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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90216043
· 쪽수 : 690쪽
책 소개
목차
서문_ 내 생애 꼭 하나뿐인 그를 추억하며
1장_ 어린 시절, 그리고 젊은 날
2장_ 도스토옙스키와의 만남, 결혼
3장_ 우리의 신혼생활
4장_ 해외 체류
5장_ 다시 러시아에서
6장_ 1872~1873년
7장_ 1874~1875년
8장_ 1876~1877년
9장_ 1878~1879년
10장_ 마지막 해
11장_ 도스토옙스키의 죽음과 장례식
12장_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에필로그_ 회고록에 부쳐
해제_ 잔인한 천재, 그 삶의 뒤안길
연보_ 도스토옙스키의 문학과 삶
책속에서
처음 언뜻 보았을 때 도스토옙스키는 아주 늙어 보였다. 하지만 말을 하기 시작하자 금방 젊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가 서른다섯에서 일곱 사이이지 그 이상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중간 정도의 키에 몸을 곧추세우고 있었고, 약간 성긴 곳도 있는 밝은 밤색 머리칼은 포마드를 잔뜩 발라 세심하게 정돈을 해놓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그의 눈 때문이었다. 두 눈이 서로 달랐던 것이다. 한쪽 눈은 갈색인데, 다른 쪽은 눈동자가 눈 전체로 확대되어 홍채가 보이지 않았다. 이 이중적인 눈 때문에 도스토옙스키의 시선에는 어딘지 수수께끼 같은 느낌이 풍겼다. 도스토옙스키의 얼굴은 창백하고 병적이었다. 그 얼굴이 내게는 너무나 친숙하게 느껴졌는데, 아마도 내가 예전에 그의 초상화들을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는 새롭게 받은 수많은 인상들의 세세한 측면을 잊어버릴까봐 두려웠던 까닭도 있다. 그리고 속기를 잊지 않기 위해서, 아니 속기의 숙련도를 더 높이기 위해서는 매일 실습을 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남편은 내게 너무도 흥미롭고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어서 그의 생각과 말들을 기록해 둔다면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읽어 내는 것이 좀 더 쉬울 것 같았던 것이다. 게다가 외국에서 나는 완전히 혼자였다. 내가 관찰한 것들을, 아니면 어쩌다 내 속에 생겨나는 회의들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까 일기는 내 모든 생각과 희망, 걱정들을 믿고 말할 수 있는 친구였던 셈이다.
“되돌려 놓을 수 있다면” 하고 그는 종종 말하곤 했다. “수정할 수만 있다면! 무엇 때문에 글이 잘 안 풀렸는지, 내 소설이 왜 성공하지 못할지 이제야 보이는군. 어쩌면 이 실수로 내 ‘사상’을 완전히 죽인 셈인지 몰라.”
그랬다. 그것은 실로 예술가의 비애였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명백히 알면서도 그것을 고칠 기회를 갖지 못한 예술가의 비애 말이다. 불행히도 그는 한 번도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다. 생계를 위해, 빚을 갚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그래서 몸이 아파도, 어떤 때는 발작이 있은 다음 날도 서둘러 일을 해야 했고, 기한 내에 글을 보낼 수 있도록 최소한의 선에서 필사본을 검토해야 했다. 그래야만 좀 더 빨리 돈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