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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94171614
· 쪽수 : 232쪽
· 출판일 : 2025-06-16
책 소개
목차
벚나무 ─ 9
초록 수첩
장밋빛, 추운 계절에 ─ 25
녹색과 흰색 문장 紋章 ─ 29
비가 잎사귀 위로 돌아왔다 ─ 45
상승하는 단계들에 관하여 ─ 47
여름 아침, 역광이 비치는 산들 ─ 55
8월의 섬광 ─ 57
산들이 보라색을 띠는 이 미지근한 ─ 63
바람에 흩날리는 파편들 ─ 67
겨울 저녁의 색들, 마치 ─ 78
꽃들의 출현 ─ 83
얼핏 보인 가는 조각달 ─ 96
수많은 세월이 흘러
호수 전망 ─ 101
작약들 ─ 111
소브강 물, 레즈강 물 ─ 123
밤의 노트 ─ 135
화관 ─ 145
촌락 ─ 159
박물관 ─ 171
빈 발코니 ─ 179
두 초안 ─ 189
라르슈 고개에서 ─ 193
수많은 세월이 흘러 ─ 209
옮긴이의 말 ─ 221
책속에서
나는 가끔 생각한다. 만일 내가 아직도 글을 쓰고 있다면, 그건 무엇보다 우선 제법 뚜렷하고 그럴 법한 기쁨의 파편들을 모아놓고 싶어서라고, 아니 그럴 수밖에 없어서라고. 이 기쁨이, 아주 오래전 어느 날, 별처럼 폭발해 그 별가루들을 우리 안에 퍼트렸을 것만 같다. 시선 속에서 빛나는 약간의 별가루들, 우릴 뒤흔들어놓고, 홀리고, 기어코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분명 이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섬광을, 이 파편화된 반사광을 자연 속에서 불시에 포착하는 것이 더 놀라운 것일지 모른다. 적어도, 이 반사광들이 내겐 결코 빈약하다 할 수 없는 수많은 몽상들의 기원이니까.
이 열매들은 어두운 초록 속에 붉은 것이 흐르는, 붉고 기다란 송이 같았다. 요람 속, 아니면 이파리들로 짠 바구니 속에 들어 있는 열매들. 초록 속의 붉음, 만물이 서로 미끄러져들어가는 시간, 느리고도 조용한 변모의 시간. 거의, 전혀 다른 세계가 현현하는 시간. 어떤 것이 문돌쩌귀 위에서 돌아가는 시간.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권한이 이젠 우리에게 없어 보인다. 사실 이 단어는 닳고 닳았다. 물론, 나로서야 아름다움이라는 게 뭔지 잘 안다. 그렇긴 해도, 생각을 해보면 나무들에 대한 이런 판단은 이상하다. 나로선, 그러니까 정말이지 세상에 대해 별반 아는 게 없는 나로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본능적으로 느껴지면, 그게 바로 세계의 비밀에 가장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기를 거쳐 우리에게까지 전달된 전언을 가장 충실히 번역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