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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담론(談論)

(의식 각성의 안내서)

메허 바바 (지은이), 바바나 (옮긴이)
존재의향기
5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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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담론(談論) (의식 각성의 안내서)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심리학/정신분석학 > 교양 심리학
· ISBN : 9791193095034
· 쪽수 : 900쪽
· 출판일 : 2024-10-18

책 소개

메허 바바의 실제 담화들을 제자들이 받아적고 기록한 내용을 결집한 담론談論으로 한국의 러버들에게도 전하고자 그 내용을 번역한 것이다. 실재와 환상에 관한 바바의 상세한 설명을 통해 러버들 가슴속 사랑을 일깨우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 15
서문 — 17
아바타 메허 바바의 ‘순수한 사랑’ — 29
메허 바바의 생애 — 33
제7판 소개 — 35

01 • 일곱 가지 실재 — 49
02 • 신인류新人類 — 51
03 • 이기심 — 67
04 • 신과 개인 — 81
05 • 창조의 시작과 끝 — 95
06 • 산스카라의 형성과 기능 — 113
07 • 산스카라의 제거 — 131
└ 1부 : 산스카라의 멈춤, 소진,
그리고 풀림 — 131
└ 2부 : 산스카라의 분산과 비움 — 149
└ 3부 : 산스카라의 제거 — 165
08 • 선善과 악惡 — 171
09 • 폭력과 비폭력 — 185
10 • 폭력과 비폭력에 대한 부연 설명 — 195
11 • 행위行爲와 무위無爲 — 203
└ 행위行爲와 무위無爲의 요약 — 207
12 • 완전함 — 211
13 • 영靈의 삶 — 221
14 • 이타적 봉사 — 233
15 • 이해에 이르는 길 — 243
16 • 성性의 문제 — 253
17 • 결혼생활의 신성화 — 263
18 • 사랑 — 275
19 • 진리의 무한성 — 291
20 • 신에 대한 탐구 — 303
21 • 길의 단계 — 313
└ 네 가지 영적 여행 — 327
22 • 참나의 ‘앎’에 도달하기 — 333
└ 세 가지 유형의 ‘앎’ — 345
23 • 신성실현神聖實現 — 347
24 • 참된 제자도 — 359
25 • 스승들의 방식 — 375
└ 샴스와 루미의 이야기 — 389
26 • 에고의 본질과 그 종말 — 391
└ 1부 : 갈등의 중심인 에고 — 391
└ 2부 : 분리의 확인으로서의 에고 — 403
└ 3부 : 에고의 형태와 그 해체 — 415
27 • 영적 삶에서 오컬티즘[초자연주의]이 차지하는 위치 — 429
└ 1부 : 오컬트 체험의 가치 — 429
└ 2부 : 영적 삶에서 스승과의 관계 — 443
└ 3부 : 오컬티즘[초자연주의]과 영성 — 455
28 • 명상의 유형 — 471
└ 1부 : 명상의 본질과 그 조건 — 471
└ 2부 : 명상의 주요 유형과 그 상대적 가치 — 483
└ 3부 : 명상의 형태에 대한 일반적인 분류 — 495
└ 4부 : 신성한 진리의 동화 — 505
└ 5부 : 특화된 명상법 인격적인 것 — 525
└ 6부 : 특화된 명상법 비인격적인 것 — 535
└ 7부 : 니르비칼파 사마디[자아멸각 삼매] — 547
└ 8부 : 사하즈 사마디[행위 속에서의 니르비칼파 삼매] — 559
29 • 영적 발전의 역동성 — 571
30 • 사다나[실천]의 더 깊은 측면 — 583
31 • 아바타[신의 화신] — 599
32 • 맨갓[신이 된 사람] — 609
└ 1부 : 수행자와 신성실현한 존재들 — 609
└ 2부 : 맨갓의 상태 — 619
└ 3부 : 맨갓의 사역 — 631
33 • 서클 — 643
34 • 아바타의 서클 — 655
35 • 새로운 세계 질서의 수난 — 663
36 • 환생과 카르마 — 671
└ 1부 : 죽음의 의미 — 671
└ 2부 : 지옥과 천국 — 683
└ 그것들은 마야의 일부입니다 — 695
└ 3부 : 존재와 전생의 기억 — 697
└ 4부 : 화신의 구체적 조건 — 707
└ 5부 : 남성과 여성 화신의 필요성 — 715
└ 6부 : 연속된 삶을 통한 카르마의 작용 — 723
└ 7부 : 윤회하는 개인의 숙명 — 735
└ 영靈의 삶 — 745
37 • 신을 위해 살고 신을 위해 죽어라 — 749
38 • 인류의 영적 자유를 위해 일하라 — 751
39 • 영적 일꾼들을 위한 임무 — 759
40 • 수행자의 자격 — 771
└ 1부 : 내적 삶의 실재로 들어가기 — 771
└ 2부 : 몇 가지 신성한 자질 — 781
└ 3부 : 봉사할 준비 — 789
└ 4부 : 믿음 — 799
41 • 마야 — 809
└ 1부 : 그릇된 가치 — 809
└ 2부 : 그릇된 신념 — 819
└ 3부 : 마야의 거짓을 초월하기 — 827
└ 4부 : 신과 마야 — 837
42 • 행복의 조건 — 845
└ 1부 : 분리를 통한 고통의 극복 — 845
└ 2부 : 만족, 사랑 그리고 신성실현 — 857
43 • 무한한 사랑으로서의 신 — 867
└ 신성한 사랑 — 877
└ 신성한 사랑과 삶의 목적 — 879
44 • 하나님 홀로 존재 — 883

※ 에필로그: 나를 실현하는 12가지 방법 — 893
└ 특별한 그리스도인 기도 — 897

저자소개

메허 바바 (지은이)    정보 더보기
"나는 가르치러 온 것이 아니라, 깨우기 위해 왔다." 1894년 2월 25일, 인도 푸나의 페르시아 출신의 조로아스터교 가정에서 태어난 그의 이름은 메르완 쉬리아르 이라니(Merwan Sheriar Irani)였습니다. 1913년 5월, 데칸 대학에 재학 중이던 메르완은 완전한 스승인 '하즈랏 바바잔'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바바잔이 이마에 입을 맞추는 순간, 인류의 구원자로서 온 자신의 정체를 깨닫고, 이후 나머지 4명의 완전한 스승들인 '쉬르디의 사이 바바', '우파스니 마하라지', '타주딘 바바', '나라얀 마하라지'를 만나면서 이 시대의 갓맨(God-Man)으로서 스스로의 운명을 완전히 자각하게 됩니다. 1921년, 최초의 제자들은 '자비로운 아버지'라는 뜻의 메허 바바(Meher Baba)로 그를 부르기 시작하며, 1923년부터 제자들과 인도의 아메드나가르 근처의 군용 캠프에 머물렀는데, 이곳이 이후 메허 바바 활동의 근거지인 '메헤라바드'가 됩니다. 이곳에서 무료 병원과 진료소, 가난한 이들을 위한 휴식처, 영적 교육을 하는 무료 학교 등을 운영합니다. 이 모든 활동이 그의 침묵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나의 침묵이 들리지 않는다면, 무슨 말이 소용이 있겠는가?" 1925년 7월 10일부터 생의 마지막까지, 44년간 그의 침묵은 계속됩니다.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책 작업을 할 때는 알파벳 판자를 손으로 가리키거나 손동작(手話)으로 하였습니다. "참된(실재의) 것은 침묵 속에서 주어지고 받게 된다." 침묵에 대한 그의 메시지는 많은 이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1930년대와 1950년대, 메허 바바는 미국, 유럽, 호주 등으로 가서 그곳의 구도자들과 깊이 있는 만남을 가지며, 1962년 푸나에서 열린 '동서양 모임'(East-West Gathering)에는 전 세계에 있는 수천 명의 헌신자들이 와서 그의 가르침과 축복을 받았습니다. 또한 메허 바바가 수십 년의 활동 기간 동안 계속한 것은, 머스트(신에 도취된 자)에 대한 작업이었습니다. 신에 대한 강렬한 사랑에 도취되어 외부 세계와의 접점을 잃어버린 머스트들은 겉보기에는 미친 사람과 다름이 없습니다. 메허 바바는 인도 전역과 파키스탄 등을 다니며 이러한 머스트 수천 명을 찾아내어 그들을 영적으로 도왔으며, 머스트들을 통해 그의 '우주적 사역(universal work)'을 하였습니다. 또한 메허 바바는 가난하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이들, 육체적인 장애가 있는 이들, 특히 나병 환자들을 무한한 사랑으로 보살폈습니다. "그들은 추한 새장에 갇힌 아름다운 새들과 같다."고 하며, 그들의 발을 씻어주고, 병으로 잘려 나가고 비틀어진 다리에 이마를 대고 절하였습니다. 가엷은 영혼들에게 희망을 주어, 각자의 삶의 여정을 계속하도록 응원하였습니다. 그러나 메허 바바는 두 번의 교통사고로 인해, 걷고 서는 것조차 힘들 정도의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 육체적인 고통은 그가 인류 가운데 와서 짊어져야 했던 구원자로서의 내적 고통이 외적으로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1968년 메허 바바는 '그의 우주적 작업이 100% 만족스럽게 완료됐으며, 머지않아 그 일의 결과들이 드러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1969년 1월 31일, 자신의 육신을 떨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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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순수한 사랑

우리는 먼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에서도 이기적인 동기는 종종 그들을 속이고 이기적인 감정을 사랑으로 착각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나는 나의 비러벳을 사랑한다. 비러벳이 나와 함께 있기를 바란다.’ 등의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랑의 표현에는 ‘나’와 ‘내’가 지배적입니다. 또 다른 예로, 당신의 자녀가 헤진 옷을 입고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가정해 봅시다. 당신은 쉽게 안타까워하고 좋은 옷을 사서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길거리에서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아이를 본다면, 내 아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느끼고 쉽게 행동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당신 아이에 대한 당신의 태도가 단지 이기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결과임을 보여줄 뿐입니다. 길거리에서 모르는 낯선 사람의 아이에 대한 태도가 같은 조건에서 자신의 아이에 대한 태도와 같다면 당신의 감정은 참된 사랑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기심이 전혀 없는 것이야말로 순수한 사랑의 진정한 특징이자 진정한 시험입니다. 이 순수한 사랑 혹은 신성한 사랑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누군가에게 강요하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빼앗아 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행자가 이기심을 극복하는 데 성공하고 ‘나我’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이 ‘무아無我’의 단계는 도달하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지만, 동시에 도달하기 쉬운 단계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사실입니다. 수행자가 그 단계에 도달하기로 결심하지 않는 한 ‘무아無我’의 경지는 성취하기 어렵습니다. 확고한 결단력이 없으면 낮은 자아와 연결된 외부의 집착이 너무 강해서 극복할 수 없고, 그 결과 수행자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강한 의지를 가진 수행자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목표를 달성하기로 결정하면 자신의 임무가 쉽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순수한 사랑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자기 포기가 필요합니다. ‘포기’는 모든 세속적인 관계와 일을 포기하고 밀림 지대로 떠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에 남아 자신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되 모든 집착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일한 포기는 세속적인 의무를 수행하는 가운데서도 모든 이기적인 생각과 욕망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룰 수 없는 이상이 아니라, 수행자가 성실하고 과감하게 결심한다면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실제적인 목표입니다. 마치 사람이 배가 고플 때 음식을 갈망하는 것처럼, 수행자가 순수한 사랑을 체험하고 싶을 때 마찬가지로 그는 그것에 대한 갈망을 느끼고 적절한 시기에 ‘무욕無慾’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스승으로부터 필요한 지침과 도움을 받고 마침내 신성한 사랑의 지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참된 제자도

제자라는 소중한 인연

수행자가 자발적으로 스승과 인연을 맺으면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속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참된 제자의 신분이 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제자와 스승의 관계는 구두 거래나 형식적인 계약을 통해 권리와 의무를 형성하는 법적 관계와는 전적으로 다릅니다. 제자도는 진보된 수행자의 삶을 특징짓는 근본적인 특징 중 하나이며, 어떤 인위적인 절차를 거쳐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 삶의 기본적인 법칙에서 비롯됩니다. 따라서 그것은 일반적인 사회생활의 맥락 안에서 우연한 인연이나 일시적인 계약의 결과로 발생하는 일상적인 관계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이러한 일상적인 관계의 대부분은 수행자의 삶의 영적 구조에 들어가지 않고 그의 존재에 피상적으로 붙어 있습니다. 따라서 한 가게 주인으로부터 물건을 구매하든 다른 가게 주인에게서 물건을 구매하든 중요한 것은 그 물건의 가격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배로 여행하든 다른 배로 여행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래조차도 의심할 여지 없이 내적으로는 산스카라의 끈들과 업의 법칙에 의해 결정되므로 영적인 의미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본질적으로 일시적이고 피상적인 것이며, 수행자의 삶에 실체와 방향을 제시하는 제자도라는 중요한 유대에는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제자도의 핵심을 이루는 사랑

완전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수행자의 삶에 내재된 조건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그것은 주로 러버와 그의 신성한 비러벳과의 관계입니다. 영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사람이 개입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관계입니다. 제자도의 핵심을 이루는 사랑은 일반적인 사회적 관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사랑의 유형 가운데 그 자체로 독립적입니다. 세속적인 사랑은 신을 의식하지 못하는 두 중심 사이의 상호작용인 반면, 제자도에 내포된 사랑은 신을 의식하지 못하는 자가 신을 의식하는 자에 대한 사랑입니다. 모두가 신이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의 신성을 의식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신성을 부분적으로 의식하며, 어떤 사람은 충분히 신을 의식합니다. 자신의 신성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신의 상태에 대한 개념을 가질 수 없고 그들은 오직 몸의 상태만을 의식합니다. 이들이 신의 상태를 물려받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신의 상태에 머무는 스승을 사랑하고 경배하며 그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스승의 최고 주장

수행자가 스승에 대해 갖는 사랑은 실제로 스승이 수행자에 대해 갖는 더 큰 사랑에 의해 유발된 반응입니다. 그것은 다른 모든 사랑보다 우선시되는 것입니다. 스승을 무한한 신의 구현자이자 표현자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스승에 대한 사랑은 자연스럽게 수행자의 삶에서 중심적인 힘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의 모든 생각과 열망은 스승의 인격을 중심으로 짜여지게 됩니다. 따라서 스승은 수행자가 인식하는 주장들 사이에서 의심할 여지 없이 지고함을 가지며, 이 지고함을 통해 스승은 영적 힘이 방사되는 초점이 되어 모든 어둠을 불식시키고 가슴의 죄악을 뽑아내어 수행자를 자유와 진리 의식의 삶으로 착수시킵니다.

마즈눈과 라일라의 이야기에서처럼 스승에게 인도하는 모든 사랑

참된 제자가 되고자 하는 지원자에게 필요한 기본 요건은 스승에 대한 의심 없는 사랑입니다. 다른 모든 사랑의 흐름은 궁극적으로 스승에 대한 사랑의 큰 강물에 합류하여 그 안에서 사라지는데, 이것은 마즈눈과 라일라의 이야기에서 잘 드러납니다. 마즈눈은 라일라를 너무나 강렬하게 사랑해서 그의 삶은 매 순간 그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는 그녀를 생각하지 않고는 먹지도, 마시지도, 잠을 잘 수도 없었고, 그가 원하는 것은 라일라의 행복뿐이었습니다. 그는 그녀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그녀에게 이롭다고 느꼈다면 기꺼이 그녀의 결혼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녀가 행복해질 것으로 생각했다면 그녀의 남편을 위해 죽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의 사랑에 대한 철저한 자기 절제와 성실함은 결국 그를 스승에게로 이끌었습니다. 마즈눈은 매 순간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했고, 이는 그의 사랑을 육체적이거나 지적인 수준에서 끌어올려 영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사랑의 영화靈化는 그를 신성한 비러벳에게로 이끌었습니다.

사랑과 항복을 통한 정화

스승은 신성한 비러벳이며, 제자가 스승을 만날 때 그가 해야 할 일은 스승을 사랑하기만 하면 됩니다. 제자가 그의 가슴에서 나온 충만함으로 스승을 사랑한다면 스승과의 최종적인 합일은 확실합니다. 그는 스승의 사랑의 자질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스승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 하며, 자신의 가슴을 정화할 수 있을 때까지 꾸물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스승은 바로 순결의 원천이며, 스승에게 자신의 가슴을 바치는 것이 자기 정화의 시작입니다. 제자가 스승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할 때, 그는 스승이 자신에게 쏟는 신성한 사랑을 받들어 자신을 개방합니다. 그의 모든 약점은 이 신성한 사랑의 불 속에서 소모되기에 그는 수혜자가 됩니다. 제자가 모든 약점에서 자유로워지고 썩지 않는 무한한 순결에 도달하려면, 그는 어떤 조건이나 조항 없이 스승에게 자신의 삶을 바쳐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약점뿐 아니라 강점마저, 악행뿐 아니라 선행도 바쳐야 합니다. 그의 헌납에는 조건과 이의가 없어야 합니다. 그의 자기 항복은 그의 마음속에 어떤 은밀한 자기 욕망의 그림자조차도 드리울 여지가 없을 정도로 완전해야 합니다.

믿음의 가치

완전한 자기 항복과 의심 없는 사랑은 제자가 스승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을 이룰 때 가능해집니다. 스승에 대한 믿음은 참된 제자도의 필수 불가결한 부분입니다. 사람이 자신이 사람임을 알 때 믿음에 대한 의문이 없는 것처럼 한번 신을 깨달으면 믿음에 대한 의문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이 깨달음의 상태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제자가 스승에게 두는 믿음은 그의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안내등이며 배의 키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맹목적인 것으로 묘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구제받지 못한 무지라기보다는 시각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은 수행자가 스스로 신을 깨달을 때까지는 직접적인 경험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모든 종교를 “신앙”이라고 부르는 것은 괜한 말이 아닙니다. 수행자의 삶에서 필수적인 것 중 하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지만,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동일한 것으로서 다양하게 분류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유일한 차이는 정도의 차이일 뿐입니다. 믿음은 강하고 생명력이 있을 수도 있고 약하고 미온적일 수도 있습니다. 약하고 미온적인 믿음은 의례와 의식을 고수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지만, 강하고 생명력 있는 믿음은 종교의 외형을 넘어서서 수행자를 받아들이고, 그가 껍질을 벗고 참된 영적 삶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믿음은 자신의 스승 안에서 안식할 때 자연스러운 절정과 목표에 도달합니다.

칼리얀의 이야기

제자의 믿음은 항상 스승의 신성에 대한 그의 경험에 확고한 기반을 두어야 합니다. 그는 작은 미풍에도 어디론가 날아가는 짚과 같아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극심한 폭풍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바위와 같아야 합니다. 칼리얀의 이야기는 스승에 대한 실제로 건전한 믿음의 의미를 이끌어냅니다. 칼리얀은 쉬바지 시대에 완전한 스승이었던 스와미 람다스 사마르스의 제자였습니다. 스승은 모든 제자를 똑같이 사랑하지만, 어떤 제자들은 그에게 특히 소중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개인이 자신의 몸의 모든 부분을 사랑하지만 눈을 손가락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스와미 람다스 사마르스에게는 많은 제자가 있었지만, 그가 가장 아끼는 제자는 칼리얀이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왜 칼리안이 다른 이들보다 스승에게 더 소중해야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스와미 람다스는 제자들의 헌신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그는 모든 제자에게 자신에게 오라고 요청했고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정도로 아픈 척했습니다. 그는 무릎 관절에 망고를 올려놓고 붕대로 묶어 크게 부은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스와미 람다스는 이 붓기를 가리키며 제자들에게 악성 종양이며 누군가 무릎 관절에서 독을 빨아들이지 않으면 살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동시에 독을 빨면 누구든 즉사할 것임을 모두에게 분명히 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붓기의 독을 빨아낼 준비가 된 제자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칼리얀을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망설였지만, 칼리안은 즉시 일어나 붓기를 빨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칼리안은 독이 아닌 달콤한 망고 즙임을 알았고, 스와미 람다스는 그의 확고부동한 믿음과 자기 절제의 사랑을 칭찬했습니다. 비러벳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죽는 것은 참된 사랑입니다. 칼리안의 그런 절대적인 믿음, 흔들리지 않는 사랑과 헌신적인 충성은 스승의 은총을 통해서만 제자에게 올 수 있습니다.

그神를 섬김으로써 깨달은 스승

스승에 대한 헌신적인 충성은 제자의 삶의 영역에 어떤 협소함도 가져오지 않습니다. 스승을 섬긴다는 것은 다른 모든 자아 안에서 자신의 참나를 섬기는 것입니다. 스승은 보편적 의식 안에 거하며 보편적 영적 안녕을 바랍니다. 그러므로 스승을 섬기는 것은 그의 대의에 참여하는 것이며, 모든 생명을 섬기는 것입니다. 스승의 일에 동참하는 동안 제자는 세상과 접촉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일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지만, 그는 무한한 존재로서의 스승과 내적으로 접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승의 일에 참여함으로써 제자는 스승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그의 의식의 필수적인 부분이 됩니다. 스승을 섬기는 것은 그神를 깨닫는 가장 빠른 수단입니다.

스승의 일에 참여

제자가 스승에게 제공할 수 있는 봉사는 인류의 보편적 대의에 연결될 뿐만 아니라 그의 영적 목표에 제자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입니다. 제자의 봉사가 자발적이고 전적이며, 이타적이고 무조건적일 때, 다른 어떤 수단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영적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스승을 섬기는 것은 몸과 마음을 시험하는 시련을 의미할지라도 제자에게는 기쁨입니다. 불편하거나 곤란한 조건에서 제공되는 봉사는 제자의 헌신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런 봉사가 힘들수록 제자에게는 더 반가운 일입니다. 그리고 스승에 대한 헌신적인 봉사 속에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영적 충만의 지복을 경험합니다.

스승에 대한 충성

스승에 대한 헌신적이고 절대적인 충성의 감각은 스승이 누구이며 그가 진정으로 무엇을 내세우는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가능합니다. 제자가 스승의 참된 지위와 기능을 불완전하게 파악하고 있다면, 그는 자신의 상위 자아와 스승 사이에 잘못된 대조를 설정하기 십상입니다. 이러한 대조의 결과로, 그는 스승의 주장과 합리적으로 보이는 다른 주장 사이에 인위적이고 가공의 갈등을 마음속에 만들 수 있습니다. 제자는 처음부터 스승이 제자 자신의 상위 자아를 깨닫기만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스승은 제자의 이 상위 자아를 상징하며, 이 상위 자아는 다름 아닌, 모두 안에 존재하는 동일한 하나의 실재성입니다. 따라서 스승에 대한 충성은 자신의 상위 자아에 대한 충성의 또 다른 형태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상위 자아에 대한 형식적인 충성이 어떤 식으로든 스승에 대한 충성을 대신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제자는 신성실현이 될 때까지 자신의 상위 자아에 대한 명확한 인식知覺을 가질 수 없으며, 종종 그에게 의무로 다가오는 것은 실제로 상위 자아와 그의 의식장 사이에 자신을 개입하는 일부 산스카라의 촉발입니다. 반대로 스승은 상위 자아와 하나이며 올바른 가치 평가에 대해 실수가 없습니다.

갈등의 기류

그러므로 제자는 항상 스승이 내린 기준이나 명령에 따라 자신의 고취鼓吹를 시험해야 합니다. 만약 둘 사이에 어떠한 갈등이 발생하면, 그는 자신의 생각을 철저하게 재검토하여 완벽하지 못할 수도 있는 점들을 발견해야 합니다. 거의 항상 약간의 성찰만으로도 자신의 상위 자아의 참된 지시와 스승의 요구 사항 사이의 기본적인 조화를 감지感知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제자가 둘을 조화시킬 수 없다면, 그는 자신의 상위 자아의 지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스승의 요구사항의 취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스승은 제자에게 자신의 양심을 따를 수 있는 재량권을 줍니다. 스승은 때때로 제자가 더 높은 삶의 양식을 위해 그의 제자를 준비시키려는 의도로 지시를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제자는 자신의 성향과 스승의 지시 사이에 명백하고 일시적인 차이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스승은 제자가 내적으로 예상하지 못한 준비되지 않은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습니다.

참된 제자도의 의미

스승은 지극히 비개인적이며, 항상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제자의 의식과 그의 상위 자아 사이의 장막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승에 대한 제자의 충성과 자신의 상위 자아에 대한 충성 사이에는 결코 어떤 실제적 갈등도 있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제자는 탐구의 끝에서 스승이 다름 아닌 그 자신의 상위 자아의 다른 형태임을 발견합니다. 전적인 비개인성과 구속받지 않는 신성을 지닌 스승은 너무 완전해서 욕망이 없습니다. 제자와 관련하여 그가 요구하는 모든 것은 제자가 가장 높은 진리의 빛 속에서 그 자신을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영적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을 밟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제자도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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