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문화/역사기행 > 한국 문화/역사기행
· ISBN : 9791170430902
· 쪽수 : 384쪽
· 출판일 : 2020-06-16
책 소개
목차
지은이의 말 _ 무심코 지나친 동네도 소중한 역사여행지다!
1장. 서울
평생의 짝을 만나게 해준다는 백불 – 옥천암
조선의 시작과 끝은 종묘에 있다 – 종묘
권력의 공간에서 시민의 공간으로 – 운현궁
가장 많은 상처를 지닌 궁궐 – 경희궁
왜 백정 교회라 불렸을까? - 승동교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 – 경교장
사랑을 무소유로 승화시키다 – 길상사
2장. 경기도
양평 모든 은행나무의 어머니 – 용문사
남양주 물과의 깊은 인연 – 수종사
파주 한명회의 두 딸이 묻히다 – 삼릉
고양 숙종의 여인들 – 서오릉
광주 명분과 실리의 기로 – 남한산성
과천 추사 김정희의 마지막 쉼터 – 과지초당
3장. 강원도
춘천 당나라 공주의 슬픈 전설 – 청평사
양양 아름다운 동해를 마주하다 – 하조대
양양 전통과 역사를 지키려는 노력의 흔적 – 양양향교
영월 단종의 마지막 모습을 보다 – 청령포
홍천 한글로 간행된 『월인석보』를 간직하다 – 수타사
평창 요즘 아이들은 모르는 이승복 어린이 – 이승복기념관
4장. 충청도
부여 백제의 우수한 문화를 보여주다 – 정림사지
괴산 나라에서도 건들지 못한 절대권력 – 화양서원
예산 백제의 얼이 담긴 산성 – 임존성
진천 아름다운 정원 같은 사찰 – 보탑사
진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 진천농다리
서산 죽음과도 맞바꾼 천주교 신자의 믿음 - 해미 순교성지
청주 애틋한 사랑을 나눈 신채호와 박자혜 – 단재 신채호 사당
5장. 전라도
구례 세상의 중심은 우리다 – 화엄사
순천 큰스님을 배출한 승보사찰 – 송광사
순천 아픈 역사지만 꼭 보존해야 할 유적지 – 순천왜성
남원 선조들이 사랑했던 아름다운 공간 – 광한루
전주 기록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곳 – 전주사고
광양 모두가 좋아하는 김을 최초로 양식하다 – 광양 김시식지
군산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 – 동국사
6장. 경상도
김해 수로왕은 웃고 있을까, 울고 있을까? - 수로왕릉
경주 신라가 영원하길 기도하다 – 감은사지
영주 역사, 설화, 자연 무엇도 부족하지 않다 – 부석사
영주 사라지는 만큼 채워 넣는 곳 – 무섬마을
영주 조선시대 교육의 장 – 소수서원
창녕 아름다운 자연과 전설이 만나다 – 우포늪
7장. 제주도
탐라국 수도를 내려다보다 – 도두봉
원시 숲을 보존하다 - 비자림
제주도의 고난을 예견하다 – 용머리해안
아름다운 전설이 짓밟히다 – 천제연폭포
아픔을 감춘 제주도의 비경 - 성산일출봉과 광치기해변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산 – 한라산
노름빚으로 사람이 살게 된 섬 – 마라도
참고자료
찾아보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흥선대원군은 민비에게 왕실의 여인으로서 지켜야 할 덕목을 직접 가르친 뒤, 노락당에서 고종과의 가례를 올리게 했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당시 사회통념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왕실의 법도로 봤을 때 왕이 사가에서 가례를 올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여자 집에서 혼례가 이루어지는 당시의 친영제도(신부의 집에서 혼례를 치른 뒤 신랑의 집에서 살림을 시작하는 결혼제도)에도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운현궁 노락당에서 고종의 가례를 올린 것은 치밀한 계산 아래 이루어진 흥선대원군의 정치 활동이었다. 고종에게는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뜻을 무조건 따라야 함을 인지시키고, 민비에게는 안동 김씨처럼 왕권을 위협하는 정치 활동을 하지 말 것을 경고한 것이었다. 이처럼 흥선대원군의 정치 활동의 중심지는 궁궐이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운현궁이었다.
숙종은 인현왕후(1667~1701)의 능을 조성할 때 오른쪽에 자신이 들어갈 자리를 만들라고 신하들에게 명을 내리며 일찌감치 자신의 자리를 정해두었다. 비련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진 인현왕후는 숙종보다 7살 어린 나이인 14살에 인경왕후의 계비로 궁궐에 들어왔다. 그러나 숙종이 한쪽 당을 노골적으로 편드는 편당적 탕평책의 희생양으로 왕후 자리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복위하는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 결과 35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창경궁 경춘전에서 숨을 거두었다. 아무래도 숙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정치적 희생양으로 내몰아야 했던 미안함 때문에 그녀 옆에 누우려 했던 것은 아닐까?
청령포에서 단종의 삶은 오래가지 못했다. 세간의 이목이 차단된 청령포는 단종의 죽음을 조용히 처리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세조가 청령포에 단종을 보낸 것은 감금이 아니라 살해가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세조는 금부도사에게 단종을 죽이라 명했고, 얼마 뒤 단종은 관풍헌에서 죽었다. 단종이 어떤 죽음을 맞이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청령포에서 단종을 모시던 궁인들조차도 살아남은 이가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