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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징비록

(임진왜란에 관한 뼈아픈 반성의 기록)

류성룡 (지은이), 장준호 (옮긴이)
arte(아르테)
24,000원

일반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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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징비록 (임진왜란에 관한 뼈아픈 반성의 기록)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중기(임진왜란~경종)
· ISBN : 9788950912895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22-07-28

책 소개

임진왜란이 끝난 후 전란의 잿더미 속에서 유성룡이 직접 쓴 책. 유성룡은 이 책으로 반대파들의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징비록』이 임진왜란에 관한 대단히 귀중한 사료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젊은 사학자 장준호가 번역한 이번 판본은 고전 『징비록』을 현대판 전쟁 서사극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목차

『징비록』 권1
자서
제1장 전란 전 대일관계
제2장 전란대비책
제3장 임진왜란의 발발과 초기 전투 상황
제4장 충주의 패전과 파천 논의
제5장 선조의 몽진과 구원군의 요청

『징비록』 권2
제6장 의병의 활동과 명군의 평양성 탈환
제7장 도성 수복과 백성들의 동향
제8장 일본군의 재침과 정유재란의 전개
제9장 이순신의 재기용과 명량해전
제10장 일본군의 퇴각과 노량해전
제11장 이순신의 인품

녹후잡기
제1장 전란 발생의 전조
제2장 전시 중 각종 대비책
제3장 김성일의 죽음과 제2차 진주성 전투
제4장 정유재란
제5장 심유경

해설
해설을 덧붙이며 - 박제된 『징비록』과 유성룡
제1장 『징비록』은 어떤 책인가
제2장 중용 속에서 대안을 찾은 재상, 유성룡
제3장 임진왜란 당시 동아시아 3국 정세
제4장 왜 지금 『징비록』일까

저자소개

유성룡 (옮긴이)    정보 더보기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다. 156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벼슬길에 나섰다. 전적, 공조좌랑 등을 거쳤으며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壯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어 이조참의를 거쳐 부제학, 대사간, 우부승지, 도승지를 거쳤다. 1583년 다시 부제학이 되어 「비변오책(備邊五策)」을 지어 올렸다.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으로 기축옥사가 일어나자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려놓으려 했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았다. 1590년 우의정에 올라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에 녹훈되고 풍원부원군(豊原府院君)에 봉해졌다. 이후 왜란이 있을 것에 대비하여 형조정랑 권율(權慄)과 정읍 현감 이순신(李舜臣)을 각각 의주 목사와 전라도 좌수사에 천거하였으며, 진관법鎭管法을 예전대로 고칠 것을 주장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조판서를 겸하고, 도체찰사로 군무(軍務)를 총괄했다. 이어 영의정이 되어 선조를 모시며 평양으로 파천했다. 이때 나라를 그르쳤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유로 반대파의 탄핵을 받고 면직되었는데, 의주에 이르러 평안도 도체찰사가 되었다. 명나라의 장수 이여송(李如松)과 함께 평양성을 수복한 뒤 충청·경상·전라 3도의 도체찰사가 되어 파주까지 진격했다. 이여송이 벽제관(碧蹄館)에서 패배하고 퇴각하려 하자 이를 만류했으며 일본과 화의에도 반대했다. 유성룡은 전란 기간 내내 군대 양성과 더불어 훈련도감 설치, 화포를 비롯한 각종 무기의 제조, 성곽의 수축을 건의하여 군비 확충에 노력했으며, 소금을 만들어 굶주리는 백성을 진휼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록되고 다시 풍원부원군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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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호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강대학교에서 「柳成龍의 『懲毖錄』 硏究」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유성룡의 『징비록』 연구』, 공저서로 『난세에 대처하는 10가지 태도』, 번역·해설서로 『징비록』 등이 있다. 논문으로 「柳成龍의 『亂後雜錄』 저술과 史學史的 의의」 「宣祖代 搢紳 逆謀 事件」 「『西征日錄』의 사학사적 고찰」 「『避難行錄』의 史學史的 고찰」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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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징비록』이란 무엇인가?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의 일을 기록한 것이다. 이 책에 이따금 전란 전에 있었던 일도 기록한 것은 난의 전말을 밝히기 위해서다. 아아, 임진년의 전화는 참혹했다. 수십 일 동안에 삼도(한양·개성·평양)를 지키지 못했고, 조선 팔도가 무너졌으며, 임금은 피난을 떠나셨다. 오늘이 있는 것은 하늘이 도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대 임금들의 어질고 두터운 은덕이 깊게 백성들의 마음을 굳게 연결시켜, 백성들이 나라를 사모하는 마음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임금께서 명나라를 섬기는 정성이 황제(명 신종)를 감동시켜 구원군이 여러 차례 파견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는 위태로웠을 것이다.
_『징비록』 권1, 자서


신립은 비록 날쌔어서 이름을 얻었지만 전략을 세우는 것은 그의 장점이 아니었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장수가 군사를 쓸 줄 모르면 그 나라를 적에게 주게 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지금 후회한다고 하더라도 소용은 없으나 뒷날의 경계가 되는 것이므로 자세히 적어 두는 것이다.
_제4장 충주의 패전과 파천 논의


이때 일본군 장수는 경성에 머물러 있었던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였는데,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카였다. 혹은 그 사위라고도 말하는데, 그는 나이가 어려서 모든 일을 주관할 수가 없었다. 이에 군사에 관한 일은 고니시 유키나가가 맡고 있었다. 그리고 가토 기요마사는 함경도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만일 우리 군사가 고니시 유키나가, 소 요시토시, 겐소 등을 사로잡았다면 경성에 있는 일본군은 저절로 무너졌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가토 기요마사는 돌아올 길이 끊어졌겠고, 군사들의 마음은 흉흉하여 두려워서 반드시 바다를 따라 도망간다 해도 스스로 빠져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한강 남쪽에 주둔했던 왜적도 차례로 무너졌을 것이며, 명나라 군사가 북을 울리며 천천히 가기만 했어도 또 부산에 도착해서 싫도록 물을 마셨을 것이고, 잠깐 동안이라도 온 나라의 일본군은 숙청되었을 것이니 어찌 몇 해 동안 어지러웠겠는가? 한 사람 김경로의 잘못으로 사태가 나라의 운명에 관계되었으니 진실로 통분하고 애석한 일이다.
_제6장 의병의 활동과 명군의 평양성 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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