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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독일소설
· ISBN : 9791185051888
· 쪽수 : 480쪽
· 출판일 : 2015-01-20
책 소개
목차
1994년 미국 네브라스카 주 페어필드 - 009
첫 번째 여름 - 043
가을 - 085
겨울 - 096
봄 - 114
두 번째 여름 - 135
가을 - 303
겨울 - 327
봄 - 367
마지막 여름 - 374
가을 - 400
겨울 - 455
리뷰
책속에서
페어필드는 인근 농장과 농가를 모두 합쳐도 주민이 1500명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이다. 네브래스카 주 북동쪽, 이른바 미국의 옥수수 지대에 속하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지루한 장소 가운데 하나인 게 분명했다. 감리교회 하나(감리교인이 아닌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고 싶으면 매디슨까지 가야 했다), 슈퍼마켓 하나, 주유소 두 개, 극장 하나, 술집 몇 개, 드라이브인 식당 하나, 농축산업협동조합, 페어필드 레미콘 공장, 지역 클럽의 미식축구 경기 등 각종 운동경기가 펼쳐지는 운동장, 새 방앗간과 각종 농기구 정비소가 전부였다. 페어필드에서는 누구나 직간접적으로 농업으로 먹고살았으니 농업을 중심으로 마을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문화적, 사회적 생활의 대부분은 교회에서 결정됐다. 교회는 부속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갖춰 교육을 책임지는 한편, 페어필드 청소년들에게 유일하고도 지극히 소박한 여가 생활을 제공했다. 중학교에 가거나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는 아이들은 23마일이나 떨어진 매디슨까지 가야 했다. 몇몇은 돈을 벌기 위해 그 전에 학교를 그만두기도 했다. 이런 아이들은 운이 좋으면 인근에서 일자리를 구했고, 더 좋으면 네브래스카를 떠날 기회를 잡았다. 이 황량한 땅, 미국의 변두리이자 심장인 이곳은 100년 전에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페어필드에서는 모두가 아는 사이였다. 가족의 비밀 같은 건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눈길이 내 가슴에 머물렀다. 젖은 머리카락 때문에 티셔츠가 젖어 속이 다 비쳐 보인다는 걸 깨닫고는 창피하고 화가 나서 몸을 돌렸다.
“너 정말 빌어먹게 매력적이다.” 대니가 일어나며 다 부서져가는 베란다 난간에 몸을 기댔다.
“칭찬…… 고마워.” 나는 여전히 몸을 돌린 채 대꾸했다. 여기 단둘이 있다는 사실이 점점 마음에 들었다.
“말이 참 멋지다.”
“말에 대해서 좀 알아?”
나는 몸을 돌려 대니를 바라봤다. 그는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매끈한 피부는 모자를 쓴 이마 선 아래까지 갈색으로 그을려 있었다. 그의 밝은 눈동자에는 내 심장을 세차게 뛰게 하는 수수께끼 같은 뭔가가 있었다.
“뭐 여자들보다는 잘 알지.”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마주봤다.
“나도 남자들보다 잘 알아.”
“그런 거 같지는 않은데, 그렇지만 다른 건 아주 잘하더라. 남자들을 달아오르게 하는 거 말이야.”
나는 그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아, 그래?”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나는 대니를 내 첫 남자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가 문을 닫자 짙은 암흑이 우리를 감쌌다. 창문은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빛은 닫힌 덧문 사이로 아주 흐릿하게 들어왔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낮은 탁자 위, 꽃병에 꽂힌 반쯤 시든 장미 꽃다발이 달콤한 향기를 뿜으며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그는 소파에 앉더니 나더러 건너편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벽시계의 똑딱거림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제 마음에 들었어?”
그가 물었다. 나는 망설였다. 입이 말랐다.
“네, 그쪽은 아니었어요?”
“나도 좋았어. 시작치고는 괜찮았지.”
나는 어이없어서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이렇게 냉정할 수 있지?
그는 느긋하게 뒤로 몸을 기대며 뭔가 기다리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소파에서 불안하게 이리저리 몸을 꼬았다. 탁한 공기 속에 장미 향기만 강렬했다. 시계가 아름다운 소리를 열두 번 냈다.
“어제 우리 집에서 나간 이후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말해봐.” 시계의 마지막 음이 멎자 그가 말했다.
“왜 그래야 하죠?” 나는 명령조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간단하지. 내가 원하니까.” 그가 웃음기 머금은 부드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네 욕망과 꿈을 말해줘. 부끄러워하지 말고.”
빌어먹을, 그걸 다 소리 내서 말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