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일본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91196047535
· 쪽수 : 456쪽
· 출판일 : 2021-03-01
책 소개
목차
푸른 논의 Y자 갈림길 009
만주 공주의 낮잠 119
바카라 아귀 203
만물상 젠지로 285
백구 백사전 365
책속에서
천막 아래서 캔 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주최자들이 헐레벌떡 뛰어들어온 다케시를 일제히 돌아봤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처럼 다케시는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크……, 크……, 큰일 났어요!"
목구멍에서 쥐어짜낸 듯한 목소리였다.
"……큰일 났어요! 도와주세요!"
주최 위원회 대표인 후지키 고로는 좀 놀랐다.
어디서 사람이 다치거나 싸움이 벌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보다 '아, 뭐야, 얘도 말을 할 줄 아는구나'라는 사실로.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일본 이름이 요코랬나)가 벼룩시장에 데리고 다녔는데, 당시는 어머니 곁에서 혼자 얌전히 놀던 아이였다. 그 애가 어느새 장성해 요즘은 어머니를 도와 상품 운반과 관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손님을 상대하고 주최자 측과 연락하는 건 호감형 인상인 어머니가 도맡아 왔다. 하지만 짝퉁 상품을 판매하는지라 주최자 입장에선 호객에 도움이 되더라도 마냥 환영할 수 있는 부류가 아니었기에 여지껏 20년 가까이 매주 얼굴을 마주하면서도 아들에게 말을 걸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어디서 어떻게 착각을 했는지 고로는 이 젊은이가 말을 못한다고 믿어 버렸다. 자신들은 물론이고 벼룩시장 행사를 돕는 또래 젊은이들과도 말을 나누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탓이기도 했다.
눈앞에서 벌벌 떠는 다케시를 보고 고로를 비롯한 주최자들은 그제야 무거운 엉덩이를 들었다.
"이봐, 무슨 일이야?"
고로가 뒤쪽 대나무 숲으로 시선을 보냈을 때, 한 중년의 폭력배가 무릎 꿇고 용서를 비는 요코를 개 패듯이 때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로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폭력배가 드나드는 것도 민폐지만, 그렇다고 짝퉁 판매자 편을 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주최자니까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건 알지만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 부근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이라 하면 10년 전 실종 사건 말고는 없다. 저 남자가 일으킨 소동도 온 동네가 다 알 정도다. 저 남자의 말 때문에 경찰이 움직였고, 의붓아들이 유력 용의 선상에 올랐다. 그러나 사건 당시 그는 어머니와 함께 집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어머니의 증언만으로는 알리바이가 입증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의붓아들이 범인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유일한 증거랄까 증언이 "그 아이를 죽인 건 분명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우리 아들이다"라는 의붓아버지의 말뿐이었다.
비단 저 남자의 의붓아들만이 아니라고, 쓰무기는 생각했다.
이 동네에 사는 남자들 모두가 아이카를 납치했을지도 모를 용의자였다.
[푸른 논의 Y자 갈림길] 중에서
이 만주사화에 독이 있다고 가르쳐 준 건 같은 반 이시이 유코의 어머니였다.
만주사화가 핀 논두렁길을 지나면 나오는 주택가에 위치한 유코네 집은 당시엔 드물었던 전업 농가 중 하나였다.
"……그 독으로 두더지나 쥐를 내쫓아. 그래서 이렇게 논두렁에 심어놓는 거야."
유코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흙 묻은 손을 털었다. 손바닥까지 볕에 탔다. 그렇듯 손이 억세 보이는 사람이 "독은 꽃이 아니라 줄기에 있으니까 너무 이리저리 주물럭거리지 말렴" 하고 걱정했다.
초등학생이었던 에리코는 쥐고 있던 꽃을 냅다 버렸다.
그래도 기분 탓인지 손바닥이 아직 젖어 있는 듯 찜찜해 용수로 위에 다리를 벌리고 서서 차가운 물로 손을 꼼꼼히 씻었다.
허둥대는 에리코를 보고 유코가 웃었다. 손에 꽃을 잔뜩 쥔 채 "에리코는 겁쟁이구나. 입에 넣지만 않으면 괜찮아"?하고 태연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