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70400929
· 쪽수 : 264쪽
책 소개
목차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 │ 돌이켜보니 자연이 한 일은 다 옳았다 │ 다 지나간다 │ 만추 │ 꽃 출석부 1 │ 꽃 출석부 2 │ 시작과 종말 │ 호미 예찬 │ 흙길 예찬 │ 산이여 나무여 │ 접시꽃 그대 │ 입시추위 │ 두 친구 │ 우리가 서로에게 구인이 된다면
그리운 침묵
내 생애에서 가장 긴 8월 │ 그리운 침묵 │ 도대체 난 어떤 인간일까 │ 좋은 일 하기의 어려움 │야무진 꿈 │ 운수 안 좋은 날 │ 냉동 고구마 │ 노망이려니 하고 듣소 │ 말의 힘 │ 내가 넘은 38선 │ 한심한 피서법 │ 상투 튼 진보 │ 공중에 붕 뜬 길 │ 초여름 망필(妄筆) │ 딸의 아빠, 아들의 엄마 │ 멈출 수는 없네 │ 감개무량
그가 나를 돌아보았네
그는 누구인가 │ 음식 이야기 │ 내 소설 속의 식민지시대 │ 그가 나를 돌아보았네
딸에게 보내는 편지
내가 문을 열어주마 │ 우리 엄마의 초상 │ 엄마의 마지막 유머 │ 평범한 기인 │ 중신아비 │ 복 많은 사람 │ 김상옥 선생님을 기리며 │ 이문구 선생을 보내며 │ 딸에게 보내는 편지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미안하다고, 너를 죽이려 한 것도, 너의 꽃을 싫어한 것도 사과할 테니 내년에는 꽃 좀 피우라고 자꾸자꾸 말을 시켰다. 그랬더니 그 이듬해는 시원치는 않지만 꽃이 몇 송이 피었고, 지난봄에는 더 많은 꽃이 피었다. 아마 오는 봄에는 더 장하게 꽃을 피울 모양이다. 벌써부터 여봐란 듯이 자랑스럽게 준비하고 있는 솜털 보송보송한 수많은 꽃봉오리들을 보니. 그래서 나는 요새도 나의 목련나무에게 말을 건다. 나를 용서해줘서 고맙고, 이 엄동설한에 찬란한 봄을 꿈꾸게 해줘서 고맙다고.
내 마당의 꽃들이 내 말을 잘 듣는다고 해서 노랗게 피는 꽃한테 빨갛게 피라거나, 분꽃처럼 저녁 한때만 피는 꽃한테 온종일 피어 있으라는 무리한 주문은 안 한다. 무리한 요구를 안 하는 게 아마 꽃이 내 말을 잘 듣도록 길들이는 비법인지도 모르겠다. 아니지, 꽃과 나무들을 내가 길들였다고 생각하는 걸 알면 그것들이 아마 코웃음을 치거나 화를 낼지도 모른다. 그것들이 나를 길들였다고 정정해야겠다.
자연의 질서를 긍정하고, 거기 순응하는 행복감에는 그런 불안감이 없다. 아무리 4월에 눈보라가 쳐도 봄이 안 올 거라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변덕도 자연 질서의 일부일 뿐 원칙을 깨는 법은 없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 배우는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사물과 인간의 일을 자연 질서대로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가 아닐까.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이 혹은 누군가가 거두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