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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91114775
· 쪽수 : 408쪽
· 출판일 : 2025-03-05
책 소개
목차
이별할 땐 문어_11
리뷰
책속에서
“너나 나나 똑같아, 어휴.”
나는 라디오를 켜놓고 대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지금은 오전 여덟시였고, 나 또한 지난 몇 달간 섹스 한번 못한 신세라 성욕에 굶주린 문어에게 감정이입할 생각은 없었다.
이건 내 잘못이다, 나도 안다. 나는 태가 떠날 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대처했으니까. 이별이라면 예전에도 경험했지만 상대가 지구를 떠날 계획을 세우는 바람에 헤어진 건 처음이었다.
우주의 광활한 어둠은 바다의 어둠과는 완전히 다르다. 바닷속은 아무리 헤아릴 수 없이 깊고 아무도 살 수 없을 듯 보이더라도 보고 만질 수 있는 생명들의 징후로 희미하게 빛나게 마련이다. 나는 우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나는 남자친구를 사귈 만한 나이가 되자 부모님이 없는 틈을 타 상대를 집에 데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굳이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던 목 위의 작은 멍 자국을, 차 뒷좌석에서 흩어지는 뜨거운 숨결을, 나보다 더 다루기 쉽고 덜 절박한 누군가에게로 떠나간 연인 때문에 텅 빈 주차장에서 혼자 울음을 터뜨리는 경험을 곧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20대 초반에는 숙취로 인해 열감이 느껴지는 아침에 남자가 내 안에 들어오도록 놔두면서 그의 열기를 나 자신의 것처럼 느낄 때 쇄골 아래에 고이는 땀의 맛이야말로 곧 사랑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가끔 나는 상대가 콘돔을 쓰지 않아도 내버려두곤 했는데, 때로는 그걸 원했기 때문이고 때로는 원하는지 아닌지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사랑은 내가 다음 상대의 요구에 맞춰 갓 정련된 대리석 덩어리처럼 매끈해질 때까지 나 자신을 깎아내고 또 깎아내는 일이었다.
하지만 태는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