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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후기(영조~순종)
· ISBN : 9791185134222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15-01-30
책 소개
목차
해제 3
양몽구독(粱夢舊牘)
1. 권용국(權用國)
2. 권용국(權用國)
3. 이건하(李乾夏)
4. 이건하(李乾夏)
5. 이건하(李乾夏)
6. 이용익(李容翊)
7. 윤철규(尹喆圭)
8. 황우영(黃祐永)
9. 조천식(趙天植)
10. 이용우(李容愚)
11. 이용우(李容愚)
12. 권오익(權五翊)
13. 이용우(李容愚)
14. 이재정(李在正)
15. 이재정(李在正)
16. 민건호(閔建鎬)
17. 김상섭(金商燮)
18. 안기현(安基鉉)
19. 조중관(趙重觀)
20. 이장용(李章鎔)
21. 김상섭(金商燮)
22. 민경호(閔慶鎬)
23. 산본금태(山本金太)
24. 이준규(李峻奎)
25. 권중찬(權重瓚)
26. 홍재하(洪在夏)①
27. 홍재하(洪在夏)②
28. 김성한(金聲漢)
29. 이병화(李秉和)
30. 김우현(金宇鉉)
31. 권필(權泌)
32. 이병화(李秉和)
33. 목원학(睦源學)
34. 이병화(李秉和)
35. 이병화(李秉和)①
36. 이병화(李秉和)②
37. 이병화(李秉和)
38. 이병화(李秉和)
39. 김성한(金聲漢)
40. 김성한(金聲漢)
41. 이준규(李峻奎)
구독부여(舊牘附餘) 전(全)
1. 윤용구(尹用求)
2. 보낸이 미상
3. 김가진(金嘉鎭)
4. 정현철(鄭顯哲)
5. 보낸이 미상
6. 이근영(李根英)
7. 신태휴(申泰休)
8. 조진규(趙晉奎)
9. 민경호(閔慶鎬)
10. 윤상조(尹相朝)
11. 보낸이 미상
12. 남정규(南廷奎)
13. 윤덕영(尹德榮)
14. ?학규(?鶴圭)
15. 이승린(李承麟)
16. 박제선(朴齊璿)
17. 권중석(權重奭)
18. 권재윤(權在允)
19. 정순각(鄭淳珏)
20. 정지현(鄭志鉉)①
21. 정지현(鄭志鉉)②
22. 김상수(金商洙)①
23. 김상수(金商洙)②
24. 손병휘(孫秉煇)
25. ?학규(?鶴圭)
26. 심상익(沈相翊)
27. 남정규(南廷奎)①
28. 남정규(南廷奎)②
29. 남정규(南廷奎)③
30. 김연국(金演局)
31. 이두용(李斗用)
32. 목원학(睦源學)
33. 박우용(朴遇用)
34. 이병화(李秉和)
35. 임연상(林淵相)
36. 이용한(李容漢)
37. 이헌설(李憲卨)
38. 김상수(金商洙)
구독습유(舊牘拾遺) 건(乾)
1. 보낸이 미상
2. 권병휘(權丙輝)
3. 김상호(金商皓)
4. 김영훈(金永薰)
5. 조진규(趙晉奎)①
6. 조진규(趙晉奎)②
7. 김영훈(金永薰)
8. 권태봉(權泰鳳)
9. 구희서(具羲書)
10. 김상수(金商洙)
책속에서
세 간찰첩의 내용
1) 『양몽구독(梁夢舊牘)』
편지 41통이 실려 있는데, 1901년~1912년에 주로 지방 수령일 때 받은 편지들이다. 발신인, 수신인, 연월일 등이 밝혀져 있어, 세 첩 중 편지의 양식이 가장 잘 갖추어진 첩이다. 첩의 이름 ‘양몽(粱夢)’은 당 나라 때 노생(盧生)과 도사(道士) 여옹(呂翁)의 고사에서 온 말이다.
외세의 침략 속에 하루가 다르게 급변한 세월이, 지나고 보니 한바탕 꿈처럼 아련했을까? 산골에 은둔하여 살며 지난날 벼슬살이 시절의 편지를 펼쳐놓고 간찰첩을 만들던 권중면의 마음을 짐작할 만하다.
이 첩에 편지가 7통 실려 있는 이병화(李秉和)는 권중면의 사돈이다. 그의 딸이 권태훈과 결혼했는데, 병약한 딸을 시집보낸 아버지의 마음이 편지의 사연에서 역력히 묻어난다. 그 딸은 결국 요절했는데, 32번 편지는 탈상을 기다릴 것 없이 아들을 재혼시키라고 하며 사돈에게 보낸 것이다. 그리고 일본인 산본금태(山本金太)가 보낸 23번 편지가 이색적이다. 그는 상인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목포에 있으면서 진도 군수 권중면의 도움을 받고 일본에 돌아가서 감사의 편지를 썼다.
2) 『구독부여전(舊牘附餘全)』
실린 편지가 38통이다. 날짜와 수신자를 쓰지 않는 편지가 많다. 1번 윤용구(尹用求: 1853~1939)[본관은 해평(海平). 구한말의 유명한 문신, 서화가. 예조, 이조판서 역임. 경술국치후 일제가 남작을 수여했으나 거절하고 은둔함]의 편지는 권중면의 아들 권태훈에게 보낸 것인데, 권태훈이 자기에 대하여 스스로 ‘시생(侍生)’이라고 칭하는 것에 대하여 “다음에 글을 주고받을 경우에는, 반드시 나를 ‘윤 판서 숙장(尹判書叔丈)’이라고 칭하고 자네는 스스로 ‘의질(義侄: 의조카)’이라고 칭하는 것이 마땅하네. 우리 두 집안의 정의(情誼)가 여타 평범한 붕우(朋友)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네.”라고 했다. 2번 편지는 권중면이 평산 군수였을 때 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악한 김명석(金明錫)의 악행을 낱낱이 말하고 있어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3) 『구독습유건(舊牘拾遺乾)』
대부분 상신리로 들어가고 나서 받은 편지들로, 모두 25통이다. 상신리에서는 집에 서당을 열고 제자들과 함께 공부하며 시를 지으며 소일했다. 편지에 동봉된 시가 6통인 것으로 보아, 시우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