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91186561584
· 쪽수 : 124쪽
· 출판일 : 2019-03-20
책 소개
목차
호랑이 사냥 1934 6
순사가 있는 풍경?1923년의 스케치 하나 1929 64
문자 사변 1942 94
옮긴이의 말 112
작가 연보 118
리뷰
책속에서
“난 말이야, (여기서 한 번 더 어린아이처럼 훌쩍거리고) 나는 저런 놈들한테 맞았다고 해서, 맞는 게 지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진짜야.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한 번 더 흐느끼고) 역시 너무 분해. 그렇게 분한 주제에 맞서 싸우지는 못해. 무서워서 맞서지는 못해.”
여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었을 때, 나는 그가 또 다시 통곡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 정도로 목소리가 고조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울음을 터트리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건넬 적당한 위로의 말이 떠오르지 않아 속이 타면서도 조용히 모래에 검게 비치는 우리의 그림자를 보며 걸었다. 그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나와 싸운 이후로 그는 줄곧 겁쟁이였다.
“강한 게 뭐고, 약한 게 뭘까, 대체 뭘까… 그러게, 정말.”
- ‘호랑이 사냥’ 중에서
이 상황이 어떻게 벌어진 것인지, 멍청하게도 잘 모르겠다. 다만 공포에 질린 날카로운 비명이 귀를 파고들어 정신이 확 들었을 때 나는 보고 말았다. 눈앞에, 우리가 있는 소나무 가지로부터 3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꿈에서 본 것과 똑같은 광경을 보았다. 한 마리의 검고 노란 맹수가 우리에게 옆모습을 보이며 눈밭 위에서 허리를 낮추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5~6미터 정도 간격을 두고 몰이꾼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옆에 총을 내던지고 양손을 뒤로 짚고 다리는 앞으로 뻗은 채 앉은 자세로 쓰러져 정신 나간 눈을 하고 호랑이 쪽을 보고만 있었다. 호랑이는 평소 많이들 상상하는 것처럼 발을 좁게 모으고 당장에라도 뛰어들 자세가 아니라 고양이가 물건을 갖고 놀듯이 오른쪽 앞발을 올리고 휘젓는 모습으로 앞으로 나설 듯 말 듯하고 있었다. 나는 정신이 확 들면서도 아직 꿈속에 있는 기분으로 눈을 비비고 다시 한 번 보았다. 그때였다. 내 귓가에 빵 하는 세찬 총성이 울렸고 추가로 빵, 빵, 빵 잇달아 세 발의 총성이 났다. 강렬한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전진하려던 호랑이는 그대로 입을 크게 벌리고 날뛰며 뒷발로 잠시 일어섰지만 바로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내가 눈을 뜨고 난 후 총성이 울리고, 호랑이가 일어서고, 다시 쓰러질 때까지 고작 10초 정도 사이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나는 넋이 나간 채로 먼 곳에서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 ‘호랑이 사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