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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정의 [九]

논어정의 [九]

(권18·권19)

유보남 (지은이), 함현찬 (역주)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4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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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정의 [九]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논어정의 [九] (권18·권19)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유교철학/주역 > 공자/논어
· ISBN : 9791166843204
· 쪽수 : 488쪽
· 출판일 : 2024-04-19

책 소개

중국에서 『논어』의 제 주석(注釋)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하안의 『논어집해』와 주희의 『논어집주』, 유보남의 『논어정의』인데, 세 가지는 각기 그 시대를 대표하는 저작으로서 각각의 특징을 최고(最古: 『논어집해』), 최정(最精: 『논어집주』), 최박(最博: 『논어정의』)으로 정의할 수 있다.

목차

해 제
1. 『논어정의』 번역의 가치
2. 원저자 소개
3. 『논어정의』 소개
4. 『논어정의』 번역의 필요성
5. 선행연구

일러두기

범 례

논어정의 권18
위령공 제15

논어정의 권19
계씨 제16

논어정의 권20
양화 제17

색 인

저자소개

유보남 (지은이)    정보 더보기
1791년 강소성 보응현에서 아버지 이순(履恂)과 어머니 교씨(喬氏)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가르침 속에 성장하였다. 종부 태공(台拱)의 학문이 깊고 정밀하였으므로 그에게 전수받기를 청하여 학행으로 향리에서 명성이 자자하였다. 제생(諸生)이 되었을 때 의징(儀徵)의 유문기(劉文淇)와 명성을 나란히 하여 사람들이 “양주이유(揚州二劉)”라고 칭송하였다. 도광 20년(1840) 진사가 되어 직례성 문안현의 지현(知縣)을 제수받았다. 문안현은 지형이 웅덩이에 비해 낮았는데도 둑이나 제방이 닦이지 않아 장마가 내리거나 가을 홍수가 나면 번번이 백성들의 해가 되곤 하였다. 이에 유보남은 제방을 두루 걸어 다니면서 병폐와 고통을 묻고 옛 서적들을 검토하여 일군의 주둔병과 백성이 함께 정비하도록 독촉하였다. 16년 동안 관직에 있었는데, 항상 의관이 소박하여 마치 제생 때와 같았다. 송사를 처리함에 삼갔고, 문안에서 관직 생활을 하는 동안 쌓인 현안 1,400여 건을 자세하게 살펴 결론을 내렸으며, 새벽닭이 처음 울 때면 당청에 앉아, 원고와 피고가 모두 법정에 나오고 증거가 구비되면 때에 맞춰 상세히 국문하였다. 큰 사건이건 작은 사건이건 할 것 없이 균등하게 자기의 뜻대로 안건을 판결했고, 패도한 자는 법의 판례에 비추어 죄를 다스렸다. 무릇 소송에 연루된 친척이나 오랜 친족은 내외척 간의 친목(睦?)으로 깨우쳐, 대체로 화해하고 풀도록 하였다. 송사와 옥사가 한가해지고 나면 아전들은 자리를 떠나 돌아가 농사를 짓게 하였으니, 멀고 가까이에 있는 자들이 화합하여 순량(循良)이라는 칭호를 붙여 주었다. 『논어정의』는 그가 38세에 뜻을 두고 착수하여 평생을 바친 저작으로, 청대 『논어』 연구의 결정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24권까지 지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아들 공면에게 이를 이을 것을 맡긴 후 함풍 5년(1855)에 죽으니, 향년 65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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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현찬 (역주)    정보 더보기
1963년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1987년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 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2000년 중국 송대 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 한림원에서 한문을 공부하였으며, 현재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과 및 대학원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아울러 성균관 한림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장재: 송대 기철학의 완성자』, 『주돈이: 성리학의 비조』, 『(교수용 지도서) 사자소학』, 『(교수용 지도서) 추구·계몽편』, 『(교수용 지도서) 격몽요결』 등이 있고, 함께 번역한 책으로는 『논어징』 전 3권, 『성리논변』, 『증보 동유학안』 전 6권, 『주자대전』 전 13권, 『주자대전차의집보』 전 4권, 『역주 예기집설대전 2』, 『왕부지 중용을 논하다』 등이 있다. 이 외에 연구논문으로는 「《논어징》에 나타난 오규 소라이의 성인관」, 「《논어징》에 나타난 오규 소라이의 도 인식」, 「성리학의 태동과 정체성에 대한 일고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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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살펴보니, 『맹자』?진심하?에 “공자가 진나라와 채나라의 사이에서 곤액을 당한 것은 두 나라의 임금이랑 신하와 교분이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했고, 『논어』?선진?에서도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나를 따르던 자들은 다 문에 미치지 못했다.”라고 했으니, 분명 그 당시 제자들이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벼슬하지 않음으로 인해 두 나라의 임금이랑 신하와의 교분이 없었기 때문에 곤액을 당하고 식량이 떨어지게 된 것일 뿐이다. 여기의 ?주?에서는 오나라가 진나라를 정벌하매 진나라가 어지러웠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역시 억측에 가깝고, ?세가?에서는 다시 견강부회하여 진나라와 채나라의 대부가 한통속이 되어 공자를 포위할 것을 도모했다고 한 것은 더욱 옳지 않다.


살펴보니, 『논형』?솔성편?에 “전(傳)에 ‘요임금과 순임금의 백성들은 집집마다 다 봉해 줄 만했고, 걸왕과 주왕의 백성들은 집집마다 다 죽일 만했다.’라고 했고, 『논어』에 ‘이 백성들이야말로 삼대 때 정직한 도를 가지고 실행한 사람들이다.’라고 했는데, 성스러운 군주의 백성들은 이와 같고, 포악한 군주의 백성들은 저와 같으니, 결국 교화에 달려 있는 것이지 본성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으니, 이 역시 요와 순이 덕으로써 백성을 교화함은 바로 정직한 도를 가지고 실행한 것이며, 걸과 주의 포악한 학정과는 다른 것임을 말한 것이다. 이는 포군(包君)이 인용해서 증명한 것과 부절을 합해 놓은 듯이 일치한다. 황간본에는 “인(人)” 아래 “야(也)” 자가 없고, “소(所)”는 “가(可)”로 되어 있다.


살펴보니, 동씨(董氏)는 계문자(季文子)가 벼슬을 시작한 것이 문공 때에 있었고, 문공은 나라 밖에서 모욕을 당하고 나라 안에서 침탈을 당하여 진실로 이미 스스로 그 틈을 벌려 놓았기 때문에 선공에 이르러 관작과 봉록이 공실을 떠났다고 여긴 것이다. 『춘추번로』의 이말은 정현의 뜻과는 다른 듯하지만 실제로는 같다. 『춘추좌씨전』?문공? 18년의 ?전?에, “문공에겐 두 명의 왕비가 있었는데, 경영(敬?)이 선공을 낳았다. 경영은 문공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사사로이 양중(襄仲)을 섬겼다. 선공이 장성하자 경영은 선공을 양중에게 부탁했다. 문공이 죽은 뒤에 양중이 선공을 임금으로 세우려 하자 숙중(叔仲)이 안 된다고 하였다. 양중이 제후(齊侯)를 만나 선공을 임금으로 세워 주기를 청하니, 제후가 양중의 요청을 허락했다. 겨울 10월에 양중이 악(惡)과 시(視)를 죽이고서 선공을 세웠다.”라고 했고, 『춘추공양전』에는 “자적(子赤)”이라고 되어 있는데, “악(惡)”이 바로 “적(赤)”이니 이것이 그 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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