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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등 뒤에 있어

빛은 등 뒤에 있어

나쓰메 소세키, 너새니얼 호손, 니이미 난키치, 다자이 오사무, 데라다 도라히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로베르트 발저, 미야자와 겐지, 버지니아 울프, 베아트릭스 포터, 시마자키 도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알도 레오폴드, 알베르 카뮈, 알퐁스 도데, 어니스트 헤밍웨이, 오리쿠치 시노부, 윌리엄 포크너, 조지 기싱, 조지 오웰, 찰스 디킨스, 카렐 차페크, 폴 부르제, 헤르만 헤세,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은이), 강문희, 김영글, 정인혜 (옮긴이)
꽃피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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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등 뒤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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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빛은 등 뒤에 있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99228207
· 쪽수 : 324쪽
· 출판일 : 2025-06-30

책 소개

‘인생 산책자를 위한 밤과낮 에디션’은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세계 고전 산문을 두 권의 책에 나눠 엮은 산문선이다. 문학이 내어주는 너른 품에 삶의 많은 시간을 기대어 살아온 젊은 번역가 세 명이 모여 우리가 사랑했고, 사랑하며, 사랑할 작품을 함께 고르고 각각 영미, 유럽, 일본어권 작품을 맡아 한 단어 한 단어 꼼꼼하고 충실하게 우리말로 되짚었다.

목차

들어가는 글

공간, 오랫동안 그곳에 남아

헤르만 헤세 ⋯ 정원에서
조지 오웰 ⋯ 물 아래 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스미다강
헨리 데이비드 소로 ⋯ 내 손으로 집 짓기
어니스트 헤밍웨이 ⋯ 모로 성 연안 청새치 낚시

계절, 낯설지 않은 서정

로베르트 발저 ⋯ 그라이펜 호수
조지 오웰 ⋯ 두꺼비를 생각하며
알도 레오폴드 ⋯ 삼월, 기러기가 돌아오다
시마자키 도손 ⋯ 밤이 짧은 계절
알베르 카뮈 ⋯ 알제의 여름
다자이 오사무 ⋯ 아, 가을
조지 기싱 ⋯ 겨울 1

여행, 그해 일어난 일 중 지금까지 좋은 일

어니스트 헤밍웨이 ⋯ 슈룬스에서 보낸 겨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도보 여행
미야자와 겐지 ⋯ 영국 해안
알퐁스 도데 ⋯ 오렌지
알베르 카뮈 ⋯ 수수께끼

사랑,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폴 부르제 ⋯ 진실한 감정
니이미 난키치 ⋯ 꽃을 묻다
나쓰메 소세키 ⋯ 유리문 안에서
오리구치 시노부 ⋯ 부재중일 때
너새니얼 호손 ⋯ 아이와 나

반려, 우린 모두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

윌리엄 포크너 ⋯ 그의 이름은 피트였다
데라다 도라히코 ⋯ 새끼 고양이
카렐 차페크 ⋯ 민다, 혹은 개를 키운다는 것
버지니아 울프 ⋯ 충실한 친구에 관하여
찰스 디킨스 ⋯ 두 큰까마귀
베아트릭스 포터 ⋯ 산토끼 길들이기

작가 소개
원문 출처

저자소개

너새니얼 호손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04년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매사추세츠 주 세일럼 마을에서 태어났다. 친가 쪽에서는 엄격함과 침울함을 이어받았고, 외가 쪽에서는 실무 능력과 유머 감각을 물려받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1837년까지 12년 동안 모친의 집에 와서 직업도 갖지 않은 채 독서와 창작 수습에만 전념했다. 이때도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주로 고독과 명상과 독서 속에서 생활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그는 예민한 감수성과 회의적인 성격으로 인해 더욱더 인간의 내면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거기에서 그는 인간 본성 속의 신성을 믿으면서도 죄악의 검은 동굴이 도사리고 있음을 보았다. 이에 따라 나중에 많은 단편소설들과 일련의 로맨스들을 통해서 죄인들의 우화와 지성과 자연적 감정의 갈등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어느 사회에나 있는 인간 심리와 인간 고뇌에 대한 그의 명철한 인식을 보게 해 주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최초의 소설 《팬쇼(Fanshawe)》를 익명으로 자비출판 했으나 만족스럽지 못해 곧 모두 회수해 파기해 버렸다. 이후 한동안 단편소설의 창작에만 전념했다. 1837년에 당시까지 발표된 단편소설 36편 가운데 18편을 한데 묶어 《진부한 이야기들(Twice-Told Tales)》이란 제명의 단편집을 본명을 사용해 최초로 내놓았다. 이어 1846년에 두 번째 단편집 《구목사관의 이끼(Mosses from an Old Manse)》를 출간했다. 여기에 실린 첫 작품인 〈구목사관(The Old Manse)〉은 그의 진귀한 자전적 에세이이고, 이 밖에 유명한 〈젊은 굿맨 브라운(Young Goodman Brown)〉, 〈모반(The Birth-Mark)〉, 〈라파치니의 딸(Rappaccini's Daughter)〉 등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1852년에는 단편집 《눈의 이미지와 다른 진부한 이야기들(The Snow-Image, and Other Twice-Told Tales)》을 출간했다. 여기에는 1832년에 발표한 〈사자의 부인(The Wives of the Dead)〉, 〈내 친척 몰리뉴 소령(My Kinsman, Major Molineux)〉 외에도 1850년의 〈큰 바위 얼굴(The Great Stone Face)〉, 〈이선 브랜드(Ethan Brand)〉 등이 실렸다. 호손은 저명한 문인들과 활발하게 교제를 했을 뿐 아니라 정치계에도 본의 아니게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다. 1839년부터 2년 동안 보스턴 세관의 계량관으로서 소금과 석탄의 중량을 다는 일을 담당했다. 1846년에는 세일럼 세관에 수입품 검사관으로 임용되었다. 그러나 1848년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휘그당이 승리를 차지하고, 다음 해 재커리 테일러(Zachary Taylor)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 민주당원이었던 호손은 일종의 정치 보복으로 세관에서 해고당했다. 세관을 그만두고 나서 곧 《주홍 글자》의 집필에 착수했다. 성공적인 《주홍 글자》의 여세를 몰아 1851년 버크셔 체재 중에 집필한 《일곱 박공의 집(The House of the Seven Gables)》을 간행했고, 이어서 1852년에는 《블라이드데일 로맨스(The Blithedale Romance)》를 출간했다. 1853년 영국의 리버풀 영사에 임명되었다. 1853~1856년의 영국 체재 중의 기록을 담은 《영국 노트북(The English Notebooks)》은 그의 다른 노트북 이상으로 아주 상세하고 의미가 깊다. 이어서 1857~1859년에는 로마와 플로렌스에서 생활했다. 특히 플로렌스에서는 영국의 시인 브라우닝 부부(Robert and Elizabeth Barrett Browning)와 친교를 나눌 수 있었다. 이 기간의 생활은 《이탈리아 노트북(The Italian Notebooks)》에 상세하게 적혀 있다. 그 후 호손은 귀국해 다시 콩코드에 정착했다. 1860년에 그의 마지막 장편 로맨스인 《대리석 목양신(The Marble Faun)》을 미국과 영국에서 출간했다. 이 작품은 영국과 미국 양쪽에서 모두 호평을 받았다. 1864년에 호손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5월 11일 피어스와 함께 뉴햄프셔(New Hampshire) 여행길에 나섰다가 5월 19일 밤에 플리머스(Plymouth)의 한 여관에서 잠자던 중 사망했다. 5월 23일 호손은 늦봄의 화사한 햇빛과 신록의 훈풍 속에 뉴잉글랜드의 저명한 문인들인 롱펠로, 홈스, 필즈, 에머슨 등이 19세기 미국 문학의 실질적인 대가를 잃고 망연자실한 가운데 콩코드의 한 묘지에 조용히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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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지은이)    정보 더보기
본명은 나쓰메 긴노스케夏目金之助로, 1867년 현재의 도쿄 신주쿠구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도쿄제국대학의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근무했다. 1900년 문부성 최초의 국비유학생으로서 영국에서 2년간 유학하며 영어수업법을 연구했으며 귀국 후에는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의 강사로 일했다. 1905년 발표 및 연재한 장편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큰 호평을 받은 후 『도련님』 『풀베개』 등 화제작을 잇달아 발표했다. 1907년 『아사히신문』에 입사하여『우미인초』를 연재하면서 전업 작가로서 집필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 후』 『문』 『마음』 등의 작품을 연재하며 독자들의 사랑과 함께 일본 근대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16년 12월 9일, 『명암』을 집필하던 중 거듭된 위궤양 악화로 49세에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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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이미 난키치 (지은이)    정보 더보기
일본 아이치현 출생으로,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일본의 대표적인 동화 작가이다. 주로 생명의 소중함과 생태계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담긴 작품을 썼으며, 자연을 소재로 생명력 넘치면서도 평화를 추구하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대표작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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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9년 일본 아오모리현 기타쓰가루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 명망 있는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랐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1등을 놓치지 않는 수재였다. 선택받은 환경에 뛰어난 머리까지 타고났지만, 서른아홉 해의 짧은 생애 중 다섯 번 자살을 기도했다. 스무 살이던 1929년 칼모틴을 복용한 후 의식불명에 빠졌던 것을 시작으로, 1930년에는 술집 종업원 다나베 시메코와 가마쿠라 바다에 함께 투신했다. 그러나 다나베만 사망하고 홀로 살아남아 자살방조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광대의 꽃〉(1935)은 대표작인 〈인간 실격〉(1948)의 모태이자 이때의 자책감을 드러낸 작품이다. 〈도쿄 팔경〉(1941)에도 이때의 일이 자세히 서술돼 있다. 좌익 운동을 하며 유치장을 들락거리던 다자이는 〈교겐의 신〉(1936)에 그려진 대로 1935년 가마쿠라에서 목을 매 세 번째 자살을 시도했다. 미수에 그쳤지만 맹장염 수술 후 진통제로 쓰인 파비날에 중독되었다. 약값을 대기 위해 아쿠타가와상 수상에 욕심을 냈지만 실패하고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거기에 약혼 관계였던 게이샤 오야마 하쓰요와 절친한 친구의 불륜을 눈치채고 큰 충격을 받았다. 1937년 다자이와 오야마는 미나카미 온천에서 칼모틴을 먹고 네 번째 자살을 기도하지만 둘 다 살아남았고, 이때의 일은 〈우바스테〉(1938)에 녹아들었다. 1948년 결핵 증세로 인한 객혈이 심해진 다자이는 불륜 관계였던 야마자키 도미에와 다마가와조스이에 몸을 던져 함께 생을 마감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자살의 성공이었고, 두 사람의 사체는 기모노 허리띠에 묶인 채 다자이의 생일인 6월 19일에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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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와 겐지 (지은이)    정보 더보기
일본의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하나인 미야자와 겐지는 1896년 8월 27일, 여름이면 수만 마리 반딧불이 강 언저리를 수놓는 이와테현 하나마키 평야에서 태어났다. 전당포를 하던 아버지가 가난한 사람들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것에 회의를 품은 그는 이후 어려운 사람들, 특히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일생 동안 노력한다. 모리오카 고등농림학교盛岡高等農林學校를 졸업한 뒤, 농업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거나 농업을 연구해 농사를 지도하기도 했다. 그는 청빈하고 절제된 생활 속에서 글을 썼는데 자연과의 깊은 교감, 우주를 향한 무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100여 편의 동화와 400편의 시를 남겼다. 사후 그의 문학은 전쟁의 상흔으로 상처입은 일본 사회에 생명과 공생의 가치를 불러일으키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다 폐렴으로 1933년 9월 21일 사망했다. 주요 작품에 《은하철도의 밤》, 《첼로 켜는 고슈》, 《바람의 마타사부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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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82년 영국 런던에서 당대의 저명한 학자이자 문필가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과 어머니 줄리아 프린셉 덕워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남자 형제들처럼 공식 대학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서재에서 많은 책을 탐독하며 시간을 보냈다. 13세가 되던 해인 1895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처음으로 신경 쇠약을 앓았고, 1904년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재발하여 자살을 기도했다. 이후 화가인 언니 버네사와 함께 블룸즈버리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신의 지식인, 예술가 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울프가 주축이 되어 활동한 이 모임은 훗날 <블룸즈버리 그룹>으로 알려진다. 1912년 그룹의 일원이던 레너드 울프와 결혼했으며, 남편과 함께 호가스 출판사를 차려 T. S. 엘리엇과 E. M. 포스터의 작품 등을 출간했다. 1915년에 첫 소설 『출항』을 발표한 후 『밤과 낮』(1919)을 거쳐 실험적인 성격을 띤 『제이컵의 방』(1922)을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평론, 집필, 강연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모더니즘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댈러웨이 부인』(1925), 『등대로』(1927), 『올랜도』(1928), 『파도』(1931) 등의 소설들과 페미니즘 필독서가 되다시피 한 『자기만의 방』(1929) 등 여러 편의 산문들을 발표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시골집으로 피신했지만, 심해지는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다가 1941년 3월 이른 아침 강가로 나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프루스트 등과 함께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버지니아 울프는, 오늘날 영문학의 기념비적 작가이자 페미니즘 비평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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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자키 도손 (지은이)    정보 더보기
시, 소설, 수필, 동화 등 문학의 전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해 일본문학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작가다. 1872년에 나가노현(長野縣) 니시지쿠마군(西筑摩郡) 미사카(神坂)에서 아버지 마사키(正樹)와 어머니 누이(縫)의 막내로 태어났다. 도손의 가문은 1513년에 선조가 기소(木曾)로 이주해 와서 대대로 촌장과 역참과 숙박업을 가업으로 이어 왔는데 바로 아버지 마사키가 본 소설 주인공 한조의 모델이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로부터 《천자문》과 《권학편》 등을 배웠고 열 살 때 도쿄로 유학을 가서 매형 집에서 기숙하며 다이메이(泰明)소학교를 다니게 된다. 그 후 여러 곳으로 전전하며 15세 되던 해에 시바(芝)에 있는 영어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정신적 스승인 기무라 구마지(木村熊二)에게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다. 이해 11월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본격적으로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메이지(明治) 학원 본과에 입학한다. 한때 정치에 뜻을 두고 있었으나 18세 되던 해에 동경대 교양학부의 전신인 제1고등학교 입학시험에 실패를 계기로 문학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21세인 1892년부터 잡지 《여학(女學)》에 습작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의 길에 들어선다. 22세에는 《문학계(文學界)》 창간 동인으로 참가하고 거기에 작품을 발표하며 필명인 도손(藤村)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26세 되던 해에 발표한 《새싹집(若菜集)》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일약 무명에서 스타덤에 오른다. 특히 그 안에 수록된 〈첫사랑(初戀)〉이라는 7·5조의 정형시가 독자들을 단숨에 매료한다. 이 시는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며 국민적 시인이라는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된다. 그는 연이어 네 번째 시집 《낙매집(落梅集)》까지 간행하지만 시로는 만족을 하지 못하고 산문으로의 전향을 염두에 두고 습작 삼아 수필 《지쿠마가와강 스케치(千曲川のスケッチ)》를 발표한다. 이 작품도 명작으로 명성을 얻는다. 31세에는 〈옛 주인(舊主人)〉이라는 첫 단편소설을 발표하는데 풍기 문란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발매를 금지당하고 만다. 33세에는 결연한 각오로 자비 출판을 계획하고 장인에게 자금 원조를 부탁하는데 이 작품이 1906년 35세에 출간되는 《파계(破戒)》다. 천민 계급의 차별 문제를 픽션으로 다룬 것으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출세작이며 일본 자연주의 작품의 기념비적 작품이라 일컬어진다. 1908년, 과거 22세 때 제자를 사랑한 나머지 학교를 사직하고 여행을 떠났던 자신의 사건을 소설로 《아사히 신문》에 연재하고 간행한 것이 바로 《봄(春)》(1908)이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이른바 사소설 글쓰기가 유행하며 이 흐름이 일본 자연주의의 주류가 되었다. 39세에는 《집(家)》(1910)을 《요미우리 신문》에 연재하는데 출가한 누이의 가문과 친정의 두 가문의 가부장제하의 퇴폐와 붕괴의 과정을 그린 누이의 생애를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47세에는 상처하고 혼자 지내던 중 집안일을 돌보러 온 조카를 임신시킨 사실을 소설로 써서 발표하게 된다. 《신생(新生)》(1918)은 작가 자신의 치부 고백의 완결편이지만 “노회한 자기변명에 불과하다”라는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혹평을 듣기도 한다. 58세부터는 본 작품인 《동트기 전》 집필을 시작한다. 그동안 축적해 온 작가적 역량을 총동원한 비장한 글쓰기였는데 이 작품은 그가 평생 동안 일관되게 추구해 왔던 “자아정체성 찾기”의 일환으로 아버지를 추적한 것이며 그 아버지라는 메타포에 자신의 내적인 성찰과 고뇌도 함께 상감해 넣었다. 그와 동시에 프랑스에 도피 도중 우연히 목격한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전쟁 참화와 그에 따른 국가의 존재를 절감하면서 정치 시스템까지 아우르는 역사 소설을 써야겠다는 문학적인 사명감을 이 소설을 통해 실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4세에 이 작품을 완결한다. 그리고 72세에 소설 《동방의 문》을 집필하던 중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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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도 레오폴드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87년 미국 아이오와주 벌링턴에서 태어나 예일대학 삼림학부에서 공부했다. 1909년 삼림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24년 위스콘신대학 〈미국 임산품 시험소〉 부소장으로 자리를 옮겨 일하다가 1933년에 위스콘신대학 농경제학과 교수로 초빙되어 1948년 사망할 때까지 재직했다. ‘환경윤리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많은 사람들에 의해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보존 사상가로 손꼽히는 레오폴드의 유산은 임업, 야생동물 관리, 보존 생물학, 지속 가능한 농업, 복원 생태학, 환경 역사, 문학, 교육, 미학 및 윤리 등 광범위하다. 『모래 군의 열두 달』은 지금까지 출판된 환경에 관한 가장 사랑받고 영향력 있는 책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사상과 철학은 21세기 사회가 직면한 복잡한 자연환경 보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통찰력과 영감을 얻기에 충분하다. 레오폴드는 1965년 미국 야생생물연맹의 자연보전 영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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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지은이)    정보 더보기
그 모든 것에 항거하며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로운 인생을 깊이 고민한 작가이자 철학자.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고, 청각 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가난, 알제리의 빛나는 자연과 알제 서민가의 일상은 카뮈 작품의 뿌리에 내밀하게 엉기어 있다. 구역의 공립 학교에서 L. 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나는 자유를 빈곤 속에서 배웠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알제리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가 작가적 양분을 공급받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고 1923년 프랑스 중등학교 리세에 입학했고, 이후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으나 1930년 폐결핵으로 자퇴를 했다. 결핵 발병으로 누구보다 좋아했던 축구를 포기했다. 바칼로레아 준비반에서 철학 교수이자 에세이스트인 장 그르니에를 만나 큰 영향을 받고, 이후 평생 그와 교류를 이어갔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 고학으로 다니던 알제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철학을 전공하는 동시에 정치 활동과 연극 활동에 집중했다. 1932년 장 그르니에가 주도한 조그만 월간 문예지 [쉬드Sud]를 통해 처음으로 첫 에세이 《새로운 베를렌Un Nouveau Verlaine》을 발표했다. 대학시절에는 연극에 흥미를 가져 직접 배우로서 출연한 적도 있었다. 결핵으로 교수가 될 것을 단념하고 졸업한 뒤에는 진보적 신문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한때 공산당에 가입했던 그는 비판적인 르포와 논설로 정치적인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프랑스 사상계와 문학계를 대표했던 말로, 지드, 사르트르, 샤르 등과 교류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1937년 첫 산문집 《안과 겉》을 발표하고, 이듬해부터 [알제 레퓌블리켕]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1940년에 파리로 활동 무대를 옮겨 [파리수아르]의 기자가 된다. 독일에 점령당한 파리에서 검열을 피해 지방으로 옮긴 [파리수아르]를 따라 이동하는 동안에도 집필 활동에 매진한다. 초기의 작품 《표리(表裏)》(1937), 《결혼》(1938)은 아름다운 산문으로, 그의 시인적 자질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942년 7월, 자신의 첫 소설이자 대표작이 되는 문제작 《이방인(異邦人) L' tranger》을 발표하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이즈음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여 프랑스 해방 운동에 참여한 카뮈는 철학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1943), 희곡 작품 「오해」(1944)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하여 레지스탕스 조직의 기관지였다가 후에 일간지가 된 [콩바]의 편집장으로서, 모든 정치 활동은 확고한 도덕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좌파적 입장을 견지했다. 또 집단적 폭력의 공포와 악성, 부조리함을 알레고리를 통해 형상화한 소설 《페스트》로 문학계의 대반향을 일으켰고 1951년에는 마르크시즘과 니힐리즘에 반대하며 제3의 부정정신을 옹호하는 평론 《반항적 인간》을 발표하여 지성계에 큰 논쟁을 촉발한 사르트르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10년 가까운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1956년 《전락》을 발표하면서 사르트르에게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를 발표하며 문학가를 넘어 사상가로도 인정받기 시작했고, 실존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엄마, 무명인, 그리고 나의 ‘죽음’을 연달아 맞닥뜨리며 삶의 부조리를 고뇌하는 모습은 이후 오랫동안 수많은 독자를 실존주의의 세계로 이끈다. 와 라는 희곡을 쓰며 희곡 작가로도 활동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대문호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알제리 독립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 가지만, 카뮈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부조리한 죽음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960년 1월 4일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이때 사고 차량에 있던 가방에서 초고 형태로 발견된 《최초의 인간》은 1994년에야 빛을 보게 된다. 이 외에도 《여름》, 《유배지와 왕국》, 《행복한 죽음》, 《정의의 사람들ㆍ계엄령》, 《결혼, 여름》, 《태양의 후예》, 《젊은 시절의 글》, 《스웨덴 연설ㆍ문학 비평》, 《최초의 인간》, 《여행일기》, 《단두대에 대한 성찰ㆍ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전락·추방과 왕국》, 《안과 겉》 등의 작품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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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도데 (지은이)    정보 더보기
남프랑스 프로방스의 님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완전히 파산하면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리옹의 앙페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알레스 공립 중학교 교사가 되었다. 난폭한 학생들 때문에 힘들어하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파리로 건너갔다. 1859년 첫 시집 《연인들》을 출간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 후 시인 미스트랄, 소설가 플로베르, 졸라, 공쿠르, 투르게네프 등과 교류했다. 모르니 공작의 비서가 되어 생활이 안정되자 작품 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1862년 희곡 〈마지막 우상〉을 발표했다. 1868년 알레스 공립 중학교의 경험을 담은 첫 소설 《꼬마》를 출간했고 1869년에는 단편집 《풍찻간 편지》를 출간했다. 《풍찻간 편지》에는 도데의 대표적인 단편인 〈별〉, 〈아를의 여인〉 등이 실려 있다.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일어나자 군대에 지원하여 비참한 전쟁을 몸소 겪었고, 1873년에 출간한 단편집 《월요일 이야기》에 패전국의 비애와 애국의 정열을 담은 〈마지막 수업〉, 〈소년 간첩〉, 〈기수〉 등을 실었다. 이외에도 섬세하고 감수성 풍부한 문체로 《타라스콩의 타르타랭》, 《자크》, 《나바브》, 《뉘마 루메스탕》 등 많은 작품을 남겼고, 1897년 12월 16일 척추 질환으로 고생하다가 56세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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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기싱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57년 영국 웨이크필드에서 약제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맨체스터대학교에 입학했으나, 매춘부와 교제하며 결혼한 후 그녀를 구하기 위해 절도죄를 범하고 투옥되어 퇴학당했다. 극도로 빈곤한 생활을 하면서도 1876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고전·철학·문학을 공부했다. 이후 《새벽의 노동자Workers in the Dawn》(1880), 《군중Demos》(1886), 《밑바닥의 세계The Nether World》(1889), 《신 삼류 문인의 거리New Grub Street》(1891), 《유랑의 몸Born in Exile》(1892) 등을 펴냈다. 특히 빈민층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는 영국 자연주의의 대표 작가로 뽑힌다. 그의 문학적 특징은 지적인 무산자無産者, 영락零落한 지식인 등이 그의 교양 때문에 자기가 속해 있는 빈민층에 안주하지 못하는 비극을 다룬 점에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고 오히려 비관주의로 기울어 후기에 갈수록 고전적 교양의 세계를 동경했다. 그는 일생 디킨스를 존경해 《찰스 디킨스 평론》(1898)을 썼으며, 자전적 수상록인 《헨리 라이크로프트의 수기The Private Papers of Henry Ryecroft》(1903)와 남이탈리아 기행문 《이오니아 해변에서By the Ionian Sea》(1901)는 수필의 명작이라 불린다. 그 밖에 단편집 《거미집이 있는 집The House of Cobweb and Other Stories》(1906)이 있다. 1903년 남프랑스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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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지은이)    정보 더보기
영국의 작가·저널리스트.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1903년 6월 25일, 인도 아편국 관리였던 아버지의 근무지인 인도 북동부 모티하리에서 태어났다. 첫돌을 맞기 전 영국으로 돌아와 “하급 상류 중산층”으로 명문 기숙학교인 세인트 시프리언스와 이튼을 졸업한 뒤 명문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식민지 버마로 건너가 영국의 경찰간부로 일한다. “고약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경찰직을 사직한 뒤, 자발적으로 파리와 런던에서 부랑자 생활을 하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1933)을 발표한다. 1936년은 오웰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해이다. 그해 잉글랜드 북부 탄광촌을 취재하여 탄광 노동자의 생활과 삶의 조건 등을 담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1937)을 쓰고, 이 책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겨주자마자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스페인내전에 참전하여 『카탈로니아 찬가』(1938)를 펴내면서 자신의 예술적·정치적 입장을 정리해나간다. 그러한 전환점 이후 폐렴 요양차 모로코에 가서 『숨 쉬러 나가다』(1939)를 쓴다. 2차세계대전 중에는 BBC 라디오 프로듀서로 일했고 이후 <트리뷴>의 문예 편집장, <옵저버>의 전쟁 특파원 노릇도 한다. 1945년에는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정치 우화 『동물농장』을 출간한다. 또 다른 대표작 『1984』(1949) 집필 중 폐결핵 판정을 받은 그는 1950년 1월 21일, 마흔여섯 나이로 숨을 거둔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오웰이 작가로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뒤 한 진보단체로부터 잉글랜드 북부 노동자들의 실상을 취재하여 글을 써달라는 제의를 받고, 두 달 동안 랭커셔와 요크셔 일대 탄광 지대에서 광부의 집이나 노동자들이 묵는 싸구려 하숙집에 머물며 면밀한 조사활동을 벌인 결과물이다. “실업을 다룬 세미다큐멘터리의 위대한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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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세계인에게 셰익스피어와 더불어 영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로 기억된다. 두 작가의 인기는 시대와 계급을 망라하며 세계적이라는 점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디킨스는 마치 현대의 할리우드 최고 스타가 누리는 것 같은 대중적 인기를 소설가로서 누렸고, 현대 주요 일간지가 사회 현안에 미치는 영향만큼이나 그의 의견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디킨스의 탁월성은 대중성과 사회 현안에 대한 성찰에 있다. 디킨스의 대중성은 어린 시절의 경험에 기인한다. 말단 공무원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낙천적 성격으로 돈의 씀씀이가 커서 항상 빚을 졌다. 어린 시절 그는 매번 더 낙후된 곳으로 이사를 다녔고 급기야 열한 살 때에는 아버지가 채무자 감옥(Debt Prison)에 수감되어 온 가족이 아버지와 함께 감옥에서 1년가량 생활하게 된다. 장남인 그는 학업을 중단하게 되고 구두약 공장에 보내진다. 소설을 즐겨 읽고 꿈 많던 소년 디킨스는 공부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 가난한 아이들 틈에 끼어 일해야 하는 상황에 깊이 상처를 입었다. 디킨스에게 심리적 상처를 남긴 이 경험은, 그러나 작가로서는 유익한 경험이었다. 당시의 산업혁명 시대에는 열 살도 채 안 된 수많은 어린이들이 산업 현장으로 내몰렸다. 가장 역할을 하면서 학대받고 방치된 어린이들의 고통에 특히 민감했던 디킨스의 작품에는 이러한 아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런던의 영세민 속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디킨스는 소설사상 처음으로 도시의 빈민들을 소설 속에 등장시킨다. 어린 시절 경험은 도시 빈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킴으로써 사회 계급 전체가 예술적 위엄을 부여받는 예술상의 민주화 작업을 이루는 토대가 된다. 디킨스의 삶은 인간의 열정과 에너지가 얼마나 지대할 수 있는지, 빅토리아 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모토라 할 수 있는 자수성가를 얼마나 훌륭히 성취했는지를 보여 준다. 열다섯 살까지만 학교교육을 받은 그가 처음 가진 직업은 법률 사무소의 서기였다. 그는 사무소에서 온갖 잔심부름을 하면서 속기술을 익혀 신문사 기자가 된다. 고등법원과 의회에 출입하는 기자였던 그는 통찰력 있는 시각과 빼어난 문장력을 습득하게 된다. 스물네 살 때부터 자신이 편집위원으로 있는 잡지에 <픽윅 문서>를 삽화와 함께 기고한다. 중년 신사 픽윅이 영국을 여행하며 겪는 모험과 인정 넘치는 사건들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픽윅을 일약 영국 국민이 사랑하는 인물로 만들었다. 디킨스는 같은 시기에 ≪올리버 트위스트≫를 써서 올리버를 온 국민이 사랑하고 돌보아 주고 싶은 어린이로 만들었다. 그 후 디킨스는 생애 마지막까지 평균 2년에 장편소설 한 권을 써내는 괴력을 발휘한다. 대표작으로는 ≪크리스마스 캐럴≫, ≪위대한 유산≫, ≪데이비드 코퍼필드≫, ≪두 도시 이야기≫, ≪황폐한 집≫, ≪리틀 도릿≫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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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 차페크 (지은이)    정보 더보기
890년 체코 북부의 작은 도시 말레 스바토뇨비체에서 태어났다. 체코 프라하와 독일 베를린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1915년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16년 형 요세프 차페크와 함께 쓴 산문집 《빛나는 심연》을 시작으로 소설, 에세이, 희곡, 동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뛰어난 작품들을 발표했다. 동시에 체코의 일간지 《나로드니 리스티》, 《리도베 노비니》 등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했다. 1920년 ‘로봇’이라는 말을 세상에 소개한 것으로 유명한 희곡 《R. U. R.》을 펴냈고, 1933년부터 체코 문학의 최고봉이자 차페크 문학의 정수라 불리는 철학소설 3부작 《호르두발》, 《별똥별》(1934), 《평범한 인생》(1934)을 연달아 출간했다. 일곱 차례 이상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지만, 당시 유럽을 장악했던 나치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번번이 수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차페크는 명실공히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와 함께 체코 문학을 대표하는 3대 작가로 손꼽힌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는 희곡 《곤충 극장》(1921), 장편소설 《도롱뇽과의 전쟁》(1936), 에세이 《정원가의 열두 달》(1929),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1939) 등이 있고, 인상적인 일러스트와 함께 《대놓고 다정하진 않지만》(1924), 《조금 미친 사람들》(1930) 같은 여행기를 남기기도 했다. 1938년 나치 독일이 체코를 점령하기 몇 달 전, 지병인 폐렴이 악화되어 프라하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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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77년 독일 남부 도시 칼프에서 개신교 목사이자 선교사인 아버지와 유서 깊은 신학자 가문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스위스 바젤과 칼프에서 성장했다. 열다섯 살 때 재학 중이던 신학교를 그만두며 “시인이 되지 못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라고 결심한 헤세는 그해 6월 삶의 좌절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기도, 정신병원에 입원해 신경쇠약 치료를 받았다. 퇴원 후 인문계 중등학교인 김나지움을 다니다 다시 학업을 중단했고, 시계 공장과 서점 등에서 수습사원으로 일하며 글쓰기에 전념했다. 1899년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와 첫 산문집 『자정 너머 한 시간』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당시 『자정 너머 한 시간』 출간을 결정한 독일 디더리히스 출판사의 대표 오이겐 디더리히스는 “이 책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만큼 더 그 문학적 가치를 확신한다”라며 헤세에게 작가로서의 확신을 심어주었다. 이 책으로 독일 문학계에 이름을 알린 헤세는 1904년 『페터 카멘친트』로 큰 주목을 받으며 일약 유명 작가로 발돋움했고, 『수레바퀴 아래서』, 『크눌프』, 『청춘은 아름다워』 등을 발표하며 입지를 탄탄하게 다졌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독일포로구호’에서 일하며 전쟁포로들과 억류자들을 위한 잡지를 발행하는 한편, 정치적 논문과 선전문 등을 발표하며 전쟁의 비인간성을 규탄했다. 이런 활동들로 인해 그의 작품들은 독일 내에서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전쟁 기간 당시 정신적 어려움을 겪다 카를 구스타프 융에게 심리치료를 받았으며, 종전 뒤인 1919년에 ‘에밀 싱클레어’라는 필명으로 『데미안』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젊은 독자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작품성 역시 인정받아 베를린시에서 주관하는 폰타네상을 수상했다. 이후 『싯다르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황야의 이리』, 『유리알 유희』 등 여러 작품으로 수많은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군국주의와 국가주의에 비판적이고 나치를 경계한다는 이유로 그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고, 나치 집권 이후에는 독일 내에서 작품의 제작과 판매가 어려워졌다. 종전 뒤인 1946년부터 독일에서 다시 헤세의 작품이 출간되기 시작했고, 같은 해 노벨 문학상과 괴테상을 수상했다. 1950년 브라운슈바이크시에서 주관하는 빌헬름 라베 상을, 1955년 서독출판협회에서 주관하는 평화상을 수상했다. 1962년 스위스 몬타뇰라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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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현재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를 두었고, 여섯 남매 중 장남이었다. 평생을 낚시와 사냥, 투우 등에 집착했으며, 다방면에 걸쳐 맹렬한 행동을 추구하고, 행동의 세계를 통해 자아의 확대를 성취하려 했다. 그러한 인생관은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고등학생 때 학교 주간지 편집을 맡아 직접 기사와 단편을 썼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917년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하기도 했으며,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고 귀국했다. 휴전 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의 특파원이 되어 유럽 각지를 돌며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1921년, 해외 특파원으로 건너간 파리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 유명 작가들과 교유하는 등 근대주의적 작가들과 미술가들과 어울리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23년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詩)』를 시작으로 『우리들의 시대에』, 『봄의 분류(奔流)』,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소설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그후 1920년대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피츠제럴드’와 ‘포그너’와 함께 3대 작가로 성장하였다. 그의 첫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1926년에 발표했는데, 헤밍웨이의 대다수 작품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 사이에 발표되었다. 전쟁 중 나누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전쟁문학의 걸작 『무기여 잘 있거라』(1929)는 그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는 데 공헌했으며, 1936년 『킬리만자로의 눈』,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는 출판되자마자 수십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다. 이후 10년 만에 소설 한 편을 발표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52년 인간의 희망과 불굴의 정신을 풀어낸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여 큰 찬사를 받았으며,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이 해에 두 번의 비행기 사고를 당하는데, 말년에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집필 활동도 막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행동의 규범에 철저한 만큼이나 죽음과 대결하는 삶의 성실성과 숭고함을 작품에 투영하려 노력해왔다. 1959년에는 아이다호 주로 거처를 옮겼고, 1961년 여름, 헤밍웨이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1961년 케첨의 자택에서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표작으로는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52년 『노인과 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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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50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났다. 부계는 등대를 디자인하는 엔지니어 집안이었고 모계 밸푸어 가문은 스코틀랜드의 명문가였다. 선천적으로 기관지가 약했던 스티븐슨은 평생 질병으로 고생했다. 독실한 장로교 신자 집안에서 자란 어린 시절, 유독 종교색이 강한 유모가 병석에 누운 그에게 존 버니언과 성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는데, 훗날 그는 『어린이의 시의 정원』에서 유모에게 헌사를 바쳤다. 또한 어린 시절 내내 어머니와 유모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직접 쓰기도 했다. 1867년 집안의 바람대로 에든버러 공과대학에 들어갔으나 공학에 흥미를 갖지 못하고 법으로 전공을 바꿨다. 당시 가족과 수시로 여행을 다니며 글쓰기의 영감을 받았고 이후 여행 이야기를 즐겨 썼다. 대학 시절 대마를 피우고 매음굴에 드나들기도 했으며 종교를 저버리고 아버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1880년 두 아이의 어머니인 이혼녀 패니 반 드 그리프트 오스번과 결혼한 후 의붓아들 로이드와 그림을 그리다가 『보물섬』을 집필했다. 이후 어린이 책을 내다가 1886년 자신이 꾼 꿈을 바탕으로 쓴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출간해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890년 건강이 악화한 스티븐슨은 남태평양의 사모아로 이주해 원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여생을 보냈다. 1894년 44세의 나이에 뇌출혈로 사망했다. 「자살 클럽」, 『유괴』, 『밸런트레이 귀공자』, 『팔레사의 해변』 등의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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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 (지은이)    정보 더보기
서사와 문체,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통해 세계 문학사의 지형을 바꾼 20세기를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한 명. 미국 남부의 신화적 공간인 요크나파토파를 배경으로 독자적인 서사 우주를 구축했으며, 인간의 죄의식, 역사, 시간, 정체성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했다. 1897년 미국 미시시피주 뉴올버니에서 태어난 포크너는 옥스퍼드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문학과 미술에 관심을 가졌으며, 윌리엄 셰익스피어, 조지프 콘래드, 제임스 조이스, 셀린,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았다. 1차 대전 당시 캐나다 공군에 지원했으나 실전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전쟁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우체국 직원, 대학 행정직원, 작사가, 시인 등 다양한 일을 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29년 발표한 장편 『소리와 분노』는 포크너 문학의 전환점을 이룬 작품으로 몰락하는 남부 사회의 내면을 심층적으로 그려냈다. 이후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압살롬, 압살롬!』 등에서 더욱 급진적인 서사 실험을 이어나갔다. 포크너는 허구의 남부 군郡인 요크나파토파를 창조해 이 지역의 인물과 사건, 역사와 신화를 바탕으로 19편의 장편소설과 다수의 단편을 엮어 ‘하나의 문학적 우주’를 건설했다. 그의 세계에는 과거 남부의 영광과 노예제의 그림자, 전쟁의 상처, 백인과 흑인의 갈등, 빈곤과 몰락의 현실이 교차하며, 이 모든 것이 언어와 시간, 의식의 실험 속에서 구현된다. 그의 분열된 화자, 중첩된 시점, 복잡한 문체는 난해하다고 평가되지만, 이는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인간 경험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한 구조적 시도였다. 1949년 “심오하고 독창적인 예술적 기교를 통해 인간의 영혼을 탐구했다”는 선정 이유와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연설에서 그는 “작가는 사랑, 명예, 긍지, 연민, 희생, 인내 - 그런 것들을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후 1951년에는 자신이 직접 선별하여 여섯 개의 주제로 분류한 『포크너 자선 단편집Collected Stories of William Faulkner』으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100편에 이르는 단편 중 포크너가 42편을 추려낸 이 단편집은 장편소설 속 서사 구조와 미시적 현실 묘사를 압축해낸 포크너 문학의 정수이자, 요크나파토파라는 가상의 세계를 바탕으로 구성된 근대 미국인의 기억과 무의식의 지도이다. 그는 이 단편들 안에서 폐허와 침묵, 전쟁과 인종, 여성과 고통, 폭력과 슬픔을 주제로 남부 사회의 해체 과정을 치열하게 추적한다. 독립된 작품이면서도 포크너의 장편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이 단편들은, 그의 문학적 실험이 단지 형식에 그치지 않고 미국 역사와 인간 조건에 대한 총체적인 증언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포크너는 프랑스 실존주의자들로부터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가로 평가받았고, 라틴아메리카의 마르케스, 바르가스 요사,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모두 그를 “자신들의 문학적 아버지”로 언급했다.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 중국의 모옌 등도 포크너의 영향 아래 자신들의 고향과 가족의 이야기를 문학화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1962년, 미시시피 옥스퍼드에서 세상을 떠난 그는 미국 남부의 역사와 상처를 하나의 신화로 바꿔놓은 작가”로 남았다. 그의 작품은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독자와 비평가를 불러들이며, 언어와 인간 존재, 그리고 서사라는 개념 그 자체를 묻는 문학적 사유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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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릭스 포터 (지은이)    정보 더보기
피터 래빗의 어머니, 베아트릭스 포터는 1866년 런던의 부유한 법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자연을 벗 삼아 자라면서 스케치북에 늘 새의 알이나 나비, 애벌레, 토끼 등을 가득 그렸다. 풍부한 자연 관찰의 경험은 훗날 박물학자로 학식을 쌓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1901년 12월, 베아트릭스는 자신의 애완 토끼 ‘벤저민’의 이야기와 그림을 담은 책을 자비 출판했다. 이 작은 책은 단 1실링 2펜스였고 순식간에 모두 팔려 나갔다. 워낙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셜록 홈즈의 작가 코난 도일도 자녀들에게 그 책을 사주었다고 한다. 그 후 프레더릭 원 출판사와 출판 계약을 맺고 불과 2년 만에 5만 부라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글로스터의 재봉사》, 《다람쥐 넛킨 이야기》, 《벤저민 버니 이야기》 등을 꾸준히 집필하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1943년 12월, 자연과 어린이, 동물을 사랑했던 베아트릭스 포터는 무려 500만 평에 이르는 땅과 농장, 저택을 모두 기증하고 77세의 나이로 자연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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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은이)    정보 더보기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태어났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교사가 되었는데, 학교가 체벌을 강요하자 이를 거부하고 3주 만에 사직했다. 아버지의 연필공장에서 일을 돕다가, 가장 친한 친구인 친형 존과 함께 사립학교를 열어 2년 반 동안 열심히 운영했는데, 존이 파상풍에 걸려서 죽자 학교를 닫고 이곳저곳을 떠돈다. 친분이 있던 초월주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의 집에서 입주 가정교사 생활을 하고, 초월주의자들의 잡지 에 글을 기고하며 작가의 꿈을 키운다. 그러다가 형과의 추억도 정리하고 자신이 구상하는 ‘삶의 실험’도 하며 글을 쓰려고, 1845년 3월부터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기 시작했고, 같은 해 7월 4일부터 1847년 9월 6일까지 그곳에서 홀로 지냈다. 그러는 동안에 ‘노예제’와 ‘멕시코 전쟁’에 찬성하는 미국 정부에 반대한다며 세금을 체납했다가 체포되는 일도 겪는다. 1849년 형과의 캠핑을 추억하며 쓴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을 출간했는데, 초판 1천 부 중 300부도 채 안 팔려서 악성재고로 남자 후속권의 출간이 기약없이 미뤄졌다. 이에 소로는 원고를 계속 다듬었고, 결국 초고 완성 8년만인 1854년 《월든 : 숲속의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1859년에는 노예제도 폐지 운동가 존 브라운을 위해 의회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노예제 폐지 운동에 헌신하며 활발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펼쳤다. 그는 집필과 강연, 사회 참여를 이어 가던 중 폐결핵 진단을 받고 1861년 11월 3일 한평생 써 온 《일기》를 마지막으로 기록한 뒤 1862년 고향 콩코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후에 《소풍》(1863), 《메인 숲》(1864) 등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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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발저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78년 스위스 빌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와 예비 김나지움을 다녔으나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 때문에 그 이상의 교육은 받지 못했다.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열네 살 때부터 베른 주립은행에서 견습생 생활을 했고, 이후 취리히, 베른, 베를린, 슈투트가르트, 뮌헨 등 스위스와 독일의 여러 도시들로 거처를 옮기며 엔지니어 조수, 은행원, 사서, 비서 등으로 일했다. 1898년 처음으로 지역 신문에 시를 발표했고, 그후로 여러 작품을 문학잡지에 발표했다. 1906년부터 『타너가의 남매들』 『조수』 『벤야멘타 하인학교: 야콥 폰 군텐 이야기』 등 대표작을 출간했는데, 그의 작품들은 프란츠 카프카, 로베르트 무질, 헤르만 헤세, 발터 벤야민, 수전 손택 등에게 찬사를 받았다. 1913년 모국 스위스로 돌아와 호텔 다락방에서 7년을 머물며 산문집 『작은 문학』 『물의 나라』, 장편소설 『토볼트』 『테오도르』 등 다수의 작품을 집필했고, 1925년 2월 마지막 책 『장미』를 출간했다. 고독과 불안, 망상으로 고통받던 그는 누나의 권유로 1929년 베른에 있는 발다우 정신요양원에 입원했다. 입원 뒤에도 집필을 계속했으나 1933년 헤리자우에 있는 정신요양원으로 이송된 후에는 절필한 채 여생을 보내다 1956년 12월 25일 산책을 하던 중 눈 속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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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은이)    정보 더보기
일본의 소설가로 1892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1913년 도쿄제국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여 재학 당시 「노년」, 「라쇼몬」, 「코」를 발표하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이중 「코」가 일본의 ‘국민 작가’라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극찬을 받아 문단에 등단했으며, 오사카마이니치신문사를 거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에 들어갔다. 10년 남짓한 짧은 창작 기간에도 「라쇼몬」, 「덤불숲」, 「지옥변」, 「신들의 미소」, 「서방의 사람」, 「톱니바퀴」, 「갓파」 등에서 끊임없이 인간과 예술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만년에 이르러 신경쇠약, 불면증, 환각 증상을 보이다 1927년 7월 도쿄 자택에서 35세의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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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부르제 (지은이)    정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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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다 도라히코 (지은이)    정보 더보기
일본의 물리학자이자 수필가. 도쿄제국대학(현 도쿄대학교)을 졸업한 뒤 1908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도쿄제국대학 교수로 재직하는 한편, 이화학연구소와 도쿄제국대학 지진연구소 등에서도 연구 활동을 펼치며 일본을 대표하는 물리학자로 활약했다. 특히 전철이 혼잡해지는 원리나 별사탕의 생성 과정처럼 일상에서 접하는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탐구한 독창적인 연구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편 그의 이름은 일본 문학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다. 구마모토의 제5고등학교 재학 시절, 영어 교사로 부임한 나쓰메 소세키를 만나 하이쿠를 배우면서 사제의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의 교류는 이후에도 계속되었으며,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산시로』에는 데라다 도라히코를 모델로 한 인물이 등장한다. 데라다 도라히코 자신도 '요시무라 후유히코(吉村冬彦)' 등의 필명으로 수많은 뛰어난 수필과 하이쿠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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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쿠치 시노부 (지은이)    정보 더보기
<저자소개> • 오리쿠치 시노부(折口信夫)(1887~1953) 국문학자, 민속학자, 시인 시인으로 네기시 단가회(根岸短歌會), 단가(短歌) 잡지 아라라기(アララギ)에 참여 반(反)아라라기파 결성. 『닛코(日光)』 창간 참여 주요 저서 『고대연구(古代研究)』, 가집(歌集) 『海山のひだ』, 시집 『古代感愛集』, 소설 『死者の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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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혜 (지은이)    정보 더보기
어디에 있든 결이 조금씩 맞지 않는다는 이방인의 감각을 지니고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안전한 경계를 확보하고자 하는 이중성을 확인하고는 한다. 책세계를 통해 형성된 이상과 현실세계가 몸에 새겨준 생존 감각이 성인기에 이르러 급격히 부딪히는 경험을 했고, 이 충돌과 분투를 이해하고자 가족학과 노년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지금은 돌봄을 중심으로 생활세계를 연구한다. 남편과 중학생 아들 또한 이 세계의 일원이다. 함께 옮긴 책으로 『빛은 등 뒤에 있어』와 『왜 달빛을 받으며 잠시 걸어보지 않았을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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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옮긴이의 말 중에서

꽃피는책의 ‘인생 산책자를 위한 밤과낮 에디션’은 세계 문학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작가들의 산문을 두 권에 나눠 엮은 책이다. 밤과 낮은 하루의 시간을 반으로 가르는 과학적 구분이지만, 우리 삶을 구성하고, 지배하고, 이끌고, 관통하는 여러 주제를 그 온도와 명암에 따라 가르는 정서적 구분이기도 하다. 불면, 고독, 상실, 죽음 등은 밤의 영역으로, 자연, 사랑, 여행, 가족, 반려 등은 낮의 영역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나뉜 두 개의 시간, 두 가지 주제들은 빛과 그림자처럼, 동전의 앞뒷면처럼 원래 한 쌍이기에 단면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삶을, 그 삶이 이뤄지는 시공간을 은유한다.

우리가 인생이라는 길고도 짧은 행로를 걷는 동안 빛과 어둠은 교대로 길을 비추고, 교대로 길을 감춘다. 영원한 낮도, 영원한 밤도 없기에 그 길은 걸어볼 만한 길이다. 그리고 좋은 문학 작품은 언제나 그 길의 훌륭한 동반자가 되어준다. 오래전 세상을 떠난 작가들이 남긴 문장에는 행간마다 진지한 사유의 흔적이 서려 있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살아 꿈틀댄다. 때로는 시리도록 명징하고 때로는 봄볕처럼 따뜻한 그 사유와 시선에 감응하며 독자 여러분 각자의 인생 산책을 이어가기를, 그 시간에 충만함이 깃들기를 빈다.


공간, 오랫동안 그곳에 남아
헤르만 헤세❘정원에서

나는 정원의 여름이 그토록 급하게 왔다 간다는 사실이 언제나 놀랍고 애처롭다. 겨우 몇 달밖에 안 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정원에서는 여러 종의 식물이 뿌리내리고 피어나고 살아가다 시들어선 죽는다. 어린 허브를 심은 화단에 물과 비료를 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빽빽하게 자라선 번영을 이룬다. 그러고는 두세 달이 지나기도 전에 늙어버린다. 그렇게 목적을 다 이룬 허브는 새로운 생명에게 자리를 내준다. 정원처럼 여름이 무섭도록 빠르게 스쳐 가는 곳은 없을 것이다.


도서 정보 제공 : Yes24(www.yes24.com), 알라딘(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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