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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류학/고고학 > 인류학
· ISBN : 9791193482124
· 쪽수 : 296쪽
· 출판일 : 2025-06-20
목차
-추천의 말/ 한디디(『커먼즈란 무엇인가』 저자)
-서장
‘보스’와의 만남 | 청킹맨션의 보스와 만나다 | 빅 브러더이지만 덜 된 인간 | 국경을 초월하는 비공식 비즈니스와 열린 호수성
-제1장 청킹맨션의 탄자니아인들
청킹맨션의 보스, 카라마의 생활사 | 천연석 장사에서 중고차 장사로의 전환 | 사려 깊은 무관심
-제2장 ‘겸사겸사’가 구축하는 안전망: ‘플랫폼’으로서의 탄자니아 홍콩조합
홍콩에서 커뮤니티를 구축하기 | 탄자니아 홍콩조합의 결성 |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불행이 생겼을 때 서로 돕는다는 것 | 유동적인 멤버십이 살아 있는 조합 운영 | ‘무리하지 않음’을 기준으로 삼기 | ‘겸사겸사’의 논리
-제3장 홍콩 브로커의 일
거래 상대가 나를 그리워할 때 만나러 가기 | 카라마를 전속 에이전트로 삼고 싶어 하는 파키스탄계 업자 | 홍콩의 업자와 아프리카계 브로커의 관계 | 중고차 대량 매입 투어 | 아바시와 사미르의 홍콩 쇼핑 내역 | 브로커라는 직업 | 브로커는 브로커를 의지한다 | 고객=친구 네트워크를 침범하지 않기
-제4장 공유경제를 지탱하는 TRUST: ‘그 사람다움’으로 연결되는 네트워크
SNS를 활용하는 자생적인 경매 | 협동형 커먼즈로서의 TRUST | ‘안전망’으로서의 TRUST | 가장 큰 즐거움은 인스타그램의 라이브 방송 | ‘신용’의 결여와 ‘신뢰’의 창출을 담당하는 SNS 활동 | 전문적인 경제 플랫폼이 아니라는 점의 의의 | ‘놀이’와 ‘일’의 순서
-제5장 배신과 도움 사이에서: 성공하는 사람, 전락하는 사람
휴대폰 비즈니스로 성공한 사람 | ‘배신당한’ 천연석 수입상 | ‘수감된’ 의류 교역인 | 동료와 살아간다는 것과 독립독행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틈새에서
-제6장 사랑과 우정의 비결은 돈벌이
서류상의 아내와 서류상의 남편 | 홍콩의 밤 문화 | 슈거 마미와 키벤텐 | 언제든 돌아갈 수 있기에 돌아가지 않아 | 홍콩 생활 속에 내장된, 모국에 대한 투자 | 요청을 받고 비로소 결심하는 날이 온다면 | 돈벌이와 인생의 즐거움
-최종장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융통성’ 있는 청킹맨션에서의 생활 | 자신과 타자의 ‘겸사겸사’를 잘 길들이기 | ‘낭비’와 ‘대단치 않음’의 의미 | 노는 것이 일 | 실제 인생과 ‘일시적인 나’ | 사랑받고 있다는 근거 없는 확신
-마치며
리뷰
책속에서
이때 트위드 재킷을 입고 사냥 모자를 쓴 아프리카계 중년 남성이 지나갔다. 같이 마시던 한 나이지리아인이 “어이, 카라마” 하고 그를 불러세우더니 “이 여자가 스와힐리어를 할 줄 아는 것 같은데 시험 삼아 무슨 얘기라도 해봐”라고 말을 건넸다. 내가 스와힐리어로 인사하자 그는 “나는 미스터 카라마. 청킹맨션의 보스다”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그리고 “오, 정말 스와힐리어를 할 줄 알아”라면서 놀리려던 나이지리아인에게는 “세계는 넓어. 이런 아시아인도 있는 거야”라고 받아넘기며 곧 자리를 떴다. 나중에 카라마는 “사야카가 처음에 나를 알게 된 게 정말 행운이었어”라고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그 말대로다. 이날 카라마와의 만남을 계기로 나는 홍콩과 중국에 거주하는 탄자니아인들의 장사와 동료들 사이의 일상적인 관계 속으로 들어가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우리는 산다는 것과 경제가 격리되어 있는 듯한, 거대한 허구의 세계 시스템에 우리를 맞추며 살아가는 것 같다. ‘현대스러움’과 근원적인 경제의 논리가 인류사적으로 교차하고 있다. 청킹맨션의 탄자니아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미래 인류 사회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모색하는 이들, 공유·연결·특이점·기본 소득에 관심을 두는 모든 이에게도 흥미로울 것이다. 이들은 ‘아무도 신용하지 않는 것’을 규칙으로 삼는 세계에서 누구에게나 열린 호수성을 기반으로 한 사업 모델과 생활 보장 구조를 동시에 구축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들은 늘 “아무도 믿지 않아”라고 단언한다. 이는 ‘본성’, ‘드러내놓고 할 수 없는 사업’을 몰라서 그런다기보다 누구나 처한 상황에 따라 좋은 방향으로도, 나쁜 방향으로도 변모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인다. 카라마와 동료들은 “저 사람은 지금 잘나가니까 돈을 빌려줘도 괜찮아”, “저 사람은 지금 수입한 천연석 품질이 나빠서 크게 손해를 보고 있으니까 조금 주의하는 게 좋아”, “저 사람의 연인도 함께한다면 그는 좋은 녀석이니까 놀러 가”라고 ‘지금’의 상황에 한정하는 형태로만 타자를 평가한다. 언뜻 냉정하게도 보이지만 이는 일종의 관용과도 표리일체다. 즉, ‘페르소나’와 그 뒷면에는 ‘민낯’이 있는데 ‘민낯’을 모르니까 신뢰할 수 없다,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책임을 돌릴 수 있는 일관된 불변의 자기(自己) 같은 건 없다고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