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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전 일본소설
· ISBN : 9791186561683
· 쪽수 : 112쪽
· 출판일 : 2020-09-25
책 소개
목차
인간 의자 1925 6
목마는 돌아간다 1926 42
도난 1925 68
옮긴이의 말 98
작가 연보 106
책속에서
짧은 편지를 먼저 읽고, 두 통의 긴 편지와 한 장의 엽서를 보고 나니 제법 부피가 있는 원고처럼 보이는 봉투가 남았다. 원고를 읽어달라고 미리 부탁하는 편지를 받지는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갑자기 원고를 보내오는 일은 자주 있었다. 대부분은 장황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원고였다. 암튼 요시코는 제목만이라도 봐두자 싶어 봉투를 뜯고 안에 든 종이 뭉치를 꺼냈다. 예상대로 원고용지를 철한 것이었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제목도 서명도 없이 느닷없이 ‘사모님께’라는 말로 시작하는 원고였다. 음? 편지였나? 요시코는 별다른 생각 없이 두세 줄 읽다가 편지에서 뭔가 기이하고, 묘하게 소름 끼치는 느낌을 받았다. 타고난 호기심 탓에 요시코는 계속해서 다음 줄을 읽어내려갔다.
- ‘인간 의자’ 중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가 느닷없이 이렇게 무례한 편지를 드리는 죄를 부디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아마도 깜짝 놀라시겠지만, 저는 지금 사모님께 제가 저질러온 세상에서 가장 희한한 죄악을 고백하려고 합니다. 저는 지난 몇 개월 동안 세상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추고 그야말로 악마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물론 이 넓은 세상에 누구 하나 제 소행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일 아무 일도 없었다면 저는 그대로 영영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최근 제 마음속에서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업보로 가득한 제 인생을 참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만 말씀드리면 여러모로 수상하게 여기시겠지만, 부디 이 편지를 끝까지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 ‘인간 의자’ 중에서
제 전문은 의자를 만드는 일입니다. 제가 만든 의자는 아무리 어려운 주문을 한 손님이라도 무조건 마음에 들어 하기 때문에, 많은 거래처에서 저를 잘 봐주고 좋은 일만 안겨주었습니다. ‘좋은 일’이라 하면 등받이나 팔걸이에 어려운 조각을 넣는 등 여러 가지 까다로운 주문이 있기도 하고, 쿠션의 종류나 각 부분의 치수 등에 세세한 취향을 반영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런 특별 주문 의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초보 직공은 상상하지도 못할 고민을 거쳐야 합니다. 하지만 고심하면 할수록 의자가 완성되었을 때 얻는 유쾌함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이 커집니다. 감히 비유하자면, 그 느낌은 예술가가 훌륭한 작품을 완성했을 때의 기쁨에 견주어야 할 정도입니다.
- ‘인간 의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