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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94598046
· 쪽수 : 568쪽
· 출판일 : 2025-06-15
책 소개
목차
윌리엄 포크너 노벨상 수상 연설
작품 해제
Ⅰ 시골
불타오른 헛간
주님의 지붕널
키 큰 남자들
어느 곰 사냥
두 병사
스러지지 않으리
Ⅱ 마을
에밀리를 위한 장미 한 송이
머리카락
황동 켄타우로스
메마른 9월
죽음의 매달리기
엘리
윌리 삼촌
마당의 노새
그 또한 괜찮으리라
그 저녁의 태양
Ⅲ 야생
붉은 잎사귀
정의 하나
어떤 구애
로!
책속에서
그들은 주랑 현관을 가로질렀다. 이제 바닥을 딛는 아버지의 불편한 쪽 발소리가 시계처럼 돌이킬 수 없게 울렸다. 소리를 내는 육신이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것만큼이나 모든 면에서 이곳과 걸맞지 않은 소리였고, 하얀 문을 눈앞에 두고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것이 마치 그 무엇에도 왜소해지지 않는 날카롭고 광포한 최소 음량이라는 성질을 획득한 것만 같았다 ― 납작하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한때 검은색이었으나 이제는 늙은 집파리처럼 녹색으로 닳아 번들거리는 브로드천겉옷을 입은 그 육신은, 너무 커서 접어올린 소매 아래에서 갈고리발톱처럼 손을 들어올렸다.
‘이후 약 10초 동안, 아빠는 망치를 그대로 들어올린 채 솔론을 바라봤다. 뒤이은 3초 동안, 아빠의 눈길은 솔론은 물론이고 다른 무엇에도 향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빠는 다시 솔론을 바라보았다. 마치 정확히 2.9초가 지난 후에야 자신이 솔론을 바라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최대한 빨리 솔론에게로 시선을 돌린 듯한 느낌이었다. “하.” 아빠는 말했다. 그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분명 입을 벌리고 있는 데다 웃음처럼 들렸으니 웃음이라 해도 좋을 법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아빠의 잇새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아빠의 눈가 이상으로 올라가지도 않았다.
“자네도 괜찮은 사람이야. 그저 돌아다니다 보니 온갖 규칙과 규제 때문에 시야가 흐려졌을 뿐이지. 그게 우리들의 문제라네. 온갖 두문자와 규칙과 해결 방식을 고안해내다 보니 다른 아무것도 못 보게 되었거든. 두문자와 규칙에 끼워맞출 수 없는 대상을 마주치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는 거지. 우리는 박사 친구들이 실험실에서 만들어내는 존재처럼 변해 버렸어. 뼈를 발라내고 내장을 빼낸 후에도 여전히 살아서, 어쩌면 뼈와 내장이 사라졌다는 사실도 모른 채 영원히 살려 놓은 작은 동물처럼 말이야. 우리는 등뼈를 발라내 버렸지. 사람에게 등뼈 따위는 필요 없다는 결정을 내려버렸거든. 등뼈 따위는 구식이라는 식으로 말일세. 하지만 등뼈가 들어가 있던 홈은 여전히 남아 있고, 등뼈도 아직 숨이 붙어 있다네. 어쩌면 언젠가는 다시 등뼈를 끼우고 살게 될지도 모르지. 언제가 될지, 얼마나 심하게 몸이 비틀려야 그 필요를 깨닫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