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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건축 > 건축이론/비평/역사
· ISBN : 9791162181553
· 쪽수 : 312쪽
· 출판일 : 2021-06-21
책 소개
목차
머리말 — 나무처럼 산다
1장 오쿠라야마 1 — 나의 장소
경계인 : 모든 장소가 경계다
막스 베버: 금욕과 탐욕이 혼재한 시대
고딕: 섬세하고 작은 유닛의 조합
혼쿄지: 종교적 경계와 이동
농가(農家): 생명의 순환이 느껴지는 준코네 집
엥겔스: 주택 융자와 노동자의 행복
유가와라 컨트리클럽의 직선 코스
굴, 다리: 굴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사토야마: 마을의 기반이 되는 산
싱글 스킨: 건축은 하나의 생물이다
바닥: 신체는 바닥과 끊임없이 접촉한다
토방: 지면과 건축의 관계성
노란 장화: 대지와 연결되다
대숲: 재료가 아닌 상태로서의 체험
허물어져가는 집
나무 쌓기: 궁극적인 데모크라시 건축
치도리: 작은 단편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다
틈새의 힘
2장 오쿠라야마 2 — 재료와 형태, 그리고 관계
모더니스트와 플렉시블 보드
정사각형과 직사각형
현장에서의 설계 회의
고토 유키치: 하늘을 날아다니는 유전자
현전성: 눈앞에 존재하는 것
상황에 맞추는 증축
선의 건축
브루노 타우트의 휴가별장
관계를 드러내는 건축
가부키자: 과거를 그대로 재현할 수 있을까
브리콜라주와 미묘한 균형 감각
낭비가 없는 저렴함
사오싱주: 흙냄새가 나는 재료
빛 천장: 부드러운 빛의 질감
와이셔츠: 촉각으로 소재를 대하는 방법
패브릭: 부드럽고 따뜻하게
3장 덴엔초후 — 디자인의 기본은 거부권이다
미술공예운동과 덴엔초후 거리
덴엔초후 유치원
디자인의 기본은 거부권이다
열 가지 스타일의 집
P콘 구멍에 매달린 테니스라켓
레이트커머: 뒤틀린 늦깎이 건축가
요요기체육관: 20세기 가장 아름다운 건물
수의사와 건축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존재에 대한 관심
수직의 건축가
4장 오후나 — 드러나지 않는 건축
에이코가쿠엔: ‘세계’를 만나다
에이코가쿠엔: ‘신체’를 만나다
중간 체조: 비관념적인 신체파
묵상: 불필요한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곳
유럽의 세기말: 정신 활동의 절정기
유토피아적 사고에 대한 반발
1970년: 비평의 시대로의 전환
오사카 만국박람회
메타볼리즘과의 결별
반건축: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트레이: 장르의 횡단
세포: 생물적인 유연성과 흐름
치도리: 단일 유닛으로 세계를 구성하다
시카고 만국박람회
5장 사하라 — 나는 작은 것을 추구한다
오일쇼크: 건축의 동면기
모더니즘: 황혼의 근대
허의 투명성: 중층성의 획득
미국의 시대: 실의 투명성
스즈키 히로유키: 늦는 것이 앞서는 것이다
조시아 콘도르: 옛 일본에 심취한 중세주의자
우치다 요시치카: 전통 목조건축의 매력을 배우다
스크래치 타일: 건축에 그림자를 만들다
평면적 관계
목조 정신: 건실하고 합리적인 절약 정신
오픈 시스템: 유연성과 적응력
버크민스터 풀러: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건축
텐세그리티: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강도를
하라 히로시: 스스로 해야 한다
사바나의 기록: 평면적 시각
사하라사막 취락 조사
세상은 거울이다
습한 취락에 끌리다
콤파운드: 복합형 주거 형태
식물: 주거 집합과 식생
나는 ‘작은 것’을 추구한다
주석 해설
마치고 나서
문고판 후기
리뷰
책속에서
경계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해서 누구나 그 ‘경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경계를 경계라고 인식하려면 경계의 양쪽을 모두 경험해봐야 한다. 경계를 넘어 이동하면서 이쪽에서 저쪽을, 또 저쪽에서 이쪽을 바라보지 않으면 경계를 경계로 느낄 수 없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장소가 경계다.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이동을 하지 않으면 자신은 그저 ‘자신’이라는 자명하고 범용(凡庸)한 존재일 뿐이며, 자신의 집도 그저 지루한 집으로 남을 뿐이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곳이 경계에 놓여 있는 스릴 넘치는 장소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없다.
오쿠라야마의 산기슭에는 농가가 일렬로 쭉 늘어서 있었고, 농가 앞쪽에는 논밭이 펼쳐져 있었다. 전형적인 사토야마(里山)의 풍경이다. 준코네 집 자매와는 나이가 비슷했기 때문에 늘 함께 뛰놀았는데, 경계인인 내게는 준코네 집이 매우 매력 있었고 신화 속 공간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곳에서 농업이라는 생산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고, 생물이 존재하며, 온갖 생명이 생동감 있게 순환하면서 대지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정말 매력적이고 신화적이었다. 두 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우리 집과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직장인들의 주택은 ‘교외 주택’이었기 때문에 생명의 순환을 느낄 수 없었다. 우리 집도 포함해서 모두 ‘죽은 집’ 같았다.
나는 하이데거에게서 ‘탑인가, 굴인가’, 또는 ‘형태인가, 체험인가’ 하는 두 가지 대립 항을 훌쩍 뛰어넘는 풍부한 지성을 느낀다. 내가 찾고 있는 굴로서의 건축은 굴이라기보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 다리’에 가깝다. 굴은 체험하는 장소, 현상학적 존재인 것 이상으로 이곳과 저곳을 연결한다. 굴 안에 무엇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굴 저편에는 무엇인가가 존재하며 굴은 그곳까지 뚫려 있다. 저쪽에 있는 것과 이쪽에 있는 것을 연결하는 것이 굴이다. 굴은 또 좌우를 연결하기도 한다. 왼쪽에 있는 공간과 오른쪽에 있는 공간이 굴을 매개체로 삼아 대화를 시작한다. 그런 식으로 굴은 사물과 사물, 사람과 사람, 사회와 사회를 겹겹이 연결한다. 굴은 동굴처럼 닫힌 것이 아니라 공동성을 환기시키는, 밝고 열려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