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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문학상이 된 작가들

일본의 문학상이 된 작가들

나쓰메 소세키, 다니자키 준이치로, 다자이 오사무 (지은이)
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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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문학상이 된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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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일본의 문학상이 된 작가들 
· 분류 : 전자책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전
· ISBN : 9791190156745
· 출판일 : 2026-05-29

책 소개

문학의 숲 열세 번째 나무. 문학상이 되어 이름을 남긴 작가들의 대표 단편집.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에도가와 란포, 다니자키 준이치로 등 소설의 각 장르에서 활약하여 일본 문학의 지평을 넓힌 작가들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목차

옮긴이의 말
밀회(하야시 후미코)
지옥변(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만우절(오다 사쿠노스케)
로봇과 침대의 중량(나오키 산주고)
비 그치다(야마모토 슈고로)
이백십일(나쓰메 소세키)
외과실(이즈미 교카)
달려라 메로스(다자이 오사무)
그림과 여행하는 남자(에도가와 란포)
삼인법사(다니자키 준이치로)

저자소개

나쓰메 소세키 (지은이)    정보 더보기
본명은 나쓰메 긴노스케夏目金之助로, 1867년 현재의 도쿄 신주쿠구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도쿄제국대학의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근무했다. 1900년 문부성 최초의 국비유학생으로서 영국에서 2년간 유학하며 영어수업법을 연구했으며 귀국 후에는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의 강사로 일했다. 1905년 발표 및 연재한 장편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큰 호평을 받은 후 『도련님』 『풀베개』 등 화제작을 잇달아 발표했다. 1907년 『아사히신문』에 입사하여『우미인초』를 연재하면서 전업 작가로서 집필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 후』 『문』 『마음』 등의 작품을 연재하며 독자들의 사랑과 함께 일본 근대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16년 12월 9일, 『명암』을 집필하던 중 거듭된 위궤양 악화로 49세에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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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자키 준이치로 (원작)    정보 더보기
1886년 도쿄 니혼바시에서 태어났다. 제일 고등학교를 거쳐 도쿄 제국 대학 국문과에 입학하였으나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퇴학당했다. 1910년 『신사조(新思潮)』를 재창간하여 「문신」, 「기린」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했고, 소설가 나가이 가후로부터 격찬을 받으며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1915년 열 살 어린 이시카와 치요코와 결혼했는데, 시인인 친구 사토 하루오가 그의 부인과 사랑에 빠지자 아내를 양도하겠다는 합의문을 써 『아사히신문』에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문화 예술 운동에도 관심을 가진 그는 시나리오를 써 영화화하고 희곡 『오쿠니와 고헤이』를 발표한 뒤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1924년 『치인의 사랑』을 신문에 연재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검열로 중단되었다. 1942년 그는 세 번째 부인이자 그가 희구하던 여성인 마쓰코와 그 자매들을 모델로 『세설』을 쓰기 시작했다. 간사이 문화에 대한 애정이 짙게 배어 있는 『세설』은 몰락한 오사카 상류 계츨의 네 자매 이야기, 특히 셋째인 유키코의 혼담을 중심으로 당시의 풍속을 잔잔하게 전하는 풍속 소설이다. 1943년 『중앙공론』 신년호와 4월호에 게재되었고 7월호에도 실릴 예정이었으나 <시국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발표가 금지되어 전후에야 비로소 작품 전체가 발표되었다. 훗날 마이니치 출판문화상과 아사히 문화상을 받았다. 1948년에는 제8회 문화 훈장을 받았고 1941년 일본 예술원 회원, 1964년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문학예술 아카데미의 명예 회원에 뽑혔다. 1958년 펄 벅에 의해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천된 이래 매년 후보에 올랐으며 1965년에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 밖의 대표작으로는 『치인의 사랑』, 『만』, 『킨쇼』, 『열쇠』, 『장님 이야기』, 『미친 노인의 일기』 등이 있고,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이야기』를 현대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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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9년 일본 아오모리현 기타쓰가루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 명망 있는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랐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1등을 놓치지 않는 수재였다. 선택받은 환경에 뛰어난 머리까지 타고났지만, 서른아홉 해의 짧은 생애 중 다섯 번 자살을 기도했다. 스무 살이던 1929년 칼모틴을 복용한 후 의식불명에 빠졌던 것을 시작으로, 1930년에는 술집 종업원 다나베 시메코와 가마쿠라 바다에 함께 투신했다. 그러나 다나베만 사망하고 홀로 살아남아 자살방조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광대의 꽃〉(1935)은 대표작인 〈인간 실격〉(1948)의 모태이자 이때의 자책감을 드러낸 작품이다. 〈도쿄 팔경〉(1941)에도 이때의 일이 자세히 서술돼 있다. 좌익 운동을 하며 유치장을 들락거리던 다자이는 〈교겐의 신〉(1936)에 그려진 대로 1935년 가마쿠라에서 목을 매 세 번째 자살을 시도했다. 미수에 그쳤지만 맹장염 수술 후 진통제로 쓰인 파비날에 중독되었다. 약값을 대기 위해 아쿠타가와상 수상에 욕심을 냈지만 실패하고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거기에 약혼 관계였던 게이샤 오야마 하쓰요와 절친한 친구의 불륜을 눈치채고 큰 충격을 받았다. 1937년 다자이와 오야마는 미나카미 온천에서 칼모틴을 먹고 네 번째 자살을 기도하지만 둘 다 살아남았고, 이때의 일은 〈우바스테〉(1938)에 녹아들었다. 1948년 결핵 증세로 인한 객혈이 심해진 다자이는 불륜 관계였던 야마자키 도미에와 다마가와조스이에 몸을 던져 함께 생을 마감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자살의 성공이었고, 두 사람의 사체는 기모노 허리띠에 묶인 채 다자이의 생일인 6월 19일에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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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 후미코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3~1951. 후쿠오카현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가난한 부모를 따라 여러 지방을 떠돌아다닌다. 여학교 졸업 후 도쿄에 올라와 잡일꾼, 사무원, 여공, 카페 여급 등 갖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작가를 꿈꾸며 고단한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마침내 1930년 자신의 가난한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방랑기』를 출판해 일약 인기 작가가 된다. 대공황의 와중에도 60만 부나 팔린 『방랑기』를 비롯한 그녀의 작품은 당시 도시 생활자의 밑바닥 삶, 특히 여성의 자립과 가족, 사회 문제를 생생하게 그려내 대중에게 사랑받는 한편 다수의 작품이 영화, 연극, 드라마로 만들어진다. 1948년 제3회 여류문학자상을 수상하며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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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지은이)    정보 더보기
아서 코난 도일, 에드거 앨런 포와 함께 세계 3대 추리소설 작가로 손꼽히며, 일본 미스터리 문학의 역사를 100년 앞당긴 일본 미스터리·추리소설계의 거장이라 평가된다. 본명은 히라이 다로(平井太郞)지만 미국의 대문호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에서 따온 에도가와 란포라는 필명을 평생 사용했다. 1894년 미에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에서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으며 그 후 무역회사, 조선소, 헌책방 등 다양한 곳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1923년 문예지 《신청년(新青年)》을 통해 단편 추리소설 <2전짜리 동전>을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1925년 그의 첫 탐정소설 《D언덕의 살인사건》에서 명탐정 주인공 아케치 고고로를 탄생시키며 일본 문학계 최초로 사립 탐정 캐릭터를 창조했다. 본격 추리소설 외에도 괴기 소설이나 에로틱·그로테스크·잔학성이 강조된 작품들도 연이어 발표하며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었지만, 1929년 발표한 단편 <애벌레>는 반전 소설로 낙인찍히며 검열당하고 전면 판매 금지 처분을 받는 등의 수모를 겪기도 했다. 작가로서의 활동 외에도 1947년 ‘일본 탐정작가클럽’을 창설(1963년 ‘일본 추리작가협회’로 명칭 변경)하고 잡지를 발간했으며 신인작가 발굴에도 주력하는 등 일본 추리·탐정소설의 대중화에 큰 공헌을 했다. 1955년 일본 탐정작가클럽에서는 ‘에도가와 란포 상’을 제정했으며, 추리작가의 등용문이 된 에도가와 란포 상은 현재까지도 일본 추리소설계의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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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미 교카 (지은이)    정보 더보기
메이지 시대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인 오자키 고요 중심의 ‘겐유샤(硯友社, 벼루 동인)’ 작가다. 어머니는 전통 가면극 노(能)의 큰북 고수의 딸로 교카가 9세 때 사망했다. 11세부터 아버지와 함께 부처의 부인 마야(摩耶) 신앙을 갖기 시작했다. 18세에 고요의 문하생이 되어 사사한 이래 평생의 은인으로 존경했다. ≪고야산 스님(高野聖)≫으로 인기 작가가 되었다. 괴기 취미와 특유의 낭만주의에 의해 일본 근대 환상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작으로 ≪야간 순경(夜行巡査)≫, <외과실(外科室)>, ≪데리하 교겐(照葉狂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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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은이)    정보 더보기
일본의 소설가로 1892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1913년 도쿄제국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여 재학 당시 「노년」, 「라쇼몬」, 「코」를 발표하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이중 「코」가 일본의 ‘국민 작가’라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극찬을 받아 문단에 등단했으며, 오사카마이니치신문사를 거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에 들어갔다. 10년 남짓한 짧은 창작 기간에도 「라쇼몬」, 「덤불숲」, 「지옥변」, 「신들의 미소」, 「서방의 사람」, 「톱니바퀴」, 「갓파」 등에서 끊임없이 인간과 예술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만년에 이르러 신경쇠약, 불면증, 환각 증상을 보이다 1927년 7월 도쿄 자택에서 35세의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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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사쿠노스케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오다사쿠(織田作)라는 애칭으로 널리 불리는 오다 사쿠노스케는 1913년 오사카 덴노지 근처 뒷골목 튀김집의 1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업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1931년 제3고등학교, 현 교토대학에 입학하나 졸업시험 도중 객혈하여 졸업하지 못한 채 1934년 오사카를 떠나 전지요양에 나선다. 그리고 이때부터 극작가를 지망하며 극본 집필에 몰두한다. 하지만 이윽고 스탕달에게 큰 영향을 받아 1938년 단편 「비」를 발표하며 소설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이후 오사카로 돌아와 기자 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꾸준히 소설 집필을 이어간다. 1939년 발표한 「속취」가 최고권위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후보로 지명되고, 이듬해 7월 발표한 「부부단팥죽」이 제1회 가이조샤 문예추천작에 당선되며 소설가로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다. 전쟁이 시작되어 장편 『청춘의 역설』이 발매 금지 처분을 당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지만 다자이 오사무, 사카구치 안고 등과 함께 사회통념, 기성 사상 일체에 반발하며 고유의 직관을 추구하는 무뢰파 작가로서 활동을 꾸준히 이어간다. 1946년 12월 대량의 각혈을 일으키며 점차 상태가 악화하여 이듬해인 1947년 1월 33세 나이로 요절한다. 빠르고 경쾌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체와 희극을 보는 듯한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가 돋보이는 오다사쿠의 작품은 7년밖에 안 되는 짧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오다 사쿠노스케 문학상이 제정되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7년, 사후 60년 이 지난 뒤에야 전시 중 발표하지 못한 단편 「부부단팥죽 속편」 원고가 발견되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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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키 산주고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오사카 출생. 대중문학의 선구적 작가. 본명은 우에무라 소이치. 이치오카 중학 졸업 후 한동안 대용교원으로 근무하다 곧 상경하여 와세다 대학 영문과 예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학비 문제로 제적당했다. 1918년에 톨스토이 전집 간행회를 세우고, 잡지 『주조』를 창간했으며, 동하사를 창설했으나 전부 실패했다. 관동대진재를 계기로 오사카로 다시 돌아가 잡지 『고락』의 편집에 종사했으며, 연합영화예술가협회를 설립했지만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다시 상경하여 문필에 전념했다. 31세 때 산주이치(三十一)라는 필명을 썼으며 이후 산주니(三十二), 산주산(三十三)으로 고치다 산주고에서 정착되었다. 대중문학을 과소평가하던 당시의 분위기에 맞선 이론적 투사이기도 했으며, 역사소설을 지식계급이 읽을 수 있는 내용으로까지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다. 그의 업적을 기념하여 나오키 산주고 상이 설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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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슈고로 (지은이)    정보 더보기
(山本 周五?, 1903~1967) 야마나시현 출생으로 본명은 시미즈 사토무(?水 三十六)이다. 도쿄의 야마모토 슈고로 상점에서 도제로 지냈다. 『문예춘추』(1926년 4월호)에 투고한 「스마데라 부근」으로 문단에 나왔다. 『일본부인기』로 1943년에 나오키상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문학은 상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작가의 윤리가 이유였다. 일본의 패전 이후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여 죽기 직전까지 수많은 걸작을 내놓았으며, 사후 “귀여운 여인을 묘사한 체호프를 능가한다.”, “100년 후, 일본의 대표적 단편 작가로 남을 것이다.”라는 등의 높은 평가를 얻었다. 1988년, 일본 출판사 신초샤(新潮社)에서 작가의 이름을 딴 문학상을 제정하였다. 주로 서사가 뛰어난 소설이나 문예서에 수여하는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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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욱 (옮긴이)    정보 더보기
일본대학교 신문학과를 졸업하고 잡지사 기자를 거쳐 출판사에서 근무하였으며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전국지』·『미야모토 무사시』, 『도련님』, 『일본의 문학상이 된 작가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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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정보 제공 : Yes24(www.yes24.com), 알라딘(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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