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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94413943
· 쪽수 : 232쪽
· 출판일 : 2026-04-10
책 소개
“아름다운 정신에 대한 찬란한 초상”
상실, 기억, 감각의 결핍 그리고 ‘은유로서의 불면’
“요즘은 무슨 글을 써?”
“글쎄, 에세이라고 해야 하나. 딱히 에세이는 아닌데. 전혀 아니야. 그냥 쓰고 있어.”
“뭐에 관해서?”
“음. 이것저것. 주로 불면에 관해서. 그런데 자꾸 죽음이 기어들어 와.”
“차라리 새 소설을 쓰지 그래?”
“사촌이 죽었어. 자기 집에서 혼자. 죽은 지 이틀이 지나서야 발견됐어. 아직 젊은데.”
“아. 끔찍한 일이네.”
“땅속 관에 묻혀 있는 그 애가 자꾸 생각나. … 생각하면, 내면에서 슬픔이 가득 차올라. 떠나보낼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듯 완전한 슬픔에 잠겨. … 그러면 슬퍼서 숨이 안 쉬어져. 사촌의 죽음이 모든 죽음을 불러들였어. 이 미래의 슬픔 때문에 숨이 안 쉬어져.” (본문에서)
어느 날 사촌의 죽음으로부터 느닷없이 시작된 불면증. 그리고 잠 없는 삶이 경계 없이 이어지면서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끝없이 떠올라 의식에 달라붙는 갖가지 생각과 감정들. 이 책은 작가 자신의 지극히 사적인 고통의 경험에서 출발해 기억과 상실, 언어와 시간,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로 확장되는 독창적인 글쓰기를 시도한다. 밤 열두 시부터 아침 일곱 시 반까지, 마치 우주의 궤도를 돌듯 일곱 개의 시간대를 지나는 동안 이 ‘불면’이라는 징후가 비추어 드러내는 삶의 진실은 무엇일까?
세계의 소음이 잦아든 밤의 가장자리에서야 비로소 떠오르는 기억과 질문들이 있다. 사촌이 겪었을 ‘죽음 후의 (육체적) 과정’을 상상하며 지독한 슬픔과 고통을 느끼고, 집을 떠난 엄마와 죽어가는 반려견 등 유년기의 특정한 기억들을 마치 현재의 사건인 것처럼 생생하게 재경험한다. 또 자신이 썼던 소설의 한 문장, 노숙자의 텅 빈 눈빛, 오직 “지금 여기”만을 표현할 수 있는 아마존 피라항족 언어, 강렬한 ‘살아 있음’의 감각을 안겨주는 필립 라킨의 시, 공장식 축산과 전쟁과 브렉시트에 대한 분노, 불교와 시냅스와 수영에 대한 생각 등등. 잠들지 못하는 밤의 시간들이 어떻게 우리의 생각과 감정, 기억을 뒤섞으며 새로운 형태의 사유를 만들어내는지를 아주 서정적이고 정교하게 탐구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경험은 마치 미지의 바다에 몸을 담그는 것과 같다. 차갑게 정신을 깨우다가도 이내 위로를 건네며, 어두운 바닥 위에도 빛의 흔적이 스친다. 주제와 기억 사이를 비틀거리듯 이동하는 전개 방식은, 독자들 역시 잠에 굶주린 작가의 뇌 속에서 함께 헤매는 듯한 감각을 준다. 살아가려는 인간의 의지에 관한 아름답고 가슴 아픈 문장들은, 삶의 가장 위태로운 순간에도 여기 존재하는 ‘백만 장 꽃잎의 꽃’을 찬미한다. 감각의 결핍을 다룬 책이 어떻게 이토록 관능적이고 충만할 수 있을까? 이 아찔하고 경이로운 밤의 여행은 최면에 가까운 경험이며, 동시에 삶이라는 눈부신 선물에 대한 기쁨의 헌사이기도 하다. 우리의 잠에 시와 울림을 가져다주는 책! 책장을 덮는 순간, 어느덧 세계가 달라지고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글쓰기가 내 삶을 구원했다―
“작가로 존재하는 일에 대해 이토록 명확하게 보여주는 책은 없다”
무엇보다 이 책의 백미는 서맨사 하비가 스스로 집요하게 포착해내는 ‘글쓰기의 무의식’에 관한 고백이 아닐까. “하비의 글쓰기는 경이롭다”, “최고 수준의 글쓰기”, “영국에서 가장 정교한 스타일리스트”, “이 시대의 버지니아 울프, 하늘의 멜빌” 등의 찬사를 받으며 당대 최고의 작가로 우뚝 선 하비는 자신의 글쓰기를 어떻게 생각할까.
글쓰기는 꿈꾸기와 같다, 라고 하비는 말한다. 글쓰기는 곧 무의식이며, 의식에 한 발을 담근 채 꾸는 자각몽이란다. “글쓰기가 내 삶을 구원했다. … 글을 쓸 때 나는 제정신이며 신경이 안정된다. … 행복해진다. 글을 쓸 때 다른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쓴 글이 형편없더라도 그렇다. 나는 닫혀 있지 않고 모호한 무의식의 무형에서부터 출발한다. 나는 그것을 대략 ‘나’라고 부른다. …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나는 내가 만들어낸 말들 속에서 나를 보기 시작한다. 수많은 말들의 세상에 흩어져 자유로운 내 모습을.”
하비는 우리가 어떻게 ‘이야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구성해가는지를 놀랍도록 섬세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고백한다. “마음은 아주 다양한 순열과 배열로 생각과 믿음을 내뱉는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마음이 만들어낸 것들의 노예가 된다. 마음은 감옥이다. 글을 쓸 때는 소음이 정제되고 변환되며, 자아가 탈출구를 발견한다. 그게 사랑이 아닌가 싶다. 자아가 자아로부터 탈출하는 것.”
그래서 이 책은 ‘작가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가장 치열한 자기 보고이기도 하다.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 장면을 아주 탁월하게 극화해낸 부분이나, 액자소설처럼 간간이 이어지는 ‘짧은 소설’이 작가의 에세이와 공명하면서 이 책의 주제의식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놀라운 문학적 성취를 이룬다. 사랑이나 전쟁만큼이나 ‘불면’ 역시 문학의 훌륭한 주제가 될 수 있으며, 이 책은 그 정점에 있다.
책속에서
밤 열두 시. 침대에 눕는다. 머리를 베개에 눕힌다. 침대 밖으로 나와 미신에 매달리는 마음으로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를 둘둘 말아 한쪽으로 치운다. 불면의 밤을 무찌르려고 무수히 수행하는 사소한 루틴 중 하나다. … 잠드는 일은 자연스러운 행위에서 이탈해 주술의 영역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사촌 폴에게, 장난으로 쓰는 편지가 아니야. 죽고 나서 며칠, 몇 주, 몇 달 후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구글이 말해준 정보를 전하려고 편지를 써. 운명 때문에 네가 낙심하지 않도록. … 인생이란 게 참 경이롭지 않니. 내내 그 안에 난폭한 죽음을 품고 있다는 게. 그 박테리아는 네가 죽어서 나타난 게 아니라 줄곧 몸속에 있으면서 언제나 너를 먹고 싶어 했어. 또 세포들은 네 부패를 도울 효소를 늘 자기 안에 갖고 있었어. 생존하려는 네 열정이 그 모든 걸 막은 거야. 네 안에서 그렇게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걸 알았니? 한 번이라도 눈치챈 적 있어?
소녀에게는 개가 있었다. 개가 ‘있었다’. 개는 커다랬고 홀릴 만큼 다정했다. 검은색과 갈색이 섞인 긴 털, 날쌘 몸짓, 육식동물답게 큼직한 이빨, 다정함 빼면 시체인 성격까지. 치고받는 대환장 이혼 소동 속에 그 개가 있었다. … 개는 아빠와 사는 게 아니었다. 아빠가 개 양육권을 요구하기는 했으나, 옛집 바로 근처에서 함께 사는 새 아내가 남편의 전처와 관련된 거면 뭐든 질색했기 때문이다. … 아빠는 날마다 옛집에 들러 개에게 밥을 주었고, 거의 날마다 산책도 시켜주었다. 하지만 개는 날마다 최소 스물세 시간을 홀로 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