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91197998584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22-12-16
책 소개
목차
엮는 말 • 4
행랑 자식 • 8
별을 안거든 우지나 말걸 • 36
십칠 원 오십 전 • 70
여이발사 • 102
속 모르는 만년필 장사 • 150
전차 차장의 일기 몇 절 • 154
젊은이의 시절 • 170
계집 하인 • 207
책속에서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더니 보기 싫은 젖퉁이를 털럭털럭하면서 어머니가 쫓아 나왔다.
“이 망할 녀석, 눈깔이 없니? 나리 마님 새 버선에다가 그것이 무엇이냐? 왜 그렇게 질뚱바리냐, 사람의 자식이.”
어머니는 그래도 말이 적었다. 그러고는 곧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진태는 간이 콩알만 하게 무서운 것은 둘째 쳐놓고, 웬일인지 분한 생각이 난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자기 잘못 같지는 않다. 자기가 눈 삼태기를 들고 가는데 교장 어른이 딴생각을 하면서 오시다가 닥달린 것이지 자기가 한눈을 팔다가 그리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웬일인지 호소할 곳이 없어 그는 그대로 방바닥에 엎드러졌다. 그러고는 고개를 두 팔로 얼싸안고 자꾸자꾸 울었다. 그는 눈물이 방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알았다. 삿자리 깐 밑으로 흙내가 올라오는 것을 맡았다. 그러고는 어머니도 걱정을 하고 아버지도 걱정을 할 터요, 더구나 아버지가 이것을 알면은 돌짝같은 손에 얻어맞을 것을 생각하매 몸서리가 난다. 그는 신세 한탄할 문자를 모르고 말도 모른다. 어떻든 억울하고 분하였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호소할 데도 없었고 분풀이할 곳도 없었다.
‘행랑 자식’ 중에서
그러나 이 A의 탄 배에서는 무슨 소리가 들리는 줄 아십니까? 때 없는 우울과 비분과 실망과 고통과 원망이 뭉텅이가 되고 덩어리가 되어 듣는 이의 귓구멍을 틀어막는 듯이 다만 띵하는 머리 아픔이 있을 뿐이외다.
나와 같이 배를 띄워 같은 자리를 지나가는 배가 몇백 몇천 있습니다. 그들은 다만 서로 바라보며 기막혀 웃을 뿐이외다. 그리고 서로 눈물지을 뿐이외다.
선생님! 이 배가 가기는 갑니다. 한 시간에 오리를 가거나 단일 리를 가거나 가기는 갑니다. 그러나 그 배가 뒷걸음질 칠 리는 없을 터이지요? 가기만 하는 배는 우리를 실어다 무엇을 하려 할까요? 흐르는 시간은 말이 없고 뜻이 없으매 다만 일정한 규칙대로 가기는 가겠으나 뜻 없고 말 없는 시간이란 시내 위에 이 A는 무슨 파문을 그려놓아야 할까요?
새벽 서리 찬 바람에 차르락 찰싹 뛰어노는 어여쁜 물결입니까? 아침저녁 멀리 밀려왔다 멀리 밀려가는 밀물의 스르렁거리는 물결입니까? 초승달 갸웃드름하게 비친 푸르렀다 희었다 하는 깜찍한 파문입니까? 어떻든 저는 무슨 파문이든지 그 시간이란 시내 위에 그리어놓아야 할 것이외다. 하다못하여 시꺼먼 물결 위에 푸― 하게 일어나는 거품일지라도 남겨놓고야 말 것이외다.
‘십칠 원 오십 전’ 중에서
인사를 하고서 저쪽 교의 뒤에 가 등대나 하고 있는 듯이 서있다. 모자를 벗어 걸었다. 그리고 양복 웃옷을 벗은 후 교의에 나가 앉으면서 그래도 못 미더워서 정가표에 써 붙인 것을 곁눈으로 보았다. 생각한 바와 마찬가지로 이십 전이다. 적이 안심이되었다. 그러나 또 없는 사람은 튼튼한 것이 제일이다. 전차를 타려고 전차료 한 장 넣어둔 것을 전차에 올라서기 전에 미리 손에다 꺼내 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그래도 튼튼히 하리라 하고 번연히 바지 주머니에 아까 전당표하고 얼려 받으면서 그대로 받는 대로 집어넣은 오십 전 은화를 상고해 보고 전당표를 보이면은 창피하니까 돈만 따로 한 귀퉁이에다 단단히 눌러 넣은 후에 머리 깎을 준비로 떡 기대앉았다.
머리 깎는 기계가 머리 표면에서 이리 가고 저리 갈 때 그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궁리를 한다. 물론 돈 쓸 일은 많다. 그러나 삼십 전이라는 적은 돈을 가지고서 최대한도까지 이익 있게 활용해야 할 것이다. 하숙에서는 밥값을 석 달 치나 못 내었으니까 오늘낼로 내쫓는다고 재촉이다. 그러나 집에서는 돈 부쳐줄 만하지는 못하다. 그렇다고 그대로 있을 수는 없다. 어디 가서 거짓말을 해서 단돈 십 원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시부야에 있는 제일 절친한 친구 하나가 살그럭댈그럭 돌아가는 머리 깎는 기계 소리와 함께 눈앞에 보인다. 그러나 그놈에게 가서 우선 저녁을 뺏어 먹고 돈 몇십 원 얻어 와야겠다. 그놈의 할아버지는 그믐날이면 꼭꼭 전보로 돈을 부쳐주니까 오늘은 꼭 돈이 왔을 터이지!
‘여이발사’ 중에서