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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전 일본소설
· ISBN : 9791187295624
· 쪽수 : 696쪽
· 출판일 : 2022-03-15
책 소개
목차
등롱
만원
우바스테
부악백경
황금 풍경
게으름의 가루타
여학생
추풍기
사랑과 미에 대해서
신록의 말
개 이야기
피부와 마음
속천사
직소
달려라 멜로스
고전풍
여치
청빈담
누구
수치
신랑
리츠코와 사다코
기다림
눈 오는 밤 이야기
죽청
친밀한 우정의 교환
메리 크리스마스
토카톤톤
비용의 아내
어머니
남녀동권
아버지
범인
향응 부인
철새
앵두
오상
가정의 행복
다자이 오사무 연보
책속에서
“아줌마! 내일은 날씨가 좋겠네요.”
내가 생각하기에도 깜짝 놀랄 정도로 드높고, 환성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아줌마는 비질을 멈추고서, 얼굴을 들고, 이상하다는 듯이 눈썹을 찡그리면서,
“내일 무슨 일이 있으세요?”
그 소리를 듣자, 나는 난처해졌다.
“아무것도요.”
아주머니는 웃기 시작했다.
“쓸쓸해지신 거로군요. 산에라도 올라가지 그러세요.”
“산은, 올라가보았자, 금방 또 내려와야 하지 않아요? 시시하게. 어느 산에 올라가보아도 후지산이 보일 뿐, 그걸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지거든요.”
내 말이 이상했던지, 아줌마는 그저 애매하게 끄덕거리고 나서, 다시 낙엽을 쓸었다.
요는 게으른 것이다. 노상 이런 꼬락서니인지라, 나는 도저히 가망이 없는 인간이다. 이렇게 단정해버리기는, 나로서도 쓰라린 일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나를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괴롭다느니, 고매하다느니, 순결하다느니, 순진하다느니, 그따위 소리는 듣고 싶지도 않다. 써라. 만담이든, 촌평이든 말이다. 쓰지 않는 것은 예외 없이 게으름 때문이다. 어리석은, 어리석은 맹신이다. 사람은 자기 이상의 일도 할 수 없고, 자기 이하의 일도 할 수 없다. 일하지 않는 자에게는 권리가 없다. 인간 실격. 당연한 일 아닌가.
오늘 아침, 전차에서 본, 짙은 화장을 한 아주머니를 떠올린다. 아아, 더럽다, 더러워. 여자는 싫다. 내가 여자인 만큼, 여자의 불결함을 잘 안다. 이가 갈릴 정도로 싫다. 금붕어를 만진 다음의, 저 참을 수 없는 비린내가, 내 몸 하나 가득 배어 있는 것만 같아서, 씻어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것 같고, 이처럼, 하루하루, 자신도 암컷의 체취를 발산시켜나가는 것일까 생각하면, 또 생각나는 것도 있으므로, 이대로 소녀인 채로 죽고 싶다. 문득, 병이 들었으면 생각한다. 엄청 무거운 병이 들어, 땀을 폭포같이 흘려서 말라빠지게 되면, 나도, 말끔히 청정해질지도 모르지 않나. 살아 있는 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착실한 종교의 의미도 조금 알아가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