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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전 일본소설
· ISBN : 9791187295822
· 쪽수 : 848쪽
· 출판일 : 2024-05-25
책 소개
목차
호빙
미라
산월기
문자화
세트나 황자
오정출세
오정탄이
행복
부부 같음
닭
쓸쓸한 섬
협죽도의 집의 여인
나폴레옹
대낮
마리안
풍물초
영허
우인
명인전
제자
이능
요분록
두남 선생
호랑이 사냥
카멜레온 일기
낭질기
시모다의 여자
어떤 생활
싸움
순사가 있는 풍경
고사리 · 대나무 · 노인
D 시의 7월 서경 (1)
풀장 옆에서
빛과 바람과 꿈
나카지마 아츠시 연보
책속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 그는 그곳에, 그렇게 서 있었을까.
그러는 동안, 그의 안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기분이 들었다. 그의 몸을 이루고 있는 온갖 원소들이, 그의 피부 밑에서 엄청나게(마치, 후세의 화학자가, 시험관 속에서 하고 있는 실험처럼) 거품을 일으키고, 지글거리며, 그 비등(沸騰)이 잠시 뒤 진정된 후로는, 완전히 이전의 성질하고는 달라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인간은 누구나 맹수를 부리는 자이며, 그 맹수에 해당하는 것이 각자의 성정이라고 한다. 자신의 경우 이 거만한 수치심이 맹수였다. 호랑이였던 것이다. 이것이 자신을 상하게 하고, 처자를 괴롭히고, 친구에게 상처를 주었으며, 결국에 가서는 자신의 겉모습을 이처럼 속마음에 어울리는 것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자신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약간의 재능을 허비해 버린 셈이다. 인생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너무 길지만, 무엇인가를 하기에는 짧다는 등 입으로는 경구를 농하면서, 사실은 재능의 부족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걱정과, 각고를 싫어하는 게으름이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셈이다.
사자라는 글자는, 진짜 사자의 그림자가 아닐까. 그래서, 사자라는 글자를 익힌 사냥꾼은 진짜 사자 대신에 사자의 그림자를 겨누게 되고, 여자라는 글자를 익힌 남자는, 진짜 여자 대신에 여자의 그림자를 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문자가 없었던 옛날, 필 나피슈팀의 홍수 이전에는, 기쁨도 지혜도 모두 직접 인간 속에 들어왔다. 이제는, 문자의 베일을 뒤집어쓴 환희의 그림자와 지혜의 그림자로밖에,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근래 들어 사람들은 기억력이 나빠졌다. 이것도 문자의 정이 장난을 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미, 기록을 해 놓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 옷을 입게 되면서, 인간의 피부가 약하고 추하게 되었다. 탈것들이 발명되자, 인간의 다리가 약하고 추하게 되었다. 문자가 보급되어서, 사람들의 머리는, 더는, 작동할 수 없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