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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로 읽는 세계사

기독교로 읽는 세계사

(바티칸은 어떻게 역사에 군림했는가)

나이토 히로후미 (지은이), 이유라 (옮긴이)
  |  
역사산책
2021-01-25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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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로 읽는 세계사

책 정보

· 제목 : 기독교로 읽는 세계사 (바티칸은 어떻게 역사에 군림했는가)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세계사 일반
· ISBN : 9791190429085
· 쪽수 : 270쪽

책 소개

세계사를 이해하기 위한 비결 중 하나는 기독교의 역사를 아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가 유럽의 역사이자 바티칸에 있는 교황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세속적 권력과 얽히게 되면 바로 인간적인 역사로 탈바꿈한다. ‘신의 대리인’인 교황이 정치와 연관되었을 때는 어마어마한 권력 투쟁의 역사로 바뀌었다.

목차

1장 박해로부터의 출발 편
약소했던 기독교가 어떻게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될 수 있었는가

17 초대 교황 베드로의 순교 ● 로마 교황이 가톨릭에서 특별한 존재인 이유
20 [칼럼] 바티칸의 의문 ①
22 교세의 확장 ● 3세기에 황제의 구심력이 약해진 제국에 기독교가 전파되다
25 기독교 탄압 ● 왜 로마 황제들은 기독교인에게 위해를 가했는가?
28 밀라노 칙령 ●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에 호의를 보인 이유
31 [칼럼] 바티칸의 의문 ②
33 니케아 공의회 ● 황제가 제1차 공의회를 주최하다
35 교황 실베스테르 1세의 허영 ● 로마 황제의 ‘밑’이 되는 것을 거부하며 공의회에 결 석하다
36 콘스탄티노플 천도 ● 동쪽으로 수도를 옮기며 로마 교회에 강력한 맞수가 등장하다
38 라틴어 성경 번역 ● 로마 제국에 기독교를 뿌리내리게 한 언어 전략
40 국교화 ● 기독교가 국가의 핵심이 되며 로마 신들에 대한 신앙이 금지되다
43 로마 제국의 와해 ● 몰락한 서로마 황제를 대신해 교황이 로마의 수호자가 되다
46 아리우스파 테오도리크 대왕 ●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이탈리아를 지배한 이단의 왕
48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간섭 ● 동로마 제국이 세력을 회복하며 로마 교황을 지배하다
51 랑고바르드족의 침입 ● 로마 교회를 괴롭힌 두 개의 족쇄
53 베네딕토파의 활약 ● 이단인 아리우스파 게르만족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다
56 이슬람의 침공 ● 이교도 전쟁의 승리는 무엇을 가져왔는가
57 갑작스러운 성상 파괴령 ● 로마 교회가 동로마 제국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되다

2장 교회 권력의 확립 편
카롤루스 대제의 대관식으로 우월함을 드러내지만, 로마 교황의 수난은 계속된다

63 피핀의 프랑크 왕국 왕위 찬탈 ● 교황은 왜 프랑크 왕국에 접근했는가?
66 피핀의 기증 ● 프랑크 국왕에게 받은 토지가 교황령의 시작이 되다
68 콘스탄티누스의 기증 ● 교황 스테파노 2세의 속임수가 피핀의 기증을 탄생하게 했다!
70 카롤루스 대제의 성전 ● 영토에 대한 욕심과 교황을 지키려는 마음이 합쳐져 정복에 열중하다
71 카롤루스 대제의 대관 ● 레오 3세가 집전한 대관식과 서로마 제국의 부활이 서유럽의 원점이 되다
75 카롤링거 왕가의 내분 ● 마침내로마교황에게의존하기시작한카롤루스대제의자손들
78 시체 재판 ● 황제가 없는 시대, 교황은 이탈리아 귀족의 꼭두각시가 되었다
80 도색 정치 ● 유력가의 여자들이 교황을 차례로 갈아치우다
83 오토 1세의 대관 ● 서로마 제국과 카롤링거 제국을 계승한 신성 로마 제국의 탄생
86 신성 로마 황제 대 로마 교황 ● 황제는 교황의 수호자이며 파괴자였다
88 사유 교회 제도 ● 봉건 영주가 세운 교회와 수도원이 기독교를 전파하다 
90 제국 교회 정책 ● 성당과 수도원을 신성 로마 황제의 직속으로 삼은 이유 
92 노르만족이 날뛰다 ● 바이킹의 습격 때문에 신앙심이 깊어지다
95 [칼럼] 바티칸의 의문 ③

3장 절정의 십자군 편
신성 로마 황제가 족쇄에서 벗어나자, 교황은 ‘신의 적’이라며 배격하기 시작했다

99 클뤼니 수도원의 개혁 ● 교회의 신성화에 기여한 반부패 운동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101 황제 하인리히 3세 ● 황제가 교회 개혁에 공감하며, 기이한 3인 교황의 시대를 끝내다
103 노르만족의 남이탈리아 침공 ● 노르만족과의 전쟁이 동로마 제국과의 결별로 이어지다
106 그레고리오 개혁 ● 신성 로마 황제로부터 자립하고자 한 교황의 개혁
108 [칼럼] 바티칸의 의문 ④
109 노르만 정복 ● 교황의 권위를 드러내는 역사적 대사건
111 카노사의 굴욕 ● 교황 그레고리오 7세에게 완전히 굴복한 신성 로마 황제 하인리히 4세
114 황제 하인리히 4세의 반격 ● 교황과 신성 로마 황제의 대결 제2라운드는 황제의 역전승으로 끝나다
117 교황 우르바노 2세의 십자군 ● 십자군 성공이 교황의 권위를 절정으로 끌어올리다
121 보름스 협약 ● 성직 서임권 투쟁이 끝을 맺고, 그레고리오 개혁의 목적도 달성하다 
125 바르바로사의 압력 ● 왜 황제 프리드리히 1세는 이탈리아 제패에 나섰는가?
128 십자군 파탄 ● 십자군의 잇따른 실패로 인해, 교황의 권위 상승도 한계에 부딪치다 
130 교황 인노첸시오 3세 ● 강한 권력을 휘둘러 세 명의 황제와 왕을 파문하다 
132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도미니코 수도회 ●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절정을 뒷받침한 새로운 수도회
134 알비주아 십자군 ● 이교도도 아닌데 왜 탄압을 당했는가? 
136 유대인 박해 ● 나치의 ‘다비드의 별’로 이어지는 기독교의 불관용과 차별 의식 
138 이단 심문 ● 일류 교양인조차도 이단을 적시하고 탄압했다
141 교황의 친족 경영 ● 타락과 절정을 동시에 의미하는 이유
142 이색 황제 프리드리히 2세 ● 중세 교황에게 최후의 위협이 되었던 신성 로마 황제 
143 기벨린 대 겔프 ● 황제당과 교황당의 대립이 이탈리아를 내전으로 몰아넣다
146 북방 십자군 ● 독일 기사 수도회에 의한 동방 식민이 새로운 독일을 탄생시키다

4장 교회 대분열에서 종교 개혁까지 편
프랑스의 간섭, 흑사병, 부패로 인해 몰락하는 가톨릭과 급부상한 신교

153 샤를 당주의 압력 ● 독일의 위협을 없애려는 교황이 프랑스 세력을 끌어들이다
156 아나니 사건 ● 교황의 절대 우위를 목표하지만, 프랑스 국왕과의 투쟁에서 패배하다
159 국왕의 신성과 민족의식이 싹트다 ●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가 교황에게 굴복하지 않은 이유
161 교황의 아비뇽 유수 ● 약 70년 동안 교황청을 프랑스에 두다
164 대분열 ● 교황청은 왜 로마와 아비뇽으로 분열되고 말았는가?
167 콘스탄츠 공의회 ● 오스만 제국의 위협이 교회의 대분열을 종식시키다
169 후스 전쟁 ● 종교 개혁의 선구자 후스의 처형에 보헤미아 주민이 봉기하다 
171 메디치 가문과 유착하다 ● 로마 교황청의 금고지기로 번영하기 시작한 메디치 은행
173 동로마 제국 멸망 ●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이 로마의 안정과 르네상스를 가져왔다
175 파치가의 음모 사건 ● 메디치가의 포위망을 구축하다 로렌초에게 역습당한 교황 식스토 4세
177 사보나롤라 대 알렉산데르 6세 ● 가장 타락한 교황이 이탈리아의 위기를 기적적으로 구하다
181 체사레 보르자의 야심 ● 교황의서자는강력한세속군주에의한이탈리아통일을목표했다
183 교황 율리오 2세의 모순 ● 교황의권위는재건되었으나이탈리아는열강의각축장이되다
186 [칼럼] 바티칸의 의문 ⑤
187 중남미로의 확대 ● 스페인의 신대륙 진출과 연결된 가톨릭 선교
190 종교 개혁 ● 가톨릭이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최후의 군사적 대승리를 거두다
193 로마 약탈 ● 로마 교황은 이제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196 아우크스부르크 화의 ● 프로테스탄트와 타협 끝에 맺은 평화 조약에 종교의 자유는 없었다
198 칼뱅파 ● 근대화의 엔진이 된 강한 직업의식과 축재 의식
200 영국 국교회의 성립 ● 로마 교회의 족쇄에서 풀려난 헨리 8세의 잉글랜드
202 가톨릭 개혁과 예수회 ● 로욜라와 사비에르에 의한 수도회가 가톨릭의 재부흥에 앞장서다
203 레판토 해전 ● 가톨릭이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최후의 군사적 대승리를 거두다
205 위그노 전쟁과 네덜란드 독립 전쟁 ● 프로테스탄트와의종교전쟁에서열세가된가톨릭 
207 일본 기독교의 탄압 ● 에도막부는가톨릭의침략을두려워해신분증명제도를실시했다
210 청교도 혁명과 30년 전쟁 ● 영국과 독일에서 피가 피를 부르는 종교 대립이 일어나다
213 [칼럼] 바티칸의 의문 ⑥
214 베스트팔렌 조약 ● 신성 로마 제국의 사망 진단서는 로마 교황의 무력화를 의미했다

5장 이탈리아 통일과 정교분리 편
국가의 시대에 저항한 교황은 신뢰를 잃고, 스스로를 죄인으로 여겼다

219 갈리아 주의 ● 국왕이 가장 존엄한 존재라고 주장한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
222 명예혁명의 진상 ● 가톨릭 왕을 추방한 종교 사건
223 청나라 제사 문제 ● 가톨릭의 집안싸움으로 중국 선교에 실패하다 
226 예수회의 절멸 ● 어째서 가톨릭 전도의 일등공신이 해산하게 되었는가?
228 [칼럼] 바티칸의 의문 ⑦
230 프랑스 혁명 ● 이성이 절대시되며 반가톨릭 운동이 과열되다
232 나폴레옹의 폭풍 ● ‘혁명의 아들’의 등장으로 교황 존립의 최대 위기가 닥치다
236 이탈리아 통일 운동 ● 이탈리아 국민을 실망시킨 교황 비오 9세의 배신
239 바티칸의 죄수 ● 이탈리아 왕국을 인정하지 않던 교황 비오 9세가 고립되어 바티칸에 틀어박히다
242 프랑스의 정교분리 ●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약 1세기 뒤, 정교분리가 확립되다
243 바티칸 시국 ● 무솔리니의 체제 유지를 위한 이해타산이 바티칸 시국을 탄생시키다
246 히틀러에게 접근하다 ● 교황과 나치의 연결고리는 반공주의였다!
248 제2차 세계대전 ● 유대인을 보호하면서도 나치에 대한 비판을 꺼린 교황 비오 12세

마치며 평화의 사도 편
세계는 왜, 다시금 로마 교황을 필요로 하는가

255 교황 요한 23세 ● 미국과 소련의 냉전 아래 시작된 교황의 새로운 시도
257 순례자 교황 ● 교황의 부정적 이미지를 새롭게 바꾼 바오로 6세의 세계 순례 
260 폴란드의 연대 ● 교황의 모국 방문이 냉전 종식에 공헌하다
262 세계의 필요 ● 많은 정보력과 신자 덕분에 존경받다
264 [칼럼] 바티칸의 의문 ⑧

저자소개

나이토 히로후미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61년생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 출판사에서 근무했으며 현재는 역사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양사에서 동아시아사, 지리, 문화, 종교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에 정통한 지식을 바탕으로 열정적으로 집필하고 있다. 저서로 『지정학으로 읽는 근현대사』, 『제대로 이해하는 영국의 역사』, 『기독교로 읽는 세계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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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라 (옮긴이)    정보 더보기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일본학을 전공하고 일본 리츠메이칸대학교 문학부에서 공부했다. 단편소설로 등단한 뒤 고등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면서 바른번역 소속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스스로 빛나지 않는 달처럼, 원작의 빛을 가장 잘 전달하는 번역가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옮긴 책으로 《나에게 읽어주는 책》, 《매일매일 좋은 날》, 《계절에 따라 산다》, 《모두를 위한 세계사 인물사전》, 《명화로 읽는 합스부르크 역사》, 《명화로 읽는 부르봉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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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기독교의 역사를 알면 세계사의 진상(眞相)이 보인다

세계사를 이해하기 위한 비결 중 하나는 기독교의 역사를 아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가 유럽의 역사이자 바티칸에 있는 로마 교황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수많은 사람이 믿는 종교다. 예수의 가르침에는 자비가 넘치고, 가톨릭 세계를 통합하는 로마 교황은 ‘평화’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기독교가 세속적 권력과 얽히게 되면 바로 인간적인 역사로 탈바꿈한다. 특히 ‘신의 대리인’인 로마 교황이 정치와 연관되었을 때는 어마어마한 권력 투쟁의 역사로 바뀌었다. 교황은 카리스마와 권위, 나아가 거대한 부를 소유했고, 그 힘을 이용해 폭력 행사를 마다하지 않는 국왕과 귀족을 상대해왔다. 그 중에는 그레고리오 7세처럼 황제를 굴복시킨 교황도 있고, 나폴레옹에 의해 감금당하는 비극을 맞은 비오 7세 같은 교황도 있었다.
중세 시대의 로마 교황은 황제와 국왕 위에 있는 지배자였고, 유럽의 역사는 교황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쟁의 역사였다. 교황, 황제, 국왕이 서로 경쟁했으며 16세기에는 프로테스탄
트가 교황에게 반기를 들었다. 과학이 진화하면서 국왕도 민중도 교황을 떠나갔다. 프랑스 혁명은 반가톨릭 운동이었고, 민주화와 근대화가 진행될수록 교황은 반근대의 상징이 되었다. 교황에게 거리를 두게 되면서, 정교분리를 택한 근대 국가가 형성되었다.
그 후 교황의 지위는 땅에 떨어졌다. 하지만 최근 교황의 중요성을 다시 주목하는 것은 여전히 교황이 가톨릭의 통합자이며, 유구한 역사를 짊어지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로마 교황보다 오랜 역사를 가졌던 로마 제국 황제나 고대 중국 황제는 옛날 옛적에 멸망했다. 교황과 격전을 벌였던 신성 로마 제국(독일) 황제와 프랑스 국왕의 모습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거의 이천 년에 달하는 교황과 엇비슷한 역사를 가진 존재는 일본의 천황가 정도지만, 교황은 천황가와 달리 국제적 위상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로마 교황 같은 구심력을 가진 종교적 존재는 이 세상에 오직 교황뿐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가진 이슬람교의 경우, 무슬림 전체를 통합하는 종교적 지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가톨릭의 대항마인 개신교에서도 프로테스탄트를 통합하는 지도자는 없다. 오직 로마 교황만이 가톨릭을 통솔하며 이천 년에 걸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그래서 로마 교황의 역사를 알면 세계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는 기독교, 특히 로마 교황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어 세계사를 탐구해 나가고자 한다.


초대 교황 베드로의 순교
- 로마 교황이 가톨릭에서 특별한 존재인 이유-

가톨릭의 총본산은 오랫동안 로마에 있었다. 시대에 따라 로마가 아닌 도시에 교황청이 있었던 적도 있지만, 그래도 로마는 기독교인에게 특히나 신성한 도시였다. 베드로가 순교한 땅이 바로 로마이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예수의 최초의 제자였으며, 예수를 따르는 제자 중에서도 각별한 존재였던 열두 제자, 12사도의 중심에 있었다. 그뿐 아니라 예수가 기독교를 맡긴 인물이기도 했다.


기독교 탄압
-왜 로마 황제들은 기독교인에게 위해를 가했는가?-

3~4세기 기독교가 로마 제국으로 퍼져나가던 무렵에 기독교는 자주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기독교를 탄압하던 막시미누스 트락스 황제(재위 235~238년), 발레리아누스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시대에는 순교자가 끊이지 않았다.
로마 황제가 기독교를 탄압한 것은 황제 숭배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이며, 다른 종교의 신들을 신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기존에 로마인들이 믿던 신들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것이 로마 황제 숭배에 대한 거부로 이어지자, 이에 격분한 로마 황제는 기독교인에게 보복을 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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