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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시대 일반
· ISBN : 9791190238687
· 쪽수 : 328쪽
· 출판일 : 2022-10-28
책 소개
목차
머리말 | 조선왕조실록 완독의 즐거움
들어가기 전에 | 조선의 입과 귀 광화문에 서다
1장 예종, 자신의 기둥을 버리다
즉위하자마자 남이를 병조판서에서 해임하다
역사는 전쟁을 통해 영웅을 탄생시킨다 / 내 말은 옳다, 나는 죄가 없다
남이를 처형하다
속내를 드러낸 일생일대의 오산 / 유자광, 문효량과의 대질심문 / 나는 겨우 스물여섯인데 진실로 애석하다
정말 반역을 꾀했을까?
사나이 스무 살에 나라를 평정 못 한다면 / 혜성의 출현
[남은 이야기] 남이의 활
귀성군 이준, 예종의 기둥으로 만들다
이시애의 난은 왜 일어났을까? / 진압군의 책임자가 되다 /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다 / 한명회는 지는 해, 이준은 뜨는 해
[남은 이야기] 이준에 대한 세조의 사랑
27세 이준, 영의정의 독배를 마시다
세조의 파격적 발탁 / 영의정에서 3개월 후 쫓겨난 이유 / 신공신의 싹을 자르려는 구공신의 반격 / 두 번째 시련 / 이준의 좌절, 신공신의 좌절
[남은 이야기] 세조의 숨겨진 여인 덕중
두 곳의 명당을 빼앗다
명당을 찾아서 / 세 번째 복
2장 성종, 홍문관의 날개와 폐비 윤씨의 비극
예종 승하 당일, 성종이 왕위에 오르다
예종의 갑작스러운 변고 / 자산군이 주상자로 결정되다 / 8시간 만에 조선의 앞날을 결정하다
정희왕후, 정사를 청단하다
정희왕후가 국정 경험이 풍부했던 이유 / 과감한 호패법 개혁 / 가혹한 몽둥이 사용 금지 / 정책기준은 백성의 눈높이 / 정희왕후의 임금 교육법 / 철저한 주변관리 / 익명서와 노비소송
[남은 이야기] 자산군을 왜 주상자로 결정했을까?
성종의 홀로서기 ①–홍문관을 가두다
정희왕후와 원상이 떠난 빈자리, 홍문관의 부상 / 임사홍이라는 벽 / 위험한 발언 / 조선의 기록자 사관과 주서 / 합동상소 / 임사홍을 둘러싼 성종과 신하들의 대격돌 / 홍문관을 감옥에 가두다
[남은 이야기] 홍문관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
성종의 홀로서기 ②–홍문관을 신뢰하다
성종과 종친 이심원의 설전 / 이심원과의 면담으로 홍문관을 복직시키다 / 임사홍의 몰락 / 성종과 홍문관
[남은 이야기] 임사홍의 복수와 자멸
홍문관의 상소 ①–조정을 뒤흔들다
지독한 가뭄 / 홍문관의 가뭄 대책 상소, 조정을 흔들다 / 전례 없는 사직서 행렬 / 석 달 만에 비가 내리다
홍문관의 상소 ②–성종이 바뀌다
홍문관의 상소 / 홍문관 상소와 성종의 맞대응 / 초기와는 다른 불통의 모습
[남은 이야기] 궁궐의 숨은 실세, 봉보부인
두 번째 왕비 윤씨를 맞이하다
왕비 1순위가 된 이유 / 중전 즉위 3개월 만에 원자를 낳다 / 1차 중전 폐비 거론 사건 / 출궁 철회
중전 윤씨를 폐비로 내치다
2차 폐비 거론 사건 / 출궁 / 성종과 대왕대비의 증언 / 어찌 왕비의 탓으로만 돌립니까?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내리다
폐비 윤씨에 대한 성종의 분노 / 사약을 내리다 / 역사의 아이러니
최부, 표류에서 무사귀환하다
중국에서 들려온 뜻밖의 소식 / 제주에서 들은 아버지의 부고 / 망망대해에 표류하다 / 중국 절강성 영파부에서 만난 도적 / 절강성에서 수차를 보다 / 표류 6개월 만에 압록강을 넘다
최부의 『표해록』, 충과 효의 갈림길에 서다
최부의 임명과 서경 거부
[남은 이야기] 최부와 송흠의 말 이야기
3장 연산군, 최초의 반정으로 쫓겨나다
연산군, 왕에 오르다
준비된 나라의 새로운 왕 / 굴곡 / 학문을 싫어하는 세자 / 이해할 수 없는 명령들
대쪽 같은 최부와 연산군
성균관 생원을 가두다 / 우이독경 / 조정을 발칵 뒤집은 최부의 상소 / 삼사의 간언을 외면하다
최초의 사화를 일으키다
무오사화의 시작 / 김종직의 조의제문 / 무오사화의 이면
내시 김처선·김순손·김계경
연산군일기에 기록된 김처선 이야기 / 개인 기록물에 담긴 김처선의 간언 / 내시 김순손 / 내시 김계경
[남은 이야기] 내시의 구성과 역할
궁궐의 여인들 ①–궁녀의 다양한 삶과 죽음
정치는 궁중에서 시작된다 / 궁녀 선발이 화제가 된 이유 / 최고의 궁녀와 비련의 궁녀 / 임금의 허락으로 궁녀가 결혼한 경우 / 궁녀를 풀어주는 경우 / 생명이 끈질긴 궁녀 / 왕을 업
신여긴 궁녀
[남은 이야기] 세종 며느리의 비뚤어진 사랑과 두 궁녀의 비극
궁궐의 여인들 ②–궁녀의 별, 상궁
최고 직위 상궁, 누가 무엇을 했을까? / 단종 때 상궁 박씨 / 중종 때 상궁 박씨 / 저주 사건에 등장하는 상궁들 / 교자를 탄 상궁 / 궁궐 화재와 상궁 / 승은을 받은 궁녀들 / 상궁으로
살다간 최씨와 김씨
갑자사화와 연산군의 보복
부왕의 유훈을 어기고 / 피로 물든 궁궐 / 갑자사화
궁궐의 여인들 ③–권력을 공유한 장녹수
연산군을 단숨에 사로잡다 / 인사개입 / 처녀 차출에 손녀를 안 보낸 홍귀달 / 궁녀 전향과 수근비, 옥지향 / 재상을 겁박하는 장녹수의 종 / 장녹수의 집 / 중종반정이 일어나기 10일 전
반정으로 쫓겨나다
거사 당일 / 거사 당일의 연산군 / 거사 다음날
[남은 이야기] 연산군의 최후와 수구초심
[남은 이야기] 연산군의 부인과 자식들
4장 중종의 개혁정치, 조광조와 함께 사라지다
중종반정, 누가 왜 했을까?
성종과 연산군의 인척 박원종 / 박원종이 돌아선 이유 / 성희안은 왜 참여했을까? / 반정의 진짜 동기
첫 정사, 조강지처를 버리다
7일의 왕비 / 반정세력들은 왜 신씨를 내쫓았을까? / 중종은 정말로 그랬어야 했을까?
속내를 감추고 조광조를 죽이려 하다
경복궁의 소란한 밤 / 추국 / 하루 만에 돌변한 왕 / 중종의 속내
주초위왕, 대학자 조광조를 잃다
중종이 증거를 밝히지 않은 이유 / 사약
조광조를 죽이는 밀지
안달복달하는 임금 / 홍경주에게 내린 언문 밀지
중종의 개혁정치 진심이었나? ①–소격서 폐지와 부활
소격서 폐지 / 중종의 응어리
중종의 개혁정치 진심이었나? ②–현량과 설치와 폐지
과거시험 기피 현상 / 조선에서 딱 한번 치러진 현량과 / 현량과의 비극
중종의 개혁정치 진심이었나? ③–위훈삭제와 부활
세종은 왜 공신을 한 명도 임명하지 않았을까? / 중종반정의 공신 수는 왜 많았을까? / 공신 남발 / 정국공신 개정 / 정국공신 개정 10일 만에 철회
조광조에 대한 사랑이 증오로 바뀌다
성균관과 조광조 / 조정에 파란을 일으킨 첫 상소 / 왕의 신뢰, 파격 승진 / 중종에 대한 평가
작서의 변, 의심만으로 죄를 주다
경빈 박씨 / 작서의 변
경빈 박씨와 첫아들을 죽이다
경빈 박씨와 복성군의 죽음
[남은 이야기] 작서의 변과 세자궁 목패 사건의 진범
왕이란 무엇일까?
왕으로서의 무력감
[남은 이야기] 중종은 어떻게 생겼을까?
종계변무를 고치고자 하다
왜곡된 역사 / 중종의 노력 / 뜻밖의 희소식과 굴욕 / 모화관과 태평관에서
경회루 외교, 역사를 바로잡다
경회루에서 / 곤룡포를 질질 끌며 / 경복궁 잔치와 양화도 유람 / 190년 후에야 바로잡힌 역사왜곡
[남은 이야기] 중종의 의녀 대장금
신문고, 임금과 백성의 소통창구
신문고를 칠 수 있는 조건 / 초기에 신문고를 친 사람들은 대부분 사대부 / 신문고를 두드린 일반 백성 / 신문고로 벌 받은 이 / 무고금지법 / 부활한 신문고
상소, 임금과 신하의 소통길
집현전의 상소 / 출세의 디딤돌이 된 유자광의 상소 / 언로를 개방하소서 / 남명 조식의 상소 / 조헌의 지부상소
에필로그
저자소개
책속에서
귀성군 이준은 훈구대신들의 벽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세조가 이준에게 내린 4도 병마도총사→오위도총부 도총관→영의정 자리는 오히려 독배가 되어 그의 죽음을 앞당겼다. 세조는 남이와 이준을 등용해서 장차 세자(예종)가 왕위에 올랐을 때 도울 최소한의 시스템을 갖추고자 했다. 그러나 예종은 부왕의 바람을 이어가지 못하고 남이를 죽이고 이준을 내쳤다. 세조의 젊은 인재 등용은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났다.
_<1장 예종, 자신의 기둥을 버리다>
수렴청정은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임금과 신하들 사이에 발을 드리우고 정사를 처리하는 것으로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엄격하게 보면, 조선에서 수렴청정의 형태로 정사를 시작한 것은 13대 명종부터다. 그 이전 성종 때 정희왕후가 정사에 참여한 것은 ‘정사의 청단’이라고 한다. 청단은 신하들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하는 것이다. 즉, 정희왕후는 발을 드리워서 얼굴을 가리는 형태의 수렴청정은 아니었다. (중략)
정희왕후는 정사를 청단한 6일째 과감한 정책을 들고 나왔다. 바로 호패법 개혁이다. 예종의 갑작스러운 승하로 조정이 슬픔에 빠져 있고 장례절차를 논의하고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정희왕후는 원상 한명회와 최항에게 호패법 실시 이후 백성들의 삶이 더욱 궁핍해지고, 한성의 쌀값과 면포값이 치솟고 있다면서 호패법을 폐지하자고 했다. (중략)
“호패법을 실시한 목적, 즉 양민과 천민의 인구수는 이제 파악되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의 호패를 반납하지 않고, 호패가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의 호패를 차서 법을 어기고, 이에 따른 형벌이 가혹해져서 백성들이 고통스럽기에 폐지한다.”『성종실록』 즉위년 12월 6일
정희왕후는 조정대신들이 올리는 이야기를 듣고 정사를 판단하는 ‘청단’이 아니라, 자신이 정책을 들고 나와 호패법을 폐지하는 단호함을 보였다. 호패법 폐지로 자신이 국정의 최고 책임자임을 각인시켰다. 그녀가 이토록 서둘러 호패법 폐지를 밀어붙인 것은 세조 때 호패법 폐지 논쟁을 지켜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_<2장 성종, 홍문관의 날개와 폐비 윤씨의 비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