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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씨책] 일본 명단편선 7

[큰글씨책] 일본 명단편선 7

(계절을 맛보다)

고다 로한, 히구치 이치요, 이즈미 교카, 도쿠토미 로카, 시마자키 도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요코미쓰 리이치, 다자이 오사무, 다카무라 고타로 (지은이), 신영언, 김용안, 최재철, 김난희, 김태영, 권정희, 김정숙, 오현진, 김정신 (옮긴이)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4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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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씨책] 일본 명단편선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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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큰글씨책] 일본 명단편선 7 (계절을 맛보다)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전 일본소설
· ISBN : 9791128856648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21-07-28

책 소개

일본 근대 문학 전문가의 정확한 번역과 전문적인 해설, 풍부한 주석은 독자를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격동하는 일본 개화기의 현장으로 안내할 것이다. 7권에서는 고다 로한의 <국화-먹거리로서의>를 비롯해 11편의 작품을 소개한다.

목차

국화-먹거리로서의(菊-食物としての) ― 고다 로한 / 신영언
섣달 그믐날(大つごもり) ― 히구치 이치요 / 김용안
새의 화신(化鳥) ― 이즈미 교카 / 최재철
풍경화가 코로(風景画家コロオ) ― 도쿠토미 로카 / 김난희
사생첩(寫生帖) ― 도쿠토미 로카 / 김태영
황혼(黄昏) ― 시마자키 도손 / 권정희
스미다 강물(大川の水)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김정숙
마쓰에 인상기(松江印象記)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김정숙
봄은 마차를 타고(春は馬車に乗って) ― 요코미쓰 리이치 / 오현진
아, 가을(ア、 秋) ― 다자이 오사무 / 최재철
봄이 되어(春になつて) ― 다카무라 고타로 / 김정신

저자소개

고다 로한 (지은이)    정보 더보기
메이지 시대 다양한 장르에서 많은 작품을 남긴 문필가, 사상가, 고전 연구가다. 막부 가신 집안의 4남으로, 본명은 시게유키(成行)다.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훗날 그와 함께 고로(紅露) 시대의 주역이 된 오자키 고요(尾崎紅葉, 1868∼1903)와는 도쿄제일중학교 동기이기도 하다. 집안 사정으로 학교를 중퇴하고 체신 공무원 양성소인 체신성 관립 전신수기학교(?信省官立電信修技?校) 졸업 후 잠시 홋카이도에서 전신 기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쓰보우치 쇼요(坪?逍?, 1859∼1935)의 ≪소설요론(小?神?)≫의 결정적인 영향으로 20세 때 스스로 필명을 만들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22세 때 <이슬방울(露??)>(1889)을 ≪도회의 꽃(都の花)≫에 발표해 야마다 비묘(山田美妙, 1868∼1910)의 격찬을 받으며 등단한 이래 ≪풍류불(風流佛)≫(1889), ≪오중탑(五重塔)≫(1893) 같은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며 동시대 주요 작가 대열에 합류한다. 소설 창작뿐 아니라 평론과 문학 연구에도 두각을 나타낸 그는 도시론(都市論), 문장론(文章論), 노력론(努力論) 등 매우 다양한 주제에 관해 심도 있고 전문성 있는 글을 남겼다. 1908년 교토제국대학 문과대에서 잠시 국문학 강사 활동을 한 바 있으며 1911년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기도 했다. 1910년 아내 야마무로 기미(山室幾美)의 죽음을 겪고 한동안의 공백기를 지나, 단편집 ≪유정기(幽情記)≫(1918)와 ≪운명(運命)≫(1919) 등을 발표하며 다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중국과 일본의 고전 연구에 몰두해 그를 바탕으로 한 다수의 고전 평론, 연구 논문, 역사 소설 등을 집필했으며, 1937년 제1회 일본 문화훈장을 수상하고 제국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되었다. 말년에도 그는 ≪눈 때리기(雪たたき)≫(1939), ≪환담(幻談)≫(1941), ≪연환기(連環記)≫(1941)와 같은 수작들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특히 공저 ≪바쇼 하이쿠 연구(芭蕉俳句?究)≫(1904)에 이어 1920년부터 공들여 온 ≪바쇼 칠부집(芭蕉七部集)≫ 주해 작업을 1947년 완성하고 그해 협심증으로 사망했다. 그의 별호 중 하나인 ‘가규안(蝸牛庵, 민달팽이집)’을 사용한 ≪가규안 야담(蝸牛庵夜譚)≫(1907)과 ≪가규안 일기(蝸牛庵日記)≫(1949)가 출간된 바 있으며 그의 작품들은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에서 간행한 ≪로한 전집(露伴全集)≫ 전44권(1978∼1980)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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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지은이)    정보 더보기
다자이 오사무(일본어: 太宰 治, 1909년 6월 19일 ~ 1948년 6월 13일)는 일본의 소설가이다. 1936년(쇼와 11년)에 첫 작품집 『만년(晩年)』을 간행하였다. 1948년(쇼와 23년)에 애인 야마자키 도미에(山崎富栄)와 함께 다마가와(玉川) 죠스이(上水)에 투신자살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달려라 메로스(원제: 走れメロス)」, 「쓰가루(津軽)」, 「옛날 이야기(お伽草紙)」, 「사양(斜陽)」, 「인간실격」이 있으며, 사카구치 안고・오다 사쿠노스케(織田作之助)・이시카와 준(石川淳) 등과 함께 신희작파(新戱作派)・무뢰파(無賴派) 등으로 불린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일본어: 津島修治)인데, 필명을 쓴 까닭은 쓰가루 지방(아오모리현 서부) 출신인 스스로가 본명을 읽으면 쓰가루 방언의 영향으로 지시마(チシマ)로 들리지만 이 필명은 방언투로 읽어도 발음이 그대로이기 때문이었다고 한다.[1 아버지는 공무로 늘 바빴고 어머니는 병약했으므로, 다자이 자신은 유모 등의 손에서 자랐다. 1916년(다이쇼 5년)에 가나키제일심상소학교(金木第一尋常小學校)에 입학하였다. 4년만인 1922년(다이쇼 11년) 4월에 소학교를 졸업하고 학력 보충을 위해 현지 4개 마을에서 조합으로 세운 메이지고등소학교(高等小學校)에 다시 1년간 통학하였으며, 1923년(다이쇼 12년)에는 아오모리 현립 아오모리중학교(靑森中學校)[2]에 입학하는데, 입학 직전인 3월에 다자이의 아버지가 도쿄에서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어를 전혀 하지 못하면서도 프랑스 문학을 동경해 4월에 동경제국대학 문학부 불문학과에 입학하지만, 높은 수준의 강의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데다 친가에서 부쳐주는 돈으로 마음껏 방탕하고 호사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그에 대한 자기 혐오, 내지 다자이 자신의 처한 위치와 더불어 마르크시즘에 심취해 갔고, 당시 치안유지법에서 단속하고 있던 공산주의 활동에 몰두하느라(다만 공산주의 사상 자체에 진심으로 빠져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강의조차 대부분 출석하지 않았다. 또한 소설가가 되기 위해 5월부터 이부세 마스지(井伏鱒二)의 제자로 들어갔는데, 이때부터 본명인 쓰시마 슈지가 아닌 다자이 오사무라는 이름을 쓰게 된다. 대학은 거듭된 유급에 수업료 미납으로 제적된다.[5] 재학 중에 만나 동거하던 술집의 여급으로 유부녀였던 18세의 다나베 시메코(田部シメ子)와 1930년 월에 가마쿠라의 고시고에(腰越) 바다에서 동반 투신자살을 기도하였으나, 시메코만 죽고 다자이는 혼자 살아남았다. 이 일로 다자이는 자살방조 혐의로 검사로부터 조사를 받았지만, 형 분지(文治) 등의 탄원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6] 「인간실격(人間失格)」, 「앵두(櫻桃)」를 마무리한 직후 1948년 6월 13일, 타마가와(玉川) 죠스이(上水)에서 애인 야마자키 토미에(山崎富栄)와 동반자살하였다.[14] 이때 그의 나이는 39세였다. 이 사건은 발표 직후부터 온갖 억측을 낳았는데, 도미에에 의한 억지 정사설, 희극 심중 실패설 등이다. 다자이가 생전에 아사히 신문에 연재 중이던 유머 소설 「굿 바이」도 미완의 유작으로 남았는데, 공교롭게도 13화에서 작가의 죽음으로 절필되었다는 데에서 기독교의 징크스를 암시하는 다자이의 마지막 멋부림이었다는 설도 있고, 그의 유서에는 '소설을 쓰는 것이 싫어졌다' 등의 취지가 적혀 있었는데, 자신의 컨디션 저조나 다운증후군을 앓는 저능아였던 외아들의 처지에 대한 비관도 자살의 한 원인이 되었을 거라는 설도 있다. 기성 문단에 대한 '선전포고'로까지 불리던 다자이의 연재 평론 「여시아문(如是我聞)」의 마지막회는 다자이 사후에 게재되었다. 유해는 스기나미 구 호리노우치에서 화장되었다. 계명(戒名)은 문채원대유치통거사(文綵院大猷治通居士)였다. 다자이의 사체가 발견된 6월 19일은 공교롭게도 그의 생일이었는데, 죽기 직전에 쓴 단편 「앵두」와도 관련해, 생전에 다자이와는 동향으로 교류가 있던 곤 간이치(今官一)에 의해 '앵두 기일'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 날은 다자이 문학의 팬들이 그의 무덤이 있는 도쿄도 미타카시의 젠린사(禪林寺)를 찾는 날이기도 하다. 또한 다자이가 태어난 아오모리 현 카나기마치에서도 '앵두 기일'에 맞춰 다자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는데, 다자이의 탄생지에서 다자이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이 옳다는 유족의 요망도 있어 다자이 오사무 탄생 90주년이 되는 1999년부터는 「다자이 오사무 탄생제」로 이름을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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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자키 도손 (지은이)    정보 더보기
시, 소설, 수필, 동화 등 문학의 전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해 일본문학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작가다. 1872년에 나가노현(長野縣) 니시지쿠마군(西筑摩郡) 미사카(神坂)에서 아버지 마사키(正樹)와 어머니 누이(縫)의 막내로 태어났다. 도손의 가문은 1513년에 선조가 기소(木曾)로 이주해 와서 대대로 촌장과 역참과 숙박업을 가업으로 이어 왔는데 바로 아버지 마사키가 본 소설 주인공 한조의 모델이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로부터 《천자문》과 《권학편》 등을 배웠고 열 살 때 도쿄로 유학을 가서 매형 집에서 기숙하며 다이메이(泰明)소학교를 다니게 된다. 그 후 여러 곳으로 전전하며 15세 되던 해에 시바(芝)에 있는 영어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정신적 스승인 기무라 구마지(木村熊二)에게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이해 11월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본격적으로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메이지(明治) 학원 본과에 입학한다. 한때 정치에 뜻을 두고 있었으나 18세 되던 해에 동경대 교양학부의 전신인 제1고등학교 입학시험에 실패를 계기로 문학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21세인 1892년부터 잡지 《여학(女學)》에 습작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의 길에 들어선다. 22세에는 《문학계(文學界)》 창간 동인으로 참가하고 거기에 작품을 발표하며 필명인 도손(藤村)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26세 되던 해에 발표한 《새싹집(若菜集)》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일약 무명에서 스타덤에 오른다. 특히 그 안에 수록된 〈첫사랑(初戀)〉이라는 7·5조의 정형시가 독자들을 단숨에 매료한다. 이 시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며 국민적 시인이라는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된다. 그는 연이어 네 번째 시집 《낙매집(落梅集)》까지 간행하지만 시로는 만족을 하지 못하고 산문으로의 전향을 염두에 두고 습작 삼아 수필 《지쿠마가와강 스케치(千曲川のスケッチ)》를 발표한다. 이 작품도 명작으로 명성을 얻는다. 31세에는 〈옛 주인(舊主人)〉이라는 첫 단편소설을 발표하는데 풍기 문란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발매를 금지당하고 만다. 33세에는 결연한 각오로 자비 출판을 계획하고 장인에게 자금 원조를 부탁하는데 이 작품이 1906년 35세에 출간되는 《파계(破戒)》다. 천민 계급의 차별 문제를 픽션으로 다룬 것으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출세작이며 일본 자연주의 작품의 기념비적 작품이라 일컬어진다. 1908년, 과거 22세 때 제자를 사랑한 나머지 학교를 사직하고 여행을 떠났던 자신의 사건을 소설로 《아사히 신문》에 연재하고 간행한 것이 바로 《봄(春)》(1908)이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이른바 사소설 글쓰기가 유행하며 이 흐름이 일본 자연주의의 주류가 되었다. 39세에는 《집(家)》(1910)을 《요미우리 신문》에 연재하는데 출가한 누이의 가문과 친정의 두 가문의 가부장제하의 퇴폐와 붕괴의 과정을 그린 누이의 생애를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47세에는 상처하고 혼자 지내던 중 집안일을 돌보러 온 조카를 임신시킨 사실을 소설로 써서 발표하게 된다. 《신생(新生)》(1918)은 작가 자신의 치부 고백의 완결편이지만 “노회한 자기변명에 불과하다”라는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혹평을 듣기도 한다. 58세부터는 본 작품인 《동트기 전》 집필을 시작한다. 그동안 축적해 온 작가적 역량을 총동원한 비장한 글쓰기였는데 이 작품은 그가 평생 동안 일관되게 추구해 왔던 “자아정체성 찾기”의 일환으로 아버지를 추적한 것이며 그 아버지라는 메타포에 자신의 내적인 성찰과 고뇌도 함께 상감해 넣었다. 그와 동시에 프랑스에 도피 도중 우연히 목격한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전쟁 참화와 그에 따른 국가의 존재를 절감하면서 정치 시스템까지 아우르는 역사 소설을 써야겠다는 문학적인 사명감을 이 소설을 통해 실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4세에 이 작품을 완결한다. 그리고 72세에 소설 《동방의 문》을 집필하던 중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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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구치 이치요 (지은이)    정보 더보기
본명은 히구치 나쓰(樋口奈津). 1883년 12세에 세이카이(靑海) 소학교 고등과 4년급(초등학교 5학년에 해당) 수석 졸업이 최종 학력이지만, 에도 하급 무사였던 아버지의 도움으로 1886년 15세에 하기노샤에 들어가, 동문인 미야케 가호와 가깝게 지내며 훗날 소설가로 등단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큰오빠인 센타로(泉太郞)가 폐결핵으로 사망하자 1888년 17세에는 이치요가 히구치 집안의 호주가 되었고, 이듬해 아버지가 병으로 사망하였다. 1890년에 어머니, 언니와 함께 혼고 기쿠사카초(本鄕菊坂町)로 이사했다. 빨래나 바느질로 생계를 꾸려갔는데, 미야케 가호가 소설 『덤불 속 꾀꼬리』로 인정받아 신진여류작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것에 자극받아 소설을 쓸 생각을 하였던 듯하다. 1891년부터『가레오바나(枯尾花: 마른 참억새꽃)』를 비롯한 5편을 동인지에 게재하다가 1892년에 미야케 가호의 소개로 『우모레기(うもれ木: 매목)』를 발표하며 원고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 후 2편의 소설을 발표하고, 혼고(本鄕)에서 류센지초(龍泉寺町: 속칭 다이온지 앞, 大音寺前)로 이사하여 철물·완구·과자 등을 파는 작은 가게를 시작하였지만 잘되지 않았다. 2편의 소설을 또 발표하고, 1893년에는 장사를 그만두고 혼고 쪽으로 다시 이사하였다. 그 후 『오오쓰고모리(大つごもり: 섣달 그믐날)』를 비롯하여 『다케쿠라베(키재기)』, 『주산야(十三夜: 십삼야)』, 『니고리에(にごりえ: 탁한 강)』등 14개월 동안 무려 11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 후에도 소설과 수필, 일기를 집필하고, 와카 8수를 발표하였다. 1896년 9월 9일에는 하기노샤의 와카 모임(歌會)에 출석하였으나, 11월 23일 폐결핵이 악화하여 25세로 사망하였다. 다음 해에『이치요 전집(一葉全集)』이 간행되었으며, 살아생전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생한 이치요가 아이러니하게도 2004년에는 5000엔권 지폐 속 인물로 채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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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무라 고타로 (지은이)    정보 더보기
일본 근대 시의 완성자, 다카무라 고타로는 평생 700여 편에 달하는 시를 발표했으며, 이외에도 엄청난 양의 시론, 미술론, 번역, 에세이 등을 남겼다. 또한 조각가로서도 크게 활약해 70여 점의 작품을 완성했다. 일본 불교 목조각의 전통 계승자로 도쿄미술학교의 조각과 교수이기도 했던 아버지 고운(光雲)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조각을 접했다. 1898년 도쿄미술학교에 입학하고 졸업 후, 1906년 2월에서 1909년 6월에 걸쳐 미국 뉴욕,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한다. 이 시기, 서구 문명과 그 속에서 형성된 근대적 자아를 체득하게 된 고타로는 귀국 후 제2의 고운이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와 갈등하고, 파벌이나 연고가 지배하는 구태의연한 일본 예술계에도 크게 실망한다. 이에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모임인 ‘판(Pan) 모임’에 참여해 질풍노도의 방탕한 시절을 보낸다. 1910년 4월, 일본 최초의 화랑 ‘로칸도(琅?洞)’를 열기도 했으나, 결국 실패로 끝난다. 그사이 1911년 1월, 잡지 《묘성》에 다섯 편의 시를 게재하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시작한다. 또한 이때 그의 삶을 흔든 여인, 나가누마 지에코(長沼智惠子)를 처음 만난다. 1912년 6월, 고타로의 아틀리에가 완성되자 지에코가 축하 화분을 가지고 왔고 월말에는 화랑 ‘로칸도’에서 그녀의 선면화(扇面畵)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지에코와 사랑에 빠진 고타로는 낮에는 조각을, 밤에는 문예 창작 활동을 지속하여 1914년 10월, 첫 시집 《여정》을 출판한다. 12월에 결혼한다. 이후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나자, 이를 계기로 고타로의 시 세계에 변화가 일어난다. 물질문명, 권력, 사회 제도, 인습에 대한 분노를 담은 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타로는 생전에 이 시기 작품들을 모아 “맹수 시편”이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간행하려고 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1931년부터 지에코가 정신 이상 증상을 보이다 결국 1935년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 그로부터 3년 뒤에 사망하면서 그의 삶이 또 한번 격동한다. 그녀와의 만남과 사랑, 결혼 생활, 투병 모습, 그리고 임종 순간을 그린 시를 모아 1941년에 두 번째 시집 《지에코초》를 간행한다. 이 시집은 지금까지도 일본의 국민 시로 사랑받고 있다. 지에코의 사망 이후, 1941년 감행된 진주만 기습 공격으로 일본 사회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몰아쳐 들어간다. 고타로는 일본 정부 정책에 찬동해 전쟁 협력의 길로 접어든다. 이때 간행된 것이 전쟁 찬양 시집 《위대한 날에》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전하자 고타로는 자신의 전쟁 책임을 인정하고 이와테현 하나마키시 교외에 오두막을 짓고 자급자족 생활을 하면서 자기반성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1947년 7월, 자신의 일대기를 편년체로 그린 시 스무 편을 “바보 소전”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고 1950년에 간행된 시집 《전형》에 수록한다. 1952년 10월에 아오모리현의 위탁으로 동상을 제작하기 위해 도쿄로 돌아온 고타로는 이듬해에 작품을 완성하고 난 뒤, 1956년 4월, 폐결핵 악화로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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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토미 로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68년 구마모토현 출생. 1889년 도쿄로 올라와 언론인이자 사학자였던 형 소호가 운영하던 민유사에서 편집기자로 일하며 톨스토이 작품에 심취했다. 1890년 소설 『불여귀』로 이름을 알렸고, 1900년 자연 사색 수필 『자연과 인생』을 선보여 호평받았다. 그해 출판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활동하며 사실적 자연주의 작품을 다수 발표했다. 1906년 예루살렘을 순례하고 돌아와 『순례기행』을 선보였으며, 이듬해 톨스토이처럼 교외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지렁이의 농담』, 『신춘』 등을 남겼다. 1927년 9월 18일 쉰아홉 살에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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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미 교카 (지은이)    정보 더보기
메이지 시대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인 오자키 고요 중심의 ‘겐유샤(硯友社, 벼루 동인)’ 작가다. 어머니는 전통 가면극 노(能)의 큰북 고수의 딸로 교카가 9세 때 사망했다. 11세부터 아버지와 함께 부처의 부인 마야(摩耶) 신앙을 갖기 시작했다. 18세에 고요의 문하생이 되어 사사한 이래 평생의 은인으로 존경했다. ≪고야산 스님(高野聖)≫으로 인기 작가가 되었다. 괴기 취미와 특유의 낭만주의에 의해 일본 근대 환상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작으로 ≪야간 순경(夜行巡査)≫, <외과실(外科室)>, ≪데리하 교겐(照葉狂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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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2년 일본 도쿄의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1913년 도쿄제국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14년 기쿠치 간, 구메 마사오 등과 함께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하고 〈라쇼몬〉, 〈코〉 등을 발표했는데, 〈코〉가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극찬을 받으면서 문단에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합리주의와 예술지상주의의 작풍으로 시대를 풍미했으나 말년에는 자신의 삶을 조롱하는 자조적인 작품들을 많이 썼다. 서른다섯 살 되던 해인 1927년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은 일본 근대사에서 관동대지진과 견줄 만큼의 사회적 충격이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1935년 일본 출판사 문예춘추의 사주이자 아쿠타가와의 친구였던 기쿠치 간이 아쿠타가와 상을 제정, 현재까지도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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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미쓰 리이치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8년, 후쿠시마 현(福島縣)에서 태어났다. 1917년 ≪문장세계≫에 <신마(神馬)>를 투고한 것을 시작으로, <활화산>, <불> 등을 발표했는데, 초기 작품에는 사소설적인 소재가 많았다. 이후 <파리>, <태양>, <마르크스의 심판>, <옥체> 등을 연이어 발표함으로써 신진 작가로서 빛을 발했다. 1928년 이후 <눈에 보인 이>, <신감각파와 코뮤니즘 문학> 등을 통해 유물론적 문학론에 대한 자신의 주장과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대한 대항 의식을 표면화했다. 그러나 1930년, 심리와 감각의 얽힘이 두드러진 <새>와 <기계>를 발표함으로써 신심리주의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다. 1936년 유럽 여행 경험을 토대로 서양 사상과 일본의 고신도(古神道), 그리고 과학과 일본 사상을 다룬 장편 소설 ≪여수(旅愁)≫의 신문 연재를 시작한다. 1945년 야마가타 현(山形縣) 소개지에서 패전을 맞이했는데, 그 충격으로 건강이 악화된 상황에서도 전시하의 답답한 심경을 그린 ≪밤의 구두≫와, ≪우아한 노래≫를 출판한다. ≪여수≫를 미완으로 남긴 채, 1947년 단편 <남포등>을 집필하던 중 위궤양과 복막염으로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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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철 (옮긴이)    정보 더보기
≪일본 명단편선≫(지식을만드는지식, 2015∼2021) 주제별 전10권을 기획했다. 한일비교문화연구소 소장. 한국외국어대학교 및 동 대학원(일본문학) 수료, 도쿄대학 대학원(비교문학비교문화) 박사과정 수료.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일본연구소장, 외국문학연구소장, 도서관장, 일본어대학장과 세계문학비교학회장, 한국일어일문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사회 봉사로는 한국문학번역원, 대산문화재단, 대한민국학술원 등의 심사 위원을 역임하고, 서울시교육청동대문도서관과 협력하여 시민인문대학을 개설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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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신 (지은이)    정보 더보기
경북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경북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서정주 시의 변모 과정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9년 2월에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일어일문학과에서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郞) 시에 나타난 공간의 표상 연구〉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5년 8월부터 경북대학교에서 문학의 이해와 한국문학의 이해 등을, 2008년부터는 대학 글쓰기 등을 가르쳐 왔으며, 현재는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연구원, 제주대학교 재일 제주인 센터 특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서정주 시정신》(국학자료원, 2002), 《한국 근·현대시 바로 보기》(새미, 2009), 《고통의 시 쓰기, 사랑의 시 읽기》(아모르문디, 2019)가 있고, 논문으로는 〈다문화 시대의 한국 현대시 고찰?하종오 시에 나타난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을 중심으로〉(2019), 〈한국 현대시 속 정신병동과 감옥 공간에 대한 고찰?이승하의 《감시와 처벌의 나날》을 중심으로〉(2021), 〈영화 기법을 통해 본 백석 시 연구?〈여우난곬族〉과 〈木具〉, 〈국수〉에 나타난 인물과 음식을 중심으로〉(2021), 〈최승자 시에 나타난 예언성과 우주적 상상력 번역 텍스트 《영혼의 집》이 《연인들》, 《쓸쓸해서 머나먼》에 미친 영향 관계를 중심으로〉(2022) 등이 있다. 시집으로는 《묘비묘비묘비》(시세계, 1992), 《이 그물을 어찌하랴》(문학의전당, 2008),《당신이 나의 배후가 되었다》(문학의전당, 2020)가 있다. 공역서로 《지에코초》(지식을만드는지식, 2020), 《일본 명단편선 7》(지식을만드는지식, 20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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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언 (옮긴이)    정보 더보기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와세다대학 대학원을 수료하고, 오차노미즈대학 대학원 문학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성신여자대학교 명예교수다. 논문은 <二葉亭四迷 研究>, <Charles Dallet 저 ≪한국천주교회사(韓国天主教会史)≫(1874)의 일본에서의 수용>(≪일본언어문화≫ 제21집) 등이 있다. 저서는 ≪일본단편소설 해설 감상≫(진명출판사), 번역은 ≪세계문학 전집≫ 14, 15권 일본문학 편 ≪백인(白人)≫ 외(삼성출판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전집≫(조사옥 편) I, III권 ≪무도회≫ 외(제이앤씨), ≪오타 쥴리아≫, ≪남편 엔도 슈사쿠를 말한다≫, ≪아름다운 사람에게≫ (이하 성바오로출판사)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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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난희 (옮긴이)    정보 더보기
중앙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다. 저역서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문학의 이해≫, ≪20세기 일본 문학의 풍경≫, ≪일본 근대 작가·작품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전집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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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옮긴이)    정보 더보기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 일본문화연구전공(日本文化研究専攻) 석·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일어일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부 강사로 재직 중이다. 일본 고전 문학을 전공했으며, 현재는 일본 문학 전반, 일본 문화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공저로 ≪일본 문학의 기억과 표현≫(제이앤씨, 2015), ≪놀이로 읽는 일본 문화≫(제이앤씨, 2018)가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源氏物語≫における薫の主人公性に関する一考察−薫の人物造型と<まめ>とのかかわりを中心に−>(2015), <薫と浮舟−宇治十帖後半部の物語における男と女−>(2017), <浮舟巻の方法ー物語の方法としての<関係>を中心に−>(2018), <柏木物語の方法と表現−光源氏物語における位置を中心に−>(2019) 등이 있다. 공역서로 ≪우지 습유 모노가타리≫(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9), ≪일본 명단편선≫(지식을 만드는 지식, 2020년 출간 예정), ≪사이카쿠의 여러 지방 이야기≫(지식을 만드는 지식, 2020년 출간 예정)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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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진 (옮긴이)    정보 더보기
중앙대학교에서 일본 근현대문학을 전공,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의 동시대성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연구하고 있다. 발표 논문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연구-인물들의 지진 후 심리 상태를 중심으로>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고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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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옮긴이)    정보 더보기
성균관대학교 졸업 후 시라유리(白百合)여자대학 대학원 아동문학전공 연구생 수료 후 도쿄대학 총합문화연구과(초역문화과학전공 비교문학비교문화코스)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일본 센슈대학과 경원대학교 강사를 역임하였으며 성균관대학교의 BK박사 후 연구원과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동대학의 비교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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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옮긴이)    정보 더보기
중앙대학교에서 문학박사를 취득했다. 중앙대학교, 서울여자대학교 강사를 역임했다. 대표 업적은 박사학위 논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문학에 나타난 서정>이 있고, 역서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전집≫(1권∼8권, 제이앤씨, 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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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국화의 계절이 되었다. 그 산뜻한 향기와 조신하고 귀여운 꽃송이의 모습, 가지의 멋스런 모양새, 잎사귀의 빛깔, 어느 것 하나 은연중에 보는 이의 마음을 아름다운 세계로 불러들이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국화의 범주에 속하는 어떤 꽃은 속된 취향으로 유별나게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것도 더러 있기는 하다. 특히 요즘 널리 퍼져 상품화된, 그럴싸한 이름이 붙은 꽃을 마치 조화처럼 둥글게 묶어 비단 주머니에 넣어 만든 축하용 장식품은 유럽에서 다시 일본으로 되돌아온 유행으로, 그다지 좋은 느낌이 들진 않는다. 여러 해 전부터 이 달리아 향이 나는 국화는 어쨌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그 깊고 진한 향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름다움을 기준으로 이야기하자면, 꽃잎의 겉면과 뒷면이 각기 다른 다홍색인 가장 세련된 두 가지 빛깔을 띤 전통적인 국화가 본래 갖고 있는 아름다움과는 조금 다른 방면으로 발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또한 나이든 사람의 감성일지 모르겠다.
-고다 로한, <국화-먹거리로서의>


갑자기 울리는 소리가 나더니 아, 하는 외침이 귓가에 들렸을 때 ‘그’의 몸은 이미 절벽에 걸려 있었다. 미끄러져 떨어졌고, 바닥으로 떨어지려 할 때 ‘그’는 한 줄기 억새풀을 움켜쥐었다. 손은 억새풀을 쥐었고 몸은 공중에 걸려 있었다.
“자네!”
그 1초 동안, 새파랗게 질린 그의 얼굴에는 공포와 실망, 애원이 한순간에 스쳐 지나갔다.
그 1초 동안, 절벽에 선 내 마음속에는 과거와 미래, 복수와 동정심 등 여러 가지 감정이 일어나 서로 싸웠다.
나는 그를 내려다보고 섰다.
“자네!”
애원하는 그가 움켜쥔 억새풀이 소리를 내며 뿌리째 뽑히려고 한다.
-도쿠토미 로카, <사생첩>


“드디어 봄이 왔어.”
“아, 예쁘네요.” 아내가 말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고 여위어 애처로운 손을 꽃을 향해 뻗었다.
“정말 예쁘지?”
“어디에서 왔을까요?”
“이 꽃은 마차를 타고, 바다를 건너 봄을 알리면서 와 주었어.”
아내는 그에게 꽃다발을 받아 양손으로 가슴 가득히 안아 쥐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밝은 꽃다발 속으로 창백해진 얼굴을 묻고 황홀하게 눈을 감았다.
-요코미쓰 리이치, <봄은 마차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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