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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85923123
· 쪽수 : 204쪽
· 출판일 : 2015-08-31
책 소개
목차
자서
절벽 이수익
공기의 꿈 손종호
날마다 시작 염홍철
여름 풍경 홍일표
입장들 조말선
두꺼비형 송찬호
허수아비 이정하
그리움 이용악
완벽한 신혼일기 한용국
식물의 서쪽 박성현
명편 복효근
붉은돔 이명수
늙은 느티나무에 들다 곽효환
아버지의 지게 강웅순
나무 이성선
코딱지 김상배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 양애경
풀잎 김영석
바닥 문태준
820광년, 폴라리스 유봉희
그 노인 최태랑
우시장에서 이덕영
이끼 권득용
구절사 이강산
늦은 밤 편지 임동윤
시인연습詩人演習 박남철
얼굴반찬 이대흠
할머니 마음 곽은희
압록강 고 은
앵무새를 기리는 노래 김형영
사과나무에게 묻다 김규진
꽃자리 조재도
묵언의 날 고진하
등藤꽃 아래서 송수권
시인이 된다는 것 밀란 쿤
막차의 시간 김소연
플래카드 신미균
나는 내릴 수 없었다 허만하
빛이 찍어낸 사물 강서완
예를 들자면 말여 최재경
봄의 눈썹 이정오
수박 윤문자
낙타와 바늘 최관수
빈집 설동원
꽃이 피기까지 이정하
땅파기 셰이머
권태 천수호
가마우지 이건청
햄버거를 먹으며 오세영
유적지 돌바닥을 걷다 이사라
이슬꽃 오영미
물소리 요리 한 접시 김일곤
팽나무 박선희
사발과 장미 석성일
첫맛과 끝맛 성은주
예술가 이문재
판화 손 미
병에게 문효치
새는 없다 박송이
손금 정현우
바람의 말 마종기
직관의 독서와 시적 지향의 명료화
저자소개
책속에서
절벽
이수익(1942~ )
직립直立은
화해하지 않는다.
고고한 그의 전신이
타협을 거부한 채
오롯이
하늘을 향하여
날카로운 입지立志를 세우고 있다.
그가 주위를 버리는 것만큼
주위로부터 그가 버림받는 불행을,
그는 오히려
즐기고 있다.
● 해설
이 시는 절벽이 보여주는 직립의 정신을 형상화한다. 절벽이 환기시켜주는 단호함이란 수직적 자세로 하늘을 지향한다. 절벽은 발아래의 번잡스러운 현실을 외면한 채 이상세계로 눈을 돌린다. 그것은 시인 자신의 세계관을 표출한다. 시인은 자신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주변의 모든 것과 화해하지 않는다. 따라서 거기엔 어떠한 외로움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것. 우리가 자신의 입지를 날카롭게 세우기 위해서는 주위와 일정한 단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또한 주위로부터 버림받는 불행을 기꺼이 감수해야만 한다. 그 불행 가운데 오롯이 서 있는 절벽처럼 우리 또한 오히려 그것을 즐길 수 있을 때에야 자신의 의지를 끝까지 관철시켜 나갈 수 있다.
우리 삶이 어느 하나의 입지를 세우기 위해서는, 쓰러져 가는 정신의 푯대를 꼿꼿이 세우고 무기력해져 가는 의지와 삶에 대한 나태와 안일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뿐만 아니라, 일상적 가치로 변질되어 가는 정신의 상투화와 대결하지 않을 수 없다. 세속적 삶이란 중용의 미덕이라는 미명하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뒤얽혀 혼돈과 무질서를 연출하는가. 이 시는 무질서한 삶에 놓인 현대인들에게 더욱 분명한 자세와 단호한 태도를 보여준다.
공기의 꿈
손종호(1949~ )
빛이여.
가장 소중한 것에는
왜 무게가 없는가.
시계소리마저 없는가.
나의 폐에서 나와
그대 심장 속으로 들어가는
저 황홀한 대기의 혼에는
왜 발걸음조차 없는가.
사랑이여.
가장 아름다운 것에는
왜 꾸밈이 없는가.
기침소리마저 없는가.
썩은 수렁 가운데
묵묵히 등을 밝혀든
저 연꽃 한 송이의 얼굴에는
왜 욕심의 티끌조차 없는가.
● 해설
공기로도 꿈을 꾸는 시인이 있으니. 오늘도 그의 꿈은 저 허공에까지 가닿는다. 빛은 가장 소중한 것이니 그것에는 무게도 없고 시계소리 발걸음도 없다. 사랑은 가장 아름다운 것이니 그것에는 또한 꾸밈없고 기침소리도 욕심의 티끌도 없도다. 어느 날 내 옷깃을 스치고 간 공기의 꿈이여. 내 눈가의 차양 속으로 들어와 그늘을 지우고 간 빛이여. 새벽 풀밭에 내린 별빛을 쓸며 그대는 또 잊혀진 이들의 눈망울을 떠올리는가. 공기의 꿈은 나의 폐와 그대의 심장 속을 무시로 드나드는 저 황홀한 대기의 혼일지니. 사랑은 썩은 수렁 속에서도 꽃등을 밝혀 들며 피어나는 연꽃 한 송이의 눈부신 얼굴.
바람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내는 대지의 숨결. 그치지 않는 공기의 꿈. 무소불통無所不通이라는 말이 있다. 빛과 사랑은 그러한 법. 그 지극함은 천지간 어느 곳이라도 통하여 알게 됨을 의미한다. 그런즉, 빛과 사랑은 이 세상에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이 세상에 먼저 빛이 있으라 한 분 누구신가. 그 빛이 가닿는 곳마다 사랑으로 넘치라 한 분 또한 누구신가. 빛은 모든 것을 이 지상에 드러내 주는 모성. 사랑은 모든 만물을 잉태하게 하는 이 지상의 토양. 공기의 꿈은 높고 밝도다.
날마다 시작
염홍철(1944~ )
지금 이 순간 새로운 시작
흘러간 냇물에 흉터 지워지고
꺾인 풀잎 떠난 이슬 자국도 없다
과거는 이미 없다
내일은 아직 없다
오늘도 새날
내일도 새날
새 빛만이 큰 길로 우릴 이끈다
새벽 힘차게 열리고
새로운 한주 더 큰 사랑 불러 온다
새해가 부푼 가슴으로 우릴 기다린다
옛일을 기억 말고
항상 새로움 향해
새로운 날을 위하여
작은 풀잎마다 꽃등을 내 건다
● 해설
시를 쓰는 시장이 있었다. 한 남자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 남자 늘 지금 이 순간이 새로워 새벽이면 시민들과 힘찬 발길로 대전을 열었다. 그 발길에 대전천 유등천도 갑천도 따라와 삼천에서 하나가 되었다. 틈틈이 시심을 가다듬어 한 주를 여는 월요일마다 시민들에게 정다운 아침편지를 띄웠다. 그 남자 꾹 꾹 눌러쓴 시를 모아 첫 시집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냈다. 시집 발간기념식에선 색소폰을 불었다. 언제나 두터운 그의 미소엔 이렇게 시와 예술이 어우러진 감성이 은은히 번져 있었다. 아이 러브 대전. 함께 흘린 땀은 향기롭다.
시련이 와도, 고난이 닥쳐도 오늘도 내일도 새날. 언제라도 새 빛만 우리를 큰 길로 이끈다고 믿는 남자. 어느 날 자존심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어깨의 짐을 턱하니 내려놓은 그 남자. 항상 새로움을 향해 달려가며 활기찬 날을 위하여 이 세상의 작은 풀잎마다 찾아가 꽃등을 내 건다. <날마다 시작> 이 시는 이미 오래전에 씌어져 있었다. 그 남자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그러나 2014년 7월 1일은 그 남자에게 진정으로 새로운 시작. 지금 이 순간이 새로운 시작. 이렇게 한 남자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