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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91185014647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14-11-11
책 소개
목차
이중생활 소녀와 생활밀착형 스파이의 은밀한 업무일지 7
보너스_내가 사랑한 스파이 193
작가의 말 249
옮긴이의 말 252
리뷰
책속에서
“아이고, 미안합니다. 늦었네요!”
수업에 지각한 고등학생 같은 말을 내뱉으며 등장한 사람은 낯선 중년남자였다.
뭐야 저 녀석은, 하고 생각하는데 저 볼품없는 회색 양복, 백발이 섞인 머리. 글쎄, 어디선가 본 것 같다. 머리를 갸웃한 채 굳어 있는데 그 아저씨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아! 오늘 아침은 미안.”
호, 혹시……! 내가 기억을 더듬는 것과 동시에 오늘 아침 두번째 술렁거림이 센터 안에 퍼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깐, 뭐야 저 아저씨! 아야카, 무슨 일 있었어?”
히로미가 뒤에서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녀가 소란을 피우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지만 나는 경직된 채 움직이지 못했다. 원고를 보이고 말았다! 혹시 여기까지 협박하러 왔나? 온갖 생각이 난무하는 내 머리는 완전히 기능이 정지되었다.
“우리에게 센터장의 사생활을 캐라는 거죠?”
“뭐?”
지금 얘기가 그런 거였어! 흥분하는 나와는 전연 상관없이 흐흠! 하고 기침하는 여사.
“뭐, 굳이 얘기하자면, 그런 거지.”
아니, 굳이 얘기하자면? 자기가 한 말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거야? 그거 스토킹이라는 범죄 아니야?
“좋아요.”
시원하게 받아들이는 히로미를 보고, 나는 다시 한 번 말을 잃었다.
“자, 잠깐 히로미…….”
옆에서 다운코트를 잡아당겼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고 협상을 진행했다.
“그 대신…….”
“알았어. 그동안의 지각은 없는 걸로 할게.”
“좋았어요. 거래 성립!”
어둠 속에서 브이 사인을 그리는 히로미의 실루엣이 보였다. 이어서 여사의 목이 빙그르 내 쪽을 향한다.
“구에다 씨. 자기도 물론, 해줄 거지?”
어둠 속에서도 로즈핑크 색을 칠한 입가가 씩 올라가는 게 보였다. 등줄기가 얼어붙을 정도의 공포. 히죽, 이라는 의태어가 이토록 와 닿을 수 있을까. 자……잠깐만!
“…… 사람의 인생이란, 하룻밤만 공연되는 쇼 같은 거라고 생각해.”
“예?”
“자네처럼 젊은 사람은 아직 실감 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 같은 나이가 되면, 뭐랄까 나만의 ‘인생철학’ 같은 게 생기거든.”
“아, 예.”
또 느닷없이 무슨 말을 하나 싶어서 나는 애매하게 맞장구쳤다.
“내 철학에 따르면 말이야, 인생은 즐겁거나 즐겁지 않거나가 아니야. 즐거워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지. 딱 한 번뿐이니까,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니까,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아깝잖아? 무대 위의 연기자처럼 진검승부를 내야 하는 거지. 게다가 전력을 다하는 데 있어서는 본인이 즐거워야 하고, 그게 제일 중요해.”
바로 그즈음에서 그는 왼팔을 크게 휘둘렀다.
“……그게, 센터장님의 인생철학.”
혹시, 이것이 조금 전 내 고민에 대한 대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