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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91189722296
· 쪽수 : 464쪽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양심, 무엇이 문제인가
1장 양심의 근원과 본성을 찾아서
구약과 유대교에서의 양심 / 호메로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 스토아학파
2장 기독교의 세기들
바울에서 아우구스티누스까지 / 신앙 시대의 양심 / 루터와 그 이후
3장 마키아벨리에서 니체까지
거대한 분열 / 신의 죽음 / 하늘을 향해 포문을 열다
4장 신 없는 세상
프로이트와 양심 콤플렉스 / 일본에서의 양심 / 중국에서의 양심
5장 제3제국의 양심
명령한 자 / 명령을 실행한 자 / 명령에 저항한 자
6장 옛 우상과 새로운 우상
양심과 인권 / 양심과 건강 / 양심과 환경
7장 기술 시대 양심의 자리
원자론에서 행동주의로 / 로봇의 부상 / 양심의 과학화
맺는말 양심을 찾아 떠난 3천 년의 여정
주 / 감사의 말 / 찾아보기
리뷰
책속에서
양심을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는 ‘콘스시엔티아conscientia’이다. 그리스어 동의어와 마찬가지로 문자 그대로의 뜻은 자기 자신을 ‘앎’이다. 이 단어는 법률가이자 정치가인 키케로와 특히 철학자 세네카가 자주 썼다. 세네카의 저작에는 50번 정도 이 단어가 등장한다. 키케로와 세네카는 모두 스토아철학 성향을 가진 스승 아래서 그리스 철학을 공부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콘스시엔티아는 개인 행위의 길라잡이 혹은 판관이다. 콘스시엔티아는 그가 저지른 일의 결과에 대해 비난하거나 후회하지 않을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세네카는 이런 말을 했다. “콘스시엔티아는 인간 내면의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다.”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앎과 달리 콘스시엔티아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과 관련해 개인 내면에 숨겨진 앎이다. 신의 율법으로부터 자유롭게 풀려나 인간은 자연과 합치하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 그런 인생은 무엇보다도 조화로워야 한다고 세네카는 덧붙인다. 앞만 보고 황급히 달리기만 하는 인생은 결코 질서를 세울 수 없다.-〈1장 양심의 근원과 본성을 찾아서〉
요컨대 가톨릭교회는 양심의 자유를 단호히 반대했으며, 오늘날까지도 이런 입장을 고수한다. 양심을 중시한 개신교는 달랐다. 개신교는 양심을 교회―이론상으로 종파가 무엇이든 모든 교회―와 사제가 차지했던 자리에 올려놓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장과 대단히 흡사하게 개신교는 몇몇 학자가 이성과 결합하려 했던 양심을 자유롭게 떼어놓았다. 그 대신 개신교는 양심을 은총의 전제조건에서 오히려 은총의 결과로 바꾸었다. 무엇보다도 개신교는 오랜 세월 동안 짓눌러온 미신과 의례의 낡은 잔재에 묻혀 있던 양심을 해방시켰다. 이렇게 함으로써 양심은 도덕적 올바름의 궁극적인 보증으로, 인간이 저마다 자신의 내면에 가지는 것이 되었다. 대소사를 막론하고 양심은 우리 인간이 죄를 짓지 않도록 막아준다. 사도 바울의 시대 이후 이보다 더 강하게 양심이 주장된 적은 없었다. 양심을 가지면서 치러야 하는 대가는 끊임없는 “불안, 참회, 두려움”이며,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아픔과 가책”이다. 개신교에 반대하는 쪽은, 지금도 여전한데, 그처럼 양심을 강조하는 것은 “영혼을 죽이는 일”이며 인간을 자기 파괴로 이끈다고 주장했다.-〈2장 기독교의 세기들〉
군주의 권력남용과 그에게 노출된 권력의 유혹에 굴복하는 일을 막아줄 유일한 것은 양심이다. 마르티누스 브라카렌시스는 군주야말로 네 가지 가장 중요한 덕목, 즉 신중함과 너그러움과 일관성과 정의감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세비야의 이시도루스는 순수함, 겸손함, 온건함, 친절함, 자비로움과 언제라도 악에 선함으로 답하는 자세를 덧붙인다. 무릇 군주는 선하고 도덕적인 삶을 이끌 수 있어야 하며, 신의를 지키고 매사에 친절하고 자비로우며 정의롭고 진실하며 인내심이 많고 너그러우면서 헌신할 줄 알며, 먹고 마시며 옷을 입는 일에 지나침이 없으며 올곧은 예절과 도덕으로 되도록 겸손하며 상냥하고 구호를 베푸는 손길에 아낌이 없어야 한다. 군주는 참을성과 진실함 그리고 배움을 사랑하고 악한 생각을 멀리하는 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갖추는 일은 앞서 열거한 특성을 가진 사람을 주변에 두고 조언을 구할 때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군주는 쉽사리 부패한다. 거듭 확인하지만 이런 생각에서 공적인 생활과 사적인 생활은 구분되지 않는다. -〈3장 마키아벨리에서 니체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