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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철학 일반 > 교양 철학
· ISBN : 9791194513308
· 쪽수 : 640쪽
· 출판일 : 2025-09-23
책 소개
목차
여는 글_ 불교미학, 내재성의 미학
01 초월성의 미학과 미학적 식민주의 : 미학의 내재론적 전회를 위하여
사건과 예술
보편성의 환영과 미학적 식민주의 : 서양 예술의 미학적 삼위일체
초월성과 내재성
감각과 미감, 개념의 연속체로서의 미학
불교미학 : 침묵하는 미감들이 말하게 하기
02 미학적 여래와 현묘의 미학 : 숭고의 미학을 넘어서
고딕 성당에서 초월성의 미학
보로부두르 사원, 혹은 해탈로 이끄는 길-기계
바이욘 사원 : 비의적 모호성과 끌어당김의 거리감
초월자와 숭고의 두 형상
세속적 숭고와 숭고의 미학
미학적 여래
현묘의 미학
03 형상의 독재에서 공-작의 미학으로 : 재료는 형상의 노예가 아니다!
주름에의 매혹
형식의 미학, 형상의 전제주의
재료의 봉기와 질료적 흐름
공동-주어로서의 형상과 재료
재료의 범람과 형상의 교란
재료의 존중, 혹은 재료와의 타협
형상과 재료의 이인무
04 대충의 미학과 불완전성의 힘 : 세 가지 미감이 창안하는 ‘대충’의 세계
배흘림기둥과 엔타시스 양식 : ‘착시교정’ 이론의 착각
완전성의 기하학주의와 강박증적 엄격주의
이념적 정확성과 적절성의 감각
기겁할 기둥들과 파격의 미감
미완의 미감, 혹은 ‘완결 없는 완성’에 대하여
춤추는 기둥과 삐딱한 보살 : 삐딱함의 미감
대충의 미학과 세 가지 미감 : 미완·파격·삐딱함
05 매달림의 미학과 상승의 미학 : 기하학적 미학에서 미학적 기하학으로
티베트 고원의 낯선 ‘모더니즘’
매달림의 미감
매달림의 기하학
날아오름의 감응과 상승의 미학 : 미얀마의 사원과 불탑
솟구침의 감응과 상승의 미학 : 태국의 사원과 불탑
다른 감각, 다른 기하학들
06 무한을 품은 유한과 외부성의 미학 : 중심 없는 중심과 호옹의 미감
담 아닌 담, 문 없는 문
마당, 내부화된 외부
서원, 위계적 중심화와 대칭적 통합
중심 없는 중심성과 비대칭성의 미감
주체적 중심화 : 주인의 눈과 외부자의 눈
건물과 마당의 포응, 혹은 호옹의 미감
무한을 품은 유한, 혹은 유한과 무한의 연속체
07 은근의 미학, 혹은 피아니시모의 힘 : 은미함의 강도와 평면화의 미감
무심한 얼굴의 수많은 표정들
포르티시모의 미감과 피아니시모의 미감
피아니시모의 미학, 혹은 은미와 은연의 기술
평면화와 입체화
평면화의 수학과 탈초점화
깊이 없는 깊이와 감각적 원만
08 친원의 시선과 내맡김의 미학 : 도래할 사건을 기다리는 비인칭적 불상들
얼굴과 시선
반개한 눈과 내맡김의 시선
친근한 불상과 친원한 불상
‘내맡김’의 중간 지대
‘개성 없는’ 형상, ‘그게 그거’인 불상
기다림의 시간과 내맡김의 미학
09 웃음의 철학과 유머의 미학 : 비극과 희극 사이, 두 가지 웃음 사이
극한의 웃음, 웃음의 극한
비극적 사유와 충실성
철학적 웃음과 웃음의 철학
웃음의 물리학
유머의 정치학
익살, 혹은 내용으로서의 유머
해학, 혹은 표현으로서의 유머
사유의 웃음과 웃음의 사유
10 검은 여래와 어둠의 미학 : 석굴의 어둠과 어둠 속의 산사
석굴과 어둠
빛과 어둠
존재론적 여래와 미학적 여래
어둠의 미학
어둠의 미학과 어둠 속의 산사
11 존재론적 여래와 ‘나름’의 미학 : 세 가지 미학적 여래와 탈속의 함정
불교미학의 불가능성, 혹은 불가능성의 미학
여래의 미학
여래의 미학과 내재적 비평
‘불이의 미학’과 ‘와비의 종교’
‘다선일여’와 차의 미학
나름의 미학과 파격의 스타일
미학적 여래의 세 극 : 금빛 여래, 검은 여래, 하얀 여래
12 형상들의 합종연횡과 횡단의 미학 : 혼종의 감각과 불교 트랜스내셔널리즘
여성화된 신체, 혹은 혼성의 미감
지배자의 형상과 불보살의 형상
동물과 괴물, 혼종의 형상들
‘연횡’, 미시적 성분들의 횡단적 연대
연횡적 건축술의 조형 능력
역설의 철학, 역감의 미학
횡단의 미학과 불교의 트랜스내셔널리즘
닫는 글_ 불교미학의 얼굴들
참고문헌
저자소개
책속에서
미의 보편적 본질이 비례라는 말은 모든 비례가 미라는 게 아니라 특정한 비례만이 미라는 말이다. 특정한 비례를 척도로 삼는 미학인 것이다. 그런데 어떤 비례가 미적 보편성을 갖는 비례라고 해야 할까? 기하학과 비례를 우주적 보편성이라 믿었던 서구인들이지만, 르네상스 건축가들은 원과 정사각형을 좋아했고, 바로크시대 건축가는 직사각형을 좋아했고, 미켈란젤로는 이전이라면 ‘찌그러진 원’이라 했을 타원을 건축에 적극 도입했다. 어떤 게 ‘진정한’ 미적 비례일까? 르네상스 지지자인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바로크양식을 추하다고 했지만, 그의 제자 하인리히 뵐플린은 바로크양식 또한 아름답다고 했다. 부르크하르트가 그런 뵐플린을 극도로 미워하여 자기 장례식에도 오지 못하게 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더라도, 이 두 가지 다른 비례의 미감이 서구 미술사에서조차 경쟁적이었음을 알기는 어렵지 않다. 어떤 것이 아름다운가를 둘러싼 이러한 대립은 서구의 미술사가나 미학자 사이에서도 단일한 ‘보편성’의 이름으로 쉽게 설득할 수 없는 것임을 방증한다.
일정한 패턴의 작품이 있는 곳이라면 명시적 이론이 없어도 미학은 존재한다. 해명되지 않은 채 작품 속에 깃들어 존재한다. 그것은 작품이 만들어질 때 이미 작동하고 있었고, 만들어진 작품으로 존속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먼저 작품을 만들 도제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방식으로 존재했을 것이다. 해명되지 않거나 침묵 속에 존속해온 그 미감에 적절한 ‘이름’을 부여할 때, 미감은 작품 속에서 불려 나와 ‘미학’이 된다. 미감이란 작품 속에 말없이 잠들어 있는 미학이고, 미학이란 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이름을 갖게 된 미감이다.
그러나 ‘정말 같은’ 형상에 대한 욕망이 반드시 외양(appearance)의 정확한 재현만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욕망은 종종 사실이라기에는 과도한 외양으로 예술가를 이끌기도 한다. 룽먼(龍門) 석굴이나 마이지산(麥積山) 석굴을 비롯해 북위(北魏)시대의 많은 불상에서 발견되는 과도한 옷주름이 그렇다. 가령 마이지산 44굴의 불상은 상하 비례로만 봐도 반 이상이 아래로 늘어진 옷주름이고, 정면에서 보이는 옷 표면의 넓이는 불상의 2배가 넘는다. 그뿐 아니라 옷주름의 화려함이 우리의 시선을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는 불상의 얼굴이나 수인(手印)을 지은 두 손의 신체로부터 벗어나 아래로 잡아끌 만큼 과도하다. 불상에서 옷주름이 이리 클 이유를 일상이나 종교 안에서는 찾기 힘들다. 중국의 궁셴(鞏縣, 공현) 석굴 1굴의 불상도 그렇다. 종종 ‘룽먼 양식’이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스타일에서 극적으로 나타나지만, 불상에서 옷자락 주름에 대한 관심은 비록 정도 차는 있으나 다른 시기, 다른 지역에서도 발견된다. 가령 삼국시대의 유명한 반가사유상이나, 일본 가마쿠라시대 케이파(慶派)의 불상들이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