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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오이디푸스와 가족, 나는 아이가 아니다

안티 오이디푸스와 가족, 나는 아이가 아니다

신근영 (지은이)
  |  
북튜브
2020-09-01
  |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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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오이디푸스와 가족, 나는 아이가 아니다

책 정보

· 제목 : 안티 오이디푸스와 가족, 나는 아이가 아니다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91190351263
· 쪽수 : 104쪽

책 소개

사랑과 보살핌의 공간으로 여겨지는 가족. 하지만 이러한 ‘사랑’과 ‘보살핌’이 우리를 주저앉히는 것은 아닐까? 북튜브 출판사 ‘가족특강’ 시리즈의 세 번째 책 <안티 오이디푸스와 가족, 나는 아이가 아니다>는 이런 질문을 시작으로 우리 시대의 가족에 대해 고찰한다.

목차

책머리에

1부 _ 들뢰즈-가타리의 분열증적 상상

자본주의와 핵가족의 출현
번개와 피뢰침의 만남 : 들뢰즈와 가타리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분열증적 상상
유물론적 정신의학 :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결합

2부 _ 자본주의, 죽음을 향하는 욕망

자본주의, 죽음을 향하는 자발적 복종
‘오이디푸스’를 통해 만들어지는 주체

3부 _ 욕망-기계와 분열자의 산책

억압된 욕망과 욕망-기계
욕망-기계의 작동법 : 짝짓기로서의 기능과 생산
분열자의 산책

4부 _ 가족에서 벗어나 우주적 욕망으로

우주적 욕망의 가족적 경험으로의 축소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소유에의 욕망
“나는 아이가 아니다”

질의응답

저자소개

신근영 (옮긴이)    정보 더보기
'남산강학원' 연구원. 수학과 윤리학으로 대학 졸업장만 두 개.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졸업장일 뿐, 공부로 삶을 꾸려 나가기 시작한 것은 30대 중반 연구실에 와서부터다. 그 이후 삶이란 곧 배움의 길일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배움은 곧 우정의 길일 수밖에 없음을 조금씩 알아 나가는 중이다. 『칼 구스타프 융, 언제나 다시금 새로워지는 삶』, 『사람은 왜 아플까』를 썼으며, 함께 쓴 책으로 『고전 톡톡』, 『인물 톡톡』, 『루쉰, 길 없는 대지』가 있다. 낭송집 『낭송 금강경 외』를 풀어 읽었고, 『원자폭탄』(스티브 셰인킨)을 함께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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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과연 핵가족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핵가족은 유독 자본주의라는 시공간이 열리면서 같이 등장했는가? 왜 고대 그리스에는, 봉건제 사회에는 이런 식의 가족이 없었는가? 한마디로 ‘왜 자본주의는 핵가족과 함께 출현했는가’라는 질문이죠. 들뢰즈-가타리의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들뢰즈-가타리는 자본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핵가족이라고 하는 ‘모터’가 필요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엄마-아빠-아이로 이루어진 가족, 사랑의 결정체로서 가족이라는 것을 중심적인 ‘모터’로 장착했을 때 비로소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로서 작동할 수 있었다는 거죠.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기관이 가족입니다. 대통령이 없어도, 삼성이 없어도, 정부 기관이 없어도 자본주의는 굴러가요. 하지만 가족이 없으면 안 굴러가요. 왜? 프로이트가 이야기했듯, 자본주의에서 가족이란 우리의 무의식, 그러니까 우리 욕망의 배치가 구성되고 펼쳐지는 장소인 거죠. 그리고 그렇게 이뤄진 욕망이 바로 자본주의를 굴러가게 하는 힘이라는 거. 들뢰즈-가타리는 그렇게 보는 겁니다. 그래서 프로이트가 생각했던 오이디푸스적인 욕망, 혹은 이 욕망으로 이야기되는 가족, 이 가족이 자본주의라고 하는 사회체계와 아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자본주의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아요.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는 ‘누구에게 복종하고 있다’, 이런 느낌을 잘 못 받습니다. ‘우리 다 해방됐다.’ 이런 느낌을 가지고 살고 있죠. 그래서, 조선 시대 노비들이나 천민들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잖아요? ‘우리는 어쨌든 자유로워’, ‘우리는 더 이상 그런 식의 예속적인 굴레를 갖고 있지 않아’라고 우리 자신이 믿고 있어요. 그런데 들뢰즈-가타리는 ‘우리는 정말 예속의 굴레에서 벗어났는가?’라고 질문을 해요. 자본주의는 그 이전에 있었던 방식으로, 즉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복종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스스로가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을 욕망하고, 우리 스스로가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재생산하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거예요. 바꿔 말하면 자발적 복종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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