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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94171324
· 쪽수 : 176쪽
· 출판일 : 2024-12-26
책 소개
목차
부재하는 형상들이 있는 풍경 ─ 9
문턱에서 ─ 37
숲과 밀밭 ─ 41
튀르키예 멧비둘기 ─ 49
못, 갈대, 거품 ─ 53
보이지 않는 새들 ─ 67
5월의 풀밭 ─ 75
뱀, 산문 ─ 79
저녁 ─ 91
같은 장소, 다른 순간 ─ 97
두 빛 ─ 101
“꽃들은 아름답기만 해도……” ─ 107
“상들이 그토록 단순하고, 그토록 성스러워……” ─ 127
잠시 갠 하늘 ─ 147
옮긴이의 말 ─ 165
책속에서
따라서 여기서 겨울이 찬양하는 힘은 굉음과 함께 신속하게 승리하는 힘이 아니다. 깃발과 트럼펫과 깃털 장식과 전리품과 함께 들이닥쳐 쓸어버리고 밟아버려, 위에서 승리하는 힘이 아니다. 수갱과 회양목 색을 띠고, 겸손과 침묵으로, 밑에서, 인내하고 가만히 집중하는 힘이다. 그것은 두터운 과거이다. 짙은 어둠, 기억에도 없는 아득한 옛날이다. 그것은 석조 기념비 같다. 압도하기 위해 높이 세워진 게 아니라 아래로 내려온, 기리기 위해 몸을 숙여야 하는 넓고 깊은 반석(그리고 올라가지 않고, 땅에 붙은, 그래서 ‘토관土冠 ’이라는 이름이 붙은 넝쿨).
정말 살아 있는 진실은 도식으로 축소될 수 없다. 도식은 여권일 뿐이니, 어떤 나라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여권이 필요하지만, 그 나라를 제대로 발견하는 일은 각자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건대 결국, 핵심이 되는 본질적인 것은, 어떤 우회를 통해 알게 된다. 그러니까 약간 비스듬하게, 거의 달아나듯, 피하듯. 아니, 이 핵심이 되는 본질적인 것 자체가 어떤 식으로든 항상 달아나는 것, 피하는 것일 수 있다. 누가 알겠는가, 심지어 죽음을 피해 달아나는 것인지도.
여명이란 다른 게 아니다, 채비하는 자, 여전히 순수하게, 불타오를 채비를 하는 자. 여명은 이렇게 말하는 자이니. “조금만 기다려줘요, 나 불타오를 거예요.” 어떤 큰불의 싹.
그러나 여명은 불이 멀리서만 닿을 수 있는 것. 거리나 시간, 추억에 의해 불에서 떨어져 있는 것. 열기와 거리의 혼합, 끝나지 않고 우리 안에 흐를지 모를 사랑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