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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카프카·클라이스트·드로스테 휠스호프

브레히트·카프카·클라이스트·드로스테 휠스호프

(독일 단편소설 걸작선)

베르톨트 브레히트, 프란츠 카프카,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드로스테-휠스호프 (지은이), 배중환 (옮긴이)
  |  
산지니
2023-10-09
  |  
2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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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카프카·클라이스트·드로스테 휠스호프

책 정보

· 제목 : 브레히트·카프카·클라이스트·드로스테 휠스호프 (독일 단편소설 걸작선)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 ISBN : 9791168611757
· 쪽수 : 436쪽

책 소개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문학사에 큰 영향을 끼친 독일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프란츠 카프카,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아네테 폰 드로스테 휠스호프. 이들의 단편소설 41편을 모았다.

목차

1. 브레히트 편
아우크스부르크의 동그라미 재판
품위 없는 할머니
라 시오타의 병사
상어가 사람이라면
폭력에 맞서는 조치
부상당한 소크라테스
두 아들
현자의 현명함은 그 자세에 있다
책 읽는 어느 노동자의 질문들
이단자의 외투

2. 카프카 편
법 앞에서
선고
유형지에서
법의 문제
변호사
신임 변호사
시골 의사
석탄 통을 타는 사나이
단식 예술가
서커스의 싸구려 관람석에서
귀향
아버지의 근심
자칼과 아랍인
황제의 칙명
도시의 문장
고문서 한 장
프로메테우스
해신(海神) 포세이돈
마당문을 두드림
사냥꾼 그라쿠스

3. 클라이스트 편
결투
이상한 결투 이야기
영국의 이상한 재판
로카르노의 거지 여인
유령출현
최근의 프로이센 전쟁에서 얻은 일화
프랑스인의 정의
신의 끌
최근의 (더 행복한) 베르테르
인형극에 대하여

4. 드로스테 휠스호프
유대인의 너도밤나무

저자소개

베르톨트 브레히트 (지은이)    정보 더보기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1898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의 작은 도시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났다. 20대 초반까지 현실 비판적이긴 했지만, 그 대안을 찾지 못해 댄디풍의 청년으로 지내던 브레히트는 부친의 권유로 입학했던 뮌헨대학 의대도 1학기 만에 중퇴하고 뮌헨의 연극판에 뛰어든다. 1922년에는 희곡 <한밤의 북소리>로 클라이스트상도 수상한다.1924년 베를린으로 이주해, <사내는 사내다> 등을 무대에 올리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브레히트를 일약 베를린 문화계의 스타로 발돋움하게 해 준 작품은 1928년 초연된 서사적 음악극인 <서 푼짜리 오페라>였다. 1933년 독일 제국의사당이 나치스의 방화로 불탄 다음 날 브레히트는 가족과 함께 망명길에 오른다. 그 후 그는 “신발보다 더 자주 나라를 바꿔 가며” 유럽을 전전하다, 194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다. 작가 브레히트에게 망명은 곧 독자와 무대의 상실을 의미했다. 작품을 써도 읽어 줄 독자와 그 작품을 올릴 무대가 그에게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망명 기간에 집필한 <사천의 선인>, <억척어멈>, <갈릴레이의 생애>, <아르투로 우이> 등의 대작 희곡은 모두 책상 서랍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전쟁이 끝나자 미국에는 극우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어닥쳤다. 브레히트는 1947년 10월 30일 “반미활동 청문회”에 소환받아 공산당원 전력 등에 대해 심문을 받게 된다. 다음 날 미국을 떠나 파리를 거쳐 그해 11월 취리히에 도착한다. 취리히에서 브레히트는 독일 귀환을 준비한다. 하지만 분단된 독일은 모든 망명객들에게 두 개의 독일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했다. 브레히트는 결국 사상적으로 가깝고, 자신에게 연극 무대를 제공해 준 동독을 선택하면서 오랜 망명 생활을 청산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민중과 멀어진 당, 동독 문화 정책과의 불협화음 속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오랜 지병인 신장염이 재발해 1956년 8월 14일 58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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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83년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대인 상인이었으며, 부유한 집안 출신의 어머니와 결혼하여 카프카와 엘리, 발리, 오틀라라는 세 여동생이 태어났다. 1901년 프라하 대학교에서 법률학을 공부한 카프카는 1906년에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시기 「어느 투쟁의 기록」을 쓴 카프카는 1908년부터 1922년 7월 은퇴할 때까지 스스로 ‘기동 연습 생활’이라 일컬을 정도로 고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생활을 이어 나갔다. 1912년 9월 여덟 시간 만에 「선고」를 완성하고, 12월에 「변신」을 탈고하여 프라하에서 첫 번째 공개 낭독회를 가졌다. 그로부터 삼 년 뒤인 1915년에 『변신』을, 1916년에 『선고』를 출판한다. 1917년 폐결핵 진단을 받은 카프카는 집필을 계속하여 1919년에 『유형지에서』를 출판하고, 이후 1922년 『성』을 집필하였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1924년에 키어링 요양원에 머물다가 6월 3일 사망했다. 이후 나머지 작품을 모두 없애 달라는 카프카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친구 막스 브로트가 보관하고 있다가 카프카의 작품들을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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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스테-휠스호프 (지은이)    정보 더보기
1797년 1월 12일 독일 뮌스터 근교의 수성(水城) 휠스호프에서 남작의 딸로 태어났다. 활동적이며 엄격한 어머니로부터 문학적 재능을, 온유하고 학구적인 아버지로부터 음악적 재능과 자연과학에 대한 탐구열을 물려받았다. 드로스테는 대략 일곱 살부터 문학적 재질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청년기까지 그녀가 쓴 시들은 가족을 위한 즉흥시가 대부분이었다. 1813년 드로스테와 언니는 뵈켄도르프의 외가에서 그림 형제들을 알게 되었고, 곧바로 그들과 함께 독일 동화와 민요 수집을 하게 된다. 그러한 활동을 통하여 민속적인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인간적으로도 시야가 넓어지게 된다. 1818년 신앙심이 깊은 외조모와 삼촌의 권유로 찬송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잘못된 처신으로 두 남자에게 공동의 절교장을 받는 사건 때문에 중단된다. 불안과 죄의식으로 괴로워하던 그녀는 쓰고 있던 신앙 시를 중단하고 ≪신앙연력(信仰年歷, Geistliches Jahr)≫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1820년 가을에 어머니께 헌정한다. 이른바 ‘청춘의 파국’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의 여파로 드로스테는 1820년부터 1825년까지 별다른 창작 활동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암흑의 세월은 드로스테에게 자신의 실존을 각성하게 하는 시기가 되며, 인간적으로 성숙하고 작가로서 발전하는 데 밑거름이 된다. 1825년에 가족 및 친지들과 떠난 여행은 드로스테의 정신세계를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특히 쾰른에서 알게 된 아델레 쇼펜하우어와의 친교는 드로스테의 정신적·문학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여행에서 돌아온 드로스테는 1826년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된다. 처음 몇 년 동안 고독한 생활과 아버지를 잃은 충격으로 인해 그녀는 육체적·정신적으로 더없이 허약해진다. 더욱이 연이은 막내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저항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신경쇠약과 발작을 일으키며 극도로 고독해진다. 하지만 그녀는 농사일을 관찰하면서 농사에 대한 세부 사항과 지질에 대한 지식을 더욱 넓혀간다. 이 시기에 그녀는 이미 시작해 놓은 소설 ≪유대인의 너도밤나무(Die Judenbuche)≫를 집필했고, 또한 역사에 눈을 돌려 세 편의 서사시 ≪성(聖) 베른하르트의 순례자 숙소(Das Hospiz auf dem großen St. Bernhard)≫(1827), ≪의사의 유언(Des Arztes Verma?chtniß)≫(1832), ≪론 늪지의 전투(Die Schlacht im Loener Bruch)≫(1837)를 집필했다. 1833부터 1840년까지 드로스테는 뮌스터 아카데미 철학 강사인 크리스토프 베른하르트 슐뤼터(1801∼1884)와 친교를 맺게 된다. 슐뤼터는 드로스테의 신앙 시를 높이 평가해 중단된 ≪신앙연력≫을 완성하라고 촉구했고, 이 충고에 따라 드로스테는 이 연작 신앙 시를 다시 시작하여 1840년에 완성한다. 1838년에 드디어 첫 번째 시집 ≪시집(Gedichte)≫을 냈지만, 독자들로부터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드로스테는 이에 굴하지 않고 ‘헤켄 작가협회(Hecken Schriftsteller- Gesellschaft)’의 회원이 되어 의욕적으로 활동했다. 드로스테는 베스트팔렌 전설과 역사를 소재로 한 아름답고 소름 끼치는 여러 편의 발라드를 쓰게 된다. 1841년 초에 시작한 ≪우리네 시골에서는(Bei uns zu Lande auf dem Lande)≫도 그중 하나였다. 베스트팔렌에서 구전되는 무시무시한 귀신이야기와 형상들, 색채와 냄새, 그리고 무서운 사건들이 대표적 서정시 ≪황야화첩(Die Heidebilder)≫에서 표현된다. 이 책은 드로스테의 발전된 묘사 감각이 낳은 결실이며 사실주의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녀의 명확한 시대 인식을 담고 있는 ≪시대화첩(Zeitbilder)≫에서 드로스테는 이른바 ‘세계 개선자들’의 돌진으로 인해 위험에 처한 인류의 현실을 직시한다. 그와 함께 ≪신앙연력≫ 2부에서 보였던 작가의 사명에 대한 자각이 심화된다. 1844년 9월 14일에 출판된 두 번째 ≪시집(Gedichte)≫이 첫 시집의 실패를 만회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시집으로 드로스테는 작가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며 명성을 얻는다. 드로스테는 색과 빛에 대한 감수성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되었고, 그 결실로 사실주의적 정확성과 정직성이 돋보이는, 그녀의 시들 중 가장 아름다운 시들을 쓰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 그녀는 그 시대의 몰락상을 보며, 작가로서의 사명감을 더욱 확고히 한다. 1844년 9월에 고향으로 돌아온 뒤 건강이 상당히 나빠졌지만, 이러한 고통을 견디며 ≪쾰른 신문≫에 자신의 진솔한 삶의 보고인 시들을 발표하는데, 파멸과 몰락의 그림자가 이 시기의 시들을 지배하고 있다. 1846년에 자신의 신뢰와 애정을 배반한 쉬킹과 완전히 절교한 드로스테는, 그렇게도 사랑했던 고향 베스트팔렌을 떠나 다시 메르스부르크로 갔고, 1848년 5월 24일 마침내 언니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1851년에 ≪신앙연력≫이 출판되었고, 1860년에 쉬킹에 의해 ≪마지막 선물(Letzte Gaben)≫이 출판되었으며, 1878∼1879년에는 3권으로 된 ≪드로스테휠스호프 전집≫이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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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지은이)    정보 더보기
1777년 폴란드 국경과 접한 독일의 소도시 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더에서 태어났다. 1788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베를린의 위그노파(프랑스의 신교)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유서 깊은 군인 집안에서 클라이스트 또한 군인이 되어야 할 운명이었지만 1799년에 그는 군인의 길을 포기한다. 클라이스트는 프랑스의 근대화, 나폴레옹군의 독일 지배, 프로이센의 개혁 등 “이런 변화무쌍한 시기”에 국가에 대한 의무, 가문과 신분에 의한 운명에 순응하기보다 인간으로서의 행복, 인생의 목표를 추구했다. 결과적으로 별다른 직업이 없었던 클라이스트는 파혼까지 겪은 후 ‘위기의 작가’가 된다. 1807년 낭만주의자들과 협업한 예술잡지 ≪푀부스≫, 1810년 시사적인 신문 ≪베를린 석간≫의 편집자와 발행인으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재정난은 가중되어 갔다. 드라마 작가, 단편 작가, 저널리스트로서의 시도는 모두 실패와 좌절로 이어졌고, 삶의 방향과 목표를 상실한 클라이스트는 1811년 34세라는 나이에 베를린 근교의 반제 호수에서 불치병을 앓던 유부녀 헨리에테 포겔과 동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10년 남짓한 창작 기간에 수편의 드라마와 소설을 썼지만 클라이스트 생전에 무대에 오른 작품은 <깨어진 항아리>뿐이었고 단편도 자신이 창간한 잡지를 통해 발표되는 정도였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클라이이스트의 작품들이 재조명되기 시작했고 그가 남긴 8편의 단편과 8편의 드라마는 오늘날 독일어권 문학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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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중환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서강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부산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교수로 정년퇴임한 후, 현재는 동 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번역한 작품으로는 클라이스트가 지은 『미하엘 콜하스』, 『칠레의 지진』(단편전집), 『슈로펜 슈타인 일가』, 『헤르만의 전쟁』, 『클라이스트 희곡선-깨어진 항아리·암피트리온·홈부르크 공자』, 『하일브론의 케트헨 』과 『예기치 않은 재회』(요한 페터 헤벨 지음) 등이 있고, 옮겨 엮은 책으로는 『동화로 배우는 독일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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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그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건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분명히 느꼈다. 다음 순간 온갖 불쾌한 일들이 있을 것이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피해도 나지 않았다. 첫 승리의 환호를 지르는 지금, 전공(戰功)을 세운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들 자신의 공적을 떠벌리기에 아주 바쁘다. 그러나 내일이나 모레면 그들은 자기 동료인 소크라테스에게 모든 명예가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그를 끌어내리려 할 것이다. 그들이 구두장이를 진짜 영웅 중의 영웅이라고 선언하면, 다수는 이로써 다른 다수를 비난할 것이다.
_「부상당한 소크라테스」


일곱 개의 성문이 있는 테베는 누가 건설했는가? / 책에는 왕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 그럼 왕들이 돌덩이를 직접 날랐을까? / 여러 차례 파괴된 바빌론을 그때마다 누가 재건했을까? / 건설 노동자들은 황금색 찬란한 리마의 어느 집에 살았던가? / 중국의 만리장성이 완성된 날 저녁에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을까?
_「책 읽는 어느 노동자의 질문」


나는 이런 식으로는 절대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번창하던 나의 진료 활동은 끝났다. 어느 후임자가 내게서 그것을 훔쳐가나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가 나를 대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집에서는 구역질 나는 마부가 미친 듯이 날뛰고 있다. 로자는 그의 제물이다. 나는 그것을 생각조차 하기 싫다. 이 불행한 시대의 혹한에 벌거벗은 몸을 맡긴 채, 늙은 나는 비(非) 현세의 말이 끄는 현세의 마차를 타고,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내 털외투는 마차 뒤에 걸려 있지만, 나는 그것을 붙잡을 수가 없다. 환자들 중 움직일 수 있는 그 어느 누구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속았다. 속았어! 한 번 잘못 울린 야간 비상벨의 소리에 따르다니. ― 결코 돌이킬 수 없으리라.
_「시골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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