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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1859034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21-09-06
책 소개
목차
사랑이라는 이름의 종교─머리말을 대신하여 … 05
1부 왜 ‘첫비’는 없는데 ‘첫눈’은 있는가
연인들의 새벽 : 불면이라는 사랑의 형식 … 18
한때 : ‘기쁨’에의 몰입 … 22
첫눈 내리는 날 : 최초의 약속을 기억하는가 … 28
해가 바뀌는 날 : 12월 31일과 1월 1일 사이 … 36
신학기 : 사건적인 봄 … 44
차를 마시는 시간, 커피 타임이 아닌 : 유장한 리듬의 대화 … 51
9월 : 이행기 … 57
파도 타는 시간 : 친구야, 그분이 오신다 … 62
북치는 시간 : 내용 없는 아름다움에 관하여 … 73
2부 책상 ‘위’에 놓인 『장자』를 집어드는 순간을 생각해보자
화장하는 시간 : 외출에는 특별한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 84
찰나 또는 순간 : 영겁이 깃든 허방 … 91
책을 읽는 시간 : 독자는 그 시간 어디에 있는가 … 103
전염병이 창궐할 때 : ‘엔딩’이라는 시간의 뚜껑이 열릴 때 … 113
유령이 되돌아오는 시간 : The time is out of joint … 128
영정을 마주하는 시간 :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지인의 얼굴 … 136
크리스마스캐럴을 듣는 시간 : ‘이웃’은 누구인가 … 143
노을이 지는 6시 47분 : 지금은 B사감을 이해하는 시간 … 151
3부 서른 살은 ‘서러운 몸’을 사는 시간이다
도시의 거리에 비가 내릴 때 : 현대라는 상처 … 160
지하철 플랫폼 오전 8시 : 도시라는 타인의 얼굴들 … 166
입국장을 지날 때 : 환대와 적대가 공존하는 시간 … 172
시의 이미지가 도착하는 시간 : 시인이라는 타자의 시간 … 181
서른 살 : 서럽고 설익고 낯선 … 188
아이가 무섭다고 그럴 때 : 아이는 무엇을 보는가 … 195
담배 피우는 시간 : 휘발되는 연기에 대하여 … 204
4월은 잔인한 달 : ‘목숨’이 아니라 ‘삶’으로서의 기억 … 211
새벽 2시, 라디오를 듣는 시간 : 왜 잠들지 못하는가, 故 신해철에게 … 216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에게 메시아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있는 것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감각의 순간이며, 뭇 생명체와는 다른 인간됨의 환희와 비극, 존재의 내밀성과 확장과 들어올림을 체험하는 시적인 순간이다. 그 순간은 의식을 왜곡하고 감각을 착란에 빠뜨리고 감정을 동요시키는 온갖 일상적 관성의 부조리한 힘을 뚫고 ‘너머’를 보여준다. 일상은 성속聖俗의 변증법으로 점철되어 있다. 교회당이나 절로 들어가지 않아도, 자연으로 귀환하지 않아도 삶의 모든 찰나에 우리가 개방되어 있다면, 훈련되어 있다면, 또 행운이든 불운이든 인생의 어떤 순간을 당신이 마주하게 된다면, 이 변증법을 감지하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독자들과 이 변증법을 공유하고 싶다.
_ 「사랑이라는 이름의 종교」
차를 마시는 시간은 여러모로 특별하다. 그것은 술을 마시는 시간과는 다르다. 좋은 찻잎을 따서 맑고 깨끗한 물에 우려낸 차는 정신을 맑게 한다. 이 맑은 정신은 물맛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물맛을 통해 맑은 기운이 몸속으로 스며든다. (……) 차를 마시는 시간은 작은 잔에 따르기를 여러 차례 하면서 ‘처음처럼’ 따뜻하게 반복된다. 차가 식지 않는 한 차의 향기도 식지 않으며, 대화의 그윽함도 사라지지 않는다. 차의 반복 형식이 시간을 만든다. 이 시간이 그대로 대화의 시간이요, 만남의 시간이다.
_ 「차를 마시는 시간, 커피 타임이 아닌」
이전과 이후를 바꾸어놓는 것,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특이점을 철학적 의미의 ‘사건’이라고 한다면, 그 사건은 찰나와 순간에 이루어진다. 찰나와 순간에서 연쇄적 시간의 고리들이 쏟아진다. 무한한 연기緣起적 계기들은 하나의 특이점, 찰나-순간이 낳은 자식들이다. 그리고 시간의 자식들은 다시 무한한 계기의 연쇄를 낳는다. 그것이 ‘존재’를 생성한다. 플라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엘레아의 현자 파르메니데스에게 찰나-순간은 있음과 없음 사이에 존재하는 모호한 물질성으로 이해되었고, 이 모호성을 견디지 못한 그는 물질성을 일종의 공간성으로 규정했다. 그가 이 공간적 물질성에서 거세한 모호함은 ‘시간’이었으며, 그 시간의 본래 이름이 바로 ‘찰나-순간’이다. (……) 표면과 내부, 현상과 실재, 현세와 내세, 사바세계와 서방정토, 찰나와 영원을 구분하는 이분법. 히포크라테스는 ‘인생은 짧고 배워야 할 기술(techne, 예술)은 길다’고 했지만, 기술을 출현시키는 것이 순간의 체험이며, 그 인생을 내포하는 작업이 기술(예술)이다. ‘순간’은 짧지만 시간의 평면에는 우주적 계기와 사물 세계의 인연이 깃들어 있다.
_ 「찰나 또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