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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삼국유사

(번역과 해설)

일연 (지은이), 이동환 (옮긴이)
  |  
서연비람
2023-05-31
  |  
2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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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책 정보

· 제목 : 삼국유사 (번역과 해설)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한국고대사 > 한국고대사 일반
· ISBN : 9791189171513
· 쪽수 : 543쪽

책 소개

『삼국유사』는 설화의 보고(寶庫)다 설화의 보고이니만큼 오늘날의 학문 각 분야에 관련하여 종합적인 자료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학ㆍ문학ㆍ민속학ㆍ종교학ㆍ철학ㆍ정치학ㆍ사회학 등 이용에 따라 거의 관련되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다.

목차

책머리에
삼국유사는 우리 민족 삶의 시원적 세계

1. 기이紀異Ⅰ - 역사의 신이한 일들의 기록Ⅰ
고조선 / 단군신화
북부여 / 해모수신화
동부여 / 해부루왕과 금와왕
고구려 / 동명신화
신라 시조 혁거세왕 / 혁거세신화
제대 남해왕 / 신라 왕의 칭호들
제대 탈해왕 / 탈해신화
김알지, 탈해왕대/ 알지신화
연오랑과 세오녀 / 일본 땅에 왕이 된 신라인
미추왕과 죽엽군 / 신라의 호국신
나물왕과 김제상 / 그 빛나는 충절
고갑을 쏘아라 / 보름 약밥의 유래
지철로왕 / 왕후 간택의 이야기, 그리고 울릉도 정벌
도화녀와 비형랑 / 진지왕 혼령의 정사와 도깨비 대장 비형랑
천제, 옥대를 하사하다 / 신라의 보물
선덕여왕의 지혜 / 미리 안 세가지 일
김유신 / 그 전생과 호국산신의 가호
태종 춘추공 / 신라 국 통일의 이야기들

2. 기이紀異 Ⅱ - 역사의 신이한 일들의 기록Ⅱ
문무왕 법민 / 당나라의 병탄 음모에의 저항, 그리고 거득공 이야기
만파식적 / 평화를 가져오는 신비한 피리
효소왕대의 죽지랑 / 화랑의 한 전형
수로부인 / 미녀와 노옹과 용
경덕왕과 충담사와 표훈대덕 / 충담사의 향가
원성대왕 / 두 번의 해몽, 효국용, 당 황제의 여의주
신무대왕과 염장과 궁파 / 왕위 찬탈과 배신
제대 경문대왕 / 임금이 된 내력과 당나귀 귀 이야기
처용랑과 망해사 / 처용랑의 아내와 역신, 그리고 쇠운의 조짐들
진성여대왕과 거타지 / 신라의 쇠운, 그리고 거타지 이야기
김부대왕 / 신라의 멸망
남부여-전 백제 / 백제의 이야기들
무왕 / 서동과 선화공주
후백제 견훤 / 견훤의 흥망과 그 비참한 최후
가락국기 / 수로신화와 그 뒤의 갖가지 사건들, 그리고 가락 왕력

3. 흥법興法 - 불법을 일으킨 사람들
순도, 고구려에 불교를 전하다
마라난타, 백제의 불교를 열다
아도, 신라 불교의 기초를 놓다
원종은 불법을 일으키고, 염촉은 순교하다
법왕, 살상을 금하다
보장왕이 도교를 받들매, 보덕이 암자를 날려 옮기다

4. 탑상塔像 - 탑과 불상에 얽힌 이야기들
황룡사의 장륙
황룡사의 9층탑
세 가지 경우의 관음, 중생사
백률사
미륵선화 미시랑과 진자사
분황사의 천수관음에게서 눈먼 아이 눈을 얻다
낙산의 두 보살 관음ㆍ정취, 그리고 조신

5. 의해義解 - 불교의 정수에 통달한 승려들
원광, 중국에 유학하다
양지, 석장을 부리다
혜숙ㆍ혜공, 진속에 묻혀 살다
자장, 계율을 확정하다
원효, 얽매이지 않다
의상, 화엄종을 전하다
말하지 않던 사복

6. 신주神呪 - 사태에 대한 주술로써의 대응
혜통, 마룡을 굴복시키다
명랑의 신인종

7. 감통感通 - 지극한 염원이 대상에 감통한 사례
선도성모, 불교 일을 기꺼이 하다
여종 욱면, 염불하여 서방에 오르다
광덕과 엄장
월명사의 도솔가
김현, 호랑이와 감통하다
융천사의 혜성가, 진평왕대

8. 피은避隱 - 속세를 피해 숨다
신충, 벼슬을 사퇴하다
포산의 두 성사
영재, 도적 떼를 만나다

9. 효선孝善 - 효와 선의 결실
진정사의 효와 선의 성취
대성이 두 세상 부모께 효도하다, 신문왕대
손순이 아이를 묻다, 흥덕왕대

후기

저자소개

일연 (지은이)    정보 더보기
고려의 승려이다. 속성은 전씨, 이름은 견명, 자는 회연, 호는 무극·목암이다. 경주 장산군(지금의 경산시) 출신으로, 아버지는 지방 향리 출신인 언필이다. 1206년(희종 2년)에 태어나 1289년(충렬왕 15년) 입적하였다 충렬왕 3년 운문사에 머무르면서 『삼국유사』 집필에 착수하였다. 특정 신앙이나 종파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불교 신앙을 표방하는 저술을 찬술했으며, 선과 교를 막론하고 많은 불교 서적을 편수하였다. 9세 때 해양(지금의 光州) 무량사에서 취학했으며, 14세 때 설악산 진전사로 출가하여 대웅장로에게서 구족계를 받았다. 1227년(고려 고종 14년) 선불장에 나아가 상상과에 급제한 이후 포산(현풍현 비슬산)의 보당암·무주암·묘문암 등지에서 머물렀으며, 1237년 삼중대사가 되고 1246년 선사가 되었다. 대몽항쟁기 일연은 포산에서 22년을 보내면서 뚜렷한 행적을 남기지 않았다. 1249년 최씨 무인정권과 밀접한 유대를 가지고 있던 정안의 초청으로 남해 정림사에 머물게 되었다. 이는 일시적으로 최이에게 반발한 정안이 수선사 계통의 승려를 기피하여 가지산문의 일연을 초청한 것인데, 이로 인하여 가지산문의 승려들이 최씨 정권과 연결되어 1251년에 완성된 대장경 조판 중 남해분사에서의 작업에 참가하게 되었다. 1259년 대선사가 되었고, 1261년(원종 2년) 원종의 명에 따라 강화도에 초청되어 선월사에 머물렀는데, 이때 지눌의 법맥을 계승했다. 이는 그가 가지산문(헌덕왕 때 보조선사 체징이 도의道義를 종조宗祖로 삼고 가지산 보림사에서 일으킨 선풍)에서 사굴산문(범일이 강릉의 굴산사에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킴으로써 사굴산파 또는 굴산선파라고 함)으로 법맥을 바꾼 것이 아니라 원종을 옹위한 정치세력이 불교계를 통솔하기 위해 일연을 이전의 수선사 계통의 승려를 대신한 계승자로 부각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배경으로 가지산문의 재건에 힘썼다. 1268년 왕명에 의해 운해사에서 대장낙성회를 주관하고, 1274년 비슬산 인홍사를 중수한 후 왕의 사액에 따라 인흥사로 개명했으며, 같은 해 비슬산 용천사를 불일사로 개명했다. 1281년 경주에 행차한 충렬왕에게로 가서, 불교계의 타락상과 몽골의 병화로 불타 버린 황룡사의 모습을 목격하였다. 1282년 충렬왕에게 선禪을 설하고 개경의 광명사廣明寺에 머물렀다. 1283년 국존國尊으로 책봉되어 원경충조圓經冲照라는 호를 받았으며, 왕의 거처인 대내大內에서 문무백관을 거느린 왕의 구의례(옷의 뒷자락을 걷어 올리고 절하는 예)를 받았다. 그 뒤, 어머니의 봉양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1284년에 타계하자, 조정에서는 경상도 군위 화산의 인각사를 수리하고 토지 100여 경을 주어 주재하게 하였다. 경상북도 군위 인각사에서는 당시의 선문을 전체적으로 망라하는 구산문도회를 두 번 개최하였다. 1289년 금강인을 맺고 입적하였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혼구와 죽허가 있다. 저서에는 『삼국유사』 5권, 『선문염송사원』 30권, 『화록』 2권, 『게송잡저』 3권, 『중편조동오위』 2권, 『조파도』 2권, 『대장수지록』 3권, 『제승법수』 7권, 『조정사원』 30권 등을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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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환 (옮긴이)    정보 더보기
1939년 경상북도 경주 출생.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졸업. 성균관대학교 조교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한문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용재석좌교수 역임.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한국한문학학회 회장, 한국실학학회 회장, 퇴계학 연구원 부원장, 문화재청 문재위원회 위원, 한국고전번역원장 등 역임. 저서 『실학시대의 사상과 문학』(지식산업사, 2006년), 『고전시대의 사상과 문학』(지식산업사, 2023년), 『도학시대의 사상과 문학』(지식산업사, 2023년), 『번역과 해설 삼국유사』(서연비람, 2023)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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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신화에는 층차가 있다. 창세내지 천지개벽 신화, 대홍수 신화, 국토 조성 신화, 사물 기원 신화, 그리고 국조신화(건국신화) 등으로 층차가 나뉜다. 단군신화는 건국, 국조신화에 속하므로 아래 층차에 속한다. 그러므로 신의 이야기에 인간의 이야기가 섞여 있다. 바꾸어 말하면 신화에 역사와 전설이 합쳐져 있다. 그러므로 그 해석에는 여러 시각에서,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다. 단군신화는 천신 신앙인 무교巫敎 또는 신도神道(최남선의 용어)가 그 태반胎盤이다. 이 천신의 실질 존재감은 산신으로 나타난다. 즉 천신의 위격位格을 그대로 가지고 고산들에 내려와 임재臨在함으로써 인간 세계와의 접촉이 이루어진다. 수많은 지상의 산신은 하나의 천신이 자기 복제로서 분화하여 존재한다. 여기 단군신화의 경우 천신 환인은 태백산 산신 환웅천왕으로서 임재함으로써 농사ㆍ생명 등 인간 360여 가지 일들을 주재한다.
산신으로서 비로소 존재감을 띠는 천신이나 그 자체 천상의 존재로서의 천상에서의 리얼리티는 최소한으로 가지거나 거의 없다. 단군신화의 경우 이 세계의 정상 부위에 환인의 거소居所 로 관념하고는, 아들 환웅의 인간 세계에 대한 욕구를 알아차리는 것,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는 것, 천부인 3개를 주어 내려가게 한 것이 천신의 존재성의 징표로서는 전부다. 그것도 대부분 구체성보다 관념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단군신화와 그 구조에 있어 유사한 해모수 신화, 그리고 기타 우리나라의 여러 건국ㆍ국조 신화의 경우 이 정도 존재 징표도 없다. 요컨대 우리 선민先民은 이 세계의 구도를 천상의 세계, 인간의 세계, 지하의 세계 3원元 구조로 본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인간의 세계를 단일적으로 관상觀想하려는 경향이 농후했다. 단군신화에는 환인의 거소가 이 세계의 정상 부위에 밀착해 있을 뿐, 그 위에 3차원적 공간의 전개가 명시적으로도 암시적으로도 없다. 그리고 하계下界 관념은 더더구나 없다. 이 단일적 세계 관상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유의 속담을 남길 만큼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절대적이라는 현세주의 인생관을 가지게 했다. 그리고 이 현세주의 인생관의 정치적 이상으로서의 표출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명제다.


부여 신화는 본래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의 주석으로 전하고 있는 『구삼국사舊三國史』 「고구려본기」 고구려 건국신화에 포함되어 있으나 거기서는 해모수와 해부루와의 혈연관계가 없었다. 다만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경場景이 아주 장관으로 그려져 있다. 해모수는 다섯 마리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종자 백여 명은 모두 흰 따오기를 탔다. 그리고 위로는 채색 구름이 뜨고, 그 구름 속에서 음악이 울려 퍼졌다. 웅심산熊心山에 머물러 10여 일이 지난 뒤에 비로소 세상에 내려왔는데, 머리에는 까마귀 깃이 꽂힌 관을 쓰고, 허리에는 용광검龍光劒을 찼다고 했다. 그리고 아침엔 하늘에서 내려와 정무를 보다가 저녁이 되면 하늘로 올라가곤 했는데, 사람들은 그를 ‘천왕랑天王郞’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즉 해모수는 웅심산 산신이었다. 해모수는 단군신화의 환웅에 해당하는데, 단군신화에 비해 해모수 신화는 문명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해모수신화가 단군신화보다 훨씬 후대에 이루어졌다는 증좌로는 바로 해모수의 하늘부터의 하강 장경이 사마천의 『사기』 「조세가趙世家」의 기록에 영향받은 것을 들 수 있다. “조간자趙簡子가 병에 걸렸다가 2일 반 만에 깨어나서 대부들에게 말하기를 ‘나의 천제가 있는 곳이 몹시 즐거웠으며, 백여 신들과 하늘 중앙에 노닐 적에 성대한 음악이 여러 차례 많은 곡으로 연주되고, 여러 가지 양식의 춤이 추어졌다. 3대(하ㆍ은ㆍ주)의 음악과도 달리 그 소리가 사람 마음을 움직이더라’”는 것이다. 이 장경의 묘사에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신라는 상고기말上古期末의 네 왕(눌지ㆍ자비ㆍ소지ㆍ지증왕)과 함께 법흥왕에서 진덕왕까지의 이른바 중고기中古期의 왕들은 왕호나 시호를 모두 불교에서 취해 지었다. 그 가운데 특히 진평왕은 이름을 석가의 아버지 이름을 가져와 ‘백정白淨’이라 했고, 왕비의 이름은 석가의 어머니 이름을 가져와 ‘마야부인’이라고 했을 정도였다. 자신들을 인도의 카스트 제도의 찰제리종으로 생각했다. 찰제리종은 제1계급 바라문종과 계급차가 별반 없는 왕종王種이다. 요컨대 진평왕은 ‘왕즉불王卽佛’ 사상의 소유자다.
그런 진평왕이 궐내에 내제석궁을 창건하여 제석신앙을 적극 수용하였다. 제석은 수미산 꼭대기 도리천 선견성善見城에 사는 33천의 천주天主로, 4천왕과 32천을 거느리고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이다. 불법을 호지護持하는 12천의 하나다. 석가가 성도한 뒤에는 석존의 수호신이 된 천신이다. 내제석궁은 제석을 받든 궁 전으로, 일명 ‘천주사天柱寺’라 한 절이다. ‘천주’란 이 수미 소세계의 중앙에 있는 기둥으로서 수미산의 정상에 있는 절이란 뜻으로, 내제석궁에 다름 아니다. 진평왕이 제석을 자신의 수호신으로 받들어, 불교를 통한 중고기 왕권을 한 층 강화하는 의도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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