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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비평/칼럼 > 국제사회비평/칼럼
· ISBN : 9791190413329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21-11-19
책 소개
목차
•옮긴이 해제 _ 자본주의 비판, 그 마지막 퍼즐
•지은이 서문 _ 역사적 수명이 끝난 자본주의
I부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를 파괴하다_자본주의 해체의 경향과 그 징후
1장 오늘날 다시 읽는 『클레브 공작 부인』
“우리”와 “그들”, 200년 동안 적대해온 두 사회집단 | 자본주의 사회의 양적 평등성과 “계급투쟁” 개념 | 자본주의를 ‘지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 ‘다중’은 과연 혁명의 주체인가 | 자본주의는 자기 자신을 삼키는 괴물 53 | 변화된 전선, 붕괴하는 이분법 | 유일한 희망은 자본주의의 완전한 폐기
2장 정치 없는 정치
최종 심급으로서의 정치? | 투표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들 |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 | 정치적 재구성–물신성을 넘어 인간성으로
3장 무엇을 위한 폭력이며 누구를 위한 합법성인가
제도화된 폭력 | 다시 경찰국가로? | 게임의 유일한 지배자가 된 ‘국가’ 혹은 국가 폭력 | 국가에 대한 ‘올바른’ 투쟁? | 사보타주와 합법성의 한계–타르낙 사건과 『반란의 조짐』 | 저항하지도 탈주하지도 않는 현대인들
4장 재앙을 예고하는 대자보
그것은 ‘우리의’ 부채가 아닌 ‘자본의’ 부채 | 종말의 예감, 그러나 반복되는 ‘자본주의 구하기’ | 자본주의에는 애초 탈출구가 없다 | 질주하는 자본주의, 그 끝은 어디일까 | 자본주의 시스템의 생명 연장 비결 | 반복되는 자본주의 위기의 실체 | 이 지구에서 불필요한 존재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 인류 자신의 혁명이 필요하다 | “마침내 탈출구를 찾다!”–미지의 세계로 도약하기
II부 자본주의, 이해하거나 오해하거나?_다양한 대응 논리와 그 한계
5장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가치의 그늘
선물 이론과 마르크스주의 | 노동운동과 마르크스주의 | 마르크스의 가치 이론–가치, 추상노동, 물신주의 | 가치와 비非가치의 변증법 | 가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이뤄지는 ‘그림자 노동’ | 상품 형태에 종속된 삶을 벗어던지기
6장 장클로드 미셰아의 ‘자본주의 비판’과 ‘좌파 비판’에 대하여
현 단계의 자본주의는 팽창인가 몰락인가? | 좌파는 자유주의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 | 장클로드 미셰아의 한계 1–정치경제 비판에 근거하지 않는다 | 장클로드 미셰아의 한계 2–‘공동의 품위’와 ‘보통 사람들’에 관한 문제 | 초창기 사회주의로 회귀하는 것이 답일까? | 차악의 선택–“덜 터무니없는” 미래의 가능성? | 두려움과 원망, 원한을 넘어
7장 탈성장론자가 진정한 혁명가가 되는 길
“탈성장” 담론의 매력 | 상품 자본주의의 양면성과 상쇄 메커니즘 |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헛된 희망 | 두 갈래의 희망
8장 끔찍하고 위대한 이 유토피아에 저항하기
초고속열차 논란–기존 사회를 비판적으로 활용해야 할까? | 반유토피아적 비판–다른 세상을 상상하기의 어려움 | 정말 끔찍하게 유토피아적인 것
III부 자본의 독재와 ‘예술’이라는 상품_자본 지배하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
9장 고양이와 쥐, 경제와 문화
고양이와 쥐–물자의 생산과 의미의 생산 | ‘경제’에 항복한 문화와 예술 | 티티테인먼트–잉여들을 위한 노리개? | 인류학적 퇴행, 모든 사람의 나르시시즘 | 가난한 사람도 문화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 상품 앞에서 만인은 평등하다? | “위대한 예술”과 “대중” 예술, 그 차이의 가능성
10장 예술의 종말 이후의 예술
예술은 끝장났는가–기 드보르와 상황주의자들의 예술 | 현대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 상품이 지배하는 사회의 나르시시스트들 | “세상의 부재”–잘못된 관계를 다시 숙고하기 | 예술은 물신주의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 예술의 주변화를 넘어
책속에서
이 책의 모든 논의를 한마디로 ‘낙관적’이라거나 ‘비관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한편에서 가치비판론은 늘 자본주의의 추락 경향을 예측해왔다. 심지어 파국적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다니엘서 5장 25절)과 같은 ‘파국의 예고’라 할 수 있다. 성서에 나오는 이 신비한 말은 어떤 초자연적인 손이 바빌론 벨사살왕의 궁전 촛대 앞 석회벽에 쓴 것이다.
언젠가 파시즘이 한창 승리의 나팔을 불던 시기에 발터 베냐민이 한 말이 생각난다. “마르크스가 말하길, 혁명은 세계 역사의 기관차라 했다. 하지만 (…) 이제 혁명은 (인류 전체를 상징하는) 그 기차를 탄 승객들이 급브레이크를 작동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과연 이 급브레이크는 어떻게 작동할 수 있을까? 매주 토요일 데모 같은 것만으론 결코 가능하지 않다. 해가 멀다 하고 돌아오는 선거(투표)나 “소비자의 선택” 같은 걸로는 어림없다. 그런 방식으로는 절대 세상이 바뀔 리 없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가 근본을 놓치고 있어서다.
상품 사회 속 우리 삶의 토대란 무엇인가? 노동이 자본으로 전화하고 또 자본이 노동으로 전화하는, 일종의 영구운동이다. 즉 자본은 인간의 살아 있는 노동을 고용하여 생산적으로 소비함으로써 더 큰 자본을 만들어가고, 인간은 자신의 살아 있는 노동력을 팔아 자본의 몸집을 불려주는 대신 임금을 받아 소비를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그런데 바로 우리 눈앞에서 나날이 벌어지는 일들은, 인간의 산 노동living labor을 기술로 대체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인간의 살아 있는 노동이 자본의 생산과정으로부터 추방당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 가치 생산의 토대가 붕괴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