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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근현대사 > 일제치하/항일시대
· ISBN : 9791197325007
· 쪽수 : 336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만세 전
1장. 모두가 암흑에 절망할 때, 결연히 촛불을 밝히는 사람들이 있었다 : 기획자들
독립과 자유의 씨앗을 뿌린 사람들 : 여운형과 신한청년당
독립선언서로 독립운동의 시작을 알리다 : 손병희와 천도교인들
교의를 넘어 대의로, 오직 한길로: 이승훈과 기독교인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싸움’을 하겠다: 학생 지도부
호외 1. 일제 군경 당국과 조선의 지식인들은 언제 3·1운동을 알게 됐을까
호외 2. 열여섯 살 채순병이 전단을 뿌린 이유
2장. 희망의 빛이 방방곡곡 비출 때까지, 목숨걸고 횃불을 들다 : 전달자들
만인이 죽어 백만 인을 살리는 길: 보성사 사무원 인종익
그저 당연한 일을 했던 열아홉 살 소년: 배재고보 2학년 김동혁
불타는 마음은 총칼로도 없앨 수 없으니: 지하신문과 격문을 만든 사람들
호외 1. 인종익의 선언서는 어디까지 전해졌을까
호외 2. 팩트 체크, 지하신문의 진실과 허구
3장. 그날, 만세 소리가 들불처럼 조선땅을 뒤덮었다
열 살 아이부터 학생과 교사, 순사보까지, 그들이 만세를 부른 이유 : 만세시위자들
‘폭민’인가 ‘의민’인가, 돌멩이와 몽둥이를 든 주민들 : 순사 피살사건의 진실
‘제국’에서 ‘민국’으로 가는 길: 장채극과 자동차시위대
호외 1. 조선인 고등계 형사 신승희는 왜 죽었나
호외 2. 3·1운동은 어떻게 거대한 물결이 되었을까
에필로그. 만세 후
저자소개
책속에서
경기도경찰부의 심문은 7월 18일부터 27일까지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1914년 중국으로 망명한 후부터 1929년 체포될 때까지 여운형의 삶 대부분을 낱낱이 들여다보겠다는 심사였다. 지루한 문답이 이루어지던 어느 날 경찰이 문득 물었다.
“조선 도착 후 감상은 어떠하던가?”
“상해로 건너갈 때는 막 세계대전이 벌어졌을 때라, 10년이나 15년이 지나면 세계의 대세도 크게 변하지 않을까, 그래서 언젠가는 영광스럽고 빛나는 귀국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몽상했었소.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일장춘몽이 되어 경찰에 붙잡힌 채 이 산하를 접하니 비분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소. 이게 내 첫 번째 감상이오. 그다음은……”
“그다음은?”
“부산에 내려 해안 일대의 산을 보았소. 전에 본 민둥산이 일변하여 청산이 되어 있어 놀라웠소. 그러나 해안에 있는 동포의 부락을 보고 변화 진보의 자취를 찾지 못해 자못 실망했소. 총독정치가 민둥산을 청산으로 만들 수는 있어도 인민의 삶은 어쩌지 못하는가보오?”
“넌 독립운동을 그만두려는 의지가 전혀 없는가?”
“예전부터 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으니 이제 와서 아무리 탄압을 가한다 해도 그 신념은 변하지 않을 거요. 그것이 내가 명령받은 사명이고, 조선인으로서 불가피하게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오.”
- 독립과 자유의 씨앗을 뿌린 사람들 : 여운형과 신한청년당 중에서
9시가 조금 지난 시각, 군중 속에서 두 대의 인력거가 나타났다. 인력거에 탄 청년들의 손에는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조선독립’이라고 쓴 깃발이 들려 있었다. 강기덕과 김원벽이었다. 군중들은 인력거를 앞세우고 행진을 시작했다. 만세의 함성이 온 시내를 뒤흔들었다.
‘만세’로 조선인은 하나가 되었다. 그들은 독립과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싸웠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다. 아무도 억압받지 않는 세상, 아무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 아무도 착취당하지 않는 세상이 그것이었다.
강기덕은 시위를 시작한 지 10분 만에 경찰에 체포되었다. 김원벽은 좀더 오래 버텼지만 그 역시 많이 길지는 않았다. 시위의 경험이 부족해 지도자를 보호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런 것은 금세 배울 수 있으니까. 그리고 누군가 다음 사람이 그들이 떨어뜨리고 간 깃발을 주워 흔들면 될 테니까 말이다.
봄은 아직이었다. 하지만 조선인들의 마음은 이미 봄이었다.
-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싸움’을 하겠다: 학생 지도부 중에서
“이제 와서 무얼 더 숨기겠소. 내가 다 말하리다.”
인종익이 입을 열었다. 그는 연이은 심문으로 반쪽이 다 된 몰골로 조사실에 끌려왔다. 그를 아는 사람이 봤다면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릴 만큼 참혹한 모습이었다. 그는 피딱지로 얼룩진 입가를 훔치며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애써 떠 앞을 바라봤다. 눈앞에 갑오년의 동지들이 또다시 아른거렸다. 기쁨에 들뜬 모습인 걸 보니 그해 가을 대흥관아를 점령했을 무렵인가보다. 인종익은 예포대접주 박덕칠(朴德七)이 이끄는 농민군에 속해 있었는데, 대흥관아를 점령했던 일은 예포농민군의 가장 빛나는 성과였다. (…)
“만인이 죽어 백만 인을 살리는 방법이 있다면 죽음도 불사할 것이오. 만인을 죽이면 만인의 피가 백만을 물들이고, 백만을 죽이면 백만의 피가 천만을 물들일 것이오. 그럼 결국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겠소?”
“그대가 감옥에 들어가면 가족은 어떻게 하나?”
“지금 내 가족을 걱정해주는 것이오? 내 가족은 가족대로 자활의 길을 구할 것이오.”
- 만인이 죽어 백만 인을 살리는 길: 보성사 사무원 인종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