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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문화/역사기행 > 한국 문화/역사기행
· ISBN : 9791186502938
· 쪽수 : 320쪽
· 출판일 : 2017-09-10
책 소개
목차
제1부 보국안민, 서울에 안기다(천도교 주요 사적)
1. 천도교중앙대교당, 천도교중앙총부, 대신사백년기념관, 수운회관
2. 봉황각(鳳凰閣)
3. 상춘원(常春園) 터
4. 광화문
5. 해월신사(최시형)의 순도지
6. 다동 의암성사(손병희) 댁과 중앙총부 설치
7. 《만세보(萬歲報)》 발행, 보문관(普文館)
8. 중부 관인방 대사동 의암성사(손병희) 집
9. 면주동 천도교중앙총부, 춘암상사(박인호) 대도주 선수터
10. 기와집 천도교중앙총부
11. 천도교 한성교구와 각 전교실
12. 천도교중앙총부, 보성전문학교, 보성초등학교,천도교 한성교구(경성교구)
13. 북부 전동 보성학교
14. 보성사
15. 동덕여학교(同德女學校)
16. 취운정(翠雲亭)
17. 의암성사(손병희)의 집터
18. 춘암상사(박인호) 댁
19. 태화관
20. 탑골공원 의암성사 동상
21. 감고당 인쇄소
22. 신간회경성지회
23. 보문사(普文社)
24. 조선농민사 인쇄부
25. 중성사 인쇄부
26. 서북학회, 보성전문학교
제2부 보국안민, 서울에 흐르다(북촌 지역)
1. 운현궁(雲峴宮)
2. 광혜원(제중원), 헌법재판소
3. 안동별궁(安洞別宮)
4. 감고당(感古堂) 터
5. 안동의원(安洞醫院)
6. 기호학교, 한성중학교, 동아일보사
7. 규장각(奎章閣) 터
8. 중앙학교
9. 한용운 집터, 석정보름우물터, 김성수 집터
10. 제생원, 관상감관천대, 계동궁 등
11. 금위영 터, 비변사 터
12. 통례원 터, 종부시 터
13. 박용성 거주터, 대각사(大覺寺)
14.지석영·조광조 집터
제3부 보국안민, 서울에 자라다(경운동 지역)
1.교동초등학교
2.민가다헌 민병옥(閔丙玉) 가옥
3.조선건국동맹, 가톨릭의과대학 터
4.한말 일본공사관 터
5.관립외국어학교, 경성여고보교, 종로경찰서
6. 정우회회관, 조선물산장려회, 고려발명협회, 조선공학회
7. 박영효 집터(경인미술관)
8. 조선물산장려회관 터
9. 사동궁(寺洞宮) 터(이강 공 집터)
10. 충훈부(忠勳府) 터
11. 조선극장 터
12. 승동교회
13. 시천교당, 서울청년회, 경성청년연합회, 사회주의자동맹
14. 우정총국, 전의감, 민영환 집, 도화서 터
15. 조선노동연맹, 조선노동총동맹회관 터
16. 조선일보사, 조선중앙일보사 터
17. 수송공원
18. 수진궁(壽進宮), 수진측량학교 터
19. 정도전 집터, 수송국민학교 터
20. 중부학당(中部學堂) 터
제4부 보국안민, 서울에 꽃피다(종로 지역)
1. 모전교(毛廛橋), 혜정교(惠政橋)
2. 신간회경성지회 회관
3. 경성지방법원, 복심법원, 종로경찰서
4. 대동인쇄주식회사, 성문사 터
5. 근우회본부 터
6. 일제 종로경찰서
7. 이문 터
8. 보신각(普信閣), 한성정부 선포 터
9.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관
10. 신간회본부 터
11. 6·10독립만세운동 선창 터
12. 단성사 극장
13. 우미관(優美館) 터
제5부 기타 지역
1. 서대문형무소와 마포 경성형무소
2. 해월신사(최시형) 묘소
3. 의암성사(손병희) 묘소
4. 춘암상사(박인호) 묘소
5. 천도교회묘지공원
6. 망우리 묘지공원
7. 국립서울현충원
저자소개
책속에서
취운정은 민태호의 아들 민영익(閔泳翊) 당시에 출세를 위해 민씨 세도를 좇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들던 곳으로 유명하다. 어느 봄날 민영익은 복숭아꽃 구경을 하느라고 눈이 팔려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반면(反面)하였다. 장 모(張 某)는 이것을 풍자하여 ‘거년금일 차문중(去年今日 此門中) 반면도화 상영홍(反面桃花 相映紅) 반면불지 하처거(反面不知 下處去) 도화의구 소춘풍(桃花依舊 笑春風)’이라고 하였다. 이 글은 당나라 최호(崔護)의 시를 돌려 꾸민 것으로 ‘인면(人面)’을 ‘반면(反面)’으로 바꾸어 민영익을 ‘반면’함으로 조소하여 한때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가회동(嘉會洞) 화동(花洞) 계동(桂洞)이라 하면 부촌이라는 인상이 짙으나 가회동과 취운정은 민씨 세도의 터전이었고 우국지사들의 회의장이 되어 개혁운동을 계획하였던 곳이었다.
- ‘취운정’ 중에서
태평양전쟁 중에는 대교당과 백년기념관이 모두 징발되었는데, 1944년 12월에는 기념관 경내 130평 5홉을 종로구에서 가청사를 건축하여 종로구 호적과로 사용하였고, 대교당은 경기도청에서 징발하여 조선인 김흥배(金興培, 野田)가 군피복 공장을 하겠다고 재봉틀과 기자재를 마당에 갖다 놓기까지 하였으나 광복이 되었다. 그리고 다행히 한국전쟁의 전란을 겪으면서도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여 왔다.
- ‘천도교중앙대교당, 천도교중앙총부, 대신사백년기념관, 수운회관’ 중에서
의암성사는 교회 간부들을 데리고 왕래하면서 상춘원에서 교회사를 논의하였다. 상춘원에 나갈 때는 금빛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민 쌍두마차를 타거나 또는 포드 자동차를 타고 다녔다. 의암성사가 상춘원을 가기 위해 가회동을 출발해서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면서 종로를 달리면 연도에는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의암성사가 탄 차는 일본 공진회(共進會)에 출품된 것을 이강(李堈) 공이 주선하여 구입한 포드 5인승이었는데 일본에서 타던 것을 가져온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민간인으로서는 최초의 자가용이었다. 1918년 12월에는 의암성사가 권동진, 오세창, 최린 등과 이곳에서 수차례 회합을 갖고 파리강화회의 개최에 즈음한 국내외 정세와 민족자결 원칙에 입각하여 대대적인 독립운동 계획을 논의하였다.
- ‘상춘원 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