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심리학/정신분석학 > 정신분석학
· ISBN : 9791172133917
· 쪽수 : 292쪽
· 출판일 : 2026-03-30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심리학/정신분석학 > 정신분석학
· ISBN : 9791172133917
· 쪽수 : 292쪽
· 출판일 : 2026-03-30
책 소개
이대남 현상,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극단적 여성 혐오 문화 확산 등 젊은 남성들의 폭력성과 보수적 가치로의 회귀는 한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심화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신간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은 남성성 위기에 대해 ‘흔들리는 가부장 질서에 대한 반발’이라는 그간의 분석을 넘어, 인류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부터 본질적인 답을 구하며 남성성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시도다.
일그러진 남성성의 시대,
그리스 여섯 남신이 보여 주는 남성 원형의 다채로운 맨얼굴
이대남 현상,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극단적 여성 혐오 문화 확산 등 젊은 남성들의 폭력성과 보수적 가치로의 회귀는 한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심화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신간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은 남성성 위기에 대해 ‘흔들리는 가부장 질서에 대한 반발’이라는 그간의 분석을 넘어, 인류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부터 본질적인 답을 구하며 남성성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시도다. 2024년 복간되어 큰 화제를 불러 모은 《여신의 언어》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신화학자이자, 꿈 해석과 신화를 통해 개인과 집단의 트라우마 치유에 매진해 온 고혜경 교수의 신작이다.
제목인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은 일차적으로 ‘건강한 어른 남성’이 부재한 상황에 놓인 오늘날의 젊은 남성들을 뜻한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마주하는 법을 잃은 채 세상이 요구하는 모습에만 자신을 욱여넣느라 깊이 병들어 가는 현대인 전체를 향한 은유이기도 하다.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은 “남신과 여신들은 인간 정신을 이루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힘들을 의인화한 것”(10쪽)이라는 심층심리학·원형심리학적 시각으로 그리스 신화 속 여섯 남신을 들여다본다. 올림포스의 12신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듯, 우리 내면의 여러 원형 역시 균형 있게 통합되어야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설 수 있게 된다. 정여울 작가는 추천사에서 “이 험난한 사회에서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한 부모는 물론, ‘요즘 남자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해하는 모든 세대들, 그리고 끝내 ‘내 인생의 나침반을 과연 어디에 둘 것인가’를 끈질기게 질문하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7쪽)라고 했다. 이 책은 특정 성향만이 과잉된 현시대 남성성의 위기를 진단하는 동시에, 피상적인 삶을 좇느라 ‘참자기(True Self)’를 잃어버린 모든 이에게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새롭고도 신비로운 시야를 틔워 줄 것이다.
잡아먹히는 아들들, 상처 입은 남성들:
폭력의 대물림을 끊은 제우스와
결핍을 창조로 승화시킨 헤파이스토스
1장에서는 오랜 시간 ‘가부장적 독재자’로 인식되어 온 제우스 신화를 전복하며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통합적 아버지상을 발굴한다. 제우스 이전 세대인 우라노스와 크로노스는 자식을 땅에 감금하거나 삼켜 버리는 ‘잡아먹는 아버지’였다. 저자는 이 비극적 이미지에서 기성세대의 억압에 눌려 체념과 무기력, 우울에 빠져 버린 현대 청년들의 초상을 읽어 낸다. 저자는 “제우스를 건강하고 온전한 아버지 모델로 간주하는 데 분명 편치 않은 지점이 있다”(63쪽)고 고백하면서도, 신화적·심리학적 해석을 통해 그가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아버지 신임을 보여 준다. 헤라를 두고서도 수많은 다른 여신을 아내로 맞거나 심지어 억지로 범하는 기존의 폭력적인 이미지는, 내면의 여성성(아니마)을 기꺼이 수용하면서 다른 12신과의 공존을 이루어 내는 통합적 리더십으로 재해석된다. 이러한 제우스의 유연함은 “‘아버지 고픔’의 시대”(68쪽)를 사는 뭇 남성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준다.
2장에서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상처와 신체적 결함을 딛고 위대한 장인으로 거듭난 헤파이스토스를 조명한다. 올림포스에서 유일하게 노동하는 절름발이 신인 그는 현대인이 깊이 감추고 싶어 하는 수치심, 열등감, 존재론적 부적절감을 상징한다. 특히 “헤파이스토스 유형의 남성이 일평생 즐겨 부르는 노래는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곡”(102쪽)이라며, 헤파이스토스를 통해 모성을 갈구하면서도 그 결핍을 연인이나 아내에게서 채우려 드는 일그러진 남성성의 단면을 포착해 내는 지점은 흥미롭다.
이 장은 인셀 문제나 과잉된 남성성 이면에 도사린 깊은 상처를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아프로디테를 둘러싼 삼각관계에서 드러난 헤파이스토스의 나약하고 찌질한 면모나, 헤파이스토스의 거울쌍인 아레스가 보여 주는 과장된 허세와 폭력성 모두 ‘근원적 배제와 소외’에서 비롯되었음을 신화는 말해 준다. 저자는 “‘아레스’가 발붙일 곳을 아예 없애 버린 우리 모습은 어떠한가?”(108쪽)라고 물으며, 이들을 단순히 사회 밖으로 밀어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자신의 결함을 창조의 에너지로 승화시켜 당당히 올림포스에 입성한 헤파이스토스의 궤적을 통해 상처와 소외 속에서 길 잃은 남성들과 현대인에게 자기 삶을 되찾을 눈부신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를 지배해 온 신, 우리가 잃어버린 신:
이성에 갇힌 아폴론과 경계를 유영하는 헤르메스
3장에서는 찬란한 이성과 합리를 상징하는 아폴론을 통해 인류 문명의 눈부신 성취와 그 이면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를 동시에 조명한다. 저자는 “아폴론은 현재의 우리를 이해하는 데 특히 중요한 신”(131쪽)이며, 무질서를 몰아내고 인류에게 이성과 추상이라는 진일보한 개념을 선사한 신임을 말해 준다. 하지만 아폴론의 ‘맹목적인 빛(이성)’은 오히려 ‘영혼의 목소리’를 듣는 귀를 멀게 했다. 애매모호한 신탁의 숨은 뜻을 곱씹지 않아 파국을 맞은 오이디푸스의 비극처럼, 현대인 역시 오직 명료함만을 좇느라 삶의 복잡성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또한 올림포스 최고의 미남이자, 주로 긍정적 이미지로 인식되어 온 아폴론이 정작 구애한 여성들에게는 번번이 거부당하는 아이러니와 그 이유에도 주목한다. 아폴론은 신화에서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여성들을 포기하지 않고 탐하려 들다 끝내 파멸로 몰아넣는다. 저자는 이를 통해 땅(여신)의 에너지, 감정적 언어, 무의식을 억압한 극단적 이성주의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충동으로 돌변할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4장에서는 이승과 저승,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헤르메스를 살펴본다. 자주 도둑이나 사기꾼으로 오해받곤 하지만, 형 아폴론의 소를 훔친 뒤 수금을 내어 주어 모두를 승자로 만든 일화(179~181쪽)에서 알 수 있듯 헤르메스는 재기 넘치는 교환과 협상의 신이다. 특히 헤르메스가 ‘경계의 신’으로서 우리를 내면 깊은 곳으로 안전하게 이끄는 영혼의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는 점은, 삶의 전환기나 위기 앞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 줄 만하다.
현대 사회는 과학적 사고와 합리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지만, 안개처럼 모호한 삶의 전환기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폴론적 명료함이 아니라 헤르메스의 유연한 지혜다. 저자는 이 장의 마지막에서 “지금껏 우연이라 여긴 일들이 헤르메스의 설계”(210쪽)가 아닐까를 스스로 물으며, 삶에 등장한 숱한 우연을 혼란이나 혼돈이 아닌 헤르메스가 건넨 선물로 받아들인다. 세상과 현상을 논리적 언어로 통제하고 설명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강박적 현대인들에게, 우연이야말로 신이 열어 주는 기회이자 풍요라는 저자의 신비로운 통찰은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현대 문명이 철저히 추방한 신들:
광기와 환희의 디오니소스와
존재를 거듭나게 하는 미지의 신 하데스
5장에서는 야성과 억압된 감정을 해방하는 광기의 신 디오니소스의 진정한 의미를 복원한다. “현대인은 디오니소스 신을 망각했다.”(216쪽) 디오니소스는 오랜 세월 알코올 중독이나 파괴적 광란의 대명사로 폄하되어 인류의 깊은 무의식 속으로 유배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성 중심 문명이 거세해 버린 생명력과 몸의 영성을 대변하는 신이다.
저자는 ‘미치다(mad)’ ‘제정신이 아니다(crazy)’ ‘광증(psychosis)’이 혼용되곤 하지만 엄연히 다른 뜻임을 짚으며(226쪽), 디오니소스를 오해해 온 우리에게 그가 이끄는 ‘환희와 황홀경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특히 저자가 직접 겪거나 들은 엑스터시 체험을 진술하는 대목에서는 좀처럼 닿을 수 없는 이성 저 너머의 신비가 엿보인다. 흔히 ‘묻지 마 범죄’나 각종 중독, 전체주의적 광기 등 현대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디오니소스적 광기로 치부하지만 이는 오히려 그 에너지를 억압하고 배척한 데서 비롯된 ‘디오니소스의 그림자’다. 이성에 얽매인 현대인에게 디오니소스는 두렵고 막연할 수밖에 없지만, “신화는 디오니소스 신을 위한 자리를 우리 안에 마련할수록 벌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선물을 받게 된다고 분명히 이야기한다.”(252쪽) 경직을 풀고 내면의 열정을 뜨겁게 연소할 때 진정한 자유와 황홀경을 누릴 수 있다는 디오니소스의 매혹적인 초대는, 무채색의 일상을 견뎌 내는 현대인들에게 벅찬 해방감을 선사한다.
6장은 가장 깊숙하고 어두운 심연, 하데스의 세계를 탐험하는 여정이다. 이 장은 《아버지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이 이끄는 내면 탐색의 도착지이자 모두가 향해야 할 궁극적인 목적지다. 하데스 역시 디오니소스만큼이나 크게 오해받고 있는 신이다. 그는 흔히 죽음의 신으로 여겨지지만, 그가 상징하는 특질은 ‘무(無)’나 ‘공허’가 아닌 ‘비가시성’ 그 자체다. 저자는 지상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조차 지하 세계에서는 그저 환영에 불과한 피상을 향해 헛방망이질을 해대는 ‘까막눈’에 불과했음을 꼬집는다. 자기 내면세계 깊이로는 몸을 던지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세상의 표피에만 몰두하며 얄팍한 자아의 힘만으로 모든 문제를 다루고 돌파해 내려는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을 돌아보게 한다.
이와 대비되는 오디세우스 여정에 대한 해석은 단연 이 책의 가장 아름다운 대목이다. 오랫동안 바다 위를 떠돌다 마침내 하데스 세계에서 만난 현자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을 통해 ‘방황의 의미’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게 된 오디세우스, 낡은 자아를 허물고 기꺼이 어둠 속으로 하강한 사람이 ‘진정한 나’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은 독자 누구에게나 깊은 울림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그리스 세계관에서는 어느 한쪽만을 숭배하고 다른 한쪽은 외면하는 태도를 ‘불경’이라 여겼다. 오늘날 남성들이 겪는 균열과 방황,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진 채 떠도는 삶은 결국 이 불경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고정적 의미, 박제된 언어로 세계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는 착각 역시 마찬가지다. “본래 정신의 언어는 단어가 아니라 이미지”(11쪽)라는 저자의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은 그간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소비되어 온 그리스의 여섯 남신을 새롭게 읽게 하며, 경이롭고도 무한한 은유의 향연 속으로 독자를 이끌 것이다. 이성과 논리로는 좀처럼 가닿을 수 없는 세계 그 너머의 숨결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신화가 지닌 힘이다.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이 보여 주는 다채로운 남신들의 모습과 신비로운 신화의 언어는 새로운 남성성, 나아가 아름답고 새로운 인간상을 상상하게 하는 장미창이 되어 줄 것이다.
그리스 여섯 남신이 보여 주는 남성 원형의 다채로운 맨얼굴
이대남 현상,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극단적 여성 혐오 문화 확산 등 젊은 남성들의 폭력성과 보수적 가치로의 회귀는 한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심화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신간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은 남성성 위기에 대해 ‘흔들리는 가부장 질서에 대한 반발’이라는 그간의 분석을 넘어, 인류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부터 본질적인 답을 구하며 남성성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시도다. 2024년 복간되어 큰 화제를 불러 모은 《여신의 언어》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신화학자이자, 꿈 해석과 신화를 통해 개인과 집단의 트라우마 치유에 매진해 온 고혜경 교수의 신작이다.
제목인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은 일차적으로 ‘건강한 어른 남성’이 부재한 상황에 놓인 오늘날의 젊은 남성들을 뜻한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마주하는 법을 잃은 채 세상이 요구하는 모습에만 자신을 욱여넣느라 깊이 병들어 가는 현대인 전체를 향한 은유이기도 하다.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은 “남신과 여신들은 인간 정신을 이루는 여러 가지 서로 다른 힘들을 의인화한 것”(10쪽)이라는 심층심리학·원형심리학적 시각으로 그리스 신화 속 여섯 남신을 들여다본다. 올림포스의 12신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듯, 우리 내면의 여러 원형 역시 균형 있게 통합되어야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설 수 있게 된다. 정여울 작가는 추천사에서 “이 험난한 사회에서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한 부모는 물론, ‘요즘 남자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해하는 모든 세대들, 그리고 끝내 ‘내 인생의 나침반을 과연 어디에 둘 것인가’를 끈질기게 질문하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7쪽)라고 했다. 이 책은 특정 성향만이 과잉된 현시대 남성성의 위기를 진단하는 동시에, 피상적인 삶을 좇느라 ‘참자기(True Self)’를 잃어버린 모든 이에게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새롭고도 신비로운 시야를 틔워 줄 것이다.
잡아먹히는 아들들, 상처 입은 남성들:
폭력의 대물림을 끊은 제우스와
결핍을 창조로 승화시킨 헤파이스토스
1장에서는 오랜 시간 ‘가부장적 독재자’로 인식되어 온 제우스 신화를 전복하며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통합적 아버지상을 발굴한다. 제우스 이전 세대인 우라노스와 크로노스는 자식을 땅에 감금하거나 삼켜 버리는 ‘잡아먹는 아버지’였다. 저자는 이 비극적 이미지에서 기성세대의 억압에 눌려 체념과 무기력, 우울에 빠져 버린 현대 청년들의 초상을 읽어 낸다. 저자는 “제우스를 건강하고 온전한 아버지 모델로 간주하는 데 분명 편치 않은 지점이 있다”(63쪽)고 고백하면서도, 신화적·심리학적 해석을 통해 그가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아버지 신임을 보여 준다. 헤라를 두고서도 수많은 다른 여신을 아내로 맞거나 심지어 억지로 범하는 기존의 폭력적인 이미지는, 내면의 여성성(아니마)을 기꺼이 수용하면서 다른 12신과의 공존을 이루어 내는 통합적 리더십으로 재해석된다. 이러한 제우스의 유연함은 “‘아버지 고픔’의 시대”(68쪽)를 사는 뭇 남성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준다.
2장에서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상처와 신체적 결함을 딛고 위대한 장인으로 거듭난 헤파이스토스를 조명한다. 올림포스에서 유일하게 노동하는 절름발이 신인 그는 현대인이 깊이 감추고 싶어 하는 수치심, 열등감, 존재론적 부적절감을 상징한다. 특히 “헤파이스토스 유형의 남성이 일평생 즐겨 부르는 노래는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곡”(102쪽)이라며, 헤파이스토스를 통해 모성을 갈구하면서도 그 결핍을 연인이나 아내에게서 채우려 드는 일그러진 남성성의 단면을 포착해 내는 지점은 흥미롭다.
이 장은 인셀 문제나 과잉된 남성성 이면에 도사린 깊은 상처를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아프로디테를 둘러싼 삼각관계에서 드러난 헤파이스토스의 나약하고 찌질한 면모나, 헤파이스토스의 거울쌍인 아레스가 보여 주는 과장된 허세와 폭력성 모두 ‘근원적 배제와 소외’에서 비롯되었음을 신화는 말해 준다. 저자는 “‘아레스’가 발붙일 곳을 아예 없애 버린 우리 모습은 어떠한가?”(108쪽)라고 물으며, 이들을 단순히 사회 밖으로 밀어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자신의 결함을 창조의 에너지로 승화시켜 당당히 올림포스에 입성한 헤파이스토스의 궤적을 통해 상처와 소외 속에서 길 잃은 남성들과 현대인에게 자기 삶을 되찾을 눈부신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를 지배해 온 신, 우리가 잃어버린 신:
이성에 갇힌 아폴론과 경계를 유영하는 헤르메스
3장에서는 찬란한 이성과 합리를 상징하는 아폴론을 통해 인류 문명의 눈부신 성취와 그 이면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를 동시에 조명한다. 저자는 “아폴론은 현재의 우리를 이해하는 데 특히 중요한 신”(131쪽)이며, 무질서를 몰아내고 인류에게 이성과 추상이라는 진일보한 개념을 선사한 신임을 말해 준다. 하지만 아폴론의 ‘맹목적인 빛(이성)’은 오히려 ‘영혼의 목소리’를 듣는 귀를 멀게 했다. 애매모호한 신탁의 숨은 뜻을 곱씹지 않아 파국을 맞은 오이디푸스의 비극처럼, 현대인 역시 오직 명료함만을 좇느라 삶의 복잡성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또한 올림포스 최고의 미남이자, 주로 긍정적 이미지로 인식되어 온 아폴론이 정작 구애한 여성들에게는 번번이 거부당하는 아이러니와 그 이유에도 주목한다. 아폴론은 신화에서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여성들을 포기하지 않고 탐하려 들다 끝내 파멸로 몰아넣는다. 저자는 이를 통해 땅(여신)의 에너지, 감정적 언어, 무의식을 억압한 극단적 이성주의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충동으로 돌변할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4장에서는 이승과 저승,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헤르메스를 살펴본다. 자주 도둑이나 사기꾼으로 오해받곤 하지만, 형 아폴론의 소를 훔친 뒤 수금을 내어 주어 모두를 승자로 만든 일화(179~181쪽)에서 알 수 있듯 헤르메스는 재기 넘치는 교환과 협상의 신이다. 특히 헤르메스가 ‘경계의 신’으로서 우리를 내면 깊은 곳으로 안전하게 이끄는 영혼의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는 점은, 삶의 전환기나 위기 앞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 줄 만하다.
현대 사회는 과학적 사고와 합리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지만, 안개처럼 모호한 삶의 전환기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폴론적 명료함이 아니라 헤르메스의 유연한 지혜다. 저자는 이 장의 마지막에서 “지금껏 우연이라 여긴 일들이 헤르메스의 설계”(210쪽)가 아닐까를 스스로 물으며, 삶에 등장한 숱한 우연을 혼란이나 혼돈이 아닌 헤르메스가 건넨 선물로 받아들인다. 세상과 현상을 논리적 언어로 통제하고 설명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강박적 현대인들에게, 우연이야말로 신이 열어 주는 기회이자 풍요라는 저자의 신비로운 통찰은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현대 문명이 철저히 추방한 신들:
광기와 환희의 디오니소스와
존재를 거듭나게 하는 미지의 신 하데스
5장에서는 야성과 억압된 감정을 해방하는 광기의 신 디오니소스의 진정한 의미를 복원한다. “현대인은 디오니소스 신을 망각했다.”(216쪽) 디오니소스는 오랜 세월 알코올 중독이나 파괴적 광란의 대명사로 폄하되어 인류의 깊은 무의식 속으로 유배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성 중심 문명이 거세해 버린 생명력과 몸의 영성을 대변하는 신이다.
저자는 ‘미치다(mad)’ ‘제정신이 아니다(crazy)’ ‘광증(psychosis)’이 혼용되곤 하지만 엄연히 다른 뜻임을 짚으며(226쪽), 디오니소스를 오해해 온 우리에게 그가 이끄는 ‘환희와 황홀경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특히 저자가 직접 겪거나 들은 엑스터시 체험을 진술하는 대목에서는 좀처럼 닿을 수 없는 이성 저 너머의 신비가 엿보인다. 흔히 ‘묻지 마 범죄’나 각종 중독, 전체주의적 광기 등 현대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디오니소스적 광기로 치부하지만 이는 오히려 그 에너지를 억압하고 배척한 데서 비롯된 ‘디오니소스의 그림자’다. 이성에 얽매인 현대인에게 디오니소스는 두렵고 막연할 수밖에 없지만, “신화는 디오니소스 신을 위한 자리를 우리 안에 마련할수록 벌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선물을 받게 된다고 분명히 이야기한다.”(252쪽) 경직을 풀고 내면의 열정을 뜨겁게 연소할 때 진정한 자유와 황홀경을 누릴 수 있다는 디오니소스의 매혹적인 초대는, 무채색의 일상을 견뎌 내는 현대인들에게 벅찬 해방감을 선사한다.
6장은 가장 깊숙하고 어두운 심연, 하데스의 세계를 탐험하는 여정이다. 이 장은 《아버지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이 이끄는 내면 탐색의 도착지이자 모두가 향해야 할 궁극적인 목적지다. 하데스 역시 디오니소스만큼이나 크게 오해받고 있는 신이다. 그는 흔히 죽음의 신으로 여겨지지만, 그가 상징하는 특질은 ‘무(無)’나 ‘공허’가 아닌 ‘비가시성’ 그 자체다. 저자는 지상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조차 지하 세계에서는 그저 환영에 불과한 피상을 향해 헛방망이질을 해대는 ‘까막눈’에 불과했음을 꼬집는다. 자기 내면세계 깊이로는 몸을 던지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세상의 표피에만 몰두하며 얄팍한 자아의 힘만으로 모든 문제를 다루고 돌파해 내려는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을 돌아보게 한다.
이와 대비되는 오디세우스 여정에 대한 해석은 단연 이 책의 가장 아름다운 대목이다. 오랫동안 바다 위를 떠돌다 마침내 하데스 세계에서 만난 현자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을 통해 ‘방황의 의미’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게 된 오디세우스, 낡은 자아를 허물고 기꺼이 어둠 속으로 하강한 사람이 ‘진정한 나’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은 독자 누구에게나 깊은 울림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그리스 세계관에서는 어느 한쪽만을 숭배하고 다른 한쪽은 외면하는 태도를 ‘불경’이라 여겼다. 오늘날 남성들이 겪는 균열과 방황,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진 채 떠도는 삶은 결국 이 불경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고정적 의미, 박제된 언어로 세계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는 착각 역시 마찬가지다. “본래 정신의 언어는 단어가 아니라 이미지”(11쪽)라는 저자의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은 그간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소비되어 온 그리스의 여섯 남신을 새롭게 읽게 하며, 경이롭고도 무한한 은유의 향연 속으로 독자를 이끌 것이다. 이성과 논리로는 좀처럼 가닿을 수 없는 세계 그 너머의 숨결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신화가 지닌 힘이다.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이 보여 주는 다채로운 남신들의 모습과 신비로운 신화의 언어는 새로운 남성성, 나아가 아름답고 새로운 인간상을 상상하게 하는 장미창이 되어 줄 것이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인류 첫 세대 아버지 원형들인 우라노스와 크로노스는 원시적이고 잔혹한 아버지다. 이 원형들은 아버지의 일부로서 일상에 엄연히 실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버지의 이런 어두운 면을 애써 부인하려는 경향이 있다. (중략) 잔혹한 아버지 이미지는 과연 우리에게 유용하거나 필요한 것일까?
제우스는 인간과 신들의 통치자이지만 자연과 사람과 여성을 지배하고 그 위에 군림하는 신은 아니다. 다른 신들을 파괴하지도 않는다. 다름을 수용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다신 세계의 신 제우스는 훨씬 더 복잡한 남성성을 체현하는 존재다.
추천도서
분야의 베스트셀러 >
분야의 신간도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