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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95137978
· 쪽수 : 102쪽
· 출판일 : 2015-11-12
책 소개
목차
필연주의 입장에서 "바틀비 스토리" 해석
바틀비 스토리 : A Story of Wall Street
책속에서
현재의 "인정의 정치학 politics of recognition"과 "분배의 정치학 politics of redistribution"에 대한 개념과 그 입장을 참조하라. "인정의 정치학 politics of recognition"은 개인의 "정체성 identity"을 확립하는 개념 (찰스 테일러 Taylor가 말한 "인간의 정체성은 주체와 객체 양자 간에 대화적으로 진행되는 상호 인정의 과정을 통해 구성"되는 개념)을 바탕으로 하므로 개인이 속한 집단 간의 고유한 정체성의 "차이 difference"를 인정받는 것을 추구하는 "정체성의 정치학 politics of identity"이라고도 부른다. 다양한 "소수 minority 집단"의 정체성과 다양성에 대한 인정을 추구하기에 "문화적 신분의 위계 구조 cultural status hierarchy"에 내재된 "문화적 불평등 cultural injustice"을 해소하고 "동등한 존엄성 equal dignity"을 추구하는 것이 "인정의 정치학"의 목표라고 정리할 수 있는데, 호네트가 여기에 속한
다.
"분배 투쟁 politics of redistribution"은 "사회경제적 위계 구조 socio-economic hierarchy"에서 야기되는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이를 대변하는 프레이저는 "인정 투쟁"을 강조하다 보면 복지 국가(경제 민주화)같은 분배 정의에 대한 요구를 상대적으로 간과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고 인정의 정치학을 비판한다. 프레이저의 견해에 따르면 현재 문제의 핵심은 구조화된 경제적 불평등에서 기인하는데 소수자 개인의 정체성 투쟁에 집착하다 보면 정작 본질적 문제를 해결해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법적인 측면에서 평등 사회와 복지 국가를 실현한 미국과 독일의 경우와는 (호네트는 독일의 사회학자, 프레이저는 미국의 정치학자) 다르게 우리나라는 아직 평등과 정의가 실현되지 못한 사회임을 지적하고 싶다.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은 최소한 정치제도와 법적으로는 평등 사회와 정의 사회를 실현시킨 상황이기 때문에 성소수자, 이민자, 극단주의자 등의 "소수자의 인정 투쟁"이 분배 문제를 크게 왜곡시키지 않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분배문제가 핵심인 복지국가를 아직 완성해내지 못하고 있고 또 법과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한 불평등 사회로 여전히 머물고 있는 과정적 단계에서 소수자의 인정 투쟁 문제를 우선시하게 되면 구조적인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해 내기가 벅차다는 주장이 보다 설득력이 강하다고 생각된다. 물론 분배와 인정 모두를 요구하고 있는 현재 상황이기 때문에 단순한 이원론으로는 대립과 간극을 해소할 수 없을 것이고, 따라서 뚜렷한 대안적 시각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나라에는 특수한 문제점이 하나 더 추가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예컨대 우리나라는 "탈북자" 문제가 있는데 이건 "소수자"의 문제이긴 하지만 이에 대해 미국이나 독일과 같은 선진국 사회처럼 단순한 "소수 이민자"의 문제로써 바라볼 수 없다. 한국에서 탈북자 문제는 인종과 언어와 문화가 다른 선진국에서의 소수자 문제(다문화주의) 또는 이민자의 문제와는 분명히 다른 측면이 존재하고 또 선진국(서독과 동독이 통일된 지가 이미 25년이 되었다)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해결이 된 "이념 문제"가 더욱 크게 달려 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소수 탈북자'의 문제는 탈북자의 남한내에서의 삶의 투쟁을 어떻게 해결해 낼 수 있을까의 단순한 '인정' 또는 '분배'의 정치 문제뿐만 아니라 보다 더 큰 틀의 '통일'이라는 정치 경제학적 문제가 개입된다. 이런 측면에서 '인정의 정치학'의 궁극적 목표인 '선한 경쟁 good competition'의 구도로는 현재 우리나라의 문제점을 해결해내기 어렵다고 보여 '인정 투쟁'의 이론적 취약점이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이념 경쟁은 후쿠야마의 주장처럼 "역사의 종언"이 된 지 (1989년) 이미 오래되었다. 하지만 한반도는 독일의 경우와는 전혀 다르게 남한과 북한의 두 다른 이질적 체제가 서로 대립하고 있다.)
"인정 투쟁 politics of recognition"을 주장하는 악셀 호네트 Honneth와 이에 대해 "분배 투쟁 politics of redistribution"을 주장하는 낸시 프레이저 Fraser 사이의 논쟁 (Fraser and Honneth, Redistribution or Recognition? A Political-Philosophical Exchange, London: Verso, 2003)을 깊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_ 해설
아, 바틀비! 아, 인간이여!
Ah, Bartleby! Ah, humanity!
(각주 1. 아포스트로피 apostrophe 수사적 표현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아포스트로피 수사적 표현은 거론된 사람(바틀비)은 이제 죽고 없다. 여기에 현재 없는 사람을 두고서 한 말을 쓸 때 사용된다. 아아, 비록 그는 갔지만, 인간의 삶은 죽고 나서 깨닫는 것! 만시지탄. 사람의 일은 항상 일이 지나고 나야 알 수 있다는 것. 모멘토 모리 Memento mori "뒤돌아 보아라! 당신도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한낱 인간임을 기억하라! Look behind you! Remember that you are but a man!"
(각주 2. 보편적인 인간성 common humanity. "Humanity"의 뜻은 인간다움, 인간성, 인간본성 등 다양하다. 인류 humankind 인간종족 human species 인간족속 human race 인간 mankind 사람 man 개인들 individuals 등으로 상호 교환되는 단어이다. 조지 엘리어트 Eliot는 약자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강조하는 인류애, 박애주의, 인도주의를 강조한 "휴머니즘 종교 religion of humanity"의 열렬한 지지자이었다. 인간이 신이라 부른 모든 것은 실제로는 인간의 필요성과 욕망이 만들어낸 이념적 산물 즉 인간은 자기 형상대로 신을 창조하였는데, 최고의 법칙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사랑"이고, 사랑이 인간을 결합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자 기독교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인간 사회가 보다 나은 사회로 진보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도덕적 지적 능력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타인에 대한 사랑, 이해, 동정심, 희생을 강조했다.
먼저 내 자신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나는 젊었을 때부터, 그저 편안하고 쉽게 살아가는 삶이 최고의 인생이라는 신념을 확고하게 줄곧 견지해 왔다. 그리하여, 나는 다들 알다시피 활력이 넘치고, 또 때론, 심지어 분격하기도 하는, 긴장의 연속인 직업에 속하고 있긴 해도 그런 격렬함으로 인해서 나의 평화가 깨뜨려지는 경우를 겪어보지 않았다. 나는 어려운 배심원 재판을 맡거나, 대중의 찬사를 불러 일으킨 적이 없는 그런 야심 없는 변호사 부류에 속하고, 더욱이 아늑한 휴양지같이 차분하고 조용한 사무실 안에서, 돈 많은 부자들의 채권, 담보증권, 부동산 매매 업무를 주로 맡으며 안정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 모두는 나를 아주 안전한 사람이라고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