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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징비록

역주 징비록

류성룡 (원작), 이동환 (글)
  |  
서연비람
2024-02-01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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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징비록

책 정보

· 제목 : 역주 징비록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역사
· ISBN : 9791189171711
· 쪽수 : 300쪽

목차

지은이 서문
징비록 1 - 전쟁 발발, 치열한 전투 현장
1 일본 사신의 이상한 언행
2 통신사를 파견하다
3 통신사 일행의 엇갈린 보고
4 왜의 답서와 우리의 갈등
5 곳곳에 성을 쌓다
6 이순신을 수군절도사로 임명하다
7 신립의 큰소리
8 전쟁 발발, 각 성은 힘없이 무너지다
9 무장들의 전선 투입
10 김성일을 사면하다
11 김늑을 경상좌도 안집사로
12 순변사 이일의 허망한 패배
13 피할 수 없는 임금의 피난
14 실패로 끝난 교섭 시도
15 평안·황해의 민심을 달래다
16 도순변사 신립의 무참한 패배
17 서울에서 평양까지, 숨 가쁜 피난길
18 3도 순찰사 연합군의 대패
19 첫 승리와 억울한 죽음
20 임진강 방어선 붕괴
21 포로가 된 두 왕자
22 패전 장군 이일, 다시 대동강을 지키다
23 요동 진무 임세록의 적정 탐지
24 평양 백성들의 분노
25 임금은 평양을 떠나고, 평양은 전선으로
26 뚫린 평양 방어선
27 명나라 군의 군량 확보
28 눈물의 원병 요청
29 명나라 군을 위한 지원 준비
30 명나라 군대, 평양 공격에 실패하다
31 이순신의 첫 승리
32 조호익, 강동에서 군사를 일으키다
33 웅령 전투로 전라도를 지키다
34 이원익과 이빈, 평양 공격에 실패
35 단신으로 평양 적 중에 선 심유경
36 경기 감사 심대, 죽어서도 서슬푸른 얼굴
37 강원도 조방장 원호의 공적
38 권응수와 정대임의 영천 수복
39 경상 좌병사 박진의 경주 수복
40 각도의 의병들
41 이일을 순변사에 임명하다
42 간첩 김순량을 체포하다

징비록 2 - 명나라 군대의 참전, 그 이후
1 명군의 출동과 평양 수복
2 명군의 입김으로 순변사를 다시 교체
3 이여송의 벽제 패전과 류성룡의 눈물
4 이여송의 평양 회귀
5 행주 대첩과 서울을 둘러싼 새로운 작전
6 남은 군량으로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하다
7 강화론, 류성룡의 강력 반대
8 서울 수복, 그러나 추격을 기피하는 명군
9 진주성이 무너지다
10 명나라의 강화 활동
11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 다시 조선으로
12 이순신의 백의종군
13 명나라의 재출병
14 원균의 대패와 종말
15 황석산성의 함락
16 이순신, 다시 수군통제사로
17 남원부의 함락
18 이순신, 벽파정 아래에서의 승첩
19 진린을 감복시킨 이순신의 정성
20 왜적의 북상과 퇴각
21 울산 왜성에서의 대치
22 경리 양호의 파면
23 이순신의 전사와 진린의 대성통곡
24 이순신이란 사람
25 이순신과 임진왜란

녹후잡기 그 밖의 이야기들
1 전란의 괴상한 징조
2 왜군의 작전 실패
3 지형의 장단과 전투의 성패
4 성 쌓는 법
5 진주성과 포루
6 훌륭한 장수의 중요성
7 임진강에 부교를 놓다
8 명군의 군사 훈련
9 심유경의 편지
10 뛰어난 외교가 심유경

징비록 해설과 류성룡 연보
징비록 해설
류성룡 연보

저자소개

이동환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9년 경상북도 경주 출생.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졸업. 성균관대학교 조교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한문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용재석좌교수 역임.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한국한문학학회 회장, 한국실학학회 회장, 퇴계학 연구원 부원장, 문화재청 문재위원회 위원, 한국고전번역원장 등 역임. 저서 『실학시대의 사상과 문학』(지식산업사, 2006년), 『고전시대의 사상과 문학』(지식산업사, 2023년), 『도학시대의 사상과 문학』(지식산업사, 2023년), 『번역과 해설 삼국유사』(서연비람, 2023)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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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지은이)    정보 더보기
조선시대 문신 1542년(중종 37년) 경상도 의성 출생. 1607년(선조 40년) 사망. 본관은 풍산. 자는 이현, 호는 서애.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 류중영이며, 어머니는 진사 김광수의 딸임. 이황의 문인. 1564년(명종 19년) 생원·진사가 되고, 다음 해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 1566년(명종 21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 공조좌랑, 부수찬, 정언, 이조정랑, 응교, 경연참찬관, 부제학, 대사헌, 병조판서, 이조판서,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 1604년(선조 37년) 호성공신 2등에 책록되고 다시 풍원부원군에 봉해짐. 시호는 문충. 저서 『서애집』·『징비록』·『신종록』·『영모록』·『관화록』·『운암잡기』·『난후잡록』·『상례고증』·『무오당보』·『침경요의』 등. 편서 『대학연의초』·『황화집』·『구경연의』·『문산집』·『퇴계집』·『효경대의』·『퇴계선생연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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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왜의 수도에 당도해서는 큰 사찰에 숙소를 정했다.
마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동산도(東山道)를 공략하러 나가고 수도에 없었다. 두어 달이 지나서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돌아왔다. 그는 돌아와서도 궁실을 수리한다는 핑계를 대고 우리 쪽의 국서를 즉시 받지 않았다. 이래저래 숙소에 묵은 지 5개월 만에야 비로소 왕명을 전달할 수가 있었다.
그 나라에선 천황을 모시고,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하 모두가 천황 앞에서는 신하의 예를 갖추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제 나라에서는 ‘왕’이라 하지 않고 ‘관백’이라고만 일컬었으며, ‘박륙후’라고도 했다. ‘관백’이란 “모든 정사를 먼저 광에게 보고한 뒤에야 천자에게 아뢴다”는 『한서(漢書)』 ‘곽광전霍光傳’의 말에서 따와 호칭으로 삼은 것이다.
우리 사신을 영접할 때에 그는 사신들이 가마를 탄 채로 궁궐에 들어와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래서 피리며 날라리를 앞세우고 들어가서 당(堂)에 올라가 예를 차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왜소하고 못생겼으며 낯빛이 새까만 게 보통 사람과 다른 특이한 데는 없으나, 눈빛만은 번쩍번쩍하여 어딘지 모르게 사람을 쏘는 듯했다고 한다.
우리 사신들을 영접할 때 그는 사모(紗帽)를 쓰고 검정 도포를 입고 삼중석(三重席)을 깔고 남쪽을 바라보고 앉았다. 신하 두엇이 자리에 있다가 우리 사신들을 인도하여 좌석에 앉게 했다. 연회에 필요한 그릇이나 물건은 차려 놓지 않고, 그저 앞에다 탁자 한 개를 놓고 그 한가운데에 떡 한 그릇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는 질 중발로 술을 돌렸는데, 술도 탁주였다 그 예라는 것이 몹시 간단하여, 두어 차례 술을 돌리고는 그만이었다. 배(拜)하고 읍(揖)하고 잔을 주고받는 따위의 절차도 없었다.


김성일은 처음 우병사에 임명되어 임지로 가는 도중 상주에 이르러 왜적이 이미 침범해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밤낮없이 본영을 향해 달려갔다. 도중에 전임자 조대곤을 만나 인장(印章)과 부절을 바꾸었다. 당시 적은 이미 김해를 함락하고 군대를 나누어 우도(右道)의 고을들을 노략질하고 있었다. 김성일은 계속 나아가다가 왜적과 맞닥뜨렸다. 아군의 장수와 군사들이 도망치려 하자, 김성일은 말에서 내려 걸상에 버티고 앉아 군관 이종인을 불러 말했다.
“너는 용사다. 적을 보고서 먼저 물러설 수는 없다.”
그때 적군 하나가 금가면을 쓰고 칼을 휘두르며 돌진해 왔다. 이종인이 말을 달려 나가며 활을 쏘아 단번에 죽여 버렸다. 그러자 나머지 왜적들은 달아나고 감히 더 전진해 오지 못 했다. 김성일은 흩어졌던 군사들을 불러 모으고, 각 고을에 격문을 보내어 적을 견제할 계책을 세웠다.
그런 참에 임금께서는 김성일이 전에 일본 통신사로 갔다 와서 왜적이 쉬이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여 인심을 해이케 하고 나랏일을 그르쳤다고 하여 의금부 도사를 파견하여 체포해 오게 한 것이다. 일이 장차 어떻게 될지 모르는 판국이었다.
경상감사 김수가 김성일이 체포되어 서울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길에 나가 작별했다. 김성일의 말투는 몹시 흥분돼 있었으나 진심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북받쳐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김수에게 힘을 다해 왜적을 토벌하라고만 신신당부했다. 그걸 보고 늙은 아전 하자용이 감탄하며 말했다.
“자기가 죽게 되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나라만을 걱정하시니 참으로 충신이다.”


낮에 초현참에 이르렀다. 조인득이 미리 와서 길에 장막을 치고 맞이했다. 조정 신료들은 그제야 비로소 음식을 얻어먹을 수가 있었다.
저녁에 행차는 개성에 머물렀다. 임금께서는 남문 밖 공서상통에 드셨다 대간들이 글을 올려 수상(영의정)이 당파를 만들어 나랏일을 그르쳤다고 탄핵하고 파직을 주장했다. 임금께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2일에도 대간들이 계속하여 수상의 파직을 요청하여 결국 수상이 파직되고, 내가 수상으로 오르게 되었다. 최흥원이 좌상(좌의정)이 되고, 윤두수가 우상(우의정)이 되었으며 함경북도 병사 신할은 해임되었다.
이날 낮에 임금께서 개성의 남성 문루에 거동하시어 백성을 타이르시며 각자 생각을 말해 보라고 하셨다. 그러자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서 엎드렸다.
“할 말이 무엇이냐?”
“바라옵건대 정 정승(정철)을 불러들이십시오.”
정철은 당시 강계에 귀양을 가 있었으므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임금께서는 알았노라고 하시고 즉시 정철을 소환하여 행재소로 오게 하라고 명하셨다.
저녁때 행궁으로 돌아오시고, 나는 죄로 수상직에서 파면되었다 유홍이 우의정이 되고, 최훙원과 윤두수가 차례대로 승진하여 각각 영의정과 좌의정이 되었다.
왜적이 아직 서울까지는 오지 않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모두가 서울을 버린 것이 실수였었다고 나무랐다. 결국 승지 신잡에게 도로 서울에 들어가 형세를 살펴 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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