으니 곧 맹자가 분명히 “나는 공자의 문도가 되지는 못하였으나, 내 남에게서 사사로이 선하게 하였다.(予未得爲孔子徒也, 予私淑諸人也)”라 말한 적이 있다. 그가 공자의 손자에게서 직접 학업을 배웠던 적이 있었으면 생각건대 필시 분명히 말하여 자신의 역량을 증강시킬 수 있었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다만 “남에게서 사사로이 선하게 하였을” 뿐이다. 이런 견해는 완전히 주관적인 추측이 아니라 『맹자』에서도 방증을 찾을 수 있다. 『맹자』에서는 자사를 직접 부른 것이 16차례가 있는데 이런 곳에서는 모두 자사를 부자(夫子)라 일컫지 않았다. 맹자가 직접 자사에게서 학업을 배웠다면 그 스승을 이렇게 무례하게 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요컨대 시기적으로 고증을 하든 『맹자』의 언어로 분석을 하든 간에 모두 맹자는 결코 직접 자사에게서 학업을 배우지 않았음을 단정할 수 있다.
맹자는 추에서 출사한 후 추와 노의 일을 당하였다. 추목공이 맹자에게 말하였다. “내 유사로서 죽은 자가 33명이나 되지만 백성들은 죽은 자가 없으니, 이들을 죽이려면 이루 다 죽일 수 없고, 죽이지 않는다면 장상들이 죽는 것을 질시하면서 구원하지 않은 것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吾有司死者三十三人, 而民莫之死也. 誅之, 則不可勝誅; 不誅, 則疾視其長上之死而不救, 如之何則可也?)” 맹자는 추목공이 이렇게 묻는 말에 매우 불만을 가지고 비판하여 말하였다. “흉년과 기세에 군주의 백성들이 노약자들은 시신이 구학에 뒹굴고, 장성한 자들은 흩어져서 사방으로 간 자가 몇천 명이나 되는데도 군주의 미곡창고는 곡식이 꽉 차 있으며 부고에는 재화가 충만한데도 유사 중에 아뢴 자가 없었으니, 이것은 윗사람들이 태만해서 아랫사람을 해친 것입니다.(凶年饑歲, 君之民老弱轉乎溝壑, 壯者散而之四方者, 幾千人矣; 而君之倉廩實, 府庫充, 有司莫以告, 是上慢而殘下也)” 아울러 추목공에게 권고했다. “군주께서 인한 정치를 행하시면 이 백성들이 그 윗사람을 가까이하여 어른[官長]을 위해 죽을 것입니다.(君行仁政, 斯民親其上, 死其長矣)”(2.12) 맹자와 추목공의 대화는 7편 가운데 한 차례밖에 보이지 않는다. 출사 후에 추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자료가 부족하여 확정하기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